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귀엽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눈을 마주치는 순간, 그 생각이 잠깐 흔들린다.
나라 요시토모(奈良美智)의 소녀들은 딱 그 지점에 산다.
귀여움과 섬뜩함의 경계, 순수함과 반항의 틈새.
그 좁은 자리에서 그녀들은 수십 년째 보는 이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다.
아오모리현 히로사키 출신의 나라 요시토모는 맞벌이 부모 밑에서
홀로 시간을 보내며 그림을 그렸고, 아이치현립예술대학을 거쳐
독일 뒤셀도르프 예술아카데미에서 수학했다.
이국에서의 고독은 그를 무너뜨리지 않았다.
오히려 그 고독이 그의 예술을 벼렸다.
유학 시절의 외로움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찾아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Knife behind Back》(2000)
나라 요시토모를 세계에 각인시킨 작품이다.
2019년 경매에서 약 320억 원에 낙찰되며 아시아 작가 최고가를 기록했다.
작품 속 소녀는 둥글고 귀엽다.
그러나 등 뒤에 칼을 숨기고 있다.
이 소녀를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묘하게 친숙하다.
어린 시절, 어른들의 세계가 부당하다고 느꼈을 때,
하지만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속으로만 이를 갈았던 그 감각.
나라의 소녀는 그 감각에 칼이라는 형태를 부여했다.
섬뜩하지만, 어딘가 속이 시원하다.
《Harmless Kitty》(1994)
더 교활하다.
제목은 '해롭지 않은 고양이'인데,
막상 그림 속 눈빛은 전혀 해롭지 않지 않다.
캐릭터의 눈을 통해 짜증, 분노, 심지어 악의 같은
다양한 감정이 드러나는 것이 나라의 방식이다.
무해함을 표방하면서 내면에 날카로운 것을 숨기는 이 아이러니는
어른들의 세계를 향한 조용한 조롱처럼 읽힌다.
《Sprout the Ambassador》(2001)
나라의 소녀가 더 복잡해진 순간을 보여준다.
눈꺼풀이 무겁고, 표정은 무심하며,
어딘가 모든 것을 이미 알아버린 사람 같은 얼굴이다.
반항하기에는 너무 지쳤고, 순응하기에는 아직 너무 자존심 있는 표정.
이 소녀는 2001년의 것이지만, 지금 어느 도시에서나 볼 수 있는 얼굴이다.
나라의 아이들은 잊힌 옛 물건들을 서랍 속에서 꺼내 보듯 과거의 우리를 마주하게 하는 동시에,
복잡한 현대인의 감정을 읽어낸다.
《Aomori Dog》(2005)
그림 밖으로 나온 나라의 언어다.
높이 8.5미터, 가로 6.7미터에 달하는 강화콘크리트 설치 작품으로,
아오모리현립미술관에 자리하고 있다.
거대하지만 위협적이지 않다.
그냥 거기 있다. 쓸쓸하고 담담하게.
그 덩치에서 오히려 고독이 느껴진다는 것이 나라 특유의 마법이다.
나라는 "지금까지는 자화상이라고 말해왔는데,
이제는 저와 일체된 존재인 것 같다"고 말했다.
그의 소녀들은 단순한 캐릭터가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끌어안고 살아온 감정의 총체다.
외로움, 반항, 그리움, 그리고 그 모든 것과 화해하지 못한 채 계속 나아가는 힘.
나라 요시토모의 그림 앞에서 우리는 결국 그 소녀의 눈빛 속에서
잊고 싶었던 자신의 얼굴을 발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