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살면서 순간순간 소중하지 않은 시간이 없고 눈에 보이는 사물 가운데 아름답지 않은 것이 없다. 속세에는 갖가지 중상모략과 권모술수가 난무하지만 자연은 어떠한 불의와도 타협하지 않고 지켜보고만 있다.
고금동서에 천년 만년을 살것처럼 호기를 부리던 자도, 세상의 권세를 한손에 쥔것처럼 호기를 부리던 자도, 스스로를 무소불위의 권력자로 착각하는 자도, 피었다가 스러지는 꽃잎처럼 잠시 세상에 머물 뿐이며 위대한 대자연은 억만년 세월을 지켜보며 순간순간 속절없이 사라져가는 가소로운 인생들의 뻘짓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다.
모하브 사막에서 북으로 달리어 사막 가운데 있는 Tecopa 마을에 들어갔다. 이제 하루 후 그동안 함께했던 귀한 날은 추억으로 남기고 자매는 뉴욕시로 가야하고 나는 사방천지에 흩어져 있는 대륙의 오만 곳 대자연 속으로 자유롭게 떠나가야 할 시간이 가까웠다.
세계 초강대국이며 인류역사상 가장 화려한 문명의 꽃을 피우는 미국의 저변을 이해하지 못하고 황금의 땅이며 기회의 땅으로만 착각하는 이가 많다. 대륙의 곳곳을 샅샅이 살펴보면 수백 수천년 전 조상의 삶이 그대로 계승되고 별로 꾸미지 않은 소박한 삶의 자취를 만난다.
여행기록에 이따금씩 쓰는 이야기는 서구인의 역사보존 정신과 옛것을 뜯어 시멘트로 발라버리지 않고 조상의 숨결이 스며있는 것을 원형은 그대로 두고 조금씩 수리해서 자손 대대로 물려가며 전통을 이어가는 것이다. 위 공간은 이곳 테코파 온천의 실내이며 이곳에는 모두 세곳의 온천 리조트가 있는데 그 가운데는 조금 더 현대식으로 개조한 것도 있겠으나 이곳 대중 온천과 자매가 묵는 리조트 모텔은 이러한 분위기다.
만약 한국서 막 도착한 사람을 이런 곳에 데리고 간다면 한국과 비교해서 (이렇게 그지같은 곳이 어쩌고 저쩌고 말이 많겠지만) 이들은 처음 건설하면 완전히 낡아서 사용하지 못할 때까지 쓰다가 그때 가서야 다시 고치고 또 고치기를 반복하면서 원형을 버리지 않는 보존정신의 유전인자를 갖고 태어나는 국민이다.
돈이 없어서 새로 짓지 않는 것이 아니라 조상이 물려주었고 사용하는데 문제가 없으니 구태어 새로 지을 일이 없어서 골동품처럼 대물림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미국은 아파트를 세입자에게 렌트를 할 때 냉장고와 부엌설비가 법적으로 갖추어져 있어야 하는데 뉴욕시 렌트 아파트에 비치된 냉장고는 보통 칠팔십년 또는 그 이상 된 것이 대부분이지만 지금도 문제 없이 사용하고 있다. 엘리베이터도 칠팔십년이면 새것에 속하고 백년 이상 된 것이지만 일부러 새것으로 교체하지 않으며 문고리 하나까지 옛것을 더 소중히 생각하고 잘 사용하는 민족이다.
자매를 모텔 리조트에 데려다 주고 이곳에 와서 9달러 입장료를 주고 목욕을 했는데 샤워꼭지는 낡아서 잠기지 않으니 매어단 철사 옷걸이로 고리를 걸어서 물을 여닫게 했으며 원체 옛것을 좋아하는 내게는 더없이 편안하고 아늑한 분위기여서 좋았다.
LA 인근 오렌지 카운티에서 온 70 세 한인 아저씨를 이곳에서 만났으며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근처에 한인이 약 1500 여명 살았는데 지금은 타지로 이주하고 후손들도 떠나서 그리 많지 않다고 했다. 그래서 이곳에는 대중목욕탕 문화에 익숙한 한인이 많이 찾기 때문에 영어와 한국어 두가지로 안내문을 써놓은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 옛부터 산을 타는 민족이고 대중 목욕탕에서 너와 나 계급이 없이 어울리던 대한민족이다.
