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넘다가 중간에서 내려왔던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Piegan Pass를 넘으려고 다시 산길로 갔다. 숲이 매우 무성하고 혼자라서 도중에 내려왔는데 어차피 혼자 다니는 몸이라 동행할 사람이 없으니 이판사판 공사판이라는 심정으로 혼자 떠났다.
지금은 단풍이 노랗게 물들고 나뭇잎이 말라버린 때라서 숲 속은 무성하지만 만약에 짐승이 움직이면 소리로 알 수 있기 때문에 상황에 대처할 시간적 여유가 된다.
2 마일 정도 오르니 앞에서는 커플이 내려왔고 그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는데 뒤에서는 곰이 피해가라는 뜻으로 Bear Bear 큰 소리로 외치면서 올라오는 사람이 있었는데 옆에 온 것을 보니 젊은 녀석들이 허리에 리볼버 권총을 차고도 뭔 겁이 많은지 큰 소리로 동물을 모두 쫓으며 왔기에 핀잔을 주었다.
맞부딧치면 쏘아서 죽이진 않더라도 땅에 한 발만 쏴도 급히 도망칠 텐데 산이 무너지라고 버럭버럭 소리를 지르며 올 것은 뭐냐...
이런 숲 속이라 해도 거구의 두 젊음이면 무기가 없어도 곰 한 마리는 감당할 것인데 이거 어디서 심장은 새 심장처럼 파르르 떠는 것이 덩치만 커서는 동물을 무서워하며 다니는 것인지 황당한 날이다.
야생동물은 사람이 있다고 무조건 달려드는 것이 아니라 제절로 겁먹고 먼저 피해서 도망치는 것이고 그중에 미친 녀석이 있어 사람을 해치려고 달려드는데 그런 애가 흔하지 않다고 보겠고 사람 가운데도 별 볼 일 없는 것이 행패를 부리다 직사 하게 얻어터져 망신을 당하듯 동물의 세계에서도 간혹 대굴빡이 잘못된 것이 사람을 공격하는 것이다.
옛날 내가 열한 살 때다. 아랫집 세탁소 잡개가 반바지를 입고 걸어가는 나의 종아리를 물어 상처가 깊었는데 개 주인 딸기코 아저씨 하는 말이 개털을 잘라서 불에 태워 상처에 바르면 낫는다는 황당한 얘기를 하기에 집에서 통일 연고를 바르고 싸맨 후 너무 열 받아 잡개를 패 죽이려고 기회를 엿보면서 육수 솥에서 삶는 고기를 조금씩 잘라서 골목에 던져놓으며 때를 기다렸다.
복수혈전의 기회를 보고 있는데 드디어 며칠 후 윗집 담벼락과 사이에 아이 하나가 들어갈 정도의 골목에 들어가는 것을 목격하고 준비해 놓은 미제 각구목을 들고 죽이려고 들어가니 잡개는 지은 죄를 알고 꼬리를 감추고 벌벌 떠는 것을 패 죽이고 있는데 잡개 주인이 비명을 듣고 왔기에 할 수 없이 살려두게 된 사연이 있었다.
동물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사람이라서 함부로 덤벼들지도 않지만 일단 붙으면 죽이기를 작정하고 싸우면 제아무리 곰이라도 제 살길을 찾아서 도망가게 되어 있고 먼저 건들지 않는데 해를 끼친다면 그놈은 죽을죄를 면할 수 없다.
조금 너른 공간이 보이면 한숨 돌리고 쉬었다 떠나기를 반복하면서 걸었다.
계곡의 차디찬 빙하가 녹아서 흐르는 물에서 이를 닦고 세수도 하던 시간...
"마운틴 사이야" 눈앞에 보이고 이곳 일대의 봉우리는 모두 2900 미터 이상 3천 미터 미만으로 산소는 충분하여 그리 힘들지 않은 구간이다.
그래서 녀석들은 핀잔을 듣고 열 받아서 Piegan Pass로 가기에 나는 방향을 Siyeh Pass로 떠났다. 트레일 출발해서 2'7 마일을 왔고 이곳에서 오른편으로 2 마일 올라가면 Siyeh 고갯길이 있어서 일단 그곳까지 가기로 했다.
저편에 보이는 중턱이 고갯마루이며...
망원경으로 살펴보니 여럿이 걸어 올라가고 있었다.
오른편에는 Matahpi Peak이 있어서 그곳 고갯길로 가는 길이다. 풀밭에는 씀바귀 등 각종 산나물이 즐비한데 열매나무가 없어서 인지 곰은 보이지 않았다.
트레일이 구불거리고 산세가 복잡해서 여기서 되돌아 가려다가 고갯마루에 오르기로 하였다.
곳곳에 쌓인 눈을 바라보며 급하지 않게 천천히 걸었으며 이 정도에서는 곰과 표범을 만날 일이 없어서 한시름 놓고 풀밭의 잡풀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노닥 거리던 시간...
