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군의 숨겨진 진실

말할 수 없는 비밀

by 제임스

나는 오늘 충격적인 역사적 사실을 알게 되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어릴 적부터 학교에서 배워 온 이름들이 있다.

김좌진, 홍범도.

교과서 속 그들은 일제의 총칼 앞에서도 굴하지 않았던 민족의 영웅이었고,

그 이름은 으레 경외와 존경의 대상이었다.

그런데 오늘, 그 이름들 뒤에 가려진 또 다른 얼굴을 마주하게 되었다.

그것은 결코 유쾌하지 않은 역사의 이면이었다.


김좌진과 홍범도


청산리의 영웅, 그 뒤에 숨겨진 얼굴


김좌진은 흔히 '독립운동계의 3대 맹장'으로 불린다.

1920년의 청산리 전투는 오늘날까지도 한국 근대사의 가장 빛나는

무장 독립 투쟁의 상징으로 가르쳐진다.

독립군 측 기록에 따르면 이 전투에서 일본군 약 1,200명이 전사한 반면,

독립군은 60명 전사에 90명 부상이라는 경이로운 승전보를 올렸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일본 측 공식 자료인 『조선군사령부 전투상보』 등에 따르면,

일본군 전사자는 11명, 부상자는 24명으로 기록되어 있다.

두 기록 사이의 간극은 단순한 과장이나 오차로 설명하기 어려울 만큼 크다.

어느 쪽을 믿느냐는 각자의 판단에 맡기더라도,

문제는 이 수치의 차이에서 그치지 않는다.


청산리 전투 이후, 김좌진과 그의 독립군은 밀산(密山)을 거쳐 만주 내륙으로 후퇴했다.

그리고 그곳에서부터,

그들의 행보는 민족의 영웅이라는 호칭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그들은 인근 민가와 상점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군사적 보급을 현지 조달, 즉 약탈로 충당했던 것이다.


신민부원들이 군자금을 구하다가 응하지 않는다고 조선인 5명을 살해한 일이 있어 각 현에 체포령을 내렸고 수일 전에 잡혔다는 1926년 동아일보 기사


이후 김좌진이 주도하여 결성한 신민부(新民府)는

북만주 한인 사회를 사실상 지배하며 조직적인 착취를 자행했다.

독립군으로의 강제 징병을 거부하면 중벌, 군자금 납부를 거부해도 중벌이 내려졌다.

당시 만주의 한인들은 대부분 중국인 지주 밑에서 소작으로 연명하던 가난한 농민들이었다.

이들은 중국인 지주에게 소작료를 내고, 중국 관헌에게 세금을 바치면서,

거기에 더해 신민부에게 또 '의무금'이라는 이름의 돈을 뜯겨야 했다.



납부를 거부한 주민들에게는 '반동분자'라는 낙인이 찍혔고,

신민부 보안대는 이들을 습격해 사살하기도 했다.

무고한 한인들을 스파이로 몰아 고문하거나 살해한 뒤 은폐를 시도한 사례도 존재한다.

결국 지역 한인 대표들이 모여 김좌진을 포함한 독립운동가들의 죄상을 열거하고

사형을 선고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만주의 한인들이 그를 '장군님'이 아닌 '마왕', '폭군'이라 불렀다는 것은,

결코 일제의 날조가 아니라 당대를 살았던 동포들의 생생한 증언이었다.



의병에서 영웅으로, 홍범도의 지워진 과거


봉오동 전투의 주역 홍범도 역시 비슷한 맥락에서 재검토가 필요한 인물이다.

대한민국 사학계는 그를 의병 활동부터 봉오동·청산리 전투까지 일관되게

항일 무장 투쟁을 이끈 전사로 평가한다.

이 역시 전과가 크게 과장되었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2023년에는 그의 서훈이 논란이 되며 흉상 이전 문제가 사회적 쟁점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정작 그가 의병이 되기 이전의 행적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홍범도 일지』를 포함한 관련 기록들을 살펴보면,

그 이전의 삶은 다소 충격적이다.

15세에 머슴살이를 피해 나이를 속이고 군에 입대한 홍범도는,

1887년 자신을 괴롭히던 장교를 살해하고 탈영했다.

이후 황해도로 도주해 제지 공장에 취직했으나,

임금 체불에 불만을 품고 공장주를 살해하고 다시 도망쳤다.

그렇게 산속으로 들어가 포수 생활을 하다가 의병에 합류했다.


의병 활동 이후에도 그의 군자금 모집 방식은 사실상 강도 행위와 다를 바 없었다.

부자나 관리들을 대상으로 한 강탈,

일반 한인 양민들의 집에 무리를 이끌고 쳐들어가

식사와 재물을 요구하고, 납치까지 감행한 정황이 기록에 남아 있다.

피해를 입은 한인들이 일제 경무국에 도움을 요청했다는 사실은,

당시 그들에게 독립군이 일제만큼이나 두려운 존재였음을 반증한다.




