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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언 보호구역에서 만난 옛 친구.

2016. 6 28 이야기


DaumEditor Wygiwyg Panel

절벽위 Mesa 축제장을 떠나서 두번 째 메사 마을로 돌아와서 호피 인디언 문화센터에서 저녁을 먹고 모텔에 묵었는데 황량한 사막 이곳에 모텔비가 115 달러다. 모래언덕 평지에 있는 모텔인데 타이틀은 그럴싸 해서 호피 인디언 문화센터지만 작은 공간에 유품 몇개 있고 그나마 보는 사람이 없어서 개방하지 않았다. 


하여간 Native American 아메리카 원주민 보호구역을 다니며 느끼는 소감은 이들은 상당히 단편적이어서 더 큰 이익을 알지 못하며 우선순위가 무엇이고 자신들의 현재위치와 미래에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지식적인 대책이 없다. 이들을 까내리는 글이 아니라 모든 인디언 보호구역을 돌아보면서 느낀점이 많다. 인디언 자치구역은 종족끼리 담합하여 모텔비가 백달러 넘게 책정된 것이지만 이들은 하나만 알고 둘을 생각지 않는 것이 안타까웠다. 


 

이런 시골에는 찾아오는 사람도 별로 없고 모텔서 묵어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데 이런 때일수록 모텔비를 낮추어 50달러 정도 받으면 찾아드는 사람이 늘어 장기적으로 더 큰 이익이 발생하는데도 좁은소견에서 터무니 없는 가격을 받으므로 손실이 많은 것을 모른다. 


위 사진은 Third Mesa 에 하나 있는 주유소이며 가게 안은 규모가 크고 음식점도 갖추어진 곳이며 주인은 호피인디언이고 부인은 순수 백인여성으로 유일하게 얼굴에 웃음이 있으며 친절하였다. 

인디언 보호구역 거주민에게는 친절과 웃음을 기대하지 말아야 한다.  


프린스 가족은 오전 10 시에 모텔 안 식당에서 만나기로 하였으며 아침에 가게로 가기 전에 기념품을 파는 아저씨에게 주유소에 가면서 프린스 가족이 오면 식당서 잠시 기다리라는 부탁을 하였다.  

영감님은 뉴멕시코주 산타로사에 사는 푸에블로 원주민이며 일주일씩 곳곳을 다니며 자신이 만든 장신구를 판매하며 살아간다. 주유소 가게에서 영감님에게 옥수수잎으로 감싼 떡 두개와 코카콜라를 사다 주었고 그는 작은 승용차에서 자면서 일주일을 다니다 집으로 돌아간다고 했다.  


아이폰으로 찍은 그의 사진과 장신구를 사는 백인여인의 사진이 있었는데 실수로 삭제되었다.    



주유소를 떠나 모텔로 오면서 창가의 풍경에 셔터를 눌렀다.    




한국의 옛 마을처럼 구획정리 없이 자연부락 형태로 집을 지었으며 인적 제로에 습도 제로인 메마른 황무지다.   



세번째 Mesa 의 학교.


1 번. 2. 번 3 번 Mesa 를 중심으로 호피거주민의 숫자는 약 7000 명이며 대륙 전체에 퍼져있는 

호피인디언의 숫자는 약 1만여명으로 원주민 부족 가운데 작은 부족에 속한다. 


   


메마른 곳에서 조상때부터 살아온 이들이 신기했으며 이들은 아프리카와 중동 사막의 유목민처럼 사막을 떠나서 살기 어려운 종족으로 보이는 것은 사막생활이 유전적으로 체질화 되고 익숙해 이곳을 떠나서 숲이 우거진 곳에서는 살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인디언 보호구역은 척박한 불모지에 있으며 백인세력이 기름진 땅에서 동부의 원주민은 오클라호마로 강제이주시켰으며 중북부 기름진 평야에 살던 Cheyenne "샤이안 부족" 일부는 와이오밍과 몬타나 북부 사막으로 이주당했으나 이곳의 나바호 호피 푸에블로 아파치 등 부족은 척박한 아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사막에 살았으므로 강제이주 당하지 않았다.  


애팔라치안 산맥 스모키 마운틴과 대서양 인근에 살던 체로키 촉타우 세미놀 치카소 등 부족은 숲이 우거지고 기름진 평야가 있는 곳에 살았어서 오클라호마로 강제 이주 된 것을 참고해야 한다. 
 



