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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든 록키산맥 야생 여우.

 언덕의 주차장 캠프에 여러 야생동물이 나타나기에 작은 나무로 가려진 돌 위에 매일 먹을 것을 놓아두었더니 차례대로 와서 물고 간다. 





일본 아이들과 산에서 내려와 저물어 가는 때에 저녁을 먹기 전에 미리 사놓은 소의 콩팥을 후라이팬에 구웠다. 버터를 바른 빵에 넣어서 갔다 놓으려는데 때가 되어도 저녁밥을 주지 않는 것이 이상했는지 여우녀석이 와서 이렇게 조신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산행이 늦어서 저녁준비를 늦게 했더니 녀석이 이렇게 기다렸고 부지런히 손을 움직여 접시에 담아 땅에 내려놓고 여우를 불렀다. 


(여우야 여우야 뭐하니 이리와!) 녀석은 언제 배웠는지 한국말을 알아듣고 주저함 없이 내려왔다. 





원래 얘는 이곳에 나무에 가려서 먹을 것을 놓아두는데 원체 영특한 아이라서 며칠이 지나자 적의가 없음을 알고는 이렇게 주위에서 맴돌며 애교를 부린다. 





배가 몹시 고팠는지 서슴없이 곁으로 내려와 뜨겁게 익은 콩팥을 먹기 시작했는데 아직도 야생의 본성이 있어서 눈치를 보지만 거의 기르는 애완견처럼 친근하게 다가온다. 





원래 야생동물은 늘 목숨을 걸고 생존하기 위해서 숨고 도망치고 싸우는 것에 이골이 나서 작은 움직임에도 섬짓 놀라지만 점차 익숙해져 크게 경계하지는 않는다. 




뜨거운 음식을 먹어본 적이 없어서 그런지 그리 뜨겁지 않은데도 살살 물어서 자갈바닥에 놓고 조금씩 깨물어 먹는다. 




다른 것도 물고 가서 조금씩 잘라 먹는 여우...




접시 바닥에 있는 육수까지 핥아먹는데 이런 생활이 그리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내가 이곳에 머무는 날까지는 음식을 차려주기로 했다. 




1985년에 야생동물에 관한 법이 바뀌어 이후로는 먹을 것을 주지 못하게 되었지만 이렇게 귀여운 녀석에게 어찌 주지 않을 수 있을까... 


세상의 법이란 것은 이유가 있어서 만들었겠지만 이런 경우에는 예외의 규정도 두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야생성을 잃어버린다는 이유로 이미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법으로 금지한 사항이지만 내가 먹기 전에 고수레 하는 의미로 언덕에 있는 돌 위에 음식을 올려 놓은 것을 제 스스로 와서 먹는 여우를 어찌 야단할 것이며, 한국의 풍습인 고수레가 미국서 법으로 금지되는지 알 수 없지만 소수민족의 옛 풍습은 존중되어야 하지 않냐고 하면 별 문제는 없을 듯하다.  


어린 애기가 엄마의 젖을 그리워 하듯이 얘도 먹을 것을 그리워 하는 것이고 평소에는 들쥐를 잡고 작은 새도 잡고 메뚜기도 잡아먹겠지만 나와 함께 있는 동안 얘가 도둑질 하는 것도 아니고 제 스스로 와서 밥을 차려달라는데 그것을 어이 거절하겠으며 사람이 그렇게 야박하면 죄로 간다. 





처음에는 냄새를 맡았는지 치즈를 물고 가더니 점차 모습을 나타내며 주변에서 지키고 앉아 음식을 그리워 하는데 천하에 인정머리가 없는 사람이라고 해도 어이 밥상을 차려주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밥을 먹고 남으면 싸가지고 가서 어디다 숨겨두고 오는지 그렇게 두어번 음식을 물어가는데 녀석은 무척 영악해서 한 곳에 가져가지 않고 각기 다른 세 방향으로 물고가서 그곳 어디에 파묻어 놓고 오는 듯했다.