영웅이라는 이름 뒤에 가려진 더 많은 이름들


이 문제가 김좌진, 홍범도 두 사람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는 점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대한독립당 부단장 최용호는 약 100여 명의 부하를 이끌고 노상 강도를 일삼았다.

행상인과 여행객을 살해하고 금품을 빼앗았으며, 시신을 숙박하던 집에 암매장했다.

사실이 발각될 것을 두려워해 집주인마저 살해했고,

결국 집주인의 아들의 신고로 러시아 당국에 의해 사살되었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보훈처는 그를 '노령에서 순국한 독립운동가'로 소개한다.


김구의 측근이자 상하이 임시정부 의경대원이었던 장덕진은,

1924년 상하이의 카지노에서 총기로 사람들을 위협해 도박 자금을 탈취하다가

중국인 경비의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런데 오늘날 그는 '독립군 자금 마련을 위해 고군분투하다 순국한 영웅'으로 기록되어 있다.


국가기록원 독립운동 관련 형사사건 게시물 수정 전(상) 수정 후(하)


더욱 심각한 것은 공적 기록의 훼손 문제다.

대한민국 국가기록원이 온라인으로 공개해 온 독립운동 관련 형사 사건 판결문 가운데,

일부에서 '강간', '강간치사' 등의 죄명이 어느 시점을 기해 삭제된 정황이 보고되었다.

공공기관이 역사적 기록을 변조했다는 의혹은, 단순한 실수로 보기 어렵다.

누군가 의도적으로 독립운동가들의 추악한 면모를 지워버리려 한 것이 아닌가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왜, 누가, 이들을 미화했는가?


그렇다면 왜 이러한 역사는 가려졌고, 누가 그들을 신화화했는가?

그 답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정체성 형성 과정에서 찾아야 한다.

해방 이후 대한민국은 일제에 저항한 독립운동을 국가 정통성의 핵심 서사로 삼았다.

건국 초기의 정치적 혼란과 이념 갈등 속에서,

항일 독립운동은 좌우를 막론하고 정당성을 부여받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통 서사였다.

독립운동가를 미화하는 것은 곧 대한민국이라는 나라 자체를 정당화하는 작업이기도 했다.



여기에 민족주의 역사학의 흐름이 더해졌다.

식민 지배의 상처와 열등감을 극복하려는 심리적 욕구가 역사 서술에 투영되면서,

항일 독립투쟁은 점점 더 영웅 서사의 문법으로 재구성되었다.

전투의 승전보는 부풀려졌고, 영웅들의 과오는 '대의를 위한 어쩔 수 없는 희생'으로

포장되거나 아예 삭제되었다.


정치권도 이 서사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독립운동가 후손이라는 사실은 정치적 자산이 되었고,

보훈이라는 이름의 국가 예우 시스템은 그들의 서사를 공식 역사로 제도화했다.


이 과정에서 비판적 시각은 '친일파'나 '역사 부정론자'라는 낙인이 찍힐 위험에 처했다.

학문적 검증보다 정치적 올바름이 우선시되는 환경이 형성된 것이다.

그 결과, 만주의 가난한 한인 농민들을 착취하고 살해했던 이들도,

카지노를 털다 죽은 이들도, 무고한 민간인을 납치하고 강도질을 했던 이들도,

모두 '순국열사'와 '독립의 영웅'이라는 동일한 후광 아래 놓이게 되었다.




역사를 있는 그대로 마주한다는 것


나는 이 글을 쓰면서,

이것이 독립운동 전체를 부정하거나 일제 식민 지배를

정당화하자는 주장이 아님을 분명히 밝히고 싶다.

분명 진심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이들이 더 많다.

그들의 헌신은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동시에, 독립운동을 명분으로 동포를 착취하고 살해한 이들,

그리고 그 폭력 아래 신음했던 수많은 이름 없는 한인들의 고통 역시 역사다.

그 고통을 외면한 채 영웅 신화만을 소비하는 것은,

오히려 그 시대를 성실히 살아냈던 평범한 조상들에 대한 모독이 될 수 있다.


총을 들지 않았다고 해서,

만주 벌판을 떠돌지 않았다고 해서 그들이 비겁한 것은 아니다.

가난한 소작농으로, 공장 노동자로, 장터 상인으로 하루하루를 버텨낸 절대 다수의 사람들-

그들 또한 역사의 주인공이다.


진짜 역사는 동화가 아니다.

명백한 선과 악의 대립으로 깔끔하게 정리되지 않는다.

우리의 삶이 그러하듯, 역사는 훨씬 복잡하고 입체적이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신화가 아니라 사실로서 배울 가치가 있다.

이제는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들을 있는 그대로 직시해야 할 때다.




※ 본 글은 우원재님 유튜브 영상 "당신이 몰랐던 독립운동가들의 실체"의 내용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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