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읽는 밤
요즘 ‘케데헌<K-Pop Demon Hunters〉’에 등장한 까치호랑이 때문에
국립중앙박물관 기념품인 ‘까치호랑이 배지’가 매번 재입고 즉시 매진되고 있다고 한다.
또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까지 우리의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이 급증하고 있다.
그 한가운데는 이름 없는 화공이나 서민들이 생활 속에서
그린 전통 그림인 민화가 자리잡고 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라는 거대한 전란의 폭풍이 지나간 후,
조선 사회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변화의 물결 앞에 섰다.
집권층은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실천적 유교를 강조하며 삶의 질서를 바로잡으려 애썼고,
그 과정에서 유학 사상은 백성들의 실생활 깊숙이 파고들기 시작했다.
18세기에 이르러 농업 기술이 비약적으로 발전하고 상품 유통 경제가 활성화되자,
역사의 전면에 새로운 주역들이 등장했다.
기술직 중인과 부유한 상인 계층이 자본력을 갖추게 된 것이다.
이들은 자신들의 성장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판소리, 국문 소설과 같은
새로운 문화를 향유하기 시작했고, 그 갈망은 이내 회화의 영역으로까지 뻗어 나갔다.
이전까지 그림이란 왕실의 위엄을 세우는 장식이나 고결한 사대부들의 전유물로만 여겨졌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는 수요의 급증을 불러왔다.
새로이 부를 축적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터전을 장식하고 복을 불러들이며
액운을 막아줄 ‘좋은 의미’의 그림이 절실히 필요했다.
이렇게 왕실의 궁중 장식화가 민간으로 흘러나오고,
저변이 확대되는 과정에서 탄생한 것이 바로 ‘민화’다.
민화는 단순히 서민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광통교에서 거래되던 그림들 중에는 도화서 화원의 솜씨가 엿보이는 정교한 작품들도 많았으며,
이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중인부터 사대부까지 폭넓은 계층이 민화를 곁에 두었음을 시사한다.
민화를 감상할 때 우리가 주목해야 할 가장 큰 미학적 특징은 바로 ‘강조’와 ‘생략’이다.
민화 속 도상들은 그 형태보다 도상이 지닌 의미가 훨씬 중요했다.
관람자에게 그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화가들은 중심 도상을 가릴 만한 요소는 아예 그리지 않거나
바탕색조차 넣지 않는 과감함을 보였다.
작화의 정교함이나 기술적인 완성도보다,
복을 주고 화를 막아준다는 그 상징적 약속이 우선이었기 때문이다.
이는 현대 미술 사학에서 말하는 도상학적 관점과 일맥상통하며,
민화를 단순한 그림이 아닌 ‘소망을 담은 이야기의 승화’로 보게 만든다.
선조들은 이 도상들의 의미를 집단적으로 공유하고 있었다.
소나무 가지에 앉은 까치가 기쁜 소식을 전하고,
그 아래 호랑이가 액운을 막아 나쁜 기운이 문지방을 넘지 못하게 할 것이라는 믿음은
누구에게나 당연한 진리로 통했다.
이러한 믿음이 있었기에 수많은 ‘작호도’가 제작되어 집집마다 대문에 붙여질 수 있었다.
민화에서의 강조는 물리적인 크기나 시점의 제약마저 뛰어넘었다.
마치 어린아이의 시선처럼 순수하게,
가장 중요한 대상만을 비현실적으로 크게 그려 의미를 부각했다.
현실을 넘어선 거대한 물고기나 꽃들이 화폭을 가득 채우는 이유는
바로 그 간절함의 크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책거리’에서 보여주는 역원근법이나 산수화의 다시점은
민화가 지닌 현대적 세련미의 정수를 보여준다.
현실적인 시각의 틀을 벗어던진 시점의 자유로움은 보는 이에게 해방감을 선사한다.
또한 장소와 위치의 논리적 사유를 깨는 자유로움은 민화만의 독특한 매력이다.
물속에 있어야 할 물고기가 산 위를 유영하고,
물고기와 새가 같은 공간에서 어우러지며,
용이나 해태 같은 상상 속 영물들이 거침없이 등장한다.
이는 비가 내리기를, 아들을 낳기를, 혹은 무병장수하기를 바라는 여러 소망을 한 화면에
담아내기 위한 선조들의 따뜻한 욕심이었다.
결국 민화 속의 강조와 자유로움은 우리 선조들이 각자의 소박한 바람을
어떻게 하면 가장 잘 표현하고 이룰 수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한 결과물이다.
규격화된 격식보다 마음의 소리를 따랐던 민화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생생한 생명력과 위로를 건네준다.
화려한 기교 뒤에 숨은 간절한 기도,
그것이 바로 민화가 가진 가장 아름다운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