 물은 고사하고 습도가 전혀 없는 이곳에 적응해서 살아가는 이들의 생명력이 매우 강인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두번째 Mesa. 


이들이 절벽위로 올라가지 않더라도 이곳을 탐내어 침략하지 않을 것 같은데도 또다른 부족의 침략이 있었고 약탈하던 역사를 보면 신기한 생각이 든다.   


 



주유소에서 돌아와 기념품 파는 아저씨와 손님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프린스 부인이 왔다.

첫번째 Mesa 에 가서 남편을 데리고 돌아올테니 기다리라며 떠났고 한시간 후에 가족이 도착하였다. 


이들은 축제에 참여하는 인디언 무용수여서 인형장사를 하지 않았으며 식당에서 이들과 두시간의 대화가 시작되었다. 여인의 큰아들은 첫번째 Mesa 에서 마무리 할 일이 있어 오지 못하고 그녀의 두 사내아이가 참석하였다. 이틀동안 벌어진 축제여서 목소리가 쉬었으며 몸은 지쳤으나 젊은친구라서 무리는 없는 듯 했다. 


식당에 인디언이 많이 왔는데 나지막한 소리로 저들은 이곳서 매일 음식을 먹으며 일하지 않는다 해서 의아했는데 호피부족 자치정부 정치인이며 대중을 이용해 이익을 채우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놀면서도 매일 이곳에서 식사를 할 수 있지만 일반 주민은 가난해서 이곳 식당을 일년에 한두번 오기 어려운 곳이라는 말을 들려준다. (한국의 기득권층과 같다는 의미다) 


두 아들에게 각각 10 달러씩 용돈을 주었고 오지 못한 큰아들에게는 지난번 사용하던 카메라를 봉투에 넣어서 전해주었다. 이곳에서 부부에게 호피인디언의 폐쇄적 사고방식에 대해 질문하고 듣는 시간이었다. 축제를 개방하면 결국 자신들을 혹평하는 루머가 퍼져서 몇년 전 아예 전지역 사진금지구역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호피부족은 은둔의 부족이며 다른 인디언 부족이 이곳에 오는 것도 반기지 않는다.  


(나는 역사기록을 하면서 꾸밈없이 본대로 느낀대로 쓰는 것일 뿐 나쁘게 평가하는 것이 아니다.)

이들 부부와 여행이야기를 하는데 석달전 콜로라도주 인디언 유적지 Mesa Verde 에 다녀왔다며 반가워 한다. 대륙에서 인디언 보호구역 이야기에 나와 경쟁할 사람을 만나지 못했으며 어쩌면 영영 만나지 못할 것이다.  


수익이 적어도 이곳은 생활비가 많이들지 않으므로 불편하지 않게 살 수 있고 주민 대다수는 87번 도로 들판에 있는 농장에서 일하고 또는 기념품 판매로 산다고 했다. 축제는 자신의 아이에게도 말하지 않고 어른만 참여하는 신성한 의식으로 절벽위 마을 아이들은 참여하지만 뭐든지 남에게 보이지 않고 숨기는 은둔의 관습이 이들에게 있다.  


이들은 흡사 북한정권을 보는 듯 원로회의에서 결정하면 철저히 따르는데 어느구역도 사진을 찍지 못하지만 나는 예외라며 웃는다. 바로 근처 테이블 기득권층을 아이폰으로 찍는데 조심하라며 주의를 준다. 이들에게는 엄연히 계급이 존재하기를 엄격한 공산주의를 보는 듯 했다. 여인은 47살이고 남편은 34살인데 원래 여인은 4 자녀가 있고 젊은 남편은 두 아이가 있는데 이들에게는 연하남 연상녀 그리고 유부녀 총각 유부남 처녀 그런 관념이 적다. 


교육을 충실히 했음인지 영어도 잘하고 지식도 많았으나 이곳의 미래는 불투명한 삶인줄 스스로 알고 있었다. 2년 전 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 도시로 떠나면 경제적으로 윤택한 삶을 살 수 있다고 했었는데 이들은 그런데 가치를 두지 않고 이곳서 소시민적으로 사는 것을 선호했다.  


