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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고장 산타페 and 아파치 부족의 최후

미대륙의 탐사여행 역사 이야기.

며칠 전 아이폰 화면에 brunch 란 것이 있기에 먹을 것으로 생각하고 눌러봤더니 글을 저장하는 곳이어서 황당했지만 기능을 하나씩 익히는 중이다. 원래 있던 daum blog 규격에 맞추어 쓴 사진과 글을 복사해 왔더니 이곳에서 불균형하게 보인다. 

하지만 전체를 고칠 수 없으므로 모두 그대로 사용하고 우선 2016 년 3월 ~ 6월까지 3개월 장거리 자동차 탐사여행 34'000 km를 먼저 옮기고 430'000 km를 다닌 나머지 수백 편도 가져올 것이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 대륙의 장거리 탐사여행에 사용한 차는 렉서스 LS 400으로 시작하여 두 번째 지프도 사망하였고 세 번째는 5300 cc 엔진 Chevy 여행용 VAN이 고생하고 있다. 어느 한인이 한국에서는 연예인 밴이라 부른다고 알려주는데 미국에는 흔한 여행용 차일뿐이다.


2016년 3월 여행 이야기.


전편에는 일반인이 알기 어려운 미대륙의 옛 역사를 간략하게 설명하였다. 산타페 2편을 쓰면서 북미대륙에 속하는 미국과 중미의 멕시코 남미의 콜럼비아 페루 등 많은 국가들이 비슷한 시기에 유럽인이 건너와 점령하고 문화를 들여왔으나 교육 경제 금융 군사 농업 산업 등 모든 부문에 현격한 차이가 나는 근본적 원인은 무엇이었는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의 역사관은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역사와 달리 역사학계는 고사하고 일반인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며 세상 사람들은 나를 알지도 못하고 나의 역설에 관심도 없지만 역사에 대해서 기존의 역사학자에게 절대 기죽을 일도 없고 남들이 알아주지 않는다 해서 전혀 슬퍼하지도 않는다.  


승자의 편에서 꾸며진 허구의 역사가 정통 역사로 인정을 받는 세상이지만 나는 이권에 눈멀고 권력에 빌붙어 살 일이 없으며 기득권층으로부터 연구비와 생활비를 받아 편파적으로 역사를 왜곡하면서 비굴하게 사는 사이비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권력자의 입맛에 맞추어 쓴 기존의 사이비 역사를 비판할 수 있고 기업가의 앞잡이로 살아가는 정치인과 법조계 인물로 이뤄진 기득권층의 패악질에 대해 양심적으로 자유롭게 말할 수 있다.  


  


일반인 만명을 대상으로 하면 그중 한 두 명 정도가 미국 대륙의 역사를 어느 정도 이해할 지식이 갖추어졌을 정도로 보면 되는데 400여 년에 불과한 짧은 미국의 역사지만 미국이 합중국으로 탄생하기 까지는 수많은 사연이 있으며 재앙적 희생이 건국과 산업발전의 바탕이 되었다.  


나는 유전적으로 청록색 색맹이기 때문에 색에 대해 정확한 표현하기 어려우나 오른편 17개 주는 처음에 13개 주로 시작된 독립전쟁 이후 미국의 영토이며 메인주부터 조지아주까지 애팔라치안 산맥을 뼈대로 이어졌다. 

오른편 아래 검은 점으로 표시된 곳은 지금의 훌로리다주이며 이곳은 1513년 스페인 이민자가 도착한 곳이다. 

1607년 버지니아주 제임스 타운에 최초의 영국 식민 회사의 인원이 도착하여 모두 실종되어 역사에서 사라졌으며 13년 후 1620년 매사추세츠주 프리머스에 유럽에서 캐톨릭의 살륙을 피해 참된 신앙생활을 하려고 이주한 청교도의 존재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들을 이상한 사람들로 치부하는 한인 기독교인이 많지만 개신교인은 청교도를 닮아야 하는 것이다. 


청교도는 정통 개신교 인이며 (한국에 전파된 후 토착 무속신앙과 뒤섞여 변질된 한국의 변태적 개신교는 청교도의 순수성과 비교할 수 없고 비교대상도 될 수 없다. 물론 순수 개신교인도 많지만 예수의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주식회사로 변한 기업형 교회와 친목 단체화 한 교회가 널렸음을 부정할 수 없다. 


