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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랜드 캐년 트레일

Tuba 마을에서 출발하여 그랜드 캐년을 향해 달렸으며 두시간을 달려서 그랜드 캐년으로 들어가는 입구의 Cameron 삼거리에 도착하였는데 수년 전에 비해 확연히 발전하여 모텔과 상가가 깨끗이 건축되어 오가는 이 발길을 붙잡고 주머니를 점차 가볍게 할 준비를 갖추었다. 


이곳을 2009 년 2월에 처음 왔었는데 그때는 재래식 판자 건물이 몇개 있을 뿐 나그네 발길을 끌만한 매리트가 없던 곳인데 지난 2014 년 7월에 왔을 때는 공사가 한창이었으며 지금에 다시 오니 그새 말끔하게 정돈되어 있었다. 







카메론 삼거리에서 그랜드 캐년까지 200 리 길을 주변을 구경하며 느린 속도로 도착하였다. 첨성대를 본따서 만든 듯한 입간판 구조물이 눈에 들어왔으며 이곳에 멈추었다. 






주차장에 도착하여 차를 세워놓고 안내센터에 들어가니 사람이 너무 많아서 지도를 얻지 못하고 밖으로 나와 대열을 따라 갔다. 태국에서 온듯한 비구니 단체가 왁자지껄 $%&^%(^)&_!@$#$ 엄청난 소음을 유발하며 여행을 왔는데 미국에 사는 중이 아니라 동남아에서 단체로 온것이 확실하고, 분명히 중국인 언어와 달랐는데 베트남 태국 라오스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이쪽 사람의 말투는 거의 비슷해서 알아듣지는 못하지만 구분이 되었다.   


미국에 오래살면 영어가 안 되어도 침착하고 조용한 말투가 타국에서 온 사람과 확연히 구분이 되는데 이들은 흡사 옛날 창경원에 놀러 온 시골 아이들처럼 들떠서 이리저리 기웃거리고 질서가 없었다. 저들은 카메라와 셀룰라폰을 꺼내들고 셔터를 누르며 추억 만들기에 돌입하였는데 속세로 나오면 수도자나 일반인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말로만 듣던 그랜드 캐년에 왔으니 그 설레임을 알만했다.






여느때와 달리 중국인 관광객의 인해전술이 보이지 않았으므로 Grand View 관망대는 모여든 사람은 숫자에 비해 무척 조용하고 서로를 배려하는 매너가 눈에 확연히 보였다,  






소피아와 이사벨에게 다녀오라고 한 후 군중을 보면서 중국인과 다른 민족의 차이가 매우 크다는 생각을 했는데 한국전에 참전하여 꽹과리를 두드리고 피리를 불어대며 야밤에 고지로 오르던 그 시끄러운 민족을 미국 각지의 명소에서 만나면 참으로 불편하였다. 


이사벨은 그들의 말소리에 사성 (네가지 음절의 높낮이), 즉 음의 높낮이가 있어서 그렇다고 하지만 옛날에 훌러싱에서 중국어를 석달을 배우며 느낀 것이 떠드는 것은 사성음의 높낮이 문제가 아니라 인격의 문제였으며 현대문명을 살아가기에 익숙치 않은 매너를 갖고 있어서 그렇고 대다수 중국인은 남을 의식하지 않고 마구 큰소리로 떠드는 유전인자를 타고나서 어쩔 수 없다. 


뉴욕시에서 어쩌다 7번 지하철을 타면 중국식 돗대기 시장이 열린듯이 정신을 차릴 수 없다. 옛날에 중국이 개방된 직후 한국에 가느라 아시아나 항공을 탔는데 대한항공보다 조금 싼 가격 때문인지 중국인이 (삼분의 이) 정도 되었고 귀를 막아도 들려오는 잡음으로 고통이 심했던 기억도 있다. 






언제 보아도 내게는 별 감동이 없는 그랜드 캐년인데 소피아는 웅장함에 매료되어 무척 좋아했다. 여행은 처음 방문할 때가 설레이며 두번 세번 오면 방문하는 숫자만큼이나 감흥은 빠른 속도로 줄어든다. 10 여마일 저 멀리 있는 North Rim 은 곧게 뻗은 소나무가 숲을 이루는데 이곳은 소나무도 많긴 하지만 북녘보다 못하고 척박한 환경에서 끈질긴 생명력으로 자라는 향나무가 주종이다. 


