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 속으로
척 노리스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어제 아침이었다.
향년 86세. 유족은 그의 공식 인스타그램을 통해 사망 사실을 알렸고,
세상 사람들에게 그는 무술가이자 배우, 강인함의 상징이었다고 회고했다.
잠시 화면을 내려다보다 나는 오래전 기억 하나를 떠올렸다.
팔꿈치의 멍.
중학교 1학년 어느 여름,
친구들과 단체로 동네 극장을 찾았다.
상영작은 이소룡의 '정무문'이었다.
그의 영화가 한국에 상륙한 것은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난 다음의 일이었다.
1971년 '당산대형'으로 아시아를 휩쓴 이소룡은 이듬해
'정무문'으로 더욱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1973년부터 1978년 사이 그의 영화들이 한국에 차례로 개봉되었다.
그러니까 우리는 이미 죽고 없는 사람의 영화를 보며
영웅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었던 셈이다.
극장 안은 그야말로 난리였다.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이소룡 영화를 보는 것은 단순한 영화 관람이 아니라
소리 지르고 환호하는 일종의 축제였다.
이소룡이 일본 도장의 간판을 두 동강 내는 장면에서 누군가 "와~!" 하고 소리를 질렀고,
객석 전체가 그 함성에 합류했다.
스크린 속 작고 날랜 남자가 "아뵤!" 하는 괴성과 함께
공중을 가로지를 때마다 극장은 들썩였다.
이소룡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괴성과 쌍절곤이 바로 '정무문'에서 처음 등장했다.
그 날의 쌍절곤 장면은 당시 우리 모두에게 계시(啓示)나 다름없었다.
다음 날부터 동네 골목은 무술 도장이 되었다.
막대기 두 개를 끈으로 엮어 만든 조악한 쌍절곤이
전국 어디나 아이들 손에 들려 있었다.
나도 그 대열에 당당히 합류했다.
아버지 창고에서 짧은 나무 막대 두 개를 찾아내고,
가방끈을 잘라 이어 붙인 즉석 무기였다.
이소룡처럼 어깨 뒤로 넘겨 앞으로 돌려치는 동작을 연습하다가 그만 팔꿈치를 제대로 얻어맞았다.
화끈거리는 통증보다 창피함이 더 컸다.
혼자 있어서 다행이었다.
사흘 뒤 팔꿈치에는 시퍼런 멍이 자리를 잡았고,
어머니의 성화에 못 이겨 쌍절곤은 압수당했다.
그렇게 한 번 빠진 이소룡 열풍은 쉽게 식지 않았다.
'맹룡과강'이 개봉했을 때는 당시 무명이었던 척 노리스와 이소룡이
콜로세움에서 벌이는 최후 결투 장면이 액션 영화 사상 최고의 명장면 중 하나로 꼽혔다.
화면 속에서 두 남자는 고대 로마의 원형경기장 한가운데서 말없이 서로를 응시하다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싸움이라기보다 일종의 의식(儀式)처럼 보였다.
척 노리스와의 결투는 영화상에서 척 노리스가 패배하는 유일한 장면이기도 했다.
이소룡은 쓰러진 상대에게 겉옷을 덮어주고 자리를 떴다.
강자의 예의란 저런 것이구나, 하고 나는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겼다.
척 노리스와 이소룡은 둘 다 1940년생 동갑내기로 평생의 친구였다.
이소룡이 의문사를 당하자 가장 슬퍼한 이 중 하나가 척 노리스였다.
그 친구가 이제 뒤를 따랐다.
척 노리스는 강한 주먹과 과묵한 영웅의 이미지로
1980∼90년대 액션 장르를 이끈 대중문화의 상징이었다.
이소룡은 서른두 살에 갔다.
불과 2년 사이 다섯 편의 주연 영화를 찍고 요절한 스타였지만,
1970년대에 학창시절을 보낸 남자라면 누구라도 한 번쯤
그의 무술 동작을 따라 해봤을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짧았기에 더 빛났는지도 모른다.
그는 스크린 밖에서도 우리의 골목과 교실과 창고를 누볐고,
수많은 팔꿈치에 멍을 남겼다.
척 노리스 별세 기사를 읽으며
그 시퍼런 멍의 기억이 다시 살아났다.
아팠지만 행복했던 시절의 훈장이었다.
두 사람 모두 이제 어딘가에서 그 콜로세움의 결투를
다시 펼치고 있을 것이다.
이번엔 누가 이길까?
Bruce Lee VS Chuck Norris Full F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