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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폭발로 날아간 St. Helen 활화산 워싱톤 주.

White Pass 고갯길에서 밤새 바들바들 떨고 잤으며 너무 추워서 잠을 설치다가 일찍 일어나 12번 도로 서쪽으로 달렸으며 하늘을 찌를 듯 서있는 숲이 사방에 가득한 곳이며 동부지역 뉴욕과 그외 대서양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엄청난 길이의 나무가 바람이 새들어 갈 틈이 없을 정도로 다닥 다닥 붙어 있어 놀라웠다.






나무가 너무 울창한 곳은 밤과 같이 보여서 사진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햇빛이 있는 곳을 골라야 했다.






도로공사가 많았으며 차선 하나를 개방하여 선도차가 바래다 주는 행렬을 따라 갔는데 12번 도로와 123번 도로가 만나는 곳이 길이 막혀서 더 이상 갈 수 없고 북쪽으로 123 번 도로를 따라 올라갔다.

생각하지 않았던 새로운 풍경을 만나게 되었으니 더 즐거웠으며 구불구불 이어지고 위험한 길을 따라서 올라가는데 매더 메모리얼 파크웨이 표지가 보이기에 왼쪽 길로 들어갔더니 난생 처음 들어보는

Mount Rainier 마운트 레이니어 국립공원이었다.


연료가 부족하여 안내소 할아버지께 주유소를 물었더니 410 번으로 18 마일 (약 29 km) 가면 하나 있는데 연료값이 무척 비싸다고 한다. 새로운 곳을 또 가보는 보너스가 생겨서 부지런히 실타래 길을 달려 도착하고 연료를 주입한 후 주인 아저씨와 이야기를 나누다 다시 안내소 입구로 왔다.






무척이나 높은 산길을 오르고 오르는데 산사태가 아름다웠고 난간도 없는 실타래 길을 계속 올라갔다.






white river (하얀 강) 이며 바람에 날리는 긴머리처럼 아름답게 흐르는 강이다. 






해발 2'000 미터가 넘는 주차장에 도착했는데 구름이 가득히 끼었으며 등반객들은 장비를 챙겨 산으로 떠나는 이 부지기 수였다. 가벼운 차림도 있으나 히말라야 등반대 수준의 장비를 메고 떠나는 프로 등반그룹도 많이 보였다.







기념품 가게 겸 식당 건물....






어떻게 할까 상황을 정리하다가 일단 차안에서 물을 끓여 신라면 빅볼 사발면을 하나 먹고 배낭과 삼각대를 메고 등반로를 올라갔으며 산을 못 보면 구름 속에서 싸우는 손오공 과 저팔계를 볼 수 있으니 손해가 없다는 편한 생각으로 올랐다.


(물을 부어 먹을 수 있는 컵라면 종류가 이렇게 유용한 줄 몰랐는데 이번 여행에서 너무나 편리했기에 앞으로 늘 가지고 다녀기로 했다.)







대물렌즈 망원경을 세우고 기다리는 할아버지와 이야기를 나누고 서있는데 산봉우리가 조금 보인다며 그나마 운이 좋은 날이라고 했다. 걷기 불편한 할아버지께 날씨는 하나님의 결정권으로 피조물인 사람은 불평을 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고 산길로 갔다. 






구름이 조금 걷힌 먼 곳에 산 정상이 나타났으며 해발 4'392 미터의 높고 큰 산이었으며 이곳은 콜로라도 보다 훨씬 추운 지역이어서 기온이 낮으며 눈이 무척 많이 쌓여 있었다.







하이킹이 목적이 아니므로 주차장이 보이는 고갯길에 서서 기다렸다.







라면을 먹은 후 말린 소고기를 먹으며 하염없이 기다렸는데 지나는 사람도 구름이 걷히기를 기다리느라 자꾸 뒤돌아 보며 올라가던 시간....







기다린 보람이 있어서 얼마 후 봉우리가 조금 보였고 빗방울도 떨어지는 날이라서 길을 떠나기로 했다. 알지 못했던 산이 덤으로 오게 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며 다음에 기회를 만들어 다시 오면 될 일이니 아쉬울 것도 없었다.







안내소에서 얻은 지도를 살피는데 실타래 처럼 구불거리고 우악스럽게 생겼을 길이 보이기에 남쪽으로 내려와 706 번 도로를 가기로 했는데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아름답고 험하고 위험한 길이었다.

이곳 일대 바위는 눈비를 맞으며 혹독한 추위에 만고풍상을 다 겪어서 바위의 결정이 옛 고구려 성벽 쐐기돌 모습처럼 생겼는데 Yakima 마을에서 이곳까지 산 졀벽에 가득하였다.






