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당에 줄 서는 나라

주절주절

by 제임스

21세기 대한민국은 기묘한 균열 속에 놓여 있다.

인공지능이 시를 쓰고 양자역학이 상식이 된 시대라지만,

정작 사회의 이면은 '영적 비즈니스'의 화려한 네온사인으로 넘실댄다.

최근 JTBC가 OTT 플랫폼에서 방영된 무속인 서바이벌 예능 <운명전쟁 49>는

우리 사회가 지탱해온 합리주의의 근간이 얼마나 취약한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가장 당혹스러운 지점은 무속이 '과학'과 '지성'의 탈을 쓰고 양지로 걸어 나왔다는 사실이다.

제작진은 대한민국 최고의 지성소라 불리는 카이스트(KAIST) 출신 무당을 출연시켜

무속에 지적 권위를 부여했다.

이는 무속과 과학의 위험한 동거다.

데이터와 증명을 생명으로 하는 과학의 이름이,

주관적 직관에 의존하는 무속을 포장하는 도구로 전락했다.



여기에 인공지능(AI) 상담 플랫폼까지 등장해 30초당 1,000원의 복채를 훑어가는

풍경은 그야말로 블랙코미디다.

과학 기술이 미신을 타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기적 행태를 고도화하고 정당화하는 수단이 된 셈이다.



이러한 'MZ 무당' 열풍의 중심에는 출연자 노슬비가 있다.

그녀는 수려한 외모와 세련된 라이프스타일을 소셜 미디어에

전시하며 스스로를 인플루언서화했다.

방송으로 얻은 인지도는 곧장 거대한 수익 모델로 연결된다.

월 9만 9,000원의 '구독 기도 서비스'를 판매하고,

'영적 능력'을 불어넣었다는 명목으로 137만 원에 달하는 금 장신구를 팔아치운다.

심지어 '도화살'을 부른다는 화장품까지 유통된다.

이것은 신앙인가, 아니면 영적 공포를 담보로 한 천박한 상술인가.



무당들이 점을 보는 방식은 교묘하다.

그들은 흔히 '바넘 효과(Barnum Effect)'와 '포스트 혹(Post Hoc)' 오류를 이용한다.

누구에게나 해당할 법한 모호한 말을 던진 뒤, 나중에 사건이 터지면

"거봐, 내 말이 맞았지?"라며 인과관계를 끼워 맞춘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화법으로 빠져나갈 구멍을 만들어 두는 것이다.


만약 그들의 예언이 정말로 신통하다면,

왜 우리 현대사의 비극은 단 한 번도 피하지 못했는가?

국가 최고의 권력을 가졌던 이들이 단죄받거나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때,

그들 곁을 지키던 수많은 '도사'와 '법사'들은 왜 그 운명을 예견하지 못했는가?

권력의 몰락을 맞추기는커녕, 그저 권력의 단맛에 취해 함께 침몰했을 뿐이다.


심지어 이 프로그램의 메인 진행자인 박나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방송가를 종횡무진하던 그녀가 각종 논란과 비판 속에 하락세를 겪고 있음에도,

함께 출연한 49명의 '영험한' 무당 중 누구 하나 그녀의 추락을 경고하거나 맞히지 못했다.

눈앞에 있는 진행자의 운명조차 읽지 못하는 이들이,

어떻게 시청자의 미래와 망자의 한(恨)을 논한단 말인가?


그럼에도 대중은 이들에게 열광하며 줄을 선다.

2027년, 심지어 2029년까지 예약이 꽉 찼다는 소식은

이 사회가 얼마나 깊은 불안에 잠식되어 있는지를 보여준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위해 순직 소방관과 경찰관의 죽음까지

예능 소재로 소모하며 인륜을 저버렸고, 국가는 이를 방조하고 있다.


'무당에 줄 서는 나라'라는 오명은 우리가 스스로 질문하기를 멈췄을 때 찾아왔다.

삶의 고통을 직면하기보다 '맞춤형 예언'에 의탁하려는 나약함이 괴물을 키웠다.

이제는 광기 어린 영적 비즈니스의 행렬에서 벗어나 이성의 빛을 다시 켜야 한다.



우리가 이 기괴한 풍경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다음번 무당의 작두 위에는 우리 자신의 존엄이 제물로 올라가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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