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절주절
오늘은 삼일절이다.
태극기를 달면서 문득 변화한 시대의 흐름을 느낀다.
역사는 언제나 감정보다 오래 산다.
임진왜란의 포연도, 식민지배의 상처도,
수백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우리 가슴 어딘가에 뜨겁게 남아 있다.
그러니 누군가 한일 경제통합을 입에 올리면
반사적으로 거부감이 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 역시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손사래부터 쳤다.
그런데 잠시 멈추어 생각해보니,
감정과 전략은 다른 층위에서 작동한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SK 최태원 회장이 제안한 한일 경제블록 구상은 얼핏 허황되게 들린다.
8천조 원 규모의 경제 블록이라니?
하지만 숫자를 뜯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한국이 가진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역량에
일본의 소재·장비 기술을 결합하면,
그 시너지는 단순한 덧셈이 아니라 곱셈에 가깝다.
반도체란 혼자서는 완성되지 않는 산업이다.
극자외선 노광장비, 고순도 불화수소, 실리콘 웨이퍼-
이 모든 것의 상당 부분이 여전히 일본 기업들의 손에서 나온다.
우리가 아무리 뛰어난 파운드리 기술을 갖추어도,
소재와 장비가 끊기는 순간 공장은 멈춘다.
2019년 일본의 수출 규제가 그것을 뼈저리게 가르쳐주지 않았던가?
지금 세계는 미국과 중국이 패권을 두고 판을 다시 짜는 중이다.
그 격랑 속에서 한국과 일본은 각자도생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특히 대만 해협에 긴장이 고조될수록,
반도체 공급망은 단 하나의 돌발 변수로도 전 세계를 흔들 수 있는 뇌관이 된다.
만약 그 순간에 한일이 하나의 목소리로 공급망을 통제할 수 있다면,
우리는 비로소 강대국들과 같은 체급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수 있다.
룰을 따르는 쪽이 아니라, 룰을 만드는 쪽이 되는 것이다.
한편에서는 남북통일을 먼저 이루어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옳은 꿈이다.
그러나 현실은 냉정하다.
중국과 러시아가 한반도의 통일을 전략적으로 반기지 않는 한,
그 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렇다고 꿈을 포기하자는 말이 아니다.
다만 꿈을 향해 걸어가는 동안에도,
지금 이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현실적인 선택지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이미 양국 국민은 비자 없이 자유롭게 오간다.
실제로 매년 수백만 명이 국경을 넘으며 소비하고, 배우고, 일자리를 만든다.
이 왕래의 에너지를 더 깊은 경제 협력으로 연결하는 것이 지금 우리 앞에 놓인 과제다.
유럽이 솅겐 조약 이후 인적·물적 이동을 발판 삼아 단일 경제권으로 발전했듯이,
한일 역시 이미 열린 문을 넘어 기업과 인재가 국경을 의식하지 않고
협업하는 생태계를 만들어나갈 수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한 협력이 본격화될 경우
연간 3조 원 이상의 부가가치가 창출될 수 있다고 추산한다.
물론 감정의 문제를 가볍게 여기자는 것이 아니다.
역사 인식, 독도, 강제동원 문제-이 모든 것은 여전히 정직하게 다루어져야 한다.
다만 그것과 경제 협력은 같은 서랍에 담아 잠가두어야 할 이유가 없다.
독일과 프랑스가 두 차례 세계대전의 상처를 안은 채로 유럽 통합의 주축이 되었듯이,
과거를 직시하면서도 미래를 설계하는 일은 동시에 가능하다.
감정은 우리가 누구인지를 말해준다.
그러나 전략은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8천조라는 숫자가 꿈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아직 우리가 감정의 언어로만 이 문제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이익의 언어로도 읽어볼 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