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나이에 무슨...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이 나이에 무슨..."


구순의 나이에 생애 첫 전시회를 열게 된 윤필남 할머니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늦음’이라는 단어의 무색함을 다시금 일깨워 준다.

90세라는 숫자는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정리하고 관조하는

마침표의 시간일지 모르지만,

할머니에게는 붓을 들고 새로운 세상을 펼쳐내는 시작의 문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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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을 평범한 주부로 살아온 그녀가 예술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역설적이게도 깊은 상실감이었다.

3년 전, 평생을 함께해 온 남편의 갑작스러운 부재는

견디기 힘든 고독과 잠 못 이루는 밤들을 몰고 왔다.

그 짙은 외로움의 심연에서 할머니가 붙잡은 것은 붓 한 자루였다.

화려한 기교를 배우지도 않았고,

평생 붓 한 번 제대로 잡아본 적 없던 손이었지만,

마음속에 맺힌 그리움을 캔버스 위에 하나둘 풀어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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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의 그림에는 꾸밈이 없다.

억지로 멋을 부리거나 세련된 기술을 뽐내려 하지도 않는다.

그저 마음이 가는 대로, 붓이 이끄는 대로 그려낸 선과 색들이다.

그 담백하고 진솔한 화법은 마치 어린 시절 읽던 동화책처럼 순수한 울림을 준다.

그림 곳곳에는 생전 남편의 모습과 함께했던 여행의 기억,

고향 마을의 정겨운 집들과 꽃나무들이 정성스럽게 담겨 있다.

이는 단순한 정물이 아니라,

한 여인이 살아온 삶의 결이자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절절한 연서(戀書)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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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들은 할머니의 작품을 보며 미국의 국민 화가 ‘모지스 할머니’를 떠올린다.

75세에 그림을 시작해 세계적인 사랑을 받았던 모지스 할머니처럼,

윤필남 할머니 역시 삶의 연륜에서 우러나오는 독창적인 창의성을 증명해 보였다.

기성 작가들이 흉내 낼 수 없는 그 맑고 깨끗한 시선은 예술이 가진 본질적인 힘,

즉 ‘위로와 치유’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할머니는 말한다.

누구나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작은 용기만 있다면,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시작할 수 있다고.

"늦은 시작은 없다"라는 할머니의 조언은 단순히 격려의 말을 넘어,

당신의 삶으로 증명해낸 엄연한 진실이다.

100여 점에 가까운 그림을 그리며 슬픔을 이겨내고 다시 웃음을 찾은 할머니의 모습은,

인생의 황혼기조차 창작의 열정으로 찬란하게 빛날 수 있음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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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전시회는 우리에게 묻는다.

우리는 혹시 나이라는 숫자에 갇혀,

혹은 너무 늦었다는 핑계로 마음속 깊은 곳의 열망을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가.

윤필남 할머니의 그림은 말한다.


인생의 어떤 계절에도 꽃은 필 수 있으며,

가장 늦었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이 어쩌면 가장 눈부신 시작의 때일 수도 있다는 것을.

할머니의 붓끝에서 피어난 따뜻한 용기가 고독한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이들에게

깊은 위로와 희망의 등불이 되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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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youtu.be/Gey7cVzyXc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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