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녀사냥의 진실

주절주절

by 제임스

2018년 평창 올림픽의 영웅이 있었다.

쇼트트랙 금메달리스트 임효준.

그러나 불과 1년 뒤, 그는 한국을 떠나야 했다.

이제 그는 린샤오쥔이라는 이름으로 중국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를 매국노, 변절자라 부른다.



밀라노 올림픽에서 중국 팬들이 그의 얼굴이 담긴 팻말을 들고 환호할 때,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사건의 발단은 소박했다.

진천선수촌에서 젊은 선수들이 장난을 주고받았다.

CCTV 영상을 직접 본 관계자의 증언에 따르면,

황대헌이 먼저 암벽 기구를 오르던 여자 선수의 엉덩이를 주먹으로 쳤고,

임효준이 그 뒤를 따라 암벽에 오르는 황대헌의 반바지를 잡아당겼다.

목격자였던 여자 국가대표 노도희는 "장난스러운 분위기였다"고 증언했다.

탄원서를 써준 선수들도 있었다.


그러나 임효준은 동성 간 성추행 혐의로 신고됐고,

2020년 5월 1심에서 벌금형이 선고되며 성추행범이라는 낙인이 찍혔다.


그러나 같은 해 9월, 항소심에서 대법원은 전혀 다른 결론을 내렸다.

"장난스러운 분위기였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목적이 아니었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한 것이다.


판결문에는 더 중요한 사실이 명시됐다.

"황대헌도 동료 여자 선수가 장난으로 받아들일 것을

감지하고 엉덩이를 때리는 행위를 했다"는 것이다.

같은 성격의 행위를 먼저 한 황대헌은 신고자가 됐고,

뒤이어 장난을 받아친 임효준은 성추행범이 됐다가 결국 무죄로 풀려났다.

법원이 진실을 바로잡는 데 걸린 시간은 1년이 넘었다.


그 사이 임효준은 이미 린샤오쥔이 되어 있었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

당시는 조재범 코치의 선수 폭행 사건으로 빙상계 전체가 들끓던 시기였다.

연맹은 여론의 눈치를 살폈고,

경고 수준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안을 서둘러 1년 자격 정지로 매듭지었다.

진천선수촌장 신치용조차 후에 "그렇게까지 갈 일이 아니었다.

임효준이 떠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었다"고 고백했다.

성백유 전 평창올림픽 대변인은 더 직설적으로 말했다.

당시 책임지는 어른이 없었고, 대한체육회장과 지도자들과 원로들은 비겁했다고.


마녀사냥이란 원래 죄 없는 이를 향한 집단적 분노와 처벌을 뜻한다.

그 핵심 구조는 단순하다.

거대한 공포나 분노가 사회를 지배할 때,

사람들은 그 감정을 해소할 희생양을 찾는다.

희생양은 사건의 실제 무게와 무관하게 선택되는 경우가 많다.


프란시스코 고야, ‘마녀들의 연회’(1820~1823년). 17세기 스페인의 마녀사냥을 풍자하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얼마나 나쁜 사람인가가 아니라,

그를 벌하는 것이 지금 이 순간 얼마나 편리한가이다.


임효준의 경우가 정확히 그랬다.

빙상계 성폭력 문제로 여론이 들끓는 시기에,

그는 가장 손쉬운 희생양이었다.

그의 죄목이 실제로 무엇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대법원이 무죄를 선고하기 전까지, 아무도 멈추지 않았다.


여기에 또 다른 어둠이 겹친다.

빙상 내부에서는 특정 팀과의 계약을 강요한 거물의 지시를

거스른 것이 결정타가 됐다는 시각도 있다.

파벌과 이권이 얽힌 세계에서 뛰어난 선수의 추락은 경쟁자들에게 호재였다.

집단은 침묵했고, 권력은 작동했으며, 한 사람의 인생이 무너졌다.

무죄 판결은 그 모든 것이 끝난 뒤에야 조용히 내려졌다.


그가 중국행을 선택하기 직전 어머니에게 남긴 말이 마음을 오래 붙든다.

"다른 나라에 가는 것보다 한국이 더 무서워."

조국보다 이국이 더 안전하다고 느끼게 만든 나라.

그것이 우리가 임효준에게 한 일이다.

그는 생활고 때문에 떠난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이라는 꿈 하나를 위해,

자신을 짓밟은 땅을 뒤로하고 새로운 국적을 택했다.



마녀사냥의 가장 무서운 진실은

그것이 언제나 정의의 이름으로 행해진다는 점이다.

분노한 군중은 스스로 옳다고 믿는다.

징계를 서두른 연맹도, 침묵한 지도자들도,

그 흐름에 올라탄 이들도 모두 그 순간만큼은

자신이 잘못된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더 무섭다.

대법원의 무죄 판결이 나왔어도 아무도 사과하지 않았다.

반성이 없는 곳에 재발 방지도 없다.


밀라노 빙판 위에서 중국 유니폼을 입고 달리는 린샤오쥔을 보며,

우리는 그저 아깝다거나 씁쓸하다는 말로 넘어가서는 안 된다.

그 자리에 우리의 실패가 있다.

어른들의 비겁함이 있고, 집단의 탐욕이 있으며,

진실보다 여론을 선택한 순간들이 있다.

무죄 판결은 한 사람의 명예를 법적으로 회복시켰지만,

빼앗긴 시간과 올림픽과 조국은 돌려주지 못했다.

그 실패를 제대로 들여다볼 때,

다음번 마녀사냥의 불씨를 조금이나마 꺼뜨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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