액션 페인팅의 제왕

그림 읽는 밤

by 제임스

1904년 네덜란드 로테르담에서 태어난 빌럼 데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은

잭슨 폴록과 함께 전후 미국 추상표현주의를 대표하는 화가로,

근 70년에 달하는 긴 예술 인생 동안 추상과 형상 사이에서 평생 싸운 액션 페인팅의 제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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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6년 영국 화물선에 밀항해 미국에 도착한 그는 뉴저지에서 집 페인트공으로 일하다

맨해튼으로 건너가 피카소와 초현실주의, 아르실 고르키의 영향을 흡수했다.

1930~40년대 WPA 연방 예술 프로젝트를 거치며 전업 화가로 자리를 잡은 데 쿠닝은,

잭슨 폴록, 프란츠 클라인, 마크 로스코 등과 함께

큐비즘·초현실주의·지역주의의 규범을 거부하고 전경과 배경의 관계를 해소하는

감성적·추상적 제스처를 회화의 중심에 세웠다.

이 운동은 '액션 페인팅', '추상표현주의', 또는 '뉴욕 스쿨'로 불리게 된다.


데 쿠닝이 동시대 누구와도 다른 점은,

동료 대부분이 구상에서 추상으로 일방통행했을 때 그는 인물,

특히 여성과 추상을 평생 병행하며 그 사이를 오갔다는 것이다.

그에게 추상과 구상은 대립이 아니라 동일한 탐구의 두 얼굴이었다.

더 나아가 그의 작업은 라우센버그의 네오다다에서 팝아트에 이르는

전후 세대 전체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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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cavation (발굴, 1950)

1950년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한 이 거대한 추상 작품은,

데 쿠닝 초기 절정기의 걸작이다.

뼈·이빨·눈·입술을 연상시키는 생체 형태들이 흰색·노랑·분홍의 색면들 사이에서

부유하며 끊임없이 전경과 배경을 뒤바꾼다.

캔버스 전체가 살아 숨쉬듯 진동하는 이 작품은,

이미지가 완성되는 동시에 파괴되는 그의 작업 방식이 가장 장엄하게 구현된 화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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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man I (여인 I, 1950–1952)

1953년 시드니 재니스 갤러리 전시에서 공개된 이 작품은,

추상표현주의의 원칙을 배신한 것으로 비난받을 것을 감수하고

구상으로 돌아온 데 쿠닝의 선언이었다.


두드러진 이빨, 거대한 눈, 폭발적인 붓질로 그려진 여인의 형상은 욕망과 공포,

에로티시즘과 폭력이 뒤섞인 이미지로, 당시 미술계에 충격을 던졌다.

MoMA 컬렉션 위원회는 이 작품을 구입할 때

"꽤 무서운 그림이지만 강렬한 생명력이 있으며 색채의 질이 마음에 든다"는 평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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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terchange (인터체인지, 1955)

여인 연작 이후 추상 풍경으로 전환하기 시작하는 이 시기의 대표작으로,

도시·고속도로·자연이 폭발적인 색채와 붓질 속에 뒤섞인다.

2015년 경매에서 약 3천400억에 낙찰되어 미술 시장 사상 최고가 기록 중 하나가 된 이 작품은,

데 쿠닝의 예술이 시대를 초월해 얼마나 치열한 생명력을 지니는지를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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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 IV (무제 IV, 1982)

1971년 롱아일랜드 이스트 햄프턴에 완전히 정착한 데 쿠닝은,

네덜란드를 연상시키는 그곳의 빛과 풍경 속에서 캔버스를 보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색채와

리본 같은 붓질로 채우기 시작했다.

1980년대 후기작들은 은은하게 조율된 흰 캔버스 위에 유령 같은

색채의 리본 터치들이 더해진 것이 특징이다.

알츠하이머 증세가 깊어지던 시기에 그려진 이 그림들은 비평가들 사이에서 논쟁을 낳았지만,

많은 이들은 이 작품들이 지적 통제가 아닌 순수한 신체 기억과 직관에서

비롯된 가장 자유로운 회화라고 평가한다.



333.jpeg 앉아있는 여인 Seated Woman, 1940


데 쿠닝의 작품 앞에서는 먼저 몸이 반응한다.

거대한 캔버스를 가로지르는 붓질의 속도와 물감의 두께,

형상이 막 나타나려다 다시 추상 속으로 녹아드는 찰나,

그것은 눈으로 보기 전에 몸 어딘가에서 먼저 감지된다.


그는 큐비즘, 초현실주의, 표현주의를 융합한 급진적 추상 양식을 누구보다 치열하게 발전시켰다.

추상과 구상, 인물과 풍경을 예술사적 범주로 구분하지 않고 평생 동시에 탐구했으며,

진정한 주제는 '공간과 형상-배경의 관계'라고 그는 강조했다.


그는 스케치 없이 즉흥적으로 그린다는 추상표현주의의 통념과 달리,

드로잉과 트레이싱을 이용해 형상을 캔버스 위에서 유동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을 발전시켰다.

덕분에 그의 화면은 즉흥의 아우라를 유지하면서도 복잡한 레이어와 불협화음이 충돌하는

밀도 높은 구성을 갖는다.


여인을 그렸을 때 세상은 그를 추상의 배신자라 불렀고,

추상으로 돌아가면 구상의 도망자라 했다.

그는 그 어떤 딱지도 개의치 않았다.

빌럼 데 쿠닝은 평생 단 하나의 원칙으로만 그림을 그렸다.

지금 이 순간, 캔버스가 살아있는가?



Mozart: Piano Sonata No. 8 - Brendel

https://youtu.be/bbAbvyS1x0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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