붓끝에 새긴 독립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삼일절 아침, 창밖의 하늘은 청명하다.

1919년 그날, 수많은 사람들이 맨손으로 거리로 나섰다.

총칼 앞에 육신은 쓰러졌어도 목소리는 꺾이지 않았다.

그 같은 시대, 붓을 든 사람들이 있었다.

친일의 물감으로 제국의 영광을 그린 이들이 있었는가 하면,

(https://brunch.co.kr/@jamesan/421) 화필보국편 참조


Cap 2026-03-01 06-39-20.jpg 이쾌대, 3.1봉기(삼일운동), 1957


그 반대편에 그림 한 장으로 독립의 꽃씨를 뿌린 화가들도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지사화가(志士畵家)라고 부른다.

오늘 그 이름들을 다시 불러본다.


서화가 김진우(金振宇, 1883~1950)

열두 살 때부터 의암 유인석 문하에서 항일 의병 활동에 참여했고,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단군 기원 연호 '4252년'을

써넣은 난죽화 〈묵란〉을 그려 상하이로 망명했다.

대한민국 임시의정원 강원도 대표 의원으로 활동하면서도

그림을 팔아 독립운동 자금을 댔다.

1921년 일제 경찰에 붙잡혀 징역 3년을 선고받았지만,

그는 감옥에서 오히려 사군자 화법을 갈고 닦았다.

출옥 후 그가 그린 대나무는 죽창처럼 날카로웠다.

일제가 주관하는 조선미술전람회에 임진왜란 당시 서산대사의 시와 함께 그 그림을 출품했으니,

심사석상에서 일제를 향해 붓으로 맞선 셈이었다.


Cap 2026-03-01 06-34-35.jpg 김진우, 묵죽


나혜석(羅蕙錫, 1896~1948)은 조선에 서양화를 도입한 최초의 전업 여성 화가이자,

민족자결권을 향한 독립운동에 헌신했다.

3·1운동에 가담하여 옥고를 치렀고,

봉건적 여성 억압에 맞서 싸우면서 조선의 들꽃과 인물을 화폭에 담았다.

대표작 〈화녕전 작약〉과 〈자화상〉에는 꺾이지 않으려는 한 인간의 의지가 고스란히 배어 있다.


Cap 2026-03-01 06-44-38.jpg 나헤석, 화령전 작약, 1930

임용련(任用璉, 1901~?)

파리 유학 시절에도 항일 운동에 가담한 이력이 있었다.

임용련의 〈에르블레 풍경〉은 이국의 하늘 아래서도

조선인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 증거이며,

훗날 그는 이중섭의 스승이 되어 민족의 예술 정신을 이어주었다.


Cap 2026-03-01 06-52-44.jpg 임용련, 에르블레 풍경, 1930


이회영(李會榮, 1867~1932) 역시 서화에 능한 지사화가였다.

600억에 달하는 전 재산을 팔아 만주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우고 독립군을 양성했다.

김진우, 한일동(韓一東)과 함께 그림으로 군자금을 마련하고,

서화를 통해 동지들과 항일 의지를 나눴다.


Cap 2026-03-01 06-57-22.jpg 이회영, 석란도, 1920


붓은 총보다 느리게 나아간다.

그러나 때로는 더 오래 남는다.

오늘도 박물관 유리 너머 조용히 걸려 있는 한 폭의 묵죽(墨竹)이,

백 년 전 어느 화가의 떨리는 손끝과 꿋꿋한 마음을 전하고 있다.

삼일절에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광장의 함성만이 아니다.

그 시대, 작은 화실에서 붓 한 자루를 무기 삼아

나라를 사랑한 화가들의 이름도 함께 불러야 한다.

매거진의 이전글그림을 산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