온천은 시간당 22'000 리터 물이 나오는데 평균 온도는 화씨 104 도 (섭씨 37 도)이며 내부는 벽 아래서 물이 쏟아져 서서 허리가 잠기는 깊이에 벽 가장자리에 굵은 파이프가 둘러 있어서 서양인은 잠깐 앉았다가 일어서 파이프를 잡고 대화를 즐기는 타입이다. 한국처럼 앉아서 목욕하는 문화가 없고 뭐든지 서는데 익숙한 민족이라서 온천도 서서 하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
숲이라고는 보이지 않는 사막 한가운데에 있는 온천지대에는 RV 주차장이 무척 많은데 하루씩 들리는 이보다는 따듯한 이곳에서 며칠씩 또는 장기적으로 묵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래서 온천도 하루, 일주일, 한달, 이렇게 입장권을 구입하게 되어 있었다.
혼자서 주변을 다녀보니 모두 이런 삭막한 풍경이었고 흡사 중동과 아프리카 사막의 오아시스를 연상케 하는 모습이었다.
마을 입구에는 습지대가 있어서 풀이 자라고 작은 새의 터전이 되었는데 황홀할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곳곳에는 오아시스 분위기를 만들려고 인위적으로 야자수를 심어 운치가 있었으며 ...
자매가 묵을 리조트 모텔 사무실에는 이런 안내문이 있었는데 이곳 온천에서는 대중목욕탕의 민족 한인 교포의 위상을 느낄 수 있었다. 미국에서 이정도로 한국인 위치가 격상된 곳은 태권도장이 선두 주자이며 이곳이 그 뒤를 잇는 듯했다.
뉴욕시 등 미국 곳곳에 있는 초대형 한인 찜질방에 써붙인 한글 안내문은 걸작 중 걸작으로 (제발 수건 등 비품을 가져가지 말라)고 호소하는 것인데 수건과 치솔을 가져가는 것을 넘어서 나무 베게까지 훔쳐가는 여인이 많다. 남자는 사우나에 놔두고 가는 것은 있어도 도둑질을 하지 않기 때문에 수건, 옷, 면도기, 칫솔이 쌓여있지만 여자는 보면 (훔쳐가는 은사)가 있어서 입장할 때 아예 하나씩 갖고 들어가도록 해놓았다.
그렇게 해도 귀신이 탄복할 솜씨로 나무벼게와 옷과 수건을 훔쳐간다고 황당해 하던 주인 아저씨의 말에 엄청 웃은 때가 있었다.
미국의 온천은 각자의 비품을 갖고 들어가야 하며 어떤 곳은 수건을 3달러에 빌려주는 곳도 있다. 자매가 묵는 모텔은 가운데에 온천이 세개 있으며 시설은 옛것 그대로 이며 무료로 사용할 수 있으나 아예 다른 온천으로 가서 편하게 물속에서 놀았다.
주변을 둘러보는 시간이었고 비포장 곳곳을 다니며 이들 휴양지 일상을 살피던 한가한 오후...
음악회가 열리는 무대이며 이들은 각자 편한 곳에 앉아서 관람하는데 시골의 음악회는 소먹이 사료를 의자 대용과 분위기 장식물로 많이 놓아두어 의자로 사용해도 된다.
서양인의 취향은 이런 곳에 번들거리는 새건물을 지으면 오히려 거부반응이 많고 주변환경과 알맞게 섞이는 허름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민족이다.
여기저기 다녀보아도 온통 모래흙이며 유료 RV 팍에서 잘 필요가 없어서 모텔 앞 넓고도 넓은 빈터에 차를 세우고 잠들기로 했다.
주변 몇마일 안에 드물게 몇채의 집으로 구성된 마을이 있어서 소방대와 응급구조대가 이곳에 있었는데 구급요원을 제외하고는 풀타임 업무 아닌 자원봉사 체재로 보면 맞는다. 즉 각자 생업에 종사하다가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즉각 출동하는 자원봉사제도....
