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쥐안

주절주절

by 제임스

중국에서 유행하는 '네이쥐안(內卷)'이라는 단어는 단순히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끝없이 경쟁하지만 결국 모두가 제자리인 상태,

사회 전체의 성과나 행복은 늘지 않는 소모적 경쟁 구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안으로만 말려 들어가는 쳇바퀴 같은 무한 경쟁,

그리고 그 안에서 소모되는 개인의 삶은

현재 한국 사회가 마주한 과잉 교육의 비극과 정확히 맞닿아 있다.


"우리는 모두가 일어서서 영화를 보는 극장에 앉아 있다.

앞사람이 일어서니 나도 일어서야 하고,

결국 모두가 서서 영화를 보지만 누구도 전보다 더 잘 보게 된 사람은 없다.

그저 모두의 다리만 아플 뿐이다."


한국 청년 실업률은 2025년 7.5%이다.


과거 70~80년대의 풍경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당시에는 성적이 우수해도 가정 형편을 고려해 공고나 상고에 진학하는 인재들이 많았다.

그들은 일찍이 기술을 배우고 사회에 진출하여 부모의 경제적 짐을 덜어주었고,

그것을 당연한 효도로 여겼다.

학력보다 실질적인 삶의 안정이 우선시되던 시대였다.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에서 대학 졸업장은 선택이 아닌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입장권'처럼 변질되었다.

문제는 이 입장권의 가격이 너무 비싸졌다는 점이다.

이제 대학 입시는 아이의 노력만으로 결정되지 않는다.

부모의 경제력이 뒷받침된 사교육이 필수 조건이 되었고,

부모들은 자신의 노후를 담보 잡혀 자녀의 학업에 올인한다.

대학생의 61%가 등록금을 전적으로 부모에게 의존하고 있다.



그러나 막대한 비용을 들여 졸업장을 손에 쥐어도 장밋빛 미래는 없다.

소위 '지잡대'라 불리는 대학에 진학한 학생들은 4년 내내

열등감과 패배감에 짓눌린 채 한숨을 내쉰다.

공부에 뜻이 없거나 재능이 다른 곳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시선에 떠밀려 고비용을 지불하며 대학이라는 공간에서

시간을 낭비하는 청년들이 부지기수다.

대학 전공과 직업이 불일치하는 비율이 52%를 넘어 세계 1위 수준이다.

이는 대학 교육이 실질적인 취업으로 연결되지 못함을 보여준다.

또한 대졸 이상 학력의 비경제 활동 인구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 중이며,

한국의 고학력자 백수 비율은 OECD 국가 중 2위이다.



흥미로운 것은 가까운 이웃 나라 일본의 풍경이 사뭇 다르다는 점이다.

일본의 4년제 대학 진학률은 약 56.6%로, 70.6%에 달하는 한국보다 현저히 낮다.

OECD 평균은 약 42%이다.

일본은 2013년 이전까지만 해도 절반에도 미치지 못했다.

한국은 운전면허 소지율(66.5%)보다 높은 수치이다.



일본에서는 전통적으로 가업을 물려받는 문화가 뿌리 깊어,

굳이 대학 문을 두드릴 이유를 느끼지 못하는 이들이 많았다.

장인 정신으로 대를 이어 가게를 지키는 것이 결코 부끄러운 일이 아니었고,

최근에는 대학을 졸업한 뒤 가업을 잇는 경우도 자연스럽게 늘고 있다.


무엇보다 결정적인 것은 경제적 현실이다.

일본에서는 대학을 나오지 않아도 안정적인 생활이 충분히 가능하며,

특히 사립대 진학에 드는 막대한 비용 대비 생애 임금의 차이가 한국처럼 극단적이지 않다.

졸업장 하나로 인생이 뒤바뀌는 구조가 아니기에,

대입에 모든 것을 걸지 않아도 되는 사회인 것이다.

이는 개인의 선택이 존중받고, 다양한 삶의 경로가 공존할 수 있는 사회 구조 덕분이다.



반면 한국에서는 어떠한가?


더욱 비참한 것은 이 거대한 투자의 결과가 '배신'으로 돌아온다는 사실이다.

부모는 노후 자금을 털어 자녀를 뒷바라지하지만,

정작 사회에 나온 자녀들은 자신의 생계를 유지하기조차 벅찬 '개미족'으로 전락한다.

취업 시장은 얼어붙었고,

폭등한 물가와 주거비는 청년들을 '네이쥐안'의 늪으로 밀어 넣는다.


부모를 부양할 여력은커녕 본인 한 몸 건사하기 힘든 세대에게

과거와 같은 효도를 기대하는 것은 사치가 되었다.

결국 자녀 교육에 모든 것을 바친 부모들의 말년은

경제적 빈곤과 고독 속에서 비참하게 저문다.


중국의 네이쥐안이나 한국의 과잉 교육이나 본질은 같다.

시스템의 질적 성장이 멈춘 상태에서 한정된 자원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를 갉아먹는 내부 소모전이다.

'남들만큼은 해야 한다'는 강박이 만들어낸 교육 인플레이션

부모와 자녀 모두를 불행의 구렁텅이로 몰아넣고 있다.



이제는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우리는 모두가 일어서서 고통스럽게 영화를 봐야만 하는가?

대학 졸업장이 계층 이동의 사다리가 아닌,

모두를 가난하게 만드는 족쇄가 되어버린 이 현실을 언제까지 방치할 것인가?


대학이 성공을 보장해 주지 않는 시대가 이미 도래했다.

그럼에도 고비용을 들여 목숨을 걸고 진학하는 사회는 결국 파산할 수밖에 없다.

노력의 가치가 사라진 시대,

우리는 지금 멈추지 않는 쳇바퀴 위에서 절벽을 향해 달리고 있다.

부모의 노후와 자녀의 자존감을 맞바꾸는 이 위험한 거래를 멈추지 않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내일을 향한 '진화(Evolution)'가 아닌,

안으로만 썩어 들어가는 '내권(Involution)'의 어둠 속에 갇히게 될 뿐이다.

이제는 맹목적인 교육열에서 벗어나 각자의 속도와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는 용기가 절실한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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