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오레곤 트레일에서 만난 목마른 자전거 맨.

랩탑의 문제로 사진출력이 안되어 전편을 대충 기록하였으나 오늘 새롭게 사진을 찾아서 전편과 연결하여 쓰기로 했다. 검은사막의 온천에서 지난 주 산불을 피해 네바다주 사막으로 갈 때 거쳐갔던 오레곤주 Bend town 까지 가서 이후 아이다호주를 향해서 동쪽으로 가기로 했으며 지나친 모든 행선지는 며칠 후 지도에 그려서 자세히 설명하려고 한다. 




네바다주 사막길에서 오레곤주로 향하는 길은 이렇게 푸르게 변했으며 299 - 395 - 31 - 97 번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를 따라서 Bend, 오레곤주로 가는 길이다.






오레곤주에 들어서면서 들녘은 푸르게 변하고 소떼가 지천에 깔렸으며 지름 약 10 마일 가량되는 호수를 곳곳에서 만나게 되었다.





오레곤주 산골의 평야는 원래 사막의 기후였으나 개척자들이 물을 끌어들여 옥토로 개간하여 지금에 이른 곳이 곳곳에 눈에 띄었다.




대륙의 어느곳에서나 볼 수 있는 대단한 영농방법은 언제 보아도 감탄할 지경이고...





1800 년대 후반 조선에서는 대원군 이하응이 설쳐대던 그 시기에 이곳에 개척자들이 몰려들어 정착하면서 생긴 마을들이 옛모습을 간직한채 지금도 사용되고 있는데 달라진 것은 도로는 아스팔트로 바뀐 것이고 상점 앞에 말을 매던 가로막대는 없어지고 보도블럭이 된 것이 다를 뿐이다.  





조금씩 수리하여 사용하지만 옛모습은 변하지 않은채로 지금도 사용하는 건물들...





한참을 가다보면 새로운 호수가 나오고 주변은 푸른 목초지가 드넓게 펼쳐져서 수많은 소떼를 먹이고 있다.






언덕에 차를 멈추고 밖으로 나와서 광활한 대지 위의 호수를 바라보던 시간...





오랜 건물을 지나는데 지난해 먹을 것을 사던 Safeway 수퍼마켓이 보였는데 지난해 아이다호주로 가던 길과는 전혀 다른길로 왔는데 우연히 Lake View 마을에 오게되어 반가웠으며 넓은 공터에 마련된 RV 주차장에 들어갔더니 그새 새롭게 단장하여 깔끔한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인터넷에서 온천을 찾아보니 바로 근처에 있어서 노천 온천욕을 하고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소고기 볶음으로 저녁을 먹고 잠들고 Bend 로 떠난 이야기를 오늘 다시 추가하였으며 아래에 이어지는 글은 새로운 글의 시작이다.






레이크뷰 온천 바로 옆에는 5분마다 솟아오르는 간헐천이 있어 분위기가 새로웠으며...





계속해서 커다란 호수가 이어져 시야에 들어왔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들녘을 지나는데 소떼가 나무울타리에 갇혀져 있었고 카우보이들이 밧줄을 휘두르며 어린 송아지를 잡아서 다리를 묶어 쓰러트리기에 낙인을 찍을 것으로 알고 차를 멈추었는데 비가 오지 않았으면 안으로 들어가 이야기를 나누며 실습을 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때가 아니었다.





밧줄을 던져 낚아채면 카우보이들이 달려들어 재빨리 다리를 묶어 쓰러트리고...





송아지가 쓰러지면 예방주사를 놓고 한사람은 불타는 화덕에서 달궈진 낙인을 꺼내어....





올봄에 태어난 송아지 엉덩이에 ....





가차없이 눌러서 이곳 목장의 소인 것을 증명하는 낙인을 찍는데 힘없는 송아지는 버둥대지만 저항하지 못하고 불로 지짐을 당하는 고통스러운 시간이다.