미국에도 변형된 기독교 종파가 있지만 무속신앙의 뿌리가 깊은 한국에는 박태선 신앙촌, S천지, 금Soo원 등 작두 타는 무당이 울고 갈 정도로 예수를 팔아먹는 사이비가 많으며 하나님을 팔아 부정 축재하여 재벌의 반열에 오른 늙은 조 먹사 김 먹사 등이 있으며 과거 새 마음 봉사단 총재였던 사이비교주 최태민 (정윤회 장인) 등 사기꾼이 판치는 개신교계를 순수 신앙인 청교도에 비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미국 역사에 최초의 이주자로 기록된 1607년 영국인 이민자보다 100여 년을 먼저 미국 대륙에 건너와 개척민으로 살던 스페인 이주자가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의 훌로리다주가 미국의 건국 시기에 스페인 영토였므로 미국 초기 역사로 인정받지 못하지만 대륙 전체의 역사로 보면 백 년을 앞선 역사가 있는 곳이다. 

왼편의 하얀 점이 있는 부분이 산타페 (1582년에 산미구엘 성당이 건설된 곳)이며 파란색 점은 달라스이고 빨간 점은 샌 안토니오 (1836년 알라모 요새의 혈투) 가 벌어진 곳이다. 


왼편 위의 노란색 점은 지금의 워싱턴주 시애틀과 오레곤주가 포함된 Oregon Territory로 불리는 지역이었으며 스페인과 독립 멕시코 영향력이 미치지 못했던 빈 땅 (원주민 부족의 거주지) 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미대륙은 아메리카 원주민 (인디언) 땅이라고 알고 있으나 역사에 인정이 되려면 행정구역과 문자 기록이 있어야 하는데 이들 원주민에게는 국가로 인정할 근거가 전혀 없는 자연인의 존재였으므로 엄격히 보면 아메리카 원주민의 땅이라고 인정할 수 없는 무주공산 (주인 없는 빈산) 이었다.  


고구려가 요동성 전체를 정벌해서 영토로 삼기 전에 그곳에 원주민들이 자연인 형태로 살았으나 국가 형태가 없는 지역을 점령해서 고구려 성을 쌓고 행정관청과 역사기록과 유물 유적이 충분하고 세계 역사학계에 대한민국이 고구려 후손으로 인정되므로 조상님 직계 후손인 우리 땅이 맞지만 미국의 원주민은 자신의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희박하다.   


 1845년까지  Texas 텍사스는 별도의 공화국으로 존재하였으며 이후 미국에 합병된 곳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오른편 밝은 색 전체가 미국의 영토가 아니었으며 미합중국에 가입한 주와 Territories "영역들"이 합쳐진 곳이다. 조선에서는 1849년 강화도령 이원범이가 왕위에 올랐던 그 시절 대륙의 서부는 완전한 미합중국 영토가 아니었고 유럽과 미동부에서 서부로 금을 캐러 몰려가던 역마차 행렬이 줄을 잇던 시기였다.


미국을 쉽게 이해하려면 기존의 역사대로 동부지역에서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13개 주 만을 놓고 보는 것이 가장 쉽고 일반적 역사가 된다. 그러나 깊이 있게 살피려면 조선왕조 연산군 시절로 올라가서 비교해야 하는데 미국의 정통 역사를 기존의 역사관으로 바라보면 오류와 헛점이 생긴다는 뜻이니 오해가 없어야 한다. 


이곳 산타페는 엄연히 1610년 시작된 행정기록이 있는데 228 년 지나서 생긴 텍사스 공화국 뒤의 서열이 되는 것은 부당하다는 나의 견해다. 동부에서 점차 영역을 넓히며 서부로 향한 주류문화에 흡수된 산타페지만 미국 역사의 가장 윗부분에 있어야 하고 널리 알려져야 한다. 


때가 되면 미국 대륙의 커다란 전체 지도를 놓고 미국의 역사를 누구나 알기 쉽게 설명하는 동영상을 만들어 유투브에 올릴 생각이다.  (지능지수 두 자리 숫자의 돌대굴빡도 미국의 역사를 단번에 이해할 수 있도록 해설하는 나만의 방법이 있다.) 




전편과 마찬가지로 역사의 고장 산타페에는 흙으로 지어진 집이 도심에 가득하고 멕시칸의 전통이 고스란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   




저 멀리 또 다른 성당이 있는데 교회 앞에는 인디언 여인의 동상이 서있다. 그녀는 성인의 반열에 오른 여인으로 추앙받는 인물이었다.   




