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일어나 Needle 마을을 향해서 95 번 북쪽으로 달리는데 한없이 넓은 사막이 며칠 째 끊이지 않았으며 해가 거의 중천에 이르렀기 때문에 느지막히 점심을 먹으려는데 인적도 없고 상점과 식당이 보이지 않아서 사막으로 들어갔다.
빈터에는 곳곳에 오르간 파이프 선인장 (파이프 오르갠을 닮아서 오르갠 파이프로 이름 붙은 선인장)이 있어서 그늘에서 추억의 청수 냉면을 삶았고 얼음물로 헹구어 김치를 넣고 조금 남은 고추장을 넣어 비벼서 먹는데 냉면과 사막은 환상의 궁합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막은 습도가 없어서 그늘에 있으면 시원해서 뙤약볕 아래도 문제가 없는데 가녀린 선인장에 가지가 많고 전혀 덥지 않아서 오래도록 앉아있었고 평소에는 마른 가지로 있는데 비가 왔었는지 작고 푸른 잎사귀가 가지 전체를 덮었고 그 안에 장미가시와 같은 가시가 헤아릴 수 없이 붙어 있었다
북쪽 유타주로 가려다가 우박피해로 상처가 난 자동차 보험을 처리할 일이 있어서 유타주는 잠시 뒤로 미루고 동쪽으로 달리다가 Flagstaff 시티에 도착하였고 이곳에 산재한 국립 마뉴멘트에 가기로 했다.
몇 곳을 둘러보니 인디언 폐허 유적지와 특이한 지형이 있지만 그리 특이한 곳도 아니고 흥미를 끌기 부족한 곳이라서 갑자기 정신이 헷갈렸으며 남부 콜로라도주를 가로질러 록키산맥 동쪽까지 가려다가 일단 마을에서 캠핑을 하기로 했다.
도시는 번잡스럽고 여행자에게는 별로 볼 것이 없어서 길을 떠나기로 했는데 이참에 40번 고속도로를 달려서 Petrified 국립공원으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불과 엊저녁까지 유타 주로 갈까 여러 번 생각을 하였지만 결국은 아침에 눈을 뜨면서 생각이 바뀌어 다른 곳으로 튀었다.
이래서 나에게는 일정한 여행지가 원래부터 없고 계획을 해도 소용이 없어서 대체적으로 그날그날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것이고 방향을 바꾸어 떠났어도 느닷없이 행선지가 바뀌기를 갑자기 먼지를 일으키며 심하게 불며 사라지는 돌풍을 닮아서 앞길은 나 자신도 알 수 없다.
Holbrook 마을에서 180 번 지방도로에 들어왔더니 다섯 대 기관차가 끌고 달리는 화물차가 기적을 울리며 달리기에 차를 멈추었다.
이곳 길가의 구조를 살펴보니 옛날에 고속도로가 생기기 전에 주요 도로였던 것이 60년대에 고속도로가 생기면서 사용하지 않아서 폐쇄된 기차역과 주유소 건물 등 모두 빈 건물로 남아있는 곳이고 기차는 빠른 속도로 달리기에 속도를 높여 추월하여 사진을 하나 찍으려 했는데 원체 직선의 평지라서 따라잡을 수 없어 되돌아 나왔다.
참고,
(미국의 고속도로는 34대 대통령 아이젠 하우어 대통령 1953-1961 시절에 건설되기 시작했으며 50년대 중후반부터 60년까지 전국적으로 논스톱으로 달릴 수 있는 고속도로망이 형성되면서 고속도로 주변에는 이런 폐허화된 마을이 생겨난 것이며 도로공사에서 부지와 건물을 모두 피해보상이 끝난 것이지만 옛 모습으로 남아있는 것이다.
Eisenhower 대통령은 2차 대전 당시 유럽 주둔군 사령관으로 재임하면서 히틀러 시대에 건설한 아우토벤 고속도로 유용성을 목격하고 이를 미국에 적용시킨 대통령으로 독일의 히틀러 시대에 대표적 유작으로 남긴 두 종류 폭스바겐 비틀 승용차와 아우토벤 고속도로 중에서 고속도로를 차용해서 미국의 도로망을 건설한 것이다.
아이젠하우어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케네디 대통령 정권이 들어서서도 개발은 계속되었으며 월남전이 한창인 시기로 이어져 존슨 행정부로 이어지고 한국에서 경부고속도로가 부분적으로 개통한 1969 년도에는 이미 미 대륙 전체의 고속도로가 완공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는데 지금의 고속도로 주변에 폐허처럼 널린 사용하지 않는 방치된 건물은 이런 이유로 생겨난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90년대 초에도 미 전역 고속도로 속도제한은 55 마일 (80 km)에 묶여있었는데 강력하고 정밀한 엔진을 만들어야 할 부담이 있는 미국 자동차 생산업체의 강력한 로비에 의해 속도제한이 풀리지 않다가 유럽차와 일본차가 성능이 월등하자 경쟁적으로 미국차의 품질개량이 활발해지고 성능개선이 이뤄지면서 지금의 속도로 점차 발전한 것이다.
