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자를 잃어버린 아이들

주절주절

by 제임스

예전에 인터넷에서 초등학생 시험 답안지 모음이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선생님이 "옆집 아주머니께서 떡을 가지고 오셨습니다.

알맞은 인사말은 무엇인가요?"라고 물었더니,

한 아이는 태연하게 "안 사요"라고 썼다.


또 "쌀, 보리, 콩, 팥을 살 수 있는 가게를 쓰시오"라는 문제에는

"이마트"라고 적은 아이도 있었다.



보는 사람들은 모두 웃음을 터뜨렸다.

그 아이의 눈에 비친 세상은 솔직하고 명쾌했다.

떡을 들고 온 아주머니는 분명 판매원이고,

곡식은 당연히 마트에서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웃음이 가시고 나면 묘한 씁쓸함이 남는다.

저 아이들이 틀린 것인가?

아니면 우리가 바라는 정답의 세계가 이미 아이들의 현실과 동떨어진 것인가?


그보다 더 깊은 곳에서 진짜 걱정은 따로 있다.

웃음을 자아내는 엉뚱한 답안이 아니라,

아예 아무것도 쓰지 못하는 아이들 이야기다.


수도권의 한 초등학교 교사는 지난 학기에 6학년 학생 22명에게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대한 감상문을 쓰게 했다.

10분 안에 다섯 문장을 쓰면 되는 간단한 과제였다.

그런데 절반도 안 되는 10명만이 분량을 채웠다.

나머지는 두세 문장을 쓰다 멈추거나, 아예 한 글자도 쓰지 못했다.


그나마 쓴 아이 중 하나는 "독재는 완전 에바각ㅠ"이라고 적었다.

'에바각'은 오버 혹은 실수라는 뜻의 인터넷 신조어다.

민주주의를 위해 목숨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가,

그 아이의 언어로는 "에바각"으로 요약된다.



이것을 단순히 세대 차이나 언어의 변화로 받아들이면 될까?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는 학생들에게 "장래 희망을 써보라"고 했더니,

'ㅇㅏㅇㅣㄷㅗㄹ'(아이돌), 'ㅅㅖㅍㅡ'(셰프)처럼 자음과 모음을

분리해 쓰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소셜미디어와 게임 채팅창에서 굳어진 습관이 교실 안 시험지까지 파고든 것이다.

감정을 표현할 어휘는 '대박'과 '개멋져' 두 단어로 수렴되고,

길게 이어지는 문장은 낯설고 불편한 것이 되어버렸다.

서울대 연구진이 경기도교육청의 의뢰를 받아

초등학교 3·4학년 382명을 조사한 결과는 더욱 충격적이다.

'글을 잘 이해하면 좋은 점 세 가지를 써라'는 질문에,

다섯 명 중 한 명꼴로 세 가지를 다 쓰지 못하거나 엉뚱한 답을 적었다.

나머지 아이들도 상당수는 주어와 서술어가 어긋나거나 기본 맞춤법조차 틀렸다.

연구진은 "문장을 왼쪽부터 오른쪽으로 한 줄로 쓸 줄도 모르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고 했다.

글쓰기가 낯선 기술이 된 것이다.


이 현상의 뿌리는 여러 갈래다.

한국리터러시학회의 조사에 따르면,

중학생의 약 41퍼센트가 한 학기에 두 단락 이상의 글을 써본 적이

단 한두 번밖에 없다고 답했다.

학교에서 글쓰기를 가르칠 시간이 없거나,

일부에서는 학부모의 반대로 일기 쓰기와 받아쓰기조차 사라지고 있다.

손으로 글자를 쓰는 경험 자체가 희귀해지는 것이다.



여기에 생성형 인공지능의 등장이 또 다른 균열을 만들었다.

글쓰기를 연구하던 한 교수는 쓴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요즘 학생들 글에서는 오류가 사라졌어요. AI가 다 써주니까요.

오류가 있는 글은 피드백을 받아 고칠 수라도 있지만,

아예 쓰기를 포기해버린 아이들은 고칠 기회조차 없습니다."


완성된 글을 손에 쥐고 있지만, 정작 그것을 만들어낸 과정은 텅 비어 있다.

껍데기만 남은 셈이다.글쓰기는 단순히 글자를 나열하는 기술이 아니다.

생각을 순서대로 정리하고, 근거를 찾아 논리를 세우고,

자신의 감정을 정확한 언어로 옮기는 과정이다.


그 훈련이 없으면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힘도,

타인의 글을 깊이 읽는 힘도 함께 약해진다.

AI 시대라고 해서 달라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수많은 정보의 홍수 속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지 판단하려면,

내 생각을 언어로 단단히 세워두는 능력이 더욱 절실하다.


인터넷에 떠도는 초등학생 답안지 사진들을 다시 떠올린다.

"안 사요"와 "이마트"로 답한 아이들의 해맑은 논리가 귀엽고도 사랑스럽다.

하지만 그 아이들이 조금 더 자라서,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해야 할 때,

누군가를 설득해야 할 때, 혹은 깊은 슬픔이나 기쁨을 글로 남기고 싶을 때,

'에바각'이나 'ㄷㄷ' 이상의 언어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글자를 잃어버리는 것은 단지 시험 점수의 문제가 아니다.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힘을 잃어버리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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