부인에게서 깜짝 놀랄 이야기를 들었으며 이곳에 한국여인이 사는데 자신과 친척관계라는 것이다. 

이름을 물으니 "심" 이라고 해서 심씨 성의 여인일 것으로 생각했으며 남편이 노환으로 휘닉스 큰 병원에 다니느라 지금 집에 없을 것 같다고 해서 내가 찾아보겠다 했다. 이곳에 다시 들릴 때 있을 것이니 그때 만나자며 허그로 작별인사를 나누었고 가족은 내게 주소와 연락처를 적어주었다.   



 


 

모텔서 멀지 않은 곳이라 하여 천천히 살펴보기로 하였으며 어느 주택에 들어가 한인여인에 대해 물었더니 조금 지나왔다며 되돌아 가서 왼편의 큰 집인데 주차장에 검은색 지프가 있다고 알려주기에 쉽게 찾았다. 일반 주택에 비하며 두세배 컸으며 지붕에는 태양열 솔라시스템이 있다.  


주차장에서 클락션을 조금씩 눌러도 인기척이 없어 문앞의 벨을 몇번 눌렀더니 여인이 나오며 눈이 휘둥그레졌다. 한국말로 인사를 나누고 안으로 들어가서 한동안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아파치 인디언에서 한국인으로 변했다. 경기도 발안 인근이 고향이며 남편은 미국 군인으로 한국에 근무할 때 만났으며 43년 전 이야기였다. 그동안 한국에 가본 적 없으며 국제결혼여성에 대한 편견이 혈연관계의 장벽이었을 것으로 생각이 되었다. 남편의 군경력으로 연금이 있고 자신도 젊어서 직장생활을 해서 연금이 있어 충분한 삶이라고 말한다. 


심여인에게 더욱 놀라운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첫번째 메사 두번 째 메사인 이곳 그리고 주유소가 있는 세번 째 메사에 한국에서 파송된 선교사가 운영하는 교회 세곳이 있다고 한다. 첫번 째 메사 선교사 아들이 손주와 함께 왔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부친은 두시간 거리의 Flagstaff "깃발계양대 마을" 에 갔다고 했다.  


한국에서 지원하는 파송선교사이며 미국 각지 한인교인으로 부터 경제적 지원이 답지하고 방학을 이용해서 이곳에 봉사하러 오는 한인이 많아서 호피보호구역에서는 한인에게 반감이 없다고 한다. 

각자 특기를 살려 집도 고쳐주고 음식도 대접하고 음악도 가르치고 대구 계명대에서 파견나와 태권도를 가르치기도 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분의 시동생 부인도 한국여인이며 근처에서 농장을 경영하는데 고향이 파주라고 들려준다. 집안에는 사진이 벽에 가득히 걸려있고 활쏘기 대회에 남편과 출전한 사진 등 깨끗이 정돈된 실내였다. 

한국서 온 사람들이 연줄이 되어 본국 방송사에서 다큐멘터리 요청이 몇번 있었지만 거절했다고 한다. 매우 평안한 모습이었고 연세가 칠십이 눈앞인데도 건강하고 매우 젊었다. 


이곳에 온 선교팀은 심여인이 있어 연줄이 되었음을 알 수 있었다. 집안에는 노환으로 누워있는 남편이 있고 작별인사를 하고 떠났으며 아이폰으로 몇개의 사진을 정리하다 실수로 지워버려서 아쉽게 되었다. 유타와 아리조나에 오면 거치는 마을 나바호 보호구역 kayanta "캐얀타" 그곳에도 한인 여인이 한명 산다고 했으며 곳곳에 한인이 한 두명씩 산다고 들려주었다.   


  


 2년 전 장거리 여행 때 우연히 시골길로 가면서 들린 사막의 마을인데 이번에 다시 오게되었으며 호피인디언만 사는 것으로 보인 이곳에 한국의 선교사가 들어와 사는 것이 놀라웠다. 

마을은 언덕위 "Mesa" 에 자리잡았으며 척박한 이곳에서 조상 때 부터 살아가는 비결이 이들에게 있었다.     




이제 떠나면 언제 다시 올지 모르기 때문에 천천히 운전하며 곳곳을 살펴보던 시간이다.  


