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예술은 때로 가장 깊은 절망의 끝에서 피어나는 꽃과 같다.
한국 현대 미술의 거대한 줄기를 형성한 이성자 화백의 삶이 바로 그러했다.
그녀의 이름 앞에는 '한국인 최초의 파리 화가',
'동양과 서양을 잇는 예술의 가교'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그 화려한 명성 이면에는 어머니로서의 뼈아픈 희생과
고독한 자기 구원의 투쟁이 서려 있다.
1950년대,
세 아들을 둔 어머니였던 그녀는 남편과의 이혼이라는 개인적인 비극을 맞이했다.
당시 사회적 잣대로 본다면 그녀는 그저 '불쌍한 여자'
혹은 '버림받은 어머니'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성자는 스스로 비극의 주인공이 되기를 거부했다.
그녀는 서른 중반의 나이에 연고도 없는 프랑스 파리로 떠났다.
그것은 단순히 도피가 아니라, '불쌍한 엄마'가 아닌
'존경받는 인간'으로서 거듭나기 위한 치열한 결단이었다.
그녀의 초기 작품 세계를 지배한 것은 단연 '그리움'이었다.
낯선 타국 땅, 말이 통하지 않는 다락방에서 그녀가 붙잡은 것은 붓 한 자루였다.
그녀는 훗날 "나의 붓질 한 번은 아이들에게 밥 한 숟가락을 주는 것이고,
또 한 번은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과 같았다"고 회상했다.
이러한 절절한 모성은 그녀의 화폭 위에서 '대지'라는 테마로 형상화되었다.
1962년 작인 <내가 아는 어머니>와 같은 작품들을 보면,
흙을 일구듯 캔버스 위에 수만 번의 점을 찍고 선을 그은 흔적을 볼 수 있다.
이는 아이들을 키우지 못한 아픔을 땅에 심어 작물처럼 길러내고자 했던 예술적 승화였다.
이성자의 작품 세계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더욱 확장되었다.
초기에는 한국적 정서와 모성을 바탕으로 한 구상적인 화풍이 주를 이루었다면,
점차 기하학적인 문양과 추상적인 구성으로 변화했다.
그녀의 대표적인 경향인 '음양'과 '합일'의 세계관은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조형미가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 결과물이었다.
1956년 작인 <오작교>는 헤어진 가족과 다시 만나기를 바라는 간절한 소망을 담은 초기 대표작으로,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 감각으로 풀어낸 수작이다.
이후 그녀의 시선은 대지를 넘어 우주로 향했고,
빛과 생명의 순환을 다룬 '대척지로 가는 길' 시리즈 등을 통해 예술적 정점에 도달했다.
그녀가 프랑스로 떠난 지 15년 만에 다시 만난 아들들은
어머니를 원망하는 대신 그녀의 예술적 성취를 인정하고 이해했다.
결국 그녀의 선택은 옳았다.
자식에게 헌신하는 것만이 어머니의 유일한 미덕이라 여겨지던 시대에,
이성자는 자신의 삶을 증명함으로써 자식들에게 더 큰 자부심과 사랑을 돌려주었다.
이성자 화백의 예술은 우리에게 말한다.
고통은 피해야 할 대상이 아니라,
새로운 창조를 위한 비옥한 토양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그녀가 캔버스 위에 새긴 수만 개의 점과 선은 단순한 물감의 흔적이 아니다.
그것은 시련을 견디며 스스로를 구원해낸 한 여성의 위대한 기록이자,
세상을 향해 던지는 따뜻한 위로의 메시지다.
우리는 그녀의 작품 앞에서 한 예술가의 투혼과 함께,
끝내 절망을 희망으로 바꾸어낸 숭고한 생명력을 마주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