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신
색채는 때로 언어보다 먼저 도달한다.
김윤신의 조각 앞에 서면, 말이 생기기 전에 몸이 먼저 그 밀도를 느낀다.
잘리고 깎인 나무의 상처가 숨겨지지 않고 그대로 드러난 표면.
그것은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한 인간이 평생 쌓아온 시간의 단면이다.
1935년 함경남도 원산에서 태어난 김윤신은 한국의 1세대 여성 조각가다.
1984년 아르헨티나로 이주한 뒤 40년 가까이 유행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한 채 자신만의 언어를 다져왔다.
그 긴 시간 동안 한국과 프랑스, 남미를 오가며 축적된 이동의 기억은
작품 속에 고스란히 스며들었다.
단단하지만 급하지 않고, 크지만 과시적이지 않은 조각들.
그의 조각은 조형 언어이기 이전에 삶의 태도를 닮아 있으며,
그의 나이는 작업의 속도와 밀도를 설명하는 배경일 뿐이다.
해외에서 시작된 재조명,
2024 베니스비엔날레 초청을 계기로 그의 작업은 완결된 회고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사고를 갱신하며 이어지는 현재의 작업으로 다시 읽히기 시작했다.
그 작업의 근간에는 '합이합일 분이분일(合二合一 分二分一)'이라는 철학이 있다.
나와 재료가 만나 하나가 되고, 다시 나뉘며 또 다른 관계를 만드는 것.
"이 개념은 생각이라기보다, 내가 살아온 방식 그 자체"라고 그는 말한다.
아르헨티나의 단단한 알가로보 나무를 깎아낸 이 조각은 옹이와 껍질,
전기톱이 깊게 판 홈을 감추지 않고 그대로 드러낸다.
작가 스스로 "가장 마음이 간다"고 고백한 이 작품 앞에 서면,
이것이 나무의 상처인지 사람의 상처인지 경계가 흐릿해진다.
나무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 그 경계는 사라진다.
<기원쌓기> 연작에는 유년의 기도가 스며 있다.
독립운동을 나간 오빠의 행방이 묘연해지자 새벽마다 물을 떠놓고 기도하던 어머니 곁에서,
어린 김윤신은 돌탑을 쌓았다.
수직으로 축적된 형태 속에서 보는 이는 묘하게도 무언가를 간절히 바라고 싶어진다.
전쟁 중 나무가 뿌리째 뽑혀 연료로 사라지는 것을 보며 처음 느꼈다는 상실감.
그때부터 자연은 그에게 관찰의 대상이 아니라 함께 살아야 하는 존재가 되었고,
그 감각이 수십 년의 시간을 건너 조각으로 다시 태어났다.
팬데믹은 이 철학에 새로운 언어를 부여했다.
재료가 부족해지자 버려진 나뭇조각을 주워 색을 입히고 평면과 입체를 결합했다.
《회화-조각》 연작이다.
"하나의 생각은 결코 한 면으로만 존재하지 않는다.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게 드러나고, 동시에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
알록달록한 색채를 입은 폐목 조각들은 마치 늙은 나무가 마지막으로 꽃을 피운 것처럼 보인다.
"회화-조각이라는 단어를 내가 만들고 세상을 떠야 한다"고 말하는 구순의 예술가.
그 선언 앞에서, 예술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 다시 새로워진다.
"작업을 멈추는 순간 나는 아무것도 아니게 된다. 죽음이지요."
그에게 작업은 삶 그 자체다. 어디에 있든 작업하는 그곳이 자신의 자리였고,
정체성은 작업을 규정하는 제약이 아니라 작업이 가능해지는 조건이었다.
그래서 김윤신은 돌아온 작가라기보다, 한국의 시간에 다시 합류한 작가다.
그의 나무는 잘리고 나뉘어져도 끝내 하나로 서 있다.
그녀의 삶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