이곳이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척박한 토질에 넓고 깊은 계곡만이 한눈에 보이는 곳이라서 그렇다. 세계제일의 국립공원이라는 수식어가 붙지만 직접 눈으로 보는 비쥬얼은 옐로스톤, 글래시어, 요세미티, 브라이스, 캐년 랜드에 비하여 현격한 차이를 보인다. 그저 유명세를 따라서 초보 여행자가 이곳에 오지만 연륜이 있는 여행자는 유타주로 눈길과 발길을 돌리는 것이 정상이다. 


자이언 캐년은 이곳 그랜드 캐년과는 면적 규모가 훨씬 작지만 연간 방문객 숫자는 거의 비슷하다. 자이언 캐년 연간 방문객이 약 500 만명이고 그랜드 캐년은 약 600 만명인데, 이뤄질 수 없는 가정이지만 만약에 자이언 캐년과 그랜드 캐년 사이에 (글래시어 국립공원) 있다면 글래시어는 당장 연 방문객 1'000 만명이 넘을 수 있다.


내년 여름에 소피아와 이사벨이 산악회 멤버들과 그곳에 1주 예정으로 가기로 했으며 두 자매는 일주일을 더 머물면서 캐나다쪽 글래시어 팍까지 골고루 하이킹을 할 예정이므로 그때 보면 안다.

미국에서 옐로스톤 국립공원을 제외한 단 한곳을 선택하라면 나의 선택은 언제나 글래시어 국립공원이다.  







오랜만에 와서 방향감각을 잃어 원래 그랜드 캐년 빌리지 주차장에 가야했으나 착각해서 이곳 휴계소로 왔으므로 약 4 마일을 걸어서 빌리지에 있는 절벽길을 가기로 했다.


거리가 무척 먼 절벽에 두 남녀가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위험한 짓을 하고 있어 발길을 멈추었다. 






삼각대를 고정하고 줌을 조절하였는데 여자아이가 앉은채로 조금씩 몸을 움직여 절벽 끝으로 가고 있었고 사내는 카메라를 들고 기념사진을 찍을 자세였다. 






계속 지켜보니 기어코 절벽끝까지 가서 다리를 뻗고 두팔을 넓게하고 증면사진을 찍었다. 몇번 동작을 바꾸는데 저런 무모한 짓으로 인해 목숨을 잃는 사람이 부지기수이며 몇년 전 캐나다 나이아가라 폭포의 난간에 앉아 기념사진을 찍던 일본서 온 19세 여자 아이가 뒤로 넘어지며 50 미터 폭포 아래로 추락하여 죽어 언론에 발표되었다. 


얼마 전 한국인이 영국 어느 절벽에서 기념사진을 찍으며 점프하다가 절벽아래로 추락하여 죽었는데 나이 20세 중반이 되도록 살다가 그까짓 추억의 사진을 만들려다 비명횡사 할 일이 뭐냐는 것이다, 유명한 곳 절벽에서 독특한 기념사진을 만들겠다는 집념은 가상하지만 목숨과 바꿀 정도는 아니다.  


1987년도에 캐나다 고공낙하팀이 단체로 비행기에서 뛰어내렸고 그들의 묘기를 촬영하는 카메라맨은 헬멧에 카메라를 부착하고 함께 뛰어내려 갖가지 묘기를 촬영하였는데 얼마 후 낙하산을 펴야할 곳에 이르러 낙하팀 모두가 낙하산을 펴고 내려오는데, 800 회 점프경력의 카메라맨이 깜빡하고 낙하산을 메지 않고 뛰어내린 때문에 추락하여 죽고 말았는데 당시 이 사건이 대서특필되어 경종을 울린 적이 있다. 이렇듯이 생사는 찰나의 차이라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절벽길을 따라 빌리지로 가는 길에 그랜드 캐년의 생성연대를 알려주는 표지판과 표석이 바닥에 줄지어 있었다. 기념비는 여러종류 돌을 연마하여 붙인 것이지만 그랜드 캐년의 단면을 형상화 하여 각 지층과 높이를 나타내었고 계곡이 파여서 형성된 지층별로 연대를 기록하여 걷는 길에 표식을 만든어 박아 놓았다. 돌탑의 오른편 위부분은 Mesa를 나타낸 것이고 아래 V 자로 파인 깊은 곳은 그랜드 캐년을 깍아내리는 콜로라도 강을 뜻한 것이다. 






두 자매와 걸으며 셔터를 누르고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머리는 태고의 지질역사 페이지를 빠르게 넘기며 계산하고 있던 시간이다. 붉은 돌은 2억 8'000 만년 전 형성되었다는 기록이 있는데 빙하와 강물이 Mesa 를 흐르며 계곡을 만들면서 2억 8천만년 전 이미 깍여나간 절벽서 캐어 표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지구의 나이가 수십억년으로 볼 때 거의 모든 암석과 흙의 연대가 그 정도지만 지질학적으로는 화산과 지층의 작용으로 생성연대가 별도로 계산된다.