지난해 Bend 마을에서 연기에 질식할 것 같아서 남쪽으로 튀었는데 그때 지나던 길이 97 번 도로였고 이번에는 97번으로 다시 Bend 마을로 가는 중이었으며 이곳에서 왼쪽으로 달리면 벤드 마을이 나온다.





이어서 Fremont - winema 국립수목원이 있는 시골마을에 들어섰으며 매우 작은 espresso 커피점에서 아이스커피 한잔을 주문하려고 창가에 차를 세웠다. 오레곤주와 아이다호주 등에는 한사람이 들어가 커피를 판매하는 전문 커피점이 곳곳에 있어서 이런 곳에서는 유명브랜드 스타벅스 커피점이 맥을 추지 못한다.


창가에 붙여놓은 커피 종류를 보다가 웃음이 튀어 나왔는데 무법자 뉴멕시코주를 무대로 살인강도를 하던 무법자 (빌리 더 키드) 그리고 미조리주에서 활동하던 잔혹한 무법자 (제시 제임스) 그리고 "내일을 향해 쏴라" 영화로 한국인에게 널리 알려진 (버치 캐시디) 와 (선댄스 키드) 등 여러 무법자 이름으로 된 커피를 팔고 있기에 (빌리 더 키드) 커피를 주문하였다.


아주머니와 대화를 하며 온통 무법자 이름으로 된 것이 특이하다며 지난해 뉴멕시코주 (빌리 더 키드) 묘지를 방문한 이야기를 들려주니 무척 놀라워 하였고 선덴스 키드가 체포되어 감옥에 갇혔던 몬타나주에 있는 선댄스 마을에서 선덴스 키드가 재판을 받을 때 앉았던 법정의 진품 의자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일단 이야기가 나오면 미대륙의 세세한 시골마을 이야기도 서슴없이 나오는 터라 커피점 아주머니는 지나던 나그네를 매우 신기하게 여겼으며 커피를 주문하려는 다른 차가 왔기에 인사를 나누고 떠나는데 부르는 소리가 들렸고 황급히 뛰어나온 아주머니가 모자에 꽂는 핀을 갖고 왔으며 이런 사연으로 아주머니에게서 Fremont -Winema 뱃지를 선물로 받았다.





Bend  마을에서 하룻밤 묵고 어디로 갈까 망서리다가 26번 도로를 따라서 아이다호주로 가기로 했는데 새로산 랩탑도 말썽을 부리기에 컴퓨터점을 찾아가 문제를 해결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


이런저런 사연이 있었고 필요한 물품을 구입하고 아이다호주 방향으로 달려서 산맥의 고갯길을 돌아 오르는데 힘겨워 앉아있던 두 사내가 손을 흔들며 차를 세운다. 빈터에 차를 세우고 나왔더니 마실물이 없다며 물을 청하기에 장거리 자전거 여행으로 지친 이들에게 차가운 코카콜라캔 두개를 꺼내어 주었다.


안경을 쓴 친구는 스캇이며 키가 큰 친구는 앤토니 인데 이들은 배낭을 둘러메고 여행을 다니는 중이며 깨끗하고 물이 떨어져 앉아있다가 마침 지나던 내게 도움을 청하게 된 것이다.

그들은 John Day 마을에 가는 길이며 이후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하여 한참을 이야기를 나누다가 각자에게 2병씩의 물을 주고 아쉬운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자전거 가격을 물으니 앤토니는 150 달러, 스캇은 100 달러 자전거를 월마트에서 구입하여 현재까지 900 마일 (약 1'500 km) 을 달려왔다고 한다. 콜로라도에서 만난 여인의 7'000 달러 자전거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것이 좋겠지만 저렴한 자신의 자전거도 전혀 문제가 없다며 웃는다. 나의 자전거는 149 달러 가격표를 보고 작은 것으로 골랐는데 어찌된 일인지 89 달러를 받더라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목마른맨들과 헤어져 산악을 넘고 또 넘는데 John day Fossil Beds 국립기념지 표지가 보이기에 즉시 작은길로 방향을 바꾸었다.