Old Santa Fe 시내 가운데 공원이 있으며 이곳은 멕시코 시골마을에 있는 중앙공원의 전통과 같음을 알 수 있었다. 이곳을 중심점으로 아메리카 원주민의 노점상이 있고 식당과 기념품상 박물관 호텔 카페테리아 등 모든 곳을 살펴볼 수 있는 곳이다.   


 


공원의 크기는 대략 가로 세로 육칠십 미터 정도 되겠으며 도심의 휴식처로 알맞은 곳이다.   




산타페에 거주하는 주민은 이곳에 별로 올 일이 없을 것이고 모두 관광객으로 보면 맞는다.   




하루에 돌아보기는 부족하고 이삼일 머물러야 할 곳으로 천천히 눈과 입을 즐겁게 하면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며 사색에 잠겨보는 것이 좋겠다.   




주차공간이 부족해서 멀리 차를 세워두고 걸어서 왔지만 그리 멀지 않은 곳이며 공원에는 즉석에서 탈 수 있는 작은 규모의 시내 관광버스가 있으므로 이용하면 된다. 또한 근처 산속을 다니는 관광버스도 있어 걸어서 다니기 힘든 사람은 참고하면 된다.   




공원 옆에는 아메리카 인디언 노점상이 주루룩 앉아서 장신구를 판매한다.   




어느 특정한 것을 정하지 않고 걷기만 하면 되는 전체가 역사유적지화 된 곳이다.   


 


위에는 미국 원주민 행상을 위한 주정부 차원에서 제공한 곳이라는 글귀가 써있다.   




두 명의 뚱뚱한 인디언이 다가와 말을 걸기에 이야기를 나누는데 영어가 너무 서툰 사람이어서 의외였으며 푸에블로 인디언과 다른 한 명은 나바호 인디언이었다. 그들이 먼전 꺼낸 이야기여서 그동안 다녔던 인디언 보호구역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유타주와 아리조나주 정도의 인디언 구역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첫인상에도 술고래가 분명하였고 먹는 것을 탐하여 배는 불렀으나 커다란 머리의 외관에 비해 두뇌 속 지식의 세계가 너무 빈약한 사람이므로 대화를 별로 할 수 없었다. 내 인생 경험에 의하면 뚱보는 머리 총명한 사람이 없고 욕심과 심술이 많아서 남녀를 막론하고 멀리하는 것이 좋다..     



이야기를 나누던 두 인디언이 이 사람을 가리키며 아파치라고 소개를 한다.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아파치족은 백인에 저항한 용맹스러운 인디언으로 소개되지만 아파치 부족은 골드러시의 노선과 전혀 다른 뉴멕시코주에 거주하였기 때문에 백인 세력과 충돌할 일이 없어서 가장 뒤늦게 사라진 종족이다. 이들은 미국과 멕시코 전쟁 1845 ~1848 년 이후에 황무지 뉴멕시코주로 온 백인 세력과 뒤늦게 싸움을 한 부족이며 가장 늦은 시기에 평정된 부족임을 기억하자. 


1820 년대 후반부터 오클라호마주에 인디언 보호구역의 명목으로 빈 땅을 설정해놓고 동부의 인디언을 체포하여 대량으로 수송한 백인 전투 호송대를 아파치 부족은 만나지 못했고 조선 말기에 이르러 서남부 황무지로 진출하는 백인 세력과 충돌하다 기병대에 의해 최후로 궤멸된 부족이다. 


1895년에 전투가 시작되어 1924년 아파치 부족의 항쟁은 끝이 났으나 이후 조금씩 지속되어 1931년에 최종적으로 막을 내렸다. 1906년 조선에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된 이듬해 이곳에서는 추장 제로니모가 완패하여 아피치 주력의 항쟁은 끝이난 것으로 보면 된다. 아파치 대추장 제로니모의 이름을 따서 오사마 빈 라덴 사살 작전명으로 사용했으며 다시 제로니모 추장의 이름을 빛내었다.


요점을 정리하면 중북부의 수우, 샤이안, 등은 거주지역이 1849년 골드러시에 샌프란시스코 인근으로 금을 캐러 몰려가던 백인의 행렬 선상이어서 가장 피해를 많이 본 부족이며 동남부의 체로키, 촉타우, 세미놀, 등 여러 부족은 노스캐롤라이나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훌로리다주, 알라바마주 등 비옥한 땅에서 거주하였으나 농경지를 탐낸 백인 세력에 의해 부족 전체가 모두 체포되어 오클라호마 황무지로 끌려간 것이고 아파치는 뉴멕시코주 아리조나주 메마른 사막의 황무지에 거주하였으므로 백인 세력과 충돌이 결과적으로 늦어졌다.    