 


연료가 떨어져 가면서 저편의 87번 지방도로를 달려오던 시간이었고 사막에 어쩌다 하나씩 있는 농장이 이들의 삶의 터전이고 그외 병원 학교 등에서 일하기도 한다.   


 



갈길도 멀어서 저편 건물 앞에 있는 길을 지나 뉴멕시코주로 떠나기로 했다.  



 


들판을 자세히 보면 작은 창고건물이 하나씩 보이는데 그곳이 농장이고 이들은 소와 말을 기른다. 

보이지 않으나 곡식도 있을 것이다.   


 



병원도 있다. 


 



교회를 찾으러 첫번째 메사 마을로 왔는데 얼기설기 된 길이라 찾기가 수월치 않아서 절벽위 마을로 왔으며 이곳서 교회를 찾아 헤멨다.   




어제 길을 묻던 왼쪽의 집으로 다시 가서 교회를 물었더니 길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저곳 언덕을 넘으면 한인목사가 운영하는 교회가 있다.  


 




교회마당에 도착하니 너댓마리 개가 길게 누워있으며 목사 부인과 딸을 만나게 되었다. 미국에 온지 8년 되었고 교회는 원주민 교인들이 지은 것이라 했으며 안에 들어가보니 무척 넓은 교회였다. 


이곳에 앉아 잠시 기도하고 갖난아기 업은 부인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는데 미국 각지에서 지원이 있어 어렵지 않다고 했으나 문화가 다르고 한인은 각 마을에 있는 선교사 가족뿐일테니 대화가 원만히 이뤄지지 않는 불편함과 풍습이 다른 지역에서 삶이 고달프겠으나 선교의 삶은 그런 것이다.  

 


 


 

혹시나 하여 호피부족 영토의 한인교회를 유투브에서 찾아보니 학생들이 인디언 아이들과 찬양하는 모습과 봉사자들의 음식만드는 모습이 있어 캡쳐를 했는데 움직이는 동영상이어서 사진이 시원치 않았으며 임선교사 부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길을 떠났다. 





 

마을 한편에는 정부에서 지어준 것으로 보이는 주택이 가지런 하였다. 북녁의 샤이언과 수우 인디언 보호구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주택이며 정착지로 제공되는 것이지만 이지역을 벗어나지 말고 이곳에서만 살라는 묵시적 강압도 생각하게 되는 그런 보호구역 주택이다. 





일반사회서 살아가는 사람의 눈에는 바위언덕 저런 곳에서 어떻게 살아가냐고 반문할 수 있으나 이들은 그렇게 수천년 이어오는 삶이어서 떠나지 못할 것이다.   


 



들판에 물기는 전혀 없고 차가운 밤공기로 인하여 새벽이슬이 촉촉할 뿐이지만 이들은 우물이 있어 생존을 할 수 있다. 들판 농장에는 바람개비 탑이 있어 그곳서 지하수를 조금씩 퍼올려 동식물을 키우며 생활용수로 사용하며 살아간다.   



 


절벽을 지나면 보이는 것은 광막한 황야 뿐으로 들판에는 가축조차 보이지 않는다. 


 


대륙의 탐사여행가는 일일이 글로 쓰지 않는 이야기가 많지만 메주알 고주알 떠들 것이 아니면 조용히 묻어두고 내일은 어느 곳으로 가야할지 먼하늘 저편의 지평선을 바라보며 생각에 젖어든다. 


수백리 평야를 바라보며 사색에 잠기는 이때에 글을 대하는 독자는 무슨 재미로 저렇게 심심한 곳으로 돌아다나는지 의문을 품기도 하겠으나 인생은 태어난 그때부터 고독한 여행자의 삶을 사는 것이다.  


나에겐 친구가 있고 운동으로 엮여진 선후배 동료가 모두 뉴욕 뉴저지에 있는데 그들 모두가 열심히 살아가는 것에 바빠서 몇몇을 제외하면 여행은 남의 일로 여기는 사람이 많다. 그들 중에는 카지노 문턱을 넘으며 밤낮으로 술취해 오잡질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제각각 타고난 은사와 주어진 운명이므로 각자의 취향대로 살면 된다.   


술에 취해 토끼눈이 되어도 나와 상관이 없고 재물을 긁어모아 부유해도 나와 상관 없으며 너는 너의 길이 있고 나는 넓은세상을 다니는 은사가 있어서 황야의 지평선을 건너며 살아간다. 