캄캄한 터널과 같은 숲길을 연속으로 자니다 그나마 작은 나무들이 서있어서 햇빛이 들어오는 곳에서 셔터를 누른게 이 정도다.







White 강의 유래는 이렇게 막걸리 색깔이어서 지어진 것으로 보였고 유타주와 아리조나주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보다 더욱 흰 쌀뜨물 색이었다. 이런 물은 입에 머금으면 작은 석회 입자가 입안에서 버석거리고 마실 수 없다. 옛 사람들이 커피를 폼으로 마신 것이 아니라 마시는 물의 질이 이래서 커피를 넣어 끓여 마셨다는 것을 기억하자.








주차장이 있어서 잠시 쉬려고 터널 앞에 멈추어 계곡을 살펴보던 시간이었는데 한무리 한국말 하는 사람들이 지나갔다.






자세히 들리지 않았으나 연변을 본거지로 사는 한국말 하는 여진족 (지금의 조선족) 말투 같았으며 남자는 열심히 설명하고 있었다. 한국말 하는 사람이 자주 보이는 것은 시애틀과 포틀랜드 큰 도시가 근처에 있기 때문이며 저들은 한국에서 온 사람일 수 있으나 차림새로 보아서는 여진족...


안내판을 살펴보는데 이번에는 두 동양 여인과 두 백인이 지나다가 그중 한 여인이 모자의 뱃지를 보고 놀라워하며 말을 걸기에 쏼라거리는데 계속 쏼라대던 여인이 혹시 한국인이냐고 묻기에 그렇다고 했다.


나는 (네 맞아요)

그녀는 (나는 아버지가 한국인이에요) 이렇게 한 후에 또다시 영어로 계속 이야기 하며 웃었다.


여인은 하와이 출생이며 부친은 박씨라고 했는데 부부는 지금 시애틀 근처에 산다고 했으며 한국말을 꽤 잘하는 편이었다. 그래도 영어가 되는 사람끼리 만났으니 영어가 짧고 편해서 계속 사용하였고 옆에 있던 여인은 한인이 아니며 두 여인 모두 백인이 남편이었다.


여인의 나이가 60 세 정도였고 부친이 박씨는 약 85 ~ 90 년 전에 하와이에 거주했던 사람이니 조선 후기에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 온 사람의 아들로 생각이 들었고 여인은 이민 3세로 생각 되었다.

둘이 재미있게 이야기를 하는데 나머지 세 사람이 멀뚱히 있기에 악수로 작별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는데 미국에 오래 산 사람은 절대 윗 사진의 네 여인과 같이 촌티 차림은 흉내도 내지 못한다.






무지막지 한 미국의 산악도로는 이렇게 위태로운 곳이 많다.







산위로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 706 번 도로의 클라이막스이며 난간은 기대할 수 없는 곳이다.






위에 올라서 한시름 놓고 아래를 바라보던 시간.....






한종류 색깔이 아니라 각종 기기묘묘한 바위가 아름다운 경치를 만든 곳이다.






이곳 마운트 레이니어 산 풍경도 만만치 않은 곳이었는데 숲이 너무 우거져 산세가 기괴하게 보이지 않은 것이 다를 뿐....







마운트 레이니어 외곽 길에 있는 Narada Falls (나레이다 폭포)로 내려갔는데 참 아름운 곳이었다.





빙하가 밀려 내려오면서 험하게 파인 산사태 흔적........







징그러울 정도로 많은 나무가 우거져 주변 풍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고 다만 나무만 보이던 곳이었다.






산골짜기를 감상하며 작은 Toledo 마을에 도착하였고 이곳 멕시칸 레스토란에서 음식을 주문했으며 가격은 27 달러였고 양이 너무 많았으나 끝까지 다 먹었다. 작은 마을에 널린 것이 빈터여서 레스토란 주차장에서 인터넷 연결이 되기에 글을 쓰다 잠이 들고 아침에 일어나 옛날부터 벼르던 곳으로 떠났다.







504 번 도로를 따라 산중으로 깊이 들어갔으며 한시간이 넘게 걸려 거의 가까이 왔으며 이번 여행의 서쪽 끝이다.






화산재가 엄청난 규모로 흘러내려 강을 이루고 있었으며......







한국에 있을 때부터 가기로 마음 먹었던 세인트 헬렌 화산에 드디어 찾아온 것이 오늘의 이야기다.


광주사태가 발생한 1980년 5월 18일 이곳 미국에서는 워싱턴 주 세인트 헬렌스 화산이 대폭발을 일으켰으며 당시 대단한 뉴스였는데 엄청난 폭발로 산의 위부분이 날아갔으며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은 곳이어서 언젠가 기회가 되면 이곳에 꼭 가보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37년이 흐른 지금 뒤늦게 이곳을 찾아오게 되었다.


