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캐나다가 흔들리고 있다.
한때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나라로 손꼽히던 이 나라는
지난 10년간 급격한 인구 변화를 겪으며 정체성의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
저스틴 트뤼도 총리의 공격적인 이민정책으로 인해
3천만 명이던 인구가 4천만 명을 넘어섰고,
그중 상당수가 인도 출신 이민자들이다.
거리의 풍경이 바뀌고,
간판의 언어가 달라지고,
취업시장이 요동치면서 '캐나다'가 아닌 '캔디아'라는 자조 섞인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트뤼도 정부는 경제 성장과 노동력 확보를 명분으로
매년 50만 명 가까운 이민자를 받아들였다.
표면적으로는 합리적인 정책이었다.
저출산과 고령화로 줄어드는 생산가능인구를 보충하고,
다양성을 통해 사회를 풍요롭게 만든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급격한 인구 유입은 주택난을 심화시켰고,
임금 상승을 억제했으며, 기존 시민들의 일자리를 위협했다.
사회 통합은커녕 갈등만 깊어졌다.
뒤늦게 정부는 이민 축소 정책을 발표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캐나다가 주로 고급 인력 중심의 이민을 추진했다는 것이다.
대학 교육을 받은 전문직 종사자, 기술자, 연구원들이 대거 유입되었다.
그런데도 이런 혼란이 발생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이민자의 '질'이 아니라 '속도'와 '규모'의 문제였다는 뜻이다.
아무리 우수한 인재라도 사회가 감당할 수 없는 속도로 밀려들면 갈등이 생긴다.
반면 한국의 이민정책은 캐나다와는 다른 양상을 보인다.
한국은 주로 3D 업종—힘들고, 더럽고, 위험한 일—에 외국인 노동자를 받아들여왔다.
건설 현장, 공장, 농장, 어선에서 일하는 이들 대부분이 외국인이다.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일자리를 메우는 구조다.
이는 캐나다처럼 고급 인력이 기존 시민과 직접 경쟁하는 상황과는 다르다.
표면적으로는 갈등이 덜해 보이지만, 이 역시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의 외국인 노동자들은 대부분 열악한 노동 환경에 놓여 있고,
사회적 통합의 기회는 제한적이다.
그들은 필요할 때만 활용되는 '손님 노동자'로 머물 뿐,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이는 단기적으로는 마찰을 줄일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또 다른 형태의 사회 분열을 낳을 수 있다.
캐나다의 사례는 한국에 중요한 교훈을 준다.
이민정책은 단순히 경제적 계산만으로 결정할 수 없다.
사회가 받아들일 수 있는 속도와 규모,
그리고 통합의 의지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고급 인력이든 단순 노동자든,
중요한 것은 그들을 어떻게 사회 구성원으로 받아들이고,
공존의 방법을 찾느냐는 것이다.
캐나다의 혼란은 그 균형을 잃었을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보여주는 생생한 증거다.
한국 역시 저출산 시대를 맞아 이민 확대를 고려하고 있다면,
캐나다의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신중하고 균형 잡힌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