90 년대 중반까지도 늙은 것들이 고속 주행하면 사고가 발생해서 위험하다며 시위하고 속도 제한을 55 마일로 규제해야 한다는 망발을 떨어서 제한속도가 조금씩 풀려나게 되어 지금에 이르렀는데 뼈가 석회질화 된 늙은 것들은 어느 사회에서나 문제가 많다.
지금은 인구밀도가 적은 드넓은 주는 속도제한이 최저 75 마일 부터 최대 80 마일 (약 120 Km)에 이르고 경찰의 단속이 없어서 그런 곳에서는 대체적으로 시속 140~150 km 로 달리기 때문에 무제한 고속도로를 연상케 한다.
화물열차를 쫓아서 홀브룩 마을까지 들어가서 그곳에서 한 바퀴 둘러본 후에 다시 고속도로에 왔으며 대형 트레일러에 반쪽씩 만들어진 주택을 싣고 달리는 차량을 만났다.
뒤에는 경광등을 켠 컨보이 차량이 깃발을 달고 호송하는데 저렇게 큰 집을 두 개 마주 보이게 조립하면 커다란 주택이 되는데 대륙에는 거칠 것이 없기 때문에 각종 대형 수송수단이 부지기수에 이른다.
유타주로 가지 않고 이곳으로 온 것에 대해 후회할 것도 없고 처음 오는 새로운 곳이라서 기대감이 컸는데 이곳은 지금 사막으로 변했으나 옛날에는 수풀이 우거져 거목이 살던 곳으로 나무화석이 전국에서 가장 많이 보존되어 화석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어마어마한 곳이다.
안내센터에서 지도를 받아 들고 간략한 질문을 한 후에 국립공원 안으로 진입하기로 했다.
화석 국립공원 면적은 서울시 전체 면적 233'7 평방 마일보다 약 4 평방 마일 작은 229'6 평방 마일이며 대륙 각 국립공원에 비하면 매우 작은 면적이지만 나무화석 분포는 이곳에 견줄 곳이 대륙에 없다.
캘리포니아 주 Death Valley 국립공원의 면적은 5'262 평방 마일이고 남한의 전체 면적은 38'691 평방 마일이니 남한 면적이 대드 밸리 국립공원의 약 7배 크기가 되겠다. 대륙의 국립공원 규모는 이렇게 엄청난 곳으로 평균적으로 보면 이곳 화석 국립공원의 규모는 매우 작은 곳이다.
이곳의 나무화석은 (수정) crystal 이며 이곳의 생성연대는 약 2억 년 ~ 2억 3천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데 화산 폭발로 우거진 숲이 뒤덮이고 화석으로 변한 곳이다.
즉 옛날에는 이곳이 우거진 숲과 물이 흐르던 기름진 곳이었으며 지구의 환경은 인간의 수명으로는 가늠하기 어렵고 실감이 나지 않지만 주기적으로 심하게 변하기 때문에 다양한 지질의 역사가 대륙에 널리 분포되어 있다.
수정은 석회석 지층에서 석회 물이 오랜 기간 흐르면서 맑은 결정체가 굳어져 생성되는데 이곳을 유추해보면 화산 폭발로 뒤집힌 이곳 지층의 석회 성분이 우거진 나무를 뒤덮어 억만년 세월 속에 나무로 침투하여 수정 crystal 화석으로 변한 것이다.
마구잡이로 다니면 수박 겉핥기가 되기 때문에 설명문을 차근히 읽어서 포인트를 뇌에 저장하고 길을 떠나 안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북쪽으로 진입하게 되어 있으며 이곳의 지명은 색깔이 짙은 Park 이며 앞에 펼쳐진 컬러풀한 지형은 7'500 평방 마일로서 남한 면적 약 5 분의 1 에 해당하는 크기로 펼쳐진 사막이다.
(전체 사막 크기를 표기한 것이 아니라 색깔인 짙은 사막의 크기만 분류한 것이다.)
비가 내리고 강물이 흐르던 시절 깎여서 생성된 곳이며 지금도 진행형인 곳이다.
곳곳에 있는 거리 표기를 보면 가까이 있는 곳이 직선거리는 대체로 수십 km 가 보편적인 광활한 곳이다.
이하 모든 사진은 일부분만 국립공원의 영역에 해당되며 멀리 보이는 곳은 평범한 사막으로 분류된다.
태고적에 해저에서 밀려 올라오고 이후 물에 쓸리면서 지층이 드러나는데 지금도 모래사막에는 비가 내리며 물이 흐르면서 침식작용이 조금씩 진행된다.
너무도 광활한 지역이라서 멀리서 살펴보며 억만년 전 이곳의 상황을 머릿속으로 그려보던 시간이었다.
계속 이어진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서 모든 곳에 멈추어 다각도로 살펴보는데 전혀 지루함이 없었다.
미국의 포장 고속도로 시조인 66 번 하이웨이가 이곳을 지났으며 당시에 방치된 자동차가 지금은 명물로 변해있다.
1927 년 형으로 보이는 자동차 ...