요즘 갑자기 날이 더워져 빙하가 많이 녹았지만 언제 눈이 쌓일지 모르는 곳이라 앞으로 더 쌓이기를 기대하면 된다.
매우 좋은 트레일이었으며...
길 따라 걸어서 가니 동양 여자아이들이 수다를 떨고 있었고 길은 끊어진 곳이다.
멀리 능선을 오르는 사람이 얘들이었고 모두 여섯 명 일본 아이들이었는데 그중에 위 편에 홀로 있는 아이가 올라오라고 손짓을 하였다. 얘 이름은 (사쿠라) 이며 능선의 반대편으로 내려가고 싶은데 친구들이 왔던 길로 되돌아 가려한다며 아쉬워하기에 다른 애들 불러서 같이 넘어가자고 했다.
내게는 젊음이 이미 지났지만 나도 이렇게 희고 팽팽한 피부였는데 어느새 어린아이들은 할아버지라고 부르는 나이가 되었다는 거...
아래에 있는 아이들을 불러서 올라오라고 하였는데 남자아이보다는 여자애들이 적극적이었다.
그래서 사쿠라와 둘이 걷는데 셔틀버스가 얼마 후 끊어지면 돌아갈 방법이 없다기에 어차피 시간이 늦었고 내 차가 멀지 않은 곳에 있으니 모두 태워서 목적지에 데려다준다고 하였다.
사쿠라는 매니 글래시어 호텔에서 일하는데 다음 주 동경으로 되돌아 가서 학교에 가야 하고 다른 아이들도 방학 중에 이곳 모텔에서 하우스 키핑 (방청소와 정리)를 하면서 지낸다고 하였다.
무한히 아름다운 곳이었고 위험한 절벽길을 천천히 걸어서 빠져나갔다.
고갯마루에는 이들이 막 도착하여 쉬고 있었으며 이들은 우리와 반대 방향에서 올라와 떠나기 전에 잠시 쉬고 있었다. 하도 산을 다녀서 수염은 덥수룩하고 살은 그을렸으나 매우 건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었다. 미시간에서 온 친구들인데 원체 대륙에 능통해서 미시간 이야기로 시간을 보내다 작별하였다.
왼쪽에서 세 번째가 작은 아이가 사쿠라 인데 얘는 붙임성이 있고 옛날의 요시코상과 같은 말투였고 성격이 싹싹한 아이였고 이제 대학교 1학년인데 스스로 알아서 방학중에 미리 일할 곳을 구해서 여행도 하고 견문을 넓히는 것이 대견하였다.
이렇게 만나는 것이 인연이라서 만남과 작별의 기념사진도 만들었고...
그들은 저편으로, 우리는 이편으로...
정상에는 어디나 이런 것이 있는데 여기에 돌 하나씩 던져서 보태던 시간...
아이들에게 추억의 사진을 만들어주려고 비탈로 내려갔다.
빙하는 저 아래에 있어 그곳까지 가기로 했으며...
사쿠라가 일반 운동화를 신어서 미끄러지기에 둘이 손잡고 언덕을 내려 다녔다.
저편 산아래까지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두 시간 거리다.
산에 익숙하지 않은 애들이라서 지그재그로 먼 길을 내려오고 그들을 앞질러 비탈로 내려가 한참을 쉬면서 산을 내려가던 시간...
빙하에 다녀오라고 하고 바위에 걸터앉았다.
스무 살 나이에 나는 미국에 온 적도 없고 서부영화에 심취해 있던 시절인데 이 아이들은 어린 나이에 미국에 여행을 오다니...
빙하가 보이는 바위 언덕은 너무도 고요하고 조용한 곳이어서 간섭하는 이 없다면 천막을 설치하고 오래 살아도 될 곳이었는데 늦가을이 되면 이곳은 벌써 수십 미터 두께의 눈에 파묻히는 곳이라서...
이곳에 와서도 일하느라 다녀보지 않았고 빙하에 처음 발을 디디는 아이들이라서 무척 좋아하였다.
붙임성이 좋고 말투도 예쁜 아이 사쿠라는 동경의 무슨 대학 1학년생이라고 했는데 동경 제국대학 한 곳만 알아서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이제 얼마 후 이곳을 떠날 아이들이고 오늘이 마침 쉬는 날이라서 여섯이서 산에 올라왔다고 한다.
얘들을 만나지 않았으며 올라 온 곳으로 되돌아 갔을 것인데 이리로 같이 오게 되었고 추억을 남겨주는 사진사 노릇도 하는데 인터넷이 연결이 안 되어도 아이폰끼리는 옆에 가까이 대고 사진을 다른 아이폰으로 옮기는 장치가 있어서 즉시 얘들에게로 옮겨가는 편리함이 있었다.
일본 사람은 확실히 치아가 특이했으며 한국사람도 만만치는 않지만 이들이 치아 배열에 훨씬 더 문제가 있는 것을 알았다. 미국 아이들은 사춘기에 접어들며 대체로 치아교정을 해서 괜찮은데 아직 일본은 그런 것이 정착되지 않은 것인지 알 수 없다.