소방차 옆에 수백평 넓은 빈터가 있어 그곳이 오늘 나의 캠프장이 되었다.
해가 완전히 넘어갈 때까지 곳곳을 다니며 살펴보던 시간...
어려서 아프리카와 중동 사막을 다니는 상인이 등장하는 영화를 많이 보았는데 소설과 영화에서는 매우 낭만적으로 각색하지만 모래흙을 밟고 무역을 다니는 그들의 실제 삶은 고달픔의 연속이었고 황막한 사막에 드물게 있는 오아시스 숙영지에 들러 며칠씩 머물다 떠나는 외롭고 고달픈 생활이 떠올랐다.
사하라 사막을 다니는 베드윈 부족 (리비아 독재자 가다피가 속한 부족)은 곡식가루와 양고기를 갖고 다니다 가루는 반죽하여 묻고 고기는 그대로 고운 모래속에 파묻고 잔가지를 주워 모래위에 모닥불을 피워 익히는데 그것을 꺼내어 모래를 탈탈 털어서 영양을 보충하였고 그릇을 닦는 것도 고운 모래에 문지르고 몸을 씻을 때도 고운 모래로 온몸을 문질러 닦는 것이 그들의 일상적 목욕 문화다. 여행을 하면서 곳곳에 이르는 때에 자매들에게 분위기에 맞는 이야기를 조금씩 들려주었다.
이제는 이번 여행의 마지막 행선지를 향하여 떠나야 하고 살아서 다시 오게될지 보증이 안되는 곳에서 추억을 만드는 자매들...
운전을 하면서 지나고 다가오는 풍경을 3D처럼 머리속에 그리다가 풍경의 조화가 알맞는 곳에 차를 세우고 앞뒤 풍경을 살펴서 분위기 파악을 한 후에 내려서 풍경도 보고 기념사진을 만들기도 하는 여행이다.
드넓은 대자연을 작은 카메라에 모두 담을 수 없지만 작은 부분의 특징 정도는 사진으로 나타낼 수 있으니 그나마 다행스런 일이다.
가는 곳마다 기기묘묘하고 신묘막측하며 장구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이런 모습으로 바뀐 과정을 머리속으로 늘 그려보지만 나의 작은 두뇌로 어찌 억만년 세월을 모두 이해할 수 있을까...
혼자의 여행이었으면 낡은 온천에서 하루 더 지냈을 것이고 지나는 곳곳에 멈추어 세상만사 오래도록 살펴보았을텐데 이번에는 동행자가 있어 주로 머리속 생각으로 맴돌며 별로 말하지 않았다.
나의 느낌이 남에게는 무관심 사항일 수 있고 사색하는 것 보다는 걷는 취향을 가진 듯한 여인에게 나의 견해를 자주 말하는 것은 남의 식성에 나의 식성을 강요하는 것과 같은 것이라 필요한 것 외에는 말하지 않는다.
뉴욕시에 많은 내 이웃의 취미가 소주 마시고 수다떨기와 카지노 출입자이며 원초적 본능의 발달로 (후리기) 하는 이야기를 모임에서 자랑스레 하지만 그런 이야기가 그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낙일 수 있으나 취향이 전혀 다른 내게는 듣기 거북하고 (강아지 부모님이 짖는 소리)로 들려서 별로 말을 섞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만난지 며칠뿐인 자매에게 나의 견해를 강요하지 않으며 가정이 있는 자매라서 매사에 말과 행동을 가려서 대하던 시간이다.
다가오는 모래언덕...
그 모래언덕을 뚫고 지나듯이 달리며...
다가오고 지나는 아름다운 사막의 풍경의 아름다움에 환호하면서 우리는 그렇게 북진을 하였다.
캐톨릭 교인인 소피아는 사막에 홀로 선 성당을 보고 감격하고...