참고 : 국립공원 바로 아래등급에 속하는 것이 National Monument 이며 세월이 흐르면서 중요성에 따라서 국립공원으로 승격하기도 하고 제자리에 머물기도 하는데 영화배우로 비교하면 국립공원은 주연급이고 마뉴멘트는 조연급으로 비교하면 된다.





26번 도로에서 6마일 (약 10 km) 들어가니 헐벗은 정도가 아니라 아예 한포기 풀도 나지 않는 기묘한 민둥산이 보였으며 이것이 국가유적지로 지정된 것이다.





주변에는 나무도 있고 풀도 있는데 특이하게 이 일대는 사진의 산과 능선으로 이루어진 지형이다.




경사가 완만하여 산악 모터사이클 매니아에 의해 훼손을 염려해서 철조망으로 둘러쳐진 모습이 보였으며 접근을 경고하는 표지가 곳곳에 붙어있었다.





능선을 오르니 주차장에는 많은 방문객이 산에 오를 준비를 하고 있었으며 사전 지식이 전혀 없던 나는 주변을 살피고 안내표지를 읽어 이곳의 특성과 지식을 즉시 습득하고 하이커들 뒤를 따라 등반할 준비를 하였다. 





이곳은 옛날에 빽빽한 숲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기후변화에 의해 지형이 바뀌고 수풀이 사라져 지금의 독특한 민둥산으로 변하게 되었다는 지질학적 설명문이다.





만고풍상의 세월을 지나면서 변해버린 지형이기는 하지만 한포기 풀도 자라지 않는 모습이 신기했으며 지표면 구조를 살펴보니 잘게 갈라진 메마른 논바닥과 비슷하였고 겉과 속이 푸석푸석하여 풀씨가 내려앉아도 살아날 수 없는 독특한 지표면인 것을 알 수 있었다.






단체로 온 방문객들이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줄지어 산길을 오르고 있었으며 나는 배낭에 식량과 차디찬 캔콜라와 물 네병을 넣고 망원경과 카메라 삼각대를 지참하고 준비를 마쳤다.





어느새 그들은 산 정상에 올랐으며 아래에 펼쳐진 특이한 지형의 파노라마를 보고 있었다.





거리가 얼마인지 정상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한채 궁금해서 산꼭대기로 가는 길인데 주차장에서 출발한 것을 포함하면 왕복 3 km 거리였다.




정상에는 나무 의자가 있고 아래의 주차장과 독특한 지형을 한눈에 볼수 있는 전망지였는데 듣도 보도 못했지만 이렇게 다니면서 습득한 지식과 경험이 블러그 기록을 통해서 독자에게 전해지는 것이며 나의 여행기록은 인터넷에서 찾아서 올리거나 어거지로 지어낸 것이 없는 현장의 직접적 탐방기록이 전부다.





카메라 줌을 조절하니 국립 레인저가 산에 오르지 못하는 연로한 방문객을 위해 단체로 강의를 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예전에 갔던 경주의 고분군 모습과 비슷한 둔덕이 즐비했는데 아래엔 잡초가 자라지만 둔덕에는 민들레 홀씨 크기의 잡풀 조차도 없는 매우 특이한 곳이었다.





다시 아이다호주로 떠났는데 길가의 마른 나무에 수백켤레의 운동화가 던져져 걸린 특이한 모습이 보여 차를 멈추었다.





서부 개척시대를 겪은 판잣집이 간간히 눈에 띄었으며...





그옛날 개척민이 살던 진품 건물의 앞면을 수집하여 나래비로 세워 보존한 곳도 눈에 띄었다.





