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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궁에서 온 182세 대서양 초대형 랍스터 어르신.

오늘 포털 뉴스에 [출처 중앙일보] 알고보면 장수동물 랍스터, 학계에선 "영생도 가능" 미국 플로리다주에서 화제가 된 110세 랍스터 (몸무게 약 6'8Kg) 소식은 사실 놀랄 일이 아니다. '래리'라고 불린 이 랍스터는 동물보호단체에 의해 식당에서 구조돼 수족관으로 옮겨지던 중 죽었지만, 래리의 '동년배'들이 바닷 속 어딘가에 많을 것이라는 게 학자들의 견해다.)


위와 같이 겨우 110 살 된 어린 랍스터 이야기를 허풍스럽게 써놨기에 1798년 정조 임금 시절에 태어나서 용궁에 사시다가 1980년 광주사태 때 운명하신 몸무게 약 12 Kg 의 랍스터 어르신을 직접 만나뵈었던 2010년 9월 여행기록을 꺼냈다. ㅋ~



흐르는 세월은 바닷가재뿐 아니라 인간의 귀한 목숨도 거두어 역사의 뒤안길로 조용히 사라지게 하는 것이다. 제잘난 멋에 한 세상 잘난 체하며 살지만 모두가 덧없고 덧없음을 마음속 깊이 깨달아야 하는데, 미련한 인생들은 죽음이 목전에 다다른 늙음에도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돋보이려는 추한 욕심에 사로잡혀 살게 된다.

벽에 걸려있는 바닷가재는 영혼이 없어 천국과 지옥을 갈 일도 없겠으나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하는 제임스 오빠 같은 방문객들이 있으니 한 줌의 재로 변하기 직전까지도 까불고 잘난 체하는 안타까운 사람보다는 괜찮은 팔자가 아닐까...



보고 또 보고 이리저리 살펴봐도 처음 보는 크기의 랍스터가 신기하였고 큰 대접에 가득히 담긴 크램차우더를 먹으며 쉼 없이 바라보던 182살을 살다가 잡힌 대서양의 바닷가재...




포구의 입구에 자리한 식당의 모습이 마음에 들어 몇 번이고 되돌아보던 이날... 




이곳 포구에는 한국의 통통배 크기의 작은 어선들이 드나들고 개인용 요트로 가득하였다. 고기를 잡아오면 공판하던 장소로도 보이고 포구의 교통정리를 하는 기능도 있는 듯한 옛 건물과 축대의 모습에 시선이 꽂혀 감상에 젖게 되었다. 




Rockport '락폿'(바위로 이뤄진 작은 포구)는 그 옛날 유람하면서 거쳐갔던 한국의 항구와 포구의 모습과는 매우 다르지만 이곳은 300 년이 넘는 오랜 역사의 흔적이 곳곳에 보존되어 있는 아름다운 곳이었다. 




포구의 가운데는 주차장이 있으나 이곳 주민들에게만 주차가 허용된 곳이라 되돌아 가서 어느 길가에 차를 세우고 다시 오게 되었다.

바다 냄새가 나는 듯한 이곳의 제방 한가운데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데 돛단배 한 척이 어느새 미끄러지듯 대양을 가로지른다. 너무 거리가 멀어 렌즈를 최대한 당겨도 가까이 올 줄 모르는 떠나가는 배...

강산이 두 번 반이나 변한 옛 시절 뉴욕 롱아일랜드 바닷가 모래 언덕에서 먼 바다를 지나는 배를 바라보며 즐겨 부르던 노래가 있었다. "저 푸른 물결 외치는 거센 바다로 떠나는 배, 내 영원히 잊지 못할 님실은 저배는 야속하리, 날 바닷가에 홀~ 남겨두고 기어이 가고야 마느냐~!"

"터져 나오라 애 슬픔 물결 위로 오~ 한 된 바다, 아담한 꿈이 푸른 물에 애끊이 사라져 내 홀로, 외로운 등대와 더불어 수심 뜬 바다를 지키련다~!"  




마음속으로 음미하던 '떠나가는 배'는 저 멀리 사라지는데 '돌아오는 배'를 타고 포구로 들어오는 노년의 두 부부가 있었다. 나의 남은 인생도 저와 못지않게 돌아오는 배를 타고 여유롭고 다정하게 아름다운 포구로 들어오게 될 것으로 믿는다. 




보트는 내륙부터 바다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수없이 많지만 전체적인 분위기는 이곳이 그중 으뜸으로 생각이 되었다. 복잡하지 않은 마을에서 주중엔 무슨 일인지 모르지만 열심히 일하고 주말엔 가족이 함께 바다로 나가 낚시를 하는 모습이 환상일 듯하다.

이들 중 많은 사람들은 낙엽 지고 겨울이 시작되는 그때는 보트를 추레일러에 싣고 조지아와 훌로리다 먼길을 달려가 강남제비처럼 겨울을 보내고 따듯한 봄이 되면 이곳에 다시 돌아올 것이다. 




