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lliam Stanley Haseltine
윌리엄 스탠리 해슬틴(William Stanley Haseltine, 1835–1900)은
뒤셀도르프 화파, 허드슨 리버 스쿨, **루미니즘 세 조류 모두와
연관된 미국의 화가이자 드로잉 작가다.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와 하버드 대학교를 졸업한 뒤 유럽으로 건너가
뒤셀도르프 아카데미에서 수학하고, 알버트 비어슈타트, 워싱턴 휘트리지와 함께
라인강과 이탈리아를 스케치 여행하며 화업의 기틀을 닦았다.
그의 암석 묘사는 지질학적으로 너무나 정확해서 일부 비평가들은
이 작품들이 "예술과 과학 모두에 봉사한다"고 선언할 정도였다.
당대의 두 지적 거인이 그의 예술에 깊이 각인되어 있다.
영국의 미술비평가 존 러스킨은 자연의 개별적 특징을 세심하게 그리도록 촉구했고,
찰스 다윈의 진화론은 지질과 유기 생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일깨웠다.
해슬틴은 이 두 사상의 영향 아래 풍경을 과학자처럼 탐색하며 캔버스에 담았다.
Rocks at Nahant (나한트의 바위들, 1864)
다수 붉은 화성암 판들이 대각선으로 놓이고,
선사시대 화산과 빙하 활동의 흔적이 바다와 하늘의 넓은 수평선 구도를 가로지른다.
두 명의 왜소한 인물과 수평선 위의 돛단배들이 이 광활한 암석과 바다의 교차점에
인간적 척도를 부여한다.
하버드의 지질학자 루이 아가시의 빙하기 이론에 영향을 받은 해슬틴은
이 그림을 지질학적 역사에 대한 예술적 성찰로 의도했다.
Narragansett Bay (나라간셋 만, 1864)
워싱턴 D.C. 로드아일랜드 남부 해안을 즐겨 찾던 해슬틴이
1862~63년 여름을 나라간셋에서 보내며 그린 연작 중 하나로,
인디언 록 혹은 해저드 록이라 불리는 실제 장소를 정밀하게 담아낸 이 작품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바다와 움직이지 않는 듯 보이지만
천천히 침식되어 가는 암반 사이의 긴장을 포착한다.
Natural Arch at Capri (카프리의 자연 아치, 1871)
이 작품에서 해설타인은 카프리 섬의 아르코 나투랄레와 파라글리오니,
티베리우스 황제의 빌라 요비스 유적을 하나의 화면에 합성해
카프리의 정수를 단 한 장에 담아내는 이상적 구성을 선택했다.
근경의 거대한 암석과 원경의 대기 효과를 대비시킨 동적 공간감이 압도적이며,
인간의 흔적을 극소화함으로써 자연의 거대함 앞에 모든 인간적 노력이 왜소해 보이게 만든다.
The Sea from Capri (카프리에서 바라본 바다, 1875)
애틀랜타 1858년 카프리의 카르투지오 수도원에 머물며 그린 이 작품은,
석회암 절벽 위에서 새벽의 확산된 대기 광을 포착한 걸작이다.
전경에는 티베리우스 황제가 세운 빌라 요비스의 폐허가,
원경에는 카프리 마을이 펼쳐진다.
언덕 위의 특권적인 시점에서 풍경은 하나의 클라이맥스를 향해 점층적으로 전개되며,
해안 암석과 외로운 돛단배가 반사하는 태양의 따스한 빛이 그림 전체에 고요한 숭고함을 부여한다.
해슬틴의 그림은 가장 먼저 '정지된 시간'을 느낀다.
파도가 막 철썩이고 빛이 막 내려앉은 그 찰나-
그러나 그 순간은 수천만 년을 견뎌온 암석 위에서 벌어진다.
그는 "진정한 예술가는 과학자이기도 하고, 과학자는 가장 깊은 의미에서 예술가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 선언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나한트의 붉은 화성암을 묘사한 그의 선들은 지질학 보고서처럼 정밀하고,
카프리의 새벽빛을 담은 그의 색면들은 시처럼 서정적이다.
러스킨의 정밀한 관찰과 다윈의 지질학적 시간 인식을 화폭에 통합한 그는,
풍경을 단순히 아름다운 배경이 아니라 지구의 역사가 새겨진 문서로 바라보았다.
그것이 그의 '바위 초상화'들이 단순한 해안 풍경화를 넘어서는 이유다.
해슬틴의 캔버스 위에서 바위는 단순한 사물이 아니라,
인류가 등장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해온 역사의 증인이다.
** 루미니즘은 1850년대부터 1870년대까지 유행했던 미국 풍경화 양식으로 ,
공중 원근법의 사용과 눈에 보이는 붓 자국을 감추는 것을
통해 풍경 속 빛의 효과를 특징으로 한다.
루미니즘 풍경화는 고요함을 강조하며,
종종 잔잔하고 반사되는 물과 부드럽고 흐릿한 하늘을 묘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