컴컴해지면 이미 배부른 몸으로 곁에 와서 앉아있는데 그 모습을 보면 2006년 7월에 죽은 명견이고 충견인 진도개 주니어 모습이 떠오른다. 농장 사람들이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면 쏜살같이 사라져 몸을 숨기고 있다가도 다시 와서 앉아있는 얘를 데리고 가고 싶기도 한데 진도개 죽은 이후로는 동물을 기르는 것은 사절한지 오래되었다. 


늦은 저녁에 (여우야 뭐해?) 이렇게 부르면 잠시 후 모습을 나타내는 녀석인데 정들자 이별이라더니 앞으로 며칠이나 더 보겠는지 마음이 아릿하다. 




그동안 하지 않았던 이불 빨래를 하려고 40 마일 떨어진 인디언 부족 마을 Browning 로 가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던 차가 갑자기 엔진소리가 요란하고 잘 달리지 못하였다. 


무슨 문제인지 멈추어 살펴보는데 시동이 잘 걸리고 트랜스미션 오일이 부족한 정도라서 주유소에서 채워넣고도 이상이 있어 브라우닝에 있는 정비소를 찾았는데 여러 상황을 살피더니 엔진의 피스톤 베어링이 망가져 몇개가 작동하지 못하는 것으로 진단이 되었고 엔진을 모두 뜯어서 고쳐야 하므로 비용은 약 3'000 달러 든다고 한다.


견인차 없이 100 마일을 가려고 떠났는데 고갯길을 잘 올라가지 못하고 자칫해서 엔진이 더 망가져 복잡해질 수 있다는 생각에 다시 되돌아와서 수퍼마켓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보험회사에 전화를 해서 100 마일 떨어진 Kalispell 시티로 옮겨가기로 했다.


황당했던 것은 보험에 규정된 견인해주는 거리는 22 마일이 한계라며 260 달러를 추가로 지불하라는 것이어서 그렇게 했으나 이거 차후에 보험약관을 새로 살펴서 유리하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지난 6월에 우박을 맞아 전면이 찌그러진 것은 여행이 끝난 이후에 돌아와서 점검하여 보상금을 신청하겠다고 보험회사에 통보해 놓았으니 그 문제를 해결하고 이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원체 먼거리를 다니고 비포장 도로와 험한 산길을 마구잡이로 다니니 어딘들 고장이 없겠으며 그렇다고 한적한 아스팔트로만 운전하는 여행자가 아니라서 이런 상황은 늘 다가오게 되어 있다.  




견인차 운전자는 미네소타 출신의 백인이며 그의 의견은 이곳 정비소는 작은 것들을 고치는 정도라서 큰 도시로 가서 제대로 고치는 것이 훨씬 유익하다고 일러준다.  




그의 인디언 부족 부인과 어린 딸과 넷이서 견인차에 앉아 칼리스펠 마을로 떠났으며 정비소는 월요일에 문을 열기 때문에 우선 아무 주차장에 내려달라 하여 천천히 운전하여 월마트 주차장으로 가서 밤을 새웠다. 


일이 안되려니 여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고성능 렌턴도 고장이 났고 차안에서 전기를 사용해서 랩탑과 그외 전기 기구를 사용하는 인버터도 고장이 나서 새로 구입했으며 내일이면 이곳 공항에 도착하는 뉴욕 등반대와 함께 해야하는데 이런 상황이 되었다. 일단 오전에 정비소에 가서 차를 맡겨놓고 다른 것은 이후에 생각하기로 했다. 


여우가 한없이 앉아서 기다릴텐데 그동안 원래처럼 다른 것을 먹고 살아야 하고 떠나는 날 작별의 인사로 맛있는 고기를 구워줄 생각이다. 그리고 내년에 다시 오면 그때 만날 수 있고 그때는 다시 밥상을 차려주고 옆에서 같이 먹으면 된다. 너는 개구리 반찬이 아닌 고기 반찬을 먹고 나는 밥과 김치찌개를 먹자.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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