대륙의 동서를 잇는 40 번 고속도로가 국립공원 남북의 사이로 지나는데 특이하게도 고속도로 위로 다리가 건설되어 방문객이 지나게 되어 있다.
뉴 멕시코 주 산타페 시티로 이어지는 철도...
침식작용으로 무너진 바위 (사암)
이곳에는 약 8'000 년 전부터 2'000 년 전까지 푸에블로 인디언 부족의 조상이 살았으며 서부에 거주하던 인디언 조상을 통칭 (아나사지 푸에블로)로 칭하는데 그들이 모래 바위에 각종 생활상과 생태계를 그린 것으로 이 바위의 명칭은 news paper 신문 바위로 명명되었다.
바위를 망원경으로 자세히 살펴보는데 사슴과 도마뱀과 여타 동물의 그림은 있지만 말이 없는 것으로 보아 스페인 정복자들이 오기 훨씬 이전 14 세기 이전에 그려진 것으로 생각이 들었다.
전망대...
차츰 남쪽으로 향하는데 다양한 토양을 볼 수 있었고 드넓은 Mesa 가 침식작용에 의해 이렇게 되기까지 수천 만년 세월이 흘렀다.
고원지대가 깎이어 평지 사막이 되었고 메마른 기후와 토양이 끝없이 펼쳐진 곳이다.
유타 주. 아리조나 주, 아이다호 주 남부, 네바다 주, 콜로라도 주 남부와 북부, 뉴 멕시코 주의 보편적인 지형은 이렇게 생겼으며 미국의 사막은 이런 모습이 끝없이 펼쳐져 있다.
비가 쏟아지면 급류가 흐르는 곳으로 이런 곳을 wash (와시) 로 부른다. 씻겨서 내려가는 곳 뜻이며 비가 그치면 물 흐름이 없어지는 곳으로 이해하면 된다.
먼 곳에 있는 특이한 모래 바위를 클로즈업한 것인데 이런 모습이 곳곳에 널린 사막이다.
초입부터 이곳까지는 대체로 이런 지형이지만 조만간 나무화석이 지천에 널린 지대가 나오기 때문에 전체를 윤곽을 그리면서 남쪽으로 내려갔다.
이것은 Agate Bridge 이며 원래는 쓰러진 나무가 화석으로 변하여 길게 누워있는 곳을 나무화석 밑에 콘크리트로 보강하여 부러지지 않게 지지대를 만든 곳이다.
단단한 흙 성분이 빗물에 씻기면서 점차 브라이스 캐년처럼 변하는데 이런 것을 (후드스)로 부른다.
콘크리트 보강대를 보다 아름답게 만들었으면 좋겠는데 원체 오래전 만든 것이라 투박스럽게 만들어 눈에 거슬렸다.
이제부터는 본격적으로 나무 화석이 뒹구는 곳을 보게 되는데 눈이 미치지 못하는 곳까지 통나무 화석이 끝없이 있다.
약 2억 년 전 Triassic 트라이 아이식 기부터 Jurassic 줄라식 기 (참고. 영화 줄라기 공원) 시대로 이어지면서 이곳에는 거대 나무와 공룡이 서식하였으며 이후 화상 등 지질의 영향과 기후변화로 지금의 모습이 된 것이며 눈앞에 보이는 모습은 지금부터 6천 만년 전 이전에 생성된 모습을 보는 것으로 이해하면 된다.
이곳은 1883년 지질학자의 답사에 의해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후 1906년 국립 마뉴 멘트로 승격되어 보호지역이 되었고 1962년 국립공원으로 승격되어 지금에 이르렀다.
이곳은 1차 서부시대의 골드러시 금광 개발지역과 거리가 먼 곳이고 척박한 곳이어서 개척민이 늦게 들어온 지역이며 후기 서부시대에 해당하는 1883년에 조사가 시작된 것을 알 수 있는데 1883년은 맨하탄 남쪽에서 브루클린을 잇는 세계 최초의 현수교 Brooklyn Bridge 가 개통된 같은 연도에 이곳에서는 지질학자들의 탐사가 시작되었다.
서부 개척시대는 먹을 것이 있으면 사냥꾼과 광부 그리고 벌목꾼이 물밀듯이 몰려들지만 이곳은 황량한 사막으로 나무는 고사하고 풀조차 제대로 자라지 않는 곳이며 사람이 생존하는데 절대적으로 필요한 물 조차 귀한 곳이라서 개척자들이 들어오지 않은 곳이다.
이전에 멕시코를 오가는 스페인 탐험대가 인근을 지나던 곳이고 푸에블로 인디언은 물이 있는 곳에서 옥수수 농사를 짓고 야생동물을 사냥하며 살던 문명과는 전혀 거리가 먼 곳이었고 1845년 미국이 멕시코와 전쟁 이후에 매입의 형식으로 점령하여 지금의 미국 영토가 되었을 그 시기에도 이곳은 관심 밖의 땅이었다.
오늘은 서두를 쓰듯이 간략히 쓰고 2편으로 넘어가며 이곳을 소개할 것이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