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헤세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문학의 언어로 다 담지 못한 것을 붓으로 쓰다


헤르만 헤세(1877~1962)는 독일의 소설가이자 시인이다.

단편 소설에서부터 시집, 평론 등 다수의 작품을 집필한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작품은 학창시절에 한 번쯤 읽어봤을

<수레바퀴 밑에서>, <데미안> 등이 있다.

헤르만헤세만의 독특하면서도 섬세한 감성과 아름답고 유려한 문체는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1946년에는 <유리알유희>라는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림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은 마흔 살이 넘어서였다.

1차 세계대전의 포성과 결혼 파탄, 내면의 극심한 위기가 겹쳐들던 그 시절,

칼 융의 제자였던 정신과 의사 요제프 랑 박사는 그에게 붓을 들도록 권유했다.

처방전이 그림이었던 셈이다.

그리고 그 처방은 놀랍도록 정확히 들어맞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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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세는 스스로 이렇게 말했다.

"나의 작은 수채화들은 일종의 시적 허구 혹은 꿈이다.

그것들은 '현실'의 아득한 기억만을 전달할 뿐이며,

개인적 감정과 정서에 따라 현실을 변형시킨다.

나는 다만 아마추어일 뿐이며, 그것을 결코 잊지 않는다."

이 겸손한 고백이야말로 그의 그림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문장이다.


헤세의 수채화는 대부분 소형 포맷으로,

그가 정착한 스위스 티치노 주 몬타뇰라 마을과 그 주변의 풍경을 담고 있다.

그는 산책을 나가며 연필 스케치를 하거나 즉석에서 수채화를 그렸고,

시 필사본에 직접 그림을 곁들이기도 했다.



Cap 2026-03-15 08-59-12.jpg 포도나무가 있는 정원 계단


그의 수채화는 표현주의적 열기와 포비즘의 팔레트,

그리고 때로는 입체주의와 맞닿는 양식으로 이루어져 있다.

루가노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언덕 위 마을의 붉은 지붕들,

유다수(Judasbaum)와 목련이 흐드러진 정원,

이른 아침 안개에 잠긴 수면,

이 모든 장면이 원색에 가까운 과감한 색채로 화면을 가득 채운다.

그러나 그 색채는 뜨겁지 않다.

어딘가 쓸쓸하고, 조용하며,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침묵이 있다.



555.jpg 클링조어 발코니


헤세는 그림에 대해 이렇게도 썼다.

"붓과 펜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것은,

그 취기가 삶을 따뜻하고 살 만한 것으로 만들어주는 포도주 같은 것이다."


문학이라는 광대한 사유의 공간을 누빈 그에게, 그림은 언어 이전의 언어였다.

논리와 서사의 옷을 입히지 않아도 되는 공간,

단지 빛과 색과 형태만으로 내면의 상태를 직접 바깥으로 내놓을 수 있는 행위!

그것이 그에게 그림이었다.


헤세는 평생 약 3,000점의 수채화를 남겼다.

그의 그림들은 사후 도쿄, 파리, 뉴욕 등 그리고 2015년 우리나라에서도 전시가 열였다.

현재 대부분은 몬타뇰라의 헤르만 헤세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999.png 호수골짜기 꽃이 심어진 정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이후로 나는 문학과의 거리를 조금씩 발전시켜왔다.

이것은 다른 어떤 방법으로도 얻을 수 없었던 거리였다"고 그는 고백했다.

이 문장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의 수채화는 위대한 소설가의 취미가 아니었다.

그것은 데미안을 쓴 사람이,

싯다르타를 쓴 사람이,

황야의 이리를 쓴 사람이—

그 무거운 정신의 무게를 내려놓고 잠시 숨을 쉬기 위해 고른 또 하나의 삶의 방식이었다.


헤세의 그림 앞에 서면 문학을 읽을 때와는 다른 종류의 조용함이 찾아온다.

그것은 설명되지 않는 아름다움이고, 증명되지 않는 위안이다.

그리고 그 위안이야말로, 그가 붓을 든 가장 솔직한 이유였을 것이다.



unnamed.jpg 비탈 위의 집


< 행복해 진다는 것 >


- 헤르만 헷세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하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위해 세상에 왔지


그런데도


그 온갖 도덕


온갖 계명을 갖고서도


사람들은 그다지 행복하지 못하다네


그것은 사람들 스스로 행복을 만들지 않는 까닭


인간은 선을 행하는 한


누구나 행복에 이르지


스스로 행복하고


마음속에 조화를 찾는 한


그러니까 사랑을 하는 한...


사랑은 유일한 가르침


세상이 우리에게 물려준 단 하나의 교훈이지


예수도


부처도


공자도 그렇게 가르쳤다네


모든 인간에게 세상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은


그의 가장깊은곳


그의 영혼


그의 사랑하는 능력이라네


보리죽을 떠먹든 맛있는 빵을 먹든


누더기를 걸치든 보석을 휘감든


사랑하는 능력이 살아 있는 한


세상은 순수한 영혼의 화음을 울렸고


언제나 좋은 세상


옳은 세상이었다네



https://youtu.be/tcIaa-QLWr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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