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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타나 주 시골의 온천의 휴식...

몬타나를 떠나 서남쪽으로 떠났으며 수십년 벼르고 벼르던 곳이 있어 그곳을 가기로 마음 먹었고 대륙에서는 어디에 있든지 가고 싶으면 이삼일이면 도착할 수 있으니 아쉬워 할 것도 없고 헤어짐을 서러워할 여인이 있는 것도 아니므로 슬퍼할 것도 없이 홀가분하게 떠나고 다시 돌아가면 된다.





글래시어 팍을 떠나 맥도날드 호수를 옆으로 하고 2 번으로 달려서 Kalispell 타운에 들러 필요한 것을 장만하고 93번에서 28번 도로를 이어서 달리는데 온천 표시판이 보이기에 마을로 들어갔다.







옛날에 다니던 호수였는데 오랜만에 만나서 반가운 마음이 들었으며 그때 마을에서 캐나다 녀석이 모텔에서 주차 문제로 터무니 없는 시비를 걸기에 슬슬 비위를 긁어 시비를 키웠는데 덩치는 산만한 녀석이 꼬리를 내리고 방으로 들어간 일이 있던 곳이어서 잊혀지지 않는 곳이다.

녀석이 마누라와 방으로 들어가면서 너네 나라로 꺼지라고 하여 나는 미국 사람이니 너는 네 나라 캐나다로 속히 꺼지라고 했더니 식식대던 녀석의 모습...


캐나다 국경에서 한시간이면 올 수 있는 거리라서 개나 소나 마구 겨내려 와서 분위기 버려놓기도 하는데 미국인에 비하면 정말이지 성격이 까칠하고 인성 수준은 무릎 아래서 맴도는 사람들이다.






아주 작은 마을이어서 팻말을 보고 찾아갔으며 모텔을 겸하는 곳이라 오피스에 들어가 물어보니 7 달러 받는다. 주인 할머니 말씀이 유럽에 세계에서 가장 질좋은 온천수가 있고 이곳 마을 온천수가 세계 2위의 질좋은 온천수로 공인된 곳이라는 설명이었다. 얼씨구나 페이하고 차안에서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후 플라스틱 주전자를 갖고 들어가 밖에서 대충 간단하게 샤워를 하고 온도가 낮은 아래서 몸을 담그고 한참 후 위로 올라와 뜨거운 물속에 잠기던 시간이다. 


온천 분위기가 가장 좋았던 곳은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옛날 인디언과 벌목꾼들이 사용하던 루시어강가에 있는 임자없는 무료 자연 온천이었고 산양이 바글거리는 계곡에 자리한 대형 온천의 추억도 길이 남는다.








칼리스펠에서 온 폴란드 언어를 사용하는 여인이 있어서 대화가 시작되었는데 폴리쉬가 아닌 우크라이나 태생이었으며 아줌마와 할머니는 뭐가 즐거운지 연신 수다를 멈추지 않았고 할아버지와 넷이서 따듯한 물속 따듯한 대화가 이어졌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이곳 몬타나주에 우크라이나에서 이주한 사람이 많다고 하는데 뉴욕에서는 본적이 없다고 하니 꽤 산다는 것이다.


26년 전 이주했으니 1991 년 소련연방이 붕괴하고 즉시 미국으로 건너온 사람일 것으로 판단되었다.  

김치독 타입의 아줌마는 웃기는 말을 잘하고 성격이 털털해서 편하게 대화가 이어졌고 카메라를 자동으로 조절하고 다시 물속에 들어가기를 반복하였다. 온천수가 너무 미끄러워 자칫하면 넘어질 수 있는 상황이었는데 미네랄 함유량이 세계 2 위 온천이니 그럴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인적이 거의 없는 평야에 자리한 온천이어서 사람은 많지 않았으나 낮에는 수십명이 가득히 찬다고 하였다.


모두 다섯개 욕조가 있는 곳이고 그중 하나는 풀장으로 만들어졌다. 언젠가 이곳을 지날 때 잊지 않고 다시 가기로 했다. 할머니 할아버지 아줌마와 작별 인사를 오피스에 들어가 주인 할머니에게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차를 세우고 들판을 감상하고 또 하면서 길을 달렸다.