백두산 보다 높은 해발 2'995 미터였으나 화산의 폭발로 윗부분 400 미터가 날아간 희대의 대폭발이었으며 당시 지구에 기상이변이 발생하여 빙하기를 초래할 수 있다는 헛소리를 요란하게 떠들던 기상학자들은 지금 세월이 오래 지나서 거의 죽었을 것으로 보인다. 뭐 틈만 있으면 방송을 타서 유명해지려는 것들이 어디 한둘이어야 말이지.... 






화산폭발이 있기 전의 헬렌스 산 사진이며....






화산이 폭발하여 화산재와 연기가 튀어 오르던 1980년 5월 18일 이후 사진이다.

당시 시애틀 공항과 포틀랜드 공항 등 마비가 되었고 근처 상공은 비행 금지구역으로 설정된 기억이 새롭다.







몇 곳의 휴계소가 있어서 쉬엄쉬엄 가던 시간 셔터를 눌렀다.







전망대에서 레인저가 열심히 상황을 설명하는 시간......







안내소 안에 있는 지형이며 산세가 이렇게 험한 곳이다.







햇살이 너무 강하여 렌즈 조절이 잘 안되었으나 이정도면 아쉬울 것이 없다.







이곳은 모두 세곳의 접근로가 있는데 그곳에 가려면 두 시간 가량 걸려서 이곳을 선택했으며 다음에 오게 된다면 화산 분출구가 가까운 산의 왼편 다른 곳으로 가서 산위에 오를 계획이다.

이번에는 12번 도로가 막히는 바람에 이곳으로 멀리 돌아오게 되었으나 거의 정면서 보는 행운이 있었으니 더욱 잘된 일이며 인생사 불평불만을 하지 않고 살면 늘 좋은 방향으로 이끌리게 된다.






화산의 가장 윗부분을 조절했는데 눈이 가득하였다.






화산재가 강을 이루어 흘러내리던 곳.......







그곳에도 세월이 흐르면서 잔솔이 자라기 시작하였고.......







전망이 좋은 위치로 다니면서 살펴보던 시간이며 아래로 내려오니 아직도 레인저가 여러 팀을 위해 수고하고 있었다.







먼거리를 달려왔으나 인생사 언젠가 이별이 있는 것이므로 헬렌 산과 헤어져야 했으며 아직도 살아있는 활화산이어서 시시각각 수증기가 피어 오르는 곳이었다. 저러다 열받으면 우르릉거리는 굉음을 내며 천지를 흔들면서 언젠가 다시 폭발할 것이다. 







옛날에 그렇게 높이 솟아있던 산이 수백미터 날아가 지금은 명소로 자리잡아 수많은 여행객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



산에 다니면 만나는 여행객이 자주 레인저냐는 질문을 한다. 아마 복장이 이렇고 심상치 않은 모자를 써서 그렇겠으나 난 레인저가 아닌 순수한 여행객인 것을 알아주었으면 좋겠다. 레인저는 주급을 받으면서 일하지만 나는 많은 재물을 투자해서 여행을 다니는 것이 다르다.








그때 화산 폭발로 부러진 거목의 그루터기......






전망대 ......






이제는 산기슭을 돌아 저 먼 곳으로 되돌아 가야 할 시간이 되어 몇번이고 아쉬움에 다시 돌아보던 헬렌...







그때는 젊으셨을 할아버지가 지금은 쓰러질 나이가 되었으며 조만간 옆에 쓰러진 나무처럼 누워야 할 시간이 멀지 않은 듯했다.





마지막 휴게소에서 이리저리 살펴보고 길을 떠나려는데....





선조로 부터 이곳에서 일어난 화산폭발의 이야기를 들어서 알고 있는지 모르지만 열매를 찾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예쁜 다람쥐 한마리가 있고 녀석은 쓰러진 나무에 서서 경계하며 곁눈질로 나와 눈을 맞추고 있었다.


오래전 석굴암에서 걸어 내려오면서 부르던 추억의 가곡이 생각나서 작은 목소리로 부르면서 녀석과 작별하고 길을 떠났다.


토함산 잦은 고개 올라보면 쪽빛동해 낙락한 장송등걸 다래넝쿨 휘감기고 다람쥐 자로 앞질러 발을 멎게 하여라...

한고비 또한고비 올라서면 넓은 한계 쓰러진 신라천년 꿈도서려 감도는가 막달아 아늑한 여기 굴이 하나 열렸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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