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드리안 게니
붓을 쓰지 않는 화가가 있다.
팔레트 나이프와 스텐실로 캔버스를 공략하는
아드리안 게니는 20세기의 학살자들, 독재자들,
그리고 그 시대의 희생자들을 갉아먹히고 뭉개진 얼굴로
그려내는 루마니아 출신의 화가다.
그의 일그러진 초상화들은 우리 시대 악마들의 정신 해부다.
그 앞에서 보는 이는 아름답다고 말하기도, 불편하다고 외면하기도 어렵다.
그냥 서 있을 수밖에 없다.
체아우셰스쿠의 공산 독재 치하 루마니아에서 성장한 게니는 역사의 서술자다.
그는 관람자를 시간 여행으로 이끌며 20세기 역사에 대한 자신의 해석을
웅장한 서사 양식으로 펼쳐 보인다.
전체주의 정치 체제에서 권력이 어떻게 남용되는지가 그의 핵심 주제다.
그러나 게니가 단순한 역사 화가와 다른 것은,
그에게 역사란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기억과 트라우마의 뒤엉킨 덩어리이기 때문이다.
《Nickelodeon》(2008)은 그 뒤엉킴이 가장 먼저 폭발한 작품이다.
바르샤바 게토 주민들의 사진을 바탕으로 제작된 이 작품에서
게니는 역사적 사진과 미국 어린이 TV 채널의 이름을 충돌시킨다.
학살과 대중문화, 공포와 무감각이 하나의 제목 안에서 부딪힌다.
그것이 게니가 역사를 다루는 방식이다.
고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역사와 맺는 관계의 이상함 자체를 드러낸다.
《Pie Fight Study》 연작은 게니 특유의 역설이 가장 유머러스하게,
그러나 가장 잔혹하게 구현된 작품군이다.
스리 스투지스나 스탠 로렐 같은 슬랩스틱 단편 영화의 파이 싸움 장면에서 출발한 이 작업에서,
희극적 몸짓은 잔인한 제스처가 된다.
얼굴에 파이가 던져지는 순간, 그것은 웃음이 아니라 굴욕의 이미지가 된다.
그는 이 굴욕을 독재 체제의 가장 중요한 특성으로 본다.
코미디와 폭력 사이에 이렇게 얇은 막이 있다는 것을,
게니의 파이 싸움 연작은 두껍게 쌓인 물감의 질감으로 증명한다.
《The Fake Rothko》(2010)는 게니의 미술사적 야망이 가장 직접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이다.
로스코의 그림 앞에서 구역질하는 인물을 그린 이 작품은
2014년 경매에서 142만 파운드에 낙찰되었다.
숭고한 추상회화 앞에서 몸이 반응한다는 것.
예술이 위장을 건드린다는 것.
이 기묘한 장면은 미술의 숭고함에 대한 조롱인 동시에,
그 숭고함에 진정으로 압도당한 사람만이 그릴 수 있는 경의다.
《The Sunflowers in 1937》(2014)은 게니의 역사의식이 미술사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작품이다.
반 고흐의 해바라기에서 출발한 이 대형 유화는 2016년 소더비 경매에서 317만 파운드에 낙찰되며
루마니아 작가 최고가를 경신했다.
1937년이라는 해는 나치가 '퇴폐 예술'을 단죄한 해이기도 하다.
게니는 반 고흐의 해바라기를 그 역사적 폭력의 맥락 안에 다시 놓는다.
아름다운 꽃 그림이 역사의 상처와 만나는 순간, 화면은 전혀 다른 무게를 얻는다.
바로크의 명암법과 추상표현주의적 붓질을 동시에 구사하며,
역사 회화의 전통을 전복하는 도발적 주제와 결합하는 게니의 작업은
결국 하나의 믿음으로 귀결된다.
회화는 우리 인간성의 산산조각 난 조각들을 되돌려주는 깨진 거울이어야 한다는 것.
역사는 교과서 속에만 있지 않다.
뭉개진 얼굴, 두터운 물감, 파이 싸움 속에도 있다.
게니는 그것을 캔버스 위에서 다시 살아 움직이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