오늘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에 오아시스 Shoshone 쇼손 마을에 도착하였다. Shoshone 은 대륙의 서북부에 널리 퍼져 살던 인디언 부족이며 주무대는 와이오밍 주 옐로우스톤 인근에서 아이다호 주 동부와 유타 주 북부지만 이곳 남부에 쇼손 부족의 지명이 있어서 의아했다.
콜로라도 남부, 뉴멕시코, 아리조나, 등에 퍼져살던 대규모 부족은 푸에블로 부족이었는데 그들은나바호 부족에 동화되고 소멸되어 지금은 군소 부족이 되었으나 수많은 부족의 조상으로 인정되며 한반도 고려시대 말기 즈음에 이곳에 유입된 호전적 유목족 나바호 부족의 영향력이 강대해져 서부의 수많은 원주민 부족은 동화되거나 곳곳의 작은 영토에서 씨족처럼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지난 9월에 아파치 부족의 고향 방문 때에 아파치 부족의 역사를 간략히 소개하였는데 헐리웃 영화속에는 엄청나게 포악하고 강대한 부족으로 묘사되었으나 아파치 부족은 구성인원도 작고 백인들에게는 매력이 없는 땅 서남부 황야에서 살았으므로 충돌이 거의 없던 부족이었다. 그러나 부족의 특이한 억양의 (아파치) 호칭 때문에 서부영화에서 각광을 받은 것으로 보였다.
치카소, 촉토, 세미놀, 쇼니, 모홍크, 애디론댁, 호피, 쇼손, 등 부족의 이름은 언어가 다른 한국인이 들어도 폐부를 찌르는 강렬함이 없으나 (아파치, 체로키, 샤이안, 코만치) 이런 부족의 이름은 뜻과는 상관없이 억양 때문에 강인한 인상을 보이는 이름이다.
즉 용맹한 아파치 용사, 잔인한 코만치 용사 이렇게 부르는 것은 어감 때문에 어울리지만 "용맹한 쇼니 용사, 잔인한 쇼손 용사" 이렇게 표현하면 마음에 와닿지 않는다는 뜻이다. 용맹한 해병대와 도시락을 들고 덜그럭 거리며 다니던 방위군 호칭의 강약이 느껴지는 것과 같은 이치다.
이곳은 마을이라기 보다는 서부시대 때에 사막을 거쳐가던 나그네가 쉬어가던 정류장 같은 곳으로 식당과 숙소가 있고 거주민은 극소수에 불과한 곳이다.
나그네 왕래가 많고 주변의 구심점이 되는 마을이라 우체국은 있다.
이곳 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떠나기로 했다.
마당에 자연스레 널려놓은 소품의 배치가 가히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다.
한편에는 삼사십년대 식 주유소가 골동품으로 남아 있었고 ....
식당안 풍경은 매우 정갈했으며 젊고 아리따운 아가씨는 친절하고 매우 격조있는 언어로 나그네를 맞이하였다. 이사벨의 의견은 이곳에서 있기에는 아까운 아가씨라 하였는데 한시적으로 학비를 마련하기 위함 아니면 주인집 가족으로 보였다.
밖으로 나가서 샅샅이 훑어보고 분위기를 파악해 놓고 안으로 들어왔는데 쇼숀빌리지 이름이 적힌 판자건물은 음악회를 하는 무대로 만들어진 것이고 그 앞에는 관객이 춤을 추도록 장소를 마련해 놓았다.
모자를 벗으면 원주민 부족으로 착각할 수 있는 자매지만 인디언 부족이 보면 아시아 사람인줄 단번에 안다. 어쩌다 먹는 나의 아침음식은 언제나 달걀후라이 2개, 베이컨, 감자튀김, 토스트다.
이제 이곳을 떠나 마지막 한 곳을 답사하면 밤비행기를 타고 뉴욕시로 돌아가야 하는 이사벨이며 소피아는 아들과 함께 라스베가스에 머물며 골프장을 다닐 계획이다. 처음 몇날은 여행기록을 쓰지 못하여 이후 매일 부지런히 써내려가는데도 조금씩 지난 이야기가 되었으나 끝날 날이 가깝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