이들 인디언 부족은 조상 대대로 문화와 문화의 충돌이 없이 자연인으로 살아왔기 때문에 다른 인종과 비교해 문명을 발전시킬 수 있는 조건이 되지 않았으므로 조상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방식으로 살아온 것이고 손도끼와 창과 활이 전부인 이들에게 유럽의 문명을 가지고 밀려온 백인들은 총칼을 휘둘러 제압한 것이다. 


유럽에서 이주자들이 오기까지 미대륙에는 말과 수레가 없었으며 걸어서 다니는 삶을 살았는데 백인 세력이 밀려오면서 그들의 말이 야생화 되어 대륙에 야생마가 존재한 것이고 원주민은 야생마를 잡아 길들여 안장 없이 타고 다닌 것이 서부영화에서 보는 인디언의 모습과 같다.  


이들은 보호구역이라는 미명 하에 백인 세력이 설정해준 지역에서 살아가는데 정체성을 말살시키려는 정책에 의해 옛날부터 독주를 공급하여 알코 중독자가 지천에 널렸으며 대체로 무기력한 이들의 삶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유타주 아리조나주에는 "술 마시고 운전하지 말라"는 길가에 널린 팻말을 볼 수 있으며 버려진 술병이 사막에 널렸으며 길에서 만나는 인디언 중 상당수가 알콜 중독자임을 알 수 있다.)


술중독자가 되면 품행이 추해지고 뇌세포가 파괴되어 생명이 없는 나무인형처럼 변하는 것들이 많다.   




위 사진은 내가 오믈릿으로 식사를 한 식당이며 바로 정면 길 건너에 산 미구엘 성당이 있어서 그 축대에 올라가 찍은 사진이 이것이다. 


위에 아파치 행상 젊은이 이야기를 하면서 아메리카 인디언의 현재 상황을 설명하는 중에 수많은 인디언이 술중독자가 된 사연이 나왔으므로 이쯤에서 소수의 스페인 군대에게 차례로 정복당한 중남미 각국의 인디오 이야기를 써야겠다. 남미 전체에 살던 남미 원주민들이 왜 허무하게 불과 오십여 년 사이에 스페인 원정군에 의해 정복을 당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지금의 이라크는 인류문명의 발상지로 불리며 찬란한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꽃을 피운 중심지며 터키 남부, 시리아, 이스라엘 등에서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발현하여 약 사천여 년을 이어져 왔으나 기원전 331년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군에 의해 메소포타미아 문명이 막을 내렸다. 


영화 십계에서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군의 추격을 받으며 홍해 북쪽의 얕은 물을 건너 중동으로 탈출하는 내용에 발전된 문명을 볼 수 있는데 이집트 나일문명은 인류 4대 문명의 하나에 속한다. 문명이 발달하려면 국가와 민족의  교류가 왕성하고 무력충돌과 무역이 번성해야 하는데 이집트와 중동과 유럽은 지리적으로 매우 가깝고 대서양과 지중해와 지브롤터 해협과 보스포러스 해협의 여러 교류의 통로가 있었으므로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하였고 이동수단과 전쟁무기가 발달하였다. 


스페인 원정군에 의해 짧은 시기에 정복당한 중남미를 살펴보면 미대륙의 원주민과 다를게 없이 자연인의 모습으로 살았으며 중남미 대륙과 북미대륙에 거주한 모든 원주민들은 문명과 문명의 교차와 전쟁이 없었으므로 문명의 발전이 없이 토속적인 자연인으로 살았던 것이다. 


이러한 곳에 총칼의 병장기로 무장한 전쟁의 달인 스페인 원정대가 멕시코를 거쳐 페루 등을 삽시간에 점령하고 그들에게 자신의 언어와 문화와 문명을 심었으며 순수한 원주민을 길들이기 위한 방법으로 술을 사용하였고 술에 중독된 그들은 길들이기 쉬운 상대로 전락하였다. 