황야에는 등대가 없으므로 길을 헤메일 때 있지만 내게는 지구상에 잃어버릴 길이 없고 지평선 넘어 발길이 닿는 곳 그곳이 나의 목적지며 고향이며 무덤이다.  



 


40 번 고속도로를 따라 동쪽으로 달리다가 주유소가 보여 진입하여 건너오니 어랍쇼! 낯익은 곳이었다. 주유소는 길건너에 있으며 이곳 빈터에는 쉬어가는 트레일러가 몇대 서있고 조용하고 넓은 곳이어서 빈터의 끝에 차를 멈추었다.    




봄에 역사의 도시 산타페를 거쳐 이곳을 지나다가 자전거 여행의 지존을 만난 바로 그곳이었다.  


  


지금은 샌프란시스코 그들의 집으로 돌아갔을 시기지만 언제까지나 이들의 모습은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이들 부부는 어디로 갔는지 모습이 보이지 않지만 그들이 남기고 간 추억은 오래도록 남아 있으며 이곳에서 그들을 기억하던 시간이다.     




그때 저들 부부는 잘 곳을 찾아 흙을 다져놓은 저편으로 갔었고 우리는 그렇게 작별을 고했는데 오늘은 내가 그곳의 빈터에서 자기로 했다. 길에서 잠드는 때 별로 없고 모텔 숙박이 열번이면 두번 정도 RV 주차장과 길에서 잠드는데 앞으로는 모텔을 가급적이며 피하겠다는 생각도 해본다. 


황야의 모텔은 WIFI 가 시원치 않아서 어차피 큰 마을이 있는 곳으로 가야 하는데 글쓰는 일이 아니면 꼭 모텔에 들어가지 않아도 된다.  




 


지난 봄에 스쳐간 광야의 스탁야드 stockyard "가축집하장" 을 다시 만나게 되었다. 저곳을 가려면 양쪽 길에서 수마일 가야 하는데 표지판이 없어 지나쳤으며 건너갈 수 없어 고속도로변에 차를 세웠다.   





수만마리 젖소가 무리져 있는 이곳의 정체가 궁금했기에 렌즈를 당겨 샅샅이 살펴보던 시간이었으며 의문은 곧 풀렸다.     





나는 시력이 좋지 않아서 사물을 자세히 볼 수 없는 결점이 있으나 카메라 원거리 렌즈를 통해서 살펴본 결과 얘들은 젖소부인으로 각광을 받는 홀스타인종이지만 모두 수컷이었다. 즉 젖소부인으로 성장하지 못하고 근수로 계산되어 팔려갈 아이들이며 남아선호사상이 있는 인간세계와 다른 동물농장에서 태어났으므로 농장주의 축복을 받지 못하고 고깃소로 길러진 평균 두살 미만의 어린아이들인데 저들의 의지와 상관없이 이곳으로 실려온 것이다.  


트랙터가 곳곳을 다니며 풀을 공급하고 얘들은 끝까지 사람이 마음씨 착해서 질좋은 풀을 한없이 주는 것으로 알테지만 인간은 너희들에게 풀을 그냥 줄 정도로 착한 생물이 아니다. 

영악하고 금전적 계산이 있으므로 각종 영양소를 공급하고 무럭무럭 자라게 하여 너희들이 한살 반 혹은 두살쯤 되면 이곳으로 데려와 마지막 가야할 곳으로 보낼 차례를 기다리는 것이다. 


육체는 Maximum 으로 성장했으나 정신적으로는 엄마를 따라서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었을 너희를 이곳에 데려와 도살장으로 보내는 그들이다.     




너희를 실어갈 이층으로 된 트레일러가 대기하였고 순번도 없이 근처에서 서성이는 아이부터 무더기로 실어 보낸다. 인간의 사악은 끝이 없어서 나와 너희가 세상에 태어나기 전에는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목욕을 시킨다며 옷을 벗게하고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그곳으로 들여보내어 문을 잠그고 독개스로 고통스럽게 죽이면서 축배를 들었으며 생체실험을 한다고 산채로 실험실에서 죽이는 무자비한 것들이다.  