산에서 처음 만나 아이라서 사쿠라가 가장 정다운 아이였고 대체로 영어는 의사소통이 되는데 요즘은 영어를 못하면 사회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라서 일본에서도 열심히 영어를 하는 듯했다. 학교서만 배운 실력인데도 알아들을 만큼 하는 기초실력이 되었다.
길 따라 내려가다가 떨어진 곰 스프레이를 습득했는데 아까 올라오던 미시간 친구들 것일 텐데 돌려줄 방법이 없어서 보관하기로 했고 배낭에 매달아 모두 세 개의 곰 최루탄을 휴대하게 되었다.
빙하에서 흐르는 폭포가 아름다운 곳이며 시원스러운 물줄기가 수백 미터를 내려오는 곳이다.
산불로 타버린 나무들...
먼 곳 절벽에 하얀 염소가 풀을 뜯어먹고 있어서 교대로 망원경으로 살피던 시간...
마운트 Matahpi 빙하...
경사면으로 질러서 내려가면서 아이들은 지그재그로 된 트레일로 오라고 해서 멀리 떠나는 중이다.
이런 열매가 곳곳에 있어서 곰이 훑어먹고 살아가는데 숲길이라서 귀를 곤두세우고 걸었다.
걸으면서도 연신 사방을 살펴서 무엇인지 찾던 시간이었고...
계곡물 건너 비탈에 곰 한 마리가 보여서 아이들에게 조심해서 천천히 오라며 앞으로 달렸고 얘들도 곰이 있다는 말에 같이 달려왔다.
한참을 달려서 거리가 매우 가까운 건너편 비탈을 살피는데 종적을 찾을 수 없었는데 사쿠라가 곰을 발견하고 신기해 어쩔 줄 몰랐고 곰은 여러 사람이 갑자기 멈추어 바라보자 긴장하여 나무 뒤에 숨어서 움직임이 없었다.
녀석이 얼마나 긴장을 했는지 전혀 움직이지 않고 제 딴에는 나무 뒤에 숨어서 본다는 것이 조금만 자리를 옮기면 이렇게 훤히 보였다. 아이들은 신기해서 좋아라 하지만 산의 주인은 얘라서 이곳을 떠나자고 했다. 별로 먹을 것이 없는 산비탈을 다니며 풀과 작은 열매를 먹고사는 것도 안쓰러운데 더하여 피곤하게 하면 사람의 도리가 아니다.
불타서 죽은 나무 숲길도 좋았으며 정상에서 두 시간 넘게 걸어내려 온 트레일이며 이곳 종착지에서 내려온 고개 능선까지 5'8 마일이었고 전체의 구간은 9' 9 마일의 긴 트레일이었다.
이미 셔틀버스가 끊어져 지나는 차를 세우는데 서지 않기에 사쿠라가 길에서 차를 세우고 나의 차를 가지러 간다고 설명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했더니 내려오는 차를 세워 손짓과 영어를 섞어가며 의사소통이 되어 지프를 타고 위로 다시 올라가 차를 가지러 떠났다.
내려오던 운전자는 밴쿠버 캐나다 사람이었고 그는 이곳에 11번째 왔는데 캐나다 록키산맥은 사람도 많고 이렇게 험준한 산맥 트레일이 아니라서 흥미가 없다며 이곳이 천하의 절경이라고 한다. 캐나다 록키산맥에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니 그곳은 이런 괴이한 경치가 아니고 밋밋한 듯 평범해서 취향에 맞지 않는다고 하였다.
내가 출발한 피간 트레일은 작년에 지났었고 올해는 다른 곳을 다니는데 끝이 없어서 계속 오고 있다며 웃는다. 차 있는 곳까지 사마일 가량 되는데 감사의 인사를 하고 작별하여 여행 밴을 몰고 오던 길로 다시 내려가서 아이들을 침대에 앉히고 St. Mary 삼거리에 내려주었다.
아이들은 가게에서 필요한 것을 사고 9시 셔틀버스를 타고 일하는 곳으로 돌아간다며 아쉬워하였고 우연히 산에서 만나 함께 내려왔다. 작별의 인사로 일일이 안아주며 훗날 다시 미국에 오라고 하였고 학생들은 다시 오겠다며 헤어진 늦은 시간이었다.
산을 내려오며 독도의 역사에 대해 말해주려다가 세뇌되어 잘 알지 못하는 아이들이 어색해할까 봐 그냥 내려왔는데 얘들이 훗날 독도는 일본 땅이 아니라는 올바른 역사를 알게 될 날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정치하는 것들이 불리한 상황에 처하면 곤경을 피하느라 언론에 퍼트리면서 극우파들을 끌어들여 관제시위를 하면서 독도는 일본 것이라고 국민을 속이는데 일본은 그렇다 하더라도 한국의 정치하는 친일파 얼빵들과 깃발을 흔들며 돌아다니는 산송장 늙은 것들의 하는 짓도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