유럽에서 원정대를 따라온 사제들은 캐톨릭을 전파하며 원주민을 구속하였으며 총칼에 짓밟힌 그들에게 유럽서 건너온 종교를 주입하여 인디오의 정체성을 완전히 소멸시켜버렸고 또한 원주민을 금 캐는 인부로 부려먹으며 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으므로 대물림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다. 


스페인과 포루투갈은 사형수를 비롯한 중형을 선고받은 범죄자를 중남미 식민지로 보내 방면하여 살게 하였는데 남미대륙과 북미대륙은 적도를 중심으로 계절의 반대현상을 제외하면 사람이 생존하는 조건은 비슷한 곳으로 미대륙에 비해 열등하지 않은 천혜의 자연조건을 갖고 있는 곳이다. 


문제는 미대륙에 이주한 청교도는 하나님 말씀에 따라 살기 위해 이주한 온건한 지식층인데 비하여 중남미로 이주한 스페인 포루투갈 이주자는 질 낮은 교육 수준과 포악성의 특성을 가진 자들이 인디오 부족의 기득권층으로 군림하며 통치했으므로 그들의 유전인자와 풍습이 오늘까지 이르러 북미대륙의 미국과 중남미 국가는 과거부터 지금까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다고 보면 되겠다. 


물론 미국 대륙도 골드러시의 바람이 불어 유럽에서 양아치화 된 이주자가 대량 섞여왔고 총포에 의한 원주민 살상이 많았음을 부인할 수 없으나 미국에 진출한 이주민의 선봉에는 하나님 말씀을 따라서 살겠다는 청교도가 있음이 중남미 원정군과 다르다. 청교도가 펜실베니아주 랭커스터에 밀집해 살고 있는 이유는 왼편 펜실베니아 목록을 살펴보면 된다. 


스페인은 당시 금을 취득하기 위한 목적의 원정군을 각지에 보내어 살륙을 저지르며 통치하였으나 영국, 독일, 네델란드 등에서 밀려온 이주자들은 무력의 수단도 가져왔지만 농경과 그 외 인류에게 유익한 문화를 갖고 신대륙에서 살기 위해 왔음이 중남미 정복자들과 다르며 그런 전래의 전통이 이어져 중남미 거주자와 미대륙 거주자의 차이는 하늘땅 차이다. 


중남미는 캐톨릭 국가이며 미국에 거주하는 중남미 사람은 모두 캐톨릭 신도로 보면 정확하다.  

그런데 그들은 도둑질과 온갖 나쁜 일에 가담하여 악행을 저지르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물론 100% 다 그렇지 않으나 절대적 비중이 그렇다는 의견이다. 


위의 설명과 같은 포악한 스페인 해적과 포루투갈 해적으로 구성된 정복자들이 중남미를 휩쓸었으니 오늘날 그들의 후예가 잘되면 그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유럽의 문화를 토대로 미국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한 문명과 교육시스템 등은 중남미와 전혀 반대의 현상이 되었으므로 독자의 참고가 되었으면 좋겠다. 상놈의 자손과 양반의 자손의 현격한 차이로 인해 남미와 북미는 팔자가 지금처럼 극과 극을 이룬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시내가 한눈에 보일 곳을 찾아서 언덕을 오르내리는데 적합한 장소를 찾을 수 없었다.   




콜로라도주와 이어진 록키산맥은 이곳 산타페 인근에서 서서히 끝이 나지만 남부로 내려가면 해저층이 고스란히 올라와 MESA 가 형성된 지형으로 변한 곳이 많다.  




이들의 주택의 외관은 방문객의 호기심을 끌기는 하겠으나 저 속에서 살기에는 답답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곳은 공원에서 멀지 않은 그림과 조각품 전시장이며 대략 십여 개 화랑이 모여있는 곳이다.   




사막화된 중동지역의 주택과 성채도 이처럼 흙을 물에 개어서 만든 문화유적지가 많으며 사막기후에 적합한 구조일 것이다.   




좁은 골목길을 다녀도 허술한 곳이 없고 모든 지역이 청결하였고 위험한 지역이 아니었다.   




예술품 전시장과 같은 지역에 카페테리아가 형성되어 있는데 아직은 시즌이 아니지만 여름이 가까우면 여행객으로 붐비는 곳이다.   




이곳 산타페는 상점뿐 아니라 미장원, 회계사무소, 치과, 의사 오피스, 복덕방 등 길거리에 보이는 모든 업종의 건물이 이런 모습으로 지어졌으므로 유심히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다음 편은 대륙의 자전거 여행 지존 부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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