28 번 도로를 달리는데 청정지역 맑은 강이 흐르고 시멘트로 덮은 곳 없이 자연스레 놓아둔 곳이다.






여물목 한편에서 노를 저으며 낚시하는 사람도 있고 한적한 곳으로 내려가서 목욕을 할까 생각도 했으나 온천에서 곧 나온 때문에 아쉬움이 있었다.






옛날 한국의 문산천이 이랬고 낙동강도 이랬는데 그 간사하게 생긴 녀석이 모래와 자갈을 모두 팔아먹느라...






숲이 우거진 구불구불한 90 번 고속도로를 넘는데 아이다호 주 경계가 나왔으며 내가 앉은 곳 왼쪽과 오른쪽은 한뼘 차이로 한시간 차이가 나는 중부와 태평양 시간이 갈리는 곳이다. 댈라스 보다 두시간 늦고 뉴욕 보다는 세시간 늦는 시간 변경선에 앉았다.  


즉 왼편 발은 뉴욕보다 두 시간이 늦고 오른편 발은 세시간이 느린 곳으로 대륙 여행에서도 만나기 어려운 장소다.






감자가 무진장 생산되는 아이다호는 미국에 공급하고도 수출까지 하는 사막의 기적을 이룬 곳이며 감자 생산지는 이곳 북쪽이 아닌 중남부 아이다호 사막으로 가야 하는데 예전에 두 번이나 이미 지났으니 서쪽으로 가기로 했다.






시애틀 시티가 있는 워싱톤 주에 들어왔으며 백악관이 있는 곳은 워싱톤 DC 로 구분되며 이곳 워싱톤 주와 완전히 반대편에 있고 다른 곳이다.






이곳은 옥수수밭 콩밭 보리밭 밀밭이 끝없이 이어진 곳이고 평지라서 사진은 별로인 지역이다.






시골길로 들어갔는데 이것이 분명히 먹는 채소 같은데 이름을 알 수 없고 물어볼 사람도 없었다.






들녘에는 스프링 쿨러로 물을 뿌리는데 비가 적은 서부 워싱톤 지역은 이렇게 농사를 지어야 한다.






아들에게 보낼 선물을 데이빗 상사에게 소포로 부치고 연료를 채우려고 시골 주유소에 들어갔는데 주인이 한인이어서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뉴욕시 후렛쉬 메도우에서 살다가 2002 년 이곳으로 이사했고 사연이 많다고 했다. 이곳은 한인이 전혀 없는 시골인데 강씨 성의 남편과 함께 자리를 잡고 살고 있었으며 낯은 익지 않은 사람이었다.


얼마 후 젊은 친구가 연로한 부모와 같이 가게에 들어 왔는데 " 어 한국말 하네" 이러더니 제 볼일을 보고 카운터로 왔기에 말을 섞지 않았다. 이상하게 한인은 같은 한인을 만나면 인사가 거의 없는데 그와 동행한 부모를 보니 한국서 놀러 온 모습인데 화전민인지 섬사람인지 아이구야 분간이 안 되었다.

시애틀과 포틀랜드에 사는 한인이 옐로스톤을 다니는데 가끔 지나다 들린다고 했다.

하여간 세상이 좋아진 것이 틀림 없고 예전엔 그리 어렵게 오던 미국을 지금은 ...






캐나다 록키산맥서 발원해서 포틀랜드 시티를 거쳐 대평양으로 들어가는 콜롬비아 강 저편 다리를 건너 Yakima 타운으로 향했다.






90 번 고속도로를 따라와서 이곳에서 82번 남쪽으로 가려고 언덕을 올라서 쉬는데 ......







먼 곳 이삼백리 될 거리에서 산맥에 대형 산불이 나서 삼각대를 거치하고 카메라를 얹었다.






화산이 폭발한 듯 하늘로 치솟는 연기가 뭉개구름처럼 피어 올랐으며 장관이었다.







Yakima 타운에서 하루 묵으며 글을 썼고 느지막히 일어나 12번 도로를 지나는데 곳곳에 희귀하게 생긴 바위가 눈에 띄었다.







