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로버트 라우센버그(Robert Rauschenberg, 1925–2008)는
추상표현주의 이후 미국 미술의 새로운 장을 연 화가이자 그래픽 아티스트로,
팝아트 운동을 예고한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그는 "회화는 예술과 삶 모두에 관계한다"고 선언하며,
"그 둘 사이의 틈새에서 작업하고 싶다"고 밝혔다.
블랙 마운틴 칼리지에서 존 케이지의 '우연성'과 선불교 철학을 흡수한 라우센버그는
비전통적 예술 방법을 실험하기 시작했고,
이후 뉴욕에 정착해 재스퍼 존스와 함께 네오다다 미학을 확립했다.
그렇게 1950~60년대,
라우센버그를 시작으로 재스퍼 존스, 앤디 워홀 등
새로운 세대의 예술가들이 등장하면서 도시·광고·소비 문화가 반영된 팝아트의 시대가 열렸다.
그의 핵심 작업은 '컴바인(Combined, 1954~1964)'이다.
뉴욕 거리에서 수거한 버려진 오브제들—신문, 타이어, 박제 동물, 침구 등—을
회화 재료와 결합해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완전히 허물었다.
Erased de Kooning Drawing (지워진 드 쿠닝의 드로잉, 1953)
이 작품은 라우센버그 예술 세계의 핵심을 압축한다.
당시 추상표현주의는 완성된 이미지뿐 아니라 그리는 행위 자체를 예술로 보는 관점이었고,
따라서 그 시대 미국 미술의 중심에 있던 드 쿠닝의 드로잉을 지운다는 것은
단순한 수정이 아니라 미술사적 맥락에서 벌어진 하나의 사건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었다.
파괴와 창조의 경계를 허무는 개념 미술로 인정받게 된 것이다.
라우센버그는 드 쿠닝을 예술적 아버지처럼 존경했지만,
바로 그 존경하는 스승의 작품을 지우는 방식으로 아이러니하고 유머러스한 행위 예술을 펼쳤다.
그렇다고 렘브란트처럼 이미 세상을 떠난 거장의 작품을 지우는 것은
예술이 되기 전에 범죄가 됐을 것이다.
그래서 라우센버그는 드 쿠닝을 직접 찾아가 정중히 허락을 구했고,
그것이 허락된 뒤에야 작업을 진행했다.
팝아트를 대표하는 젊은 작가가 당대 미국 미술의 중심 거장의 작품을 지웠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종종 한 시대 미술의 종말을 선언하는 제스처로 해석된다.
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선배를 향한 깊은 존경이 담긴 복합적인 몸짓이기도 했다.
재스퍼 존스가 타이핑한 작품 설명이 담긴 금박 액자에 끼워진 이 텅 빈 종이는,
예술 오브제의 정의와 작가의 역할을 근본적으로 질문한다.
그러나 정작 드 쿠닝은 이 작품이 공개 전시되기 시작하자 크게 화를 냈다고 전해진다.
그는 이 파괴 행위가 예술가들 사이의 사적인 일로 남아야 했다고 믿었고,
라우센버그의 행동이 그저 유치하게 느껴졌다고 했다.
두 예술가의 이 엇갈린 시선은,
예술에서 '행위의 의미'란 늘 만드는 사람과 보는 사람 사이 어딘가에 불확실하게
떠 있다는 사실을 다시금 일깨운다.
Bed (침대, 1955)
자신의 침구—베개, 시트, 이불—를 화폭 삼아 물감을 뚝뚝 흘리고 쏟아부은
이 작품은 가장 사적인 일상 오브제를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컴바인의 선언문이다.
회화와 조각의 경계를 초월하는 작품이다.
어느 날 로버트 라우셴버그는 캔버스가 모두 떨어져 침대 시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는 베개와 시트, 이불 위에 연필로 낙서를 한 뒤 그 위에 물감을
빠르게 떨어뜨리고 흘려보냈다.
이어 캔버스 대신 직사각형의 나무 지지대에 침대 시트를 씌우고,
베개와 이불을 마치 침대 한쪽 모서리만 정리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고정한 것이다.
그는 물감을 자유자재로, 뚝뚝 떨어뜨리듯 즉흥적으로 칠한 것이다.
이는 잭슨 폴록과 빌렘 드 쿠닝이 남긴 작가적 흔적을 떠올리게 하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작품에서 붓 자국은 더 이상 작가의 심리를 드러내는 표식이 아니다.
그것은 아방가르드 예술 내부에서 외부 세계로 이동하는 전환을 상징하는 차용된 기호가 된 것이다.
흘러내린 물감보다 발견된 오브제들이 라우셴버그를 더욱 정확하게 말해주는 것이다.
그것들이 이전 세대에서 빌려온 미적 기호가 아니라,
그가 일상에서 실제로 소유하고 사용하던 사물들이기 때문이다.
Monogram (모노그램, 1955–1959)
모노그램은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상징적 작품이다.
박제된 염소가 타이어를 두른 채 캔버스 위에 서 있는 모습은
회화와 조각, 현실과 예술의 경계가 얼마나 허약한지 보여준다.
일상의 사물이 예술로 들어오는 순간, 세계는 낯설게 다시 태어난다.
이 작품은 예술이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조용히 하지만 강하게 던지는 하나의 선언이다.
Retroactive I (회고 I, 1963)
케네디 대통령의 이미지와 우주 비행사, 낙하산 사진을
추상표현주의적 붓질과 결합해 현대 미국의 역사와 대중문화를 화면에 압축했다.
실크스크린 기법으로 신문·잡지 이미지를 직접 캔버스에 전사하는 방식은
이후 앤디 워홀의 팝아트 문법과 직결된다.
라우센버그의 작품을 보면 두 가지 감각이 동시에 온다.
하나는 당혹감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다.
그는 "나는 비누 받침대나 거울, 코카콜라 병이 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안됐다.
그런 것들에 하루 종일 둘러싸여 살면서
그것들이 추하다고 느낀다면 얼마나 불행하겠는가"라고 말했다.
이 발언은 단순한 도발이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일상의 사물에서 아름다움을 보았고,
그것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예술가의 사명이라고 믿었다.
만약 라우센버그가 자신의 드로잉을 지웠다면,
사람들은 그저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아 수정하거나 폐기한 것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지우는 행위 자체가 하나의 예술이 되기를' 원했다.
그 목적을 위해 선택한 것이 드 쿠닝의 드로잉이었고,
그 선택은 존경과 도발, 유머와 파괴가 동시에 담긴 역사적 몸짓이 되었다.
그의 비선형적 예술 실천과 창조적 에너지는 이후 세대의 예술가들에게 지속적인 영향을 미쳤다.
드 쿠닝의 드로잉을 지우고, 자신의 침대를 벽에 걸고,
타이어를 두른 염소를 캔버스 위에 세운 이 남자는 평생 하나의 질문을 던졌다.
"예술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의 가장 위대한 대답은,
그 질문을 끝없이 열어두었다는 것 자체였다.
https://youtu.be/HlTj6D8tpqM?si=Ezk8KbfM2TAmWAu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