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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사막을 걷는 신발 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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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주 새클라멘토 인근의 일을 마치고 남쪽으로 갈까 고심하다가 다시 Donner Pass 시에라 네바다 산맥을 넘어 네바다주 50번 도로를 따라서 동쪽으로 가기로 했다. Fallon 마을에 멈추어 일찍 모텔을 정하고 저녁을 먹고 일찍 잠들고 일찍 길을 떠나기로 했다.   




캘리포니아에서 남쪽으로 가려니 가본 적은 없으나 도박의 도시 라스베가스를 거쳐야 하고 하여간 별로 내키는 노선이 아니었다. 왼편 네바다주에 표시한 빨간색 동그라미에 못 미친 곳이 Fallon 마을이었고 오늘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곳이다.  


   


아침 일찍 길을 떠나며 주변의 농가를 둘러보며 가는데 이곳 농지는 말린 풀을 거두어 사료 더미로 만들고 있었다.    




이곳 일대는 살펴보니 밀을 많이 경작하는데 이미 낟알은 모두 걷어갔으며 말린 풀을 사료 더미로 만드는 중이다. 


세월아 네월아 떠나는데 갑자기 호출 전화가 다급하게 왔으며 삼 일 전 지난 레이크 타호에서 문제가 발생했다는 것이다. 이메일로 자료를 보내오고 확인해보니 되돌아 가서 시티 담당자와 의논할 문제였기에 두 시간 반 거리를 달리기 시작하였는데 만약 캘리포니아에서 남쪽으로 갔으면 거리가 멀어 낭패를 당할 뻔했는데 다행스럽게도 캘리포니아 출발해서 네바다주 50번 도로를 선택한 것이 득이 되었다.    




네바다주는 도박장이 곳곳에 있는 주로서 어떤 마을이던 도박장이 있고 주유소 가게마다 슬러트머신이 설치되어 도박중독자를 양산하는 주라서 그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황량한 들판에서 무엇을 해서 먹고사는지 궁금하지만 네바다주는 마을이 있으면 인근에 광산이 크던 작던 있다고 보면 되겠고 농업과 목축업도 이들의 생업이라고 보면 된다.    




다시 온 Lake Tahoe 레이크 타호.   




소풍을 온 사람들이 많았다.   




해발 약 1400 미터의 수면..........   




곳곳에 선착장이 있어 보트가 많고 아직은 본격적인 휴가철이 아니며 호수의 남쪽에서 북쪽으로 가려면 자동차로 약 50 여분 걸리는 큰 호수다.   




보트를 걸어놓는 부표...   




멀리 보이는 큰 건물이 있는 곳이 네바다주이며 모두 도박장이고 도박장과 함께 있는 호텔들이다. 


미국의 각 주에는 도박장이 성행하는데 그 이유는 좀 더 정리하고 분석해서 세계경제의 변화의 흐름과 함께 묶어서 한 달 후 별도로 글을 올릴 것이며 이삼주 후면 미정부에서 인가한 나의 국제정세분석연구소 설립이 끝나므로 그때는 본격적으로 세계정세의 흐름을 분석한 글을 쓸 계획이다. 여기저기서 긁어모은 도표와 주워들은 그런 것을 연구라고 낯간지럽게 발표하는 것은 있을 수 없고 인터넷서 서치하여 조합하여 만들어 연구실적으로 발표하는 그런 얄팍한 짓 또한 내게는 없으며 오로지 나의 추리력과 분석능력에서 나온 싱싱한 글만 쓰게 될 것이다.   




레이크 타호는 거의 캘리포니아주에 속해 있으며 일부만 네바다주에 속하여 도박장이 성행하고 있다.   




소풍객들........   




레이크 타호 주변에 빽빽한 소나무의 솔방울은 내 주먹의 두 배 가량 되는데 요세미티 국립공원에 가득한 세쿼이어 거대한 나무의 솔방울과는 다르고 보편적 솔방울과도 다르다.   




곳곳에 상권이 형성되어 있는데 과거에 지은 작고 오밀조밀한 구멍가게 형태의 건물이 많이 보이지만 지금은 자금력을 동원한 기업형 샤핑몰이 이곳에도 들어오고 있었다.     




나무가 걱정 없는 이곳은 사람의 몸통보다 훨씬 굵은 소나무로 건물을 짓는데 과거에는 판잣집 형태의 작은 건물이 시대의 흐름에 의해 이렇게 변모하는 중이었으며 미국과 캐나다에서는 자연경관과 매치가 되도록 통나무 건물이 대세이며 콘크리트 건물은 명승지에서 보기 어렵다.   




