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내
가까이 다가서면 점이 보인다.
조금 물러서면 산이 보이고,
더 멀리 서면 노을 진 하늘과 겹겹의 능선이 펼쳐진다.
화가 이내(Ine)의 작품 앞에서 누구나 겪는 경험이다.
그의 그림은 지름 0.5센티미터의 작은 원을 하나하나 찍는 것에서 시작된다.
100호 캔버스 하나에 먼저 6만 개의 원을 그리고,
그 위에 다시 수만 번의 색점을 쌓아 올린다.
하루 12시간씩, 총 1,400시간 이상을 쏟아야 비로소 한 작품이 완성된다.
세상이 속도를 숭배하는 시대에, 이내는 극단적인 비효율을 택한다.
그리고 그 비효율이 오히려 전 세계를 사로잡았다.
작업 과정을 담은 영상은 해외 릴스에서 2,000만 뷰를 넘기며 화제가 되었다.
그의 작품은 크게 세 시리즈로 나뉜다.
먼저 기억 시리즈는 시간이 흐르며 흐릿해지는 기억의 속성에서 출발한다.
소중한 추억을 알갱이 같은 점의 파편으로 묘사하여,
멀리서 보면 아름다운 풍경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수없이 많은 점들의 집합임이 드러난다.
기억이란 원래 그런 것이 아닐까.
흐릿한 잔상 위에 현재의 감정이 덧씌워져,
우리는 저마다 다른 풍경을 마음속에 품고 산다.
시선 시리즈는 더 직접적으로 내면을 건드린다.
이내는 10년간의 직장 생활을 접고 다시 화가의 길을 택했을 때,
타인의 시선이 얼마나 무거운 짐이었는지를 고백한다.
그는 그 두려움을 피하는 대신 화면 가득 눈동자를 빼곡히 채우는
'중첩'의 방식으로 정면 돌파했다.
두려움을 응시하고, 겹치고, 마침내 그것을 작품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경배 시리즈는 삶의 고난을 파도에 빗댄다.
은색 획은 세상이 던지는 시련을, 배경색과 같은 획은 내면의 고통을 상징한다.
그 거대한 파도 속에 아주 작게 그려진 금색의 경배자는 욕망과 성스러움 사이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본질을 가리킨다.
눈을 가늘게 뜨고 찾아야 할 만큼 작지만,
발견하는 순간 화면 전체가 다르게 읽힌다.
이 세 시리즈를 관통하는 것이 금색이다.
이내는 모든 작업에 금색을 사용한다.
빛의 각도에 따라 다르게 빛나는 금처럼,
같은 시련도 어떤 태도로 마주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는 믿음 때문이다.
그는 예술가의 길을 "묵묵히 계단을 한 칸씩 오르는 과정"이라 말한다.
2,000만 뷰의 주목 앞에서도 들뜨지 않고,
오늘도 점 하나를 찍는 사람.
그 성실한 수행이 결국 세계를 움직이는 풍경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