전달할 문서가 든 가방을 어깨에 걸고 오지를 달리는 파발마가 멈추어 쉬고 주문받은 우편물을 파발마에게 전해주는 곳도 눈에 띄었는데 급보를 알리던 전신국 역할을 하던 곳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참고 : 조선시대 파발마에 비교되는 미국의 Pony Express 는 남북전쟁이 발발한 1861년 즈음에 서부로 진출한 개척민과 군대에 우편물을 급히 배달하던 기관이었으며 남북전쟁이 중반전에 접어든1863년부터 캔사스 시티에서 시작된 철로공사와 웨스턴 유니온 전신국의 전보가 개통되면서 없어진 서부시대의 역사를 간직한 신속배달기구다.





John Day 마을에서 늦은 저녁식사를 하고 RV 팍에 갔더니 목욕을 하는 시설이 없어서 경찰에게 물어 13마일 떨어진 Prairie 마을에 있는 RV 팍에 목욕시설이 있다는 설명을 듣고 길을 떠났다.





20 달러를 지불하고 자리를 잡고 목욕을 마치고 잠들었으며 다음날 아침...





주차장 건물에 있는 박물관에 들어갔더니 이곳 프레이리 마을의 역사가 흑백사진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안내하는 할아버지는 몬타나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시골에서만 살았다고 하였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이야기는 이곳 마을에서 85 마일 거리의 Baker 마을에서 이곳까지 1937년 철로가 건설되었으며 목적은 이곳에 산재한 나무를 벌목하여 운반하기 위한 목적이었고 이후 금광이 발견되어 개척민을 수송하는 여객열차도 함께 다닌 역사를 들려주었다.





박물관 건물은 그당시 기차역으로 사용된 건물인데 도로의 발달로 열차는 모두 사라졌고 이후 소유주가 새건물을 지으려고 역사건물을 부수어 다른 곳으로 옮긴 것을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나 지방정부를 움직여 건축허가를 취소하였고 이후 건물을 지역주민의 자원봉사로 5년 간 수리하여 제자리에 세웠다는 놀라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일층과 이층을 살피면서 옛 역사를 더듬고 이들의 보전정신에 존경을 표하면서 세세히 살피던 시간이었다.





주민들이 기증한 그시정 생활용품이 기차역 안에 가득히 채워졌으며 눈이 많은 지역이라서 닥터지바고 영화에 나오는 모습의 썰매도 있었다.





사금을 채취하던 쟁반...





손으로 돌리던 세탁기...





옥수수를 넣고 팝콘을 튀기던 주방기구도 만져보고...





역장이 살던 이층의 방도 살펴보던 시간...




할아버지와 작별의 인사를 나누고 그가 설명하던 1800 대 후반에 건설된 마을을 둘러보았으며 불에타서 새로지은 것도 있지만 옛모습을 간직한 서부 개척시대 거리다.


박물관에는 중국인 사진이 있고 중국글씨의 현판이 있어 자세히 살펴보니 이곳에 와서 정착한 중국인 의사였으며 그는 1930년 대에 사망하여 마을 공동묘지에 앉은채로 매장되었다가 본국으로 이장되어 비로서 눞혀졌다는 전설같은 중국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의 설명에 의하면 죽어서 앉은채로 묻힌 것은 완전히 죽은 모습이 아니며 고향땅에 묻히기를 희망한 가족에 의해 중국땅으로 이장되어 그때서야 누운모습으로 매장되었다는 이야기였다. 중국인 의사가 묻혀있던 묘지의 비석은 다른 곳으로 옮겨져 보존되고 있다고  해서 이곳 마을로 가져와야 한다는 나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이던 할아버지...





1880 년대 서부 개척시대 모습을 간직한 Prairie 마을...

지금은 자동차가 다니는 길로 번했으나 예전에는 비포장 도로에 상점 앞에는 말과 마차가 주차하던 넓은 길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무곳이나 마구 헤집고 다니면서 미국의 역사와 풍습을 살펴보느라 매일매일이 즐거움의 연속이지만 한편 몸은 고달프기도 하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