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작된 영웅의 그림자

주절주절

by 제임스

우리는 위기의 시대마다 절실하게 영웅을 찾는다.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일상을 집어삼키던 팬데믹 초기,

대중은 차가운 수치와 통계를 읊조리는 한 인물에게 마음을 기댔다.

단정한 숏커트와 점점 하얗게 세어가는 머리칼,

그리고 피로가 가시지 않은 눈빛.



정은경 전 질병관리청장은 그렇게 'K-방역의 영웅'이라는 성역에 올랐다.

국민은 그녀의 헌신을 믿었고,

문재인 정부는 그 이미지를 국가적 자부심의 상징으로 내세웠다.


하지만 시간이 흐른 뒤 드러난 기록들은 우리가 믿었던

영웅의 얼굴 뒤에 가려진 서늘한 진실을 비춘다.

최근 감사 결과와 폭로에 따르면,

백신 접종 과정에서 발생한 수많은 이물질 신고와 관리 부실은

영웅의 신화 아래 철저히 침묵 속에 묻혀 있었다.


곰팡이와 머리카락이 발견된 백신이 보고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속 접종'이라는 성과를 위해 식약처에 단 한 번도 알리지 않은 채

1,420만 명의 팔에 주삿바늘을 꽂았다는 사실은 충격적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질문하게 된다.

우리가 추앙했던 영웅은 진정 국민의 안전을 지키는 파수꾼이었는가?

아니면 정부의 방역 성과를 빛내기 위해 정교하게 다듬어진 '조작된 상징'이었는가?

국민은 이물질 섞인 백신을 맞아도 되는 존재인가?


일본이 이물질 발견 즉시 접종을 중단하며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했던 것과 달리,

한국은 '방역 신화'를 유지하기 위해 유효기간이 지난 백신까지 접종하며

통계의 숫자를 채우기에 급급했다.


이러한 ‘조작된 영웅’의 그림자는 한국 현대사에서 낯선 풍경이 아니다.

과거 전 국민을 난치병 정복의 꿈에 부풀게 했던 황우석 박사 사례는

국가가 만든 영웅 신화의 정점을 보여준다.

당시 정부와 언론은 그를 ‘국가 최고 과학자’로 치켜세우며 성역화했다.

과학적 검증보다 ‘국익’과 ‘민족적 자긍심’이 앞섰던 시절,

줄기세포 조작이라는 초유의 사태가 밝혀지기 전까지

그는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신이었다.

국가가 필요로 하는 영웅을 만들기 위해 비판적 시각을 거세했을 때,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왔다.



이러한 ‘조작된 영웅’의 역사는 우리 현대사의 깊은 곳까지 뿌리박혀 있다.

오랫동안 군인 정신의 표상으로 교과서에 실렸던 ‘육탄 10용사’의 전설이 대표적이다.

1949년 송악산 전투에서 폭탄을 안고 적의 토치카로 뛰어들어 장렬히 산화했다는 10명의 군인들.

하지만 이 찬란한 신화 뒤에는 황당할 정도로 비극적인 조작의 가능성이 숨어 있다.


당시 13연대장이었던 김익렬 장군과 관련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이들은 자폭한 영웅이 아니라 '포로가 된 패잔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당시 박 소위가 이끄는 대원들이 박격포탄을 운반하던 중 북한군에게 생포되자,

이를 문책받을까 두려워했던 지휘관들이 "모두 포탄을 안고 자폭했다"라고

허위 보고를 하며 신화가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실제로 훗날 평양 방송에 이들 중 일부가 살아있다는 소식이 전해지거나

꽃다발을 들고 환영받는 사진이 발견되었다는 증언은,

국가가 사기 진작을 위해 '산 사람을 죽은 영웅'으로 둔갑시킨 잔인한 연극이었음을 시사한다.



정은경이라는 인물이 보여준 성실함을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의 과오를 은폐하고 국민을 위험에 노출시키면서까지

유지되는 영웅은 더 이상 영웅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필요에 의해 만들어낸 '조작된 허상'에 불과하다.


진정한 영웅주의는 화려한 조명 아래서의 침묵이 아니라,

불편한 진실 앞에서의 정직함에서 나온다.

"국민은 이물질 섞인 백신을 맞아도 되는 존재인가"라는

무거운 질문 앞에 침묵하는 영웅은,

결국 우리가 만든 방역 신화가 얼마나 모래성 같았는지를 방증할 뿐이다.

조작된 영웅이 떠난 자리에는 이제 배신당한 국민의 불신만이 흉터처럼 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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