그러나 천지가 창조되어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오는 우주의 역사를 누가 명확히 알 수 있겠으며 그 모든 의문의 정답은 창조주 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먼길을 걷느라 힘은 들었지만 새로운 즐거움이 있었고 먼 곳 절벽 코너로 이어져 내려간 계단식 하이킹 루트까지 가는 시간이다. 







처음에 저곳으로 도착해야 할 것을 착오로 걷기운동을 하는 시간이다. 






계곡의 중요한 포인트를 보는 곳에는 파이프로 만든 조준경이 세워져 있어서 눈을 대면 목표가 보이고 판에 적은 설명문을 이해하면 된다.






도중에 관광객 등살에 말라죽었을 가능성이 많은 나무가 있어 걸음을 멈추었다. 

수많은 사람이 오르고 내려서 광을 낸 대머리 보다도 더욱 반들거리는 나무에 이사벨이 먼저 올랐다.






소피아는 좀 더 높은 곳까지 올랐는데 도움이 없이도 꽤 잘 올라갔으며 이 모습을 본 지나던 사람들이 이곳서 기념사진을 찍으려고 줄을 서기 시작했다. 






계곡으로 내려가는 관문에 도착하였으며 ....






자매는 내려가고 나는 근처에 남아서 말린 소고기를 먹으며 기다리기로 했다. 






절벽에 있는 표지판 강철 기둥에 의지해서 안전하게 절벽 아래를 감상하던 시간...






걷는 은사가 있는 자매는 한없이 아래로 내려가고...






전 구간에 난간이 없어 위태로운 절벽길 가장자리로 붙은 여행객이 기념사진에 몰두하였다. 






조금이라도 호기를 부리면 즉시 절벽으로 직하하여 저승사자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얼마 후 헬리콥터 소리가 들리고 달팽이처럼 한바퀴 크게 돌아 계곡으로 꽂히듯 내려오는 것이다. 






얼마 후 한명의 레인저가 길을 비키라고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달려갔고 뒤이어 공원국 경찰이 무장한 상태로 절벽길을 따라 마구 뛰어가는데 이곳 근무자 모두의 등에는 카멜백 (식수를 담은 배낭)이 있다.





헬리콥터가 급히 내렸고 레인저와 경찰 여러명이 황급히 달리는 것으로 보아 누가 절벽에서 추락했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한참 후 자매가 돌아왔으며 헬리콥터가 내린 곳에서 되돌아 왔는데 68세 남자가 심장마비로 쓰러져 구조하는 것이라 했다. 






그런 와중에도 오르내리는 사람이 많고 하루 이틀씩 콜로라도 강 캠프에서 야영을 하고 올라오는 철인들이 많았다. 이곳을 8시간 내려가야 바닥에 이르며 다시 오르려면 15시간을 걸어야 하는 매우 힘든 곳으로 하이킹 매니아 꿈의 트레일이며 고난의 길이기도 하다.


일정 거리를 짧게 다녀오는 사람은 가벼운 차림이지만 절벽 아래서 야영하려고 오르내리는 사람은 등짐이 크고 먼지를 뒤집어 쓴 무장공비 차림에서 확연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공원을 돌아다니며 자리를 찾아 음식을 차렸는데 마지막 하나 남은 포장된 즉석 된장찌개를 끓였고 뉴욕서 만들어 온 반찬과 함께 즐거운 식사시간이 되었다. 이제 이틀 후 작별하여 그들은 뉴욕으로 돌아가야하고 나는 정해지지 않은 대륙의 어느 곳으로 발길을 옮겨야 한다. 






64 번 도로를 따라 40번 고속도로에 이르렀고 이미 날은 저물며 석양빛 노을이 붉게 물드는 서쪽을 향해 빠르게 달렸다. 내일은 자매가 꼭 가고싶어 하는 곳이 있어서 오늘의 목적지는 Kingman 마을로 정했으며 밤길 운전을 거의 하지 않지만 이번에는 평균속도를 130 km ~ 160 km 의 엄청난 속도로 달렸다.


이곳 고속도로는 속도제한이 시속 125 km 라서 매복한 경찰이 아예 없으며 차량도 뜸하고 사막의 곧은 길이라서 야생동물이 많지 않은 지역이라 큰 문제가 아니었다. 평소에는 제한속도보다 5 마일 느리게 다니지만 킹맨 마을에서 모텔을 찾으려면 서두를 필요가 있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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