한눈에 살펴봐도 부유한 마을이 아닌 평범한 서민들이 살고 있는 곳이다.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과 여름 한철 장사를 하고 인근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이곳, 더러는 별장삼아 이곳서 여름을 보내고 겨울엔 훌로리다 주 남쪽으로 내려가 사는 노년들이 많으리라고 보이는 곳이다. 




건너에 보이는 바닷가 언덕을 가려는데 길이 멀어서 차를 가져와 천천히 좌우를 살피며 쇼핑가를 지나게 되었다. 




매우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도 있고 각종 기념품을 판매하는 분위기가 좋은 곳이다. 




오래전부터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을 상대로 장사하는 가게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줄지어 있고 간편하고 수수한 옷차림의 사람들이 느린 걸음으로 오가는 모습들... 




대서양 넓은 바다가 한눈에 쏙 들어오는 Rock Port '곶'(바위로 둘러싸인 바다로 돌출된 뾰족한 육지)에 서서 그 옛날 유럽서 건너오던 탐험가들의 모습을 그려본다.  




아이를 껴안은 엄마의 모습처럼 포구를 감싼 바위 언덕이 둘러서 있고 바다를 향한 좁은 입구엔 큰 파도를 막으려 방파제를 덧붙여 놓았다. 




이리저리 감상에 잠겨있는데 웬 돛단배 한 척이 천천히 들어온다. 아까 먼 바다를 지나던 돛단배가 온 듯하였다. 




언덕 저 아래로 미끄러지는 배를 살펴보니 아무래도 이곳을 기점으로 하는 관광선 같았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데 나와 오늘은 인연이 아니었다.



화강암으로 만든 긴 의자가 있고 동판이 붙어있어 살펴보게 되었다. 




20살 반을 살다가 세상을 떠난 딸 '샤론 매리 갤리갠'의 죽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이곳에 그녀의 가족들이 세운 것이었다. She loved it here " 딸은 이곳을 사랑했었다."


이곳을 자주 찾아왔던 샤론은 이미 세상을 떠난 지 오래지만 그 가족과 이웃들의 사랑으로 추억이 묻어있는 이곳 언덕에 그의 영혼이 멈추어 있는 듯하다.

지난번 본국의 신문기사에, 어린 자식을 버리고 도망친 악마 같은 우라질 년이 아들은 서해바다 깊은 물속에서 억울하게 죽었음에도, 보상금을 받아 잘 처먹고 호강하며 살겠다고 나타나는 비극이 먼 나라에서 발생했다.

블로그 목록의 여행기록에 자주 하는 이야기지만 가족을 추억하고 주민들에게는 안식처를 제공하는 미국의 이런 것 좀 본받아야 하는 거 아니냐? 미국을 제대로 알지도 못하는 것들이 선동에 휩쓸려 촛불 들고 발광하는 아름답지 못한 조국의 풍경들... 




이곳 레스토란 밖, 바윗돌 위에 지어진 툇마루에 앉아 오붓한 시간을 보내는 이들의 모습을 어이 아름답다 말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중절모를 쓰고 거닐던 노신사는 뒤따라온 딸아이와 더불어 대서양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찍고 있는데 모자를 쓰고 벗고 안경을 벗었다 다시 쓰라는 아이의 요구에도 재미있는지 불평이 없다.  




불과 몇 대만 주차할 수 있는 바위 언덕을 내려오면서 거리를 살펴보는 시간이다. 




오던 길 저편은 이곳으로만 들어오는 길이며 작은 골목길로 돌아 나가야 하는 이곳에서 바라보는 작은 거리의 모습은 무척이나 이채로웠다. 




수수한 옷차림의 두 딸과 엄마가 기념품 가게에서 물건을 고르고 있는 모습도 보인다. 




안락의자가 놓여있어 무엇인가 하고 살펴보니 지금까지 미국에서 살아오면서 본 집들 중 가장 작은 집 앞마당이고 뭔 장사를 하는 집은 아닌 듯하였다. 느낌에 숲 속에 사는 '스머프' 형제들이 여름에는 이곳 작은집에서 사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로 무척이나 작은 집이다. 




나무판자로 만든 '너와 벽'으로 만들어진 오랜 가게들은 예부터 이곳에서 여름장사를 했다. 




건물도 수수하고 거니는 사람들도 수수한 차림으로 모두가 어울리는 풍경을 만들어 가는 락폿 포구... 




오랜 판자 건물 안에는 ATM 기계 '현금인출기'가 놓여있고 어느 것 하나 새것이 없이 묵은 때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마을이다. 




아이스크림 가게를 들어섰다.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주문하고 이야기를 잠시 나누는데 방학에만 이곳서 일하는 학생이라고 소개를 한다. 1975년에 지어진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의 안은 작으면서도 운치 있는 모습이고, 




안쪽의 창가에 비치는 반대편 또 다른 포구의 가지런히 줄지어선 보트들의 모습이 그림처럼 보이는 곳이다. 




처음 미국에 온 삼십여 년 전에는 나의 눈에도 이런 우중충한 모습이 '뭐 이런 거지 같은 건물들이 있어! 이게 미국이야 뭐야!' 구시렁 대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새 건물에 대해서는 정감이 없고 때 묻은 역사의 숨결이 있어야 눈길이 간다. 




