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가진 토요일 아침

일상 속으로

by 제임스

202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 대 도미니카 공화국.

이 여섯 글자를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금요일 밤부터 설레기 시작했다.

17년 만의 8강이라니.

17년이면 강산이 거의 두 번 바뀌는 세월이다.

그 오랜 기다림 끝에 '악마의 경우의 수'를 뚫고 올라왔다는 소식에,

평소 스포츠에 담을 쌓고 살던 내 심장도 두근거리기 시작했다.


토요일 아침,

나는 경건한 마음으로 밥상 앞에 앉았다.

된장국을 훌훌 마시며 TV 앞에 자리를 잡았을 때, 나는 꽤 비장한 관중이었다.

응원 준비라도 해야 하나 잠깐 고민했을 정도다.

그런데 상대가 문제였다.

도미니카 공화국. 우승 후보에 전력은 어마어마하다는데,

그 '어마어마하다'는 표현이 어느 정도인지는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2회가 끝나자 스코어보드는 0 대 3. 3회 중간 0 대 5...

숫자가 늘어날수록 된장국의 온기도 함께 식어갔다.



처음에는 점잖게 시작했다.

"투수가 좀 힘들어 보이네." 신사적이고 합리적인 관전평이었다.

그러나 안타가 쏟아지고 점수가 쌓이면서 나의 언어 수준은 급격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타자들이 너무 성의 없이 치는 거 아냐?" 이 정도면 아직 양반이다.

그러다 한 타자가 명백히 칠 수 있는 공을 허무하게 헛스윙하는 순간,

드디어 임계점이 터졌다.


"아! C8, 저러고도 프로냐?"


욕이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이대로 두면 토요일 아침의 청정한 공기가 완전히 오염될 것이 뻔했다.

나는 결단을 내렸다.

리모컨을 집어 들고, 미련 없이 TV를 껐다.


베트남에 졌다고?"…괴성지르고 망치로 TV 부순 中 축구팬


정적이 흘렀다.

꺼진 화면에 내 얼굴이 희미하게 비쳤다.

멋쩍게 아침을 마저 먹었다.

사실 이쯤 되면 나도 안다.

스포츠의 재미란 바로 이런 것이라는 걸.

이기면 세상을 다 가진 것처럼 기쁘고, 지면 세상이 무너지는 것처럼 분하고,

그 감정의 널뛰기가 묘하게 중독적이라는 걸.


하지만 문제는 나는 그 널뛰기를 즐기기에는 멘탈이 너무 약하다는 것이다.

이기든 지든 경기 후에는 정신적 피로감이 파도처럼 밀려온다.

그래서 한때 굳게 다짐했었다.

홍명보 감독이 축구 국가대표팀을 맡게 되던 그날, 나는 조용히 선언했다.


"이제 안 본다."


납득하기 어려운 선임, 납득하기 어려운 경기력, 납득하기 어려운 변명들.

그 모든 것을 보고 나면 피가 거꾸로 솟는 느낌이었으니까.

그럼에도 오늘 아침, 나는 TV 앞에 앉아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7년 만이라는 말에 홀려서. 설레는 마음을 안고.

그러나 결과는 7회 0 대 10 콜드게임 패!



진작 TV를 꺼버리길 잘했다.

그리고 생각했다.

가장 미운 사람은 도미니카 투수도, 우리 타자도 아니었다.

분명히 알면서도 또 기대하고 만, 바로 나 자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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