사막화 된 지대지만 강물은 풍족한 곳이었고 곳곳에는 방울뱀을 주의하라는 표지판이 세워져 있었다. 보이면 바로 목을 눌러 잡아서 고아서 먹으려는데 아무리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뱀을 약한불에 고으면 닭고기 육수처럼 진한 국물이 나오는데 소금을 조금 뿌려 먹으면 진한 사골국물과 다르지 않고 먹는데 전혀 문제가 없고 없어서 못 먹으니 슬픈 일이기도 하다. 어린시절 몸이 허약해서 땅꾼이 고아주는 살모사 뱀탕을 먹던 그 맛과 방울뱀이 다르지 않을텐데....


옛날 뉴욕서 방울뱀탕을 팔던 한인이 있었는데 훌러싱 바닥서 양아로 이름을 날리는 백수고 ELM 에 있는 그의 가게 문 안에서 휙휙 거리는 소리가 들려서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수색하다가 수십마리 방울뱀이 든 통을 열다가 기겁을 한 뉴스가 주요신문에 대서특필 되어 망신을 산적이 있다.


하여간 뉴욕 교민사회에 갖가지 골동품이 많았으며 미국에서 뱀탕집을 하다가 그길로 문을 닫은 황당한 사람이었다.


청소년 아이들을 사격훈련을 시켜 교민 식당과 유흥업소에서 금품을 뜯어 살다가 각기 다른 지역에서 FBI 에게 동시에 이십여명이 체포당하고 징역을 칠팔년씩 살다가 기어나온 것이 지금도 버젓이 살아서 걸어 다니는 등 고물이 많은 곳이 한인사회다. 이후 삥을 뜯어 살던 거지들은 모두 사라지고CCTV 가 활성화 되면서 아치들이 설자리를 잃어버렸다.





온갖 곳을 쏘다니다가 다시 12번 길로 들어 섰으며 숲이 우거져 밤처럼 보였다.






동부지역처럼 숲이 우거졌으며 이곳은 소나무 종류라서 하늘을 찌를 듯이 빽빽한 모습이 장관이다.






벼랑길을 가면서 앞길을 가늠하는데 멀리 보이는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보였다.






깊게 갈수록 헤어나기 어려운 숲이 계속되고 벼랑을 깎아서 만든 길에는 바위로 경계를 만든 곳이 많고 아예 그것도 없어 위태한 지역이 많다.






쪼개진 바위도 그대로 놔두었고 벼랑에서 바위가 떨어지면 그것을 치우느라 수고하는 이가 이곳에도 있었다. 길 가운데로 굴러나오는 큰 돌이 더러 있어서 나는 밤에 깊은 산중으로 운전하는 것을 금하는데 어쩌다 꼳 가야 할 때도 있지만 아예 천천히 달린다.







오며가며 세상 풍경을 모조리 간섭하느라 시간이 늦어졌고 White Pass 고갯마루에 오르니 넓은 길가에 RV 여행용 트럭이 여러대 있고 트레일러도 밤을 지새느라 멈추어 있었다.


인적이 아예 없는 곳이고 하나 있는 주유소 상점은 문을 이미 닫았으며 숲속 주유소 넓은 주차장에는 승용차와 여행용 트럭이 여러대 자리를 잡았다.







랩탑을 열고 인터넷을 확인하니 안테나가 선명하였고 즉시 연결되어 이곳 차안에서 밤을 지새기로 했다. 이런 곳에서 조금 지나치면 산맥 가운데라서 아예 인터넷 연결이 안되어 글을 쓸 수 없다.


교통량이 전혀 없어서 시끄러울 일 없고 아무데 세워도 부딧힐 일이 없는 드넓은 지역이었으며 길 건너에 있는 스키장은 겨울을 기약한 채 문을 닫았으니  그야말로 무인지경과 같은 곳이었다.


내일은 갈 곳이 있는데 부정탈까 염려되어 미리 발설하지 않지만 벼르고 벼르었으며 하루 지나면 드디어 옛부터 가려고 마음 먹엇던 추억의 장소를 보게된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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