너희들은 관심도 없는 종이 돈에 눈이 멀어서 사람이 사람을 때려 죽이고 애비를 칼로 찔러죽이고 그것도 모자라 토막쳐 없애는 인간을 천사로 아는 너희들을 보면 슬픈 생각이 든다. 너희가 아파서 기력이 없을 때 약을 주는 것은 얼른 먹고 나아서 근수가 많이 나가라는 뜻이지 엄마의 품속같은 사랑이 있어서가 아니다.  



 


얼마를 달려 사일렌지 수확하는 목초지를 만났다. 추위가 가시면서 땅을 갈아 엎고 씨뿌려 풀을 키웠는데 들녘에 있는 배고픈 소에게 주기 위함은 맞지만 여물을 주는 의도를 생각하면 .......... 


세상의 모든 질고를 내가 짊어져야 할 의무가 없고 나 혼자 몸도 살아가기 어려움이 많은데 들녘에 있는 수많은 너희들을 내가 어이 감당하겠으며 그렇게 불쌍히 여기면서도 산산히 조각난 부서진 너희들 육신을 사러 마켓을 가는 나도 공범 중 하나이니 말하면 무엇하랴....   




없어진 사진은 애석하지만 세상사 그까짓 사진이 뭔 대수냐. 이번에 가지 못한 곳은 다음에 가면 될 것이고 다음에 가지 못하는 곳은 그 다음에 가면 된다. 자동차로 대륙을 다닌 전체 거리가 40만 Km 가 넘어 지도에 그리면 엉킨 실타래처럼 정신 사납지만 다음에 기억을 더듬어 자세히 그려보려고 한다.  


2016 년 3월 초에 시작한 여행은 붉은선을 따라 간 거리가 약 3'200 마일 (약 5'100 km) 이었고 

4월 8일에 떠난 검은선 길은 곳곳에 실타래처럼 다닌 곳이 많아서 13'000 마일 (약 21'000 km) 이었고 6월 10 일에 떠난 파란색 길은 4'430 마일 (약 9'300 km) 이다. 


8월에 떠나려는 노란색 선은 어림짐작으로 약 오륙천 마일 (약 1 만 km) 이상으로 예상하지만 상황을 살피며 심사숙고 해야 한다. 9 월을 넘기면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의 험산준령 중에 넘지 못할 곳이 있고 몬타나주 록키산맥 Logan Pass, Glacier National Park 은 한여름에도 눈폭풍에 길이 막히는 곳이어서 8 월에는 떠나야 한다. 멀쩡한 육신이 느닷없이 죽어서 호흡을 멈춘채로 머나먼 저승도 단숨에 가는데 건강한 육신에 살아 숨쉬는 목숨이 지척에 있는 록키산맥을 가지 못한다면 죽은 사람에게 비웃음을 당해도 할말이 없다.  


 아래의 사진은 예고편이며 한여름 로간패스의 풍경이며 미국의 광대한 록키산맥 중에 으뜸인 곳이다. http://blog.daum.net/jamesju_usa/254  <-- 2009년 여름 로간패스 여행 기록.  


아는체 하기 좋아하는 여행의 하수는 가보지도 못한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을 말하지만 대륙여행의 진정한 고수는 몬타나주 록키산맥을 말한다. 이곳은 6 월 부터 9 월에 넘어야 하는데 여름에도 눈폭풍이 불면 길이 막혀 가지 못하는 곳이고 대륙의 북쪽 끝에 있어서 가기 어렵다. 여행을 숱하게 다니는 대륙여행의 지존급도 이곳을 모르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험산준령 로간패스는 자연속에서 야생동물과 함께 숨쉬는 곳으로 야생동물의 천국이며 미국 록키산맥 중 으뜸으로 대자연의 끝판왕이다. 이곳서 북으로 여섯시간 올라가면 Calgary city 가 있으며 그곳에서 두시간 거리에 캐나다 록키산맥이 있고 그 유명한 Banff "밴프" 마을이 있으며 밴프에서 세시간을 더 가면 록키산맥 중심부 Jasper "재스퍼 마을"이 있다. 야생동물의 천국이며 아메리카 대륙 신묘막측한 록키산맥 대자연의 완결판은 캐나다에 있다.  


 


몬타나주 북녘에 있는 글레이시어 국립공원 이야기는 기대 해도 실망하지 않을 곳이지만 앞으로 전개될 이야기 이므로 그때 가봐야 안다.  


이번 여행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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