모두가 소담스럽고 가지런한 상점들이라 일일이 살펴보던 즐거운 시간들이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이곳을 돌아보며 메인 스트릿 '큰길'로 나오니 모두가 느릿느릿한 여유로움으로 거리를 다니는 사람들이 많다. 




지나온 St. Ann '세인트 앤' 안내소 아저씨가 가보길 권하던 교회를 찾아왔다. 떠나기 전 꼭 찾아보겠다며 골목을 돌고 돌아 찾아온 이곳이다. 이 교회는 Revolution War 당시 영국군의 함포사격으로 교회의 종탑이 무너져버렸던 곳이란다. 

시민군들과의 전투에서 함포사격을 해대던 영국 해군이 의도적으로 발사한 듯한 포탄이 포탑에 맞았던 그날의 모습을 생각해 보던 시간...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어디선가 이곳 교회의 이야기를 본 적이 있는데 기억 속 깊은 곳에 잠들어 있다가 이곳에 와서야 생각난 옛이야기... 




"Sandy Bay '만'(모래 백사장이 있는 육지로 움푹 들어온 곳)에 처음 이주한 사람이 하나님께 영광을 드렸다"는 설명문이 있는 교회 앞 동판에서 이곳의 유래를 읽어 내려가던 시간... 




신기한 것은 오랜 시간 마을을 돌아다니는데도 분위기는 비슷하지만 어느 한 집도 모양이 같은 집이 보이지 않는 곳이었다. 연립주택처럼 일률적으로 나란히 지어진 주택이 한 곳도 없는 너무나도 개성이 강한 마을이다. 




보는 눈에 따라 엉성하게도 보일 수 있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매우 유용하고 편리하게 지어진 건물임을 알 수 있다. 크게 화려하지도 않으면서 개성이 넘치는 아름다운 모습이 아닌가... 




마을을 돌아다니는 관광버스의 모습도 보인다. 삼백 년이 넘는 역사를 간직한 곳이니 자세히 살피면 볼 것이 많겠지만 나는 이곳을 떠나 남쪽으로 가기로 하였다. 




127번 도로를 찾아 골목길을 돌아다니는데 무척이나 낡은 울타리가 보여 일단 차부터 멈추었는데 그 옆에는 동판으로 된 팻말이 보여 다가서게 되었다. 내용은 '이곳에 처음 이주한 사람이 통나무 집을 지었던 자리'가 표기되어 있고 팻말의 맨 위에는 1630~1930 세월이 새겨져 있다. 
300년을 서 있다 결국엔 없어지고 지금은 집이 서있던 자리만 표시해놓은 곳이다. 




맞은편 언덕에는 오랜 옛집이 있고 길가에 선 돌기둥을 살펴보고 주택의 상태로 보아 150~200 년은 족히 되었을 집이었다. 물론 지금도 사람이 살고 있고 세월이 흐르면서 개축공사를 한 곳이지만 처음이나 지금이나 구조는 변함이 없이 서있는 독특한 양식의 주택이었다.

복잡한 뉴욕시를 떠나 동부의 바닷가에서 대서양을 바라보겠다며 먼길을 달려왔지만 이제부터는 점차 남쪽으로 방향을 잡아 시골길로 내려가려 한다. 나의 눈에는 아름답게 보이지만 남들의 눈에도 그렇게 비칠 것으로는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낯선 곳의 풍경과 모습을 바라보면서 풍요하고 느릿한 여유로운 모습들에 심취하였고, 오늘도 살아있어 이러한 모습들을 보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으로 푸른 바다와 푸른 하늘을 바라보던 하루였다.

악한 것에 대한 더러운 추억이 이제 거의 사라지고 가는 곳마다 예전의 시각으로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기억조차 가물거리는 옛 시절 러브스토리의 무대 찰스 강변에서 아름다웠던 옛 추억도 회상하고, 앞날에 반드시 다가올 아름다운 새 삶의 소망도 일깨우면서 만나는 것마다 늘 아름답게만 보이도록 기도하던 하루였다.

원체 만나기를 추악하고 더러운 종자를 만나서 망가진 인생이지만 오빠의 흘러간 옛 시절엔 아름다운 사연이 가을나무에서 우수수 떨어지는 낙엽처럼 많았다. 어린 시절 덕수궁과 창덕궁, 인사동을 거닐던 추억들이 변하여 오늘은 이곳 대서양 바위 언덕에서 바다를 바라보며 새롭게 피어나던 감사한 시간이 되었다.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깊은숨 들어마실새, 더럽고 악한 기운은 제절로 새어나가 다시는 기어 나오지 못할 깊은 바닷물 속으로 사라져 버리던 기쁨이 충만한 하루였다.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는 중국의 옛 성현 말씀도 떠올리던 오늘이다. 지난 석 달은 어진 사람이 되려고 산맥을 넘나들었고 이번 여행은 지혜로운 사람이 되기 위하여 바다를 온 것으로 생각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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