캘리포니아 레이크 타호 시티의 환경국 검사관이 왔으며 그와 더불어 문제를 의논하고 캘리포니아 주법에 맞게 일처리를 하고 완결되었다는 서명을 받고 키다리 검사관 아저씨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후 다시 길을 떠나 이곳저곳을 자세히 살펴보며 다녔다.    




어느 주유소 건물인데 통나무를 사용해 격조 있는 모습으로 건축하였고 본관 건물은 지중해와 멕시코풍의 흙집 형태로 지었다. 


다시 Fallon 마을의 같은 모텔에 왔더니 주인 내외가 반가워하며 이번에는 커다란 캐빈형 방을 내주었는데 부엌과 거실과 두 개의 방이 있고 혼자서 사용하기에 너무 큰 것이지만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다시 되돌아 가야 할 일이 없어 유타주 방향으로 50번 도로를 달렸으며 길 가운데 차를 세워도 방해할 차량이 없는 고즈넉한 사막이다.    




흰모래 사막 가운데로 지나는 길을 가는데 처음에는 이곳에 오기 전 물이 가득한 호수로 보였는데 점차 가까이 다가서면서 모래사막인 것을 알게 된 곳이다. 모래사막과 소금 벌판은 멀리서 보면 빛에 반사되어 물로 착각하게 되는데 사하라 사막의 신기루 현상을 따라 캐러밴이 가고 가다가 탈진해 죽는 그런 이야기를 이해할 수 있는 현상이다.  


가물거리는 먼 곳에 무엇이 있어서 카메라 줌을 당겨 보니 광산이었고 그 앞에는 호수처럼 물이 보이지만 저것은 물이 아니라 빛에 반사된 모래이며 멀리서 보면 어마어마한 모래사막 전체가 호수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얼마를 더 가니 이번에는 사막과 산맥 사이에 엄청난 모래산이 있기에 차를 멈추었는데 지난해 갔었던 콜로라도주에 있는 great sand dune (거대한 모래언덕)과 같은 것으로 생성된 원인도 같은 것임을 알 수 있었고 다만 모래 색깔이 이곳의 토질을 따라 금모래인 것이 다를 뿐이었다.  


http://blog.daum.net/jamesju_usa/668  <-- 콜로라도 록키산맥에 있는 거대한 모래산 이야기가 있으니 이곳의 모래산 생성 원인을 쉽게 알 수 있다.      




먼 거리서 바라보니 마을이 형성되어 있어 광부들이 모여사는 것으로 생각이 들었고 카메라 렌즈를 당겨 살펴보니 캠프촌으로 보였으며 모래언덕의 바퀴 자국으로 보아 둔버기(모래언덕에서 달리는 버기카) 자욱으로 보였으나 명확지 않아서 저곳을 가기로 했다.   


  


궁금하면 가봐야 하는 것이고 그곳에 식당이 있으면 늦은 아침식사를 하겠다는 생각에 모래언덕으로 갔다. 


   


오클라호마주 "리틀 사하라"처럼 모래언덕을 다니는 둔버기 카의 놀이터로 사용되는 곳이었다.   


 


가까이 가서야 그곳이 야영장인 것을 알게 되었으며 입장료 부스에 사람이 없어 입장료를 내지 않고 안으로 들어갔다.    




캠핑카가 마을을 이루었으며 추레일러에 둔버기 카를 달고 이곳에 와서 모래언덕을 달리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참고. 버기카는 차량마다 차이는 있으나 7~8만 달러에서 20 만 달러의 다양한 가격이고 직접 제작하여 타는 사람도 많다.)  


 


또 다른 곳 세상 풍경을 차분히 감상하며 다니는 시간이며 사막에도 어디든지 사통팔달의 길은 있어서

갈 곳은 많지만 저런 길은 따라가도 인적이 없는 고독한 길일뿐이며 어쩌다 드물게 사막의 농장이 하나씩 보이는 정도다.    




길가의 큰 나무에 무엇인가 잔뜩 열린듯하여 가까이 갔더니 수백 켤레가 넘고 약 천 켤레는 될 운동화가 걸려있었다. 심심한 사람들이 헌 운동화의 끈을 서로 묶어서 나무에 걸리게 던져놓은 것...   




대륙을 다니면 다양한 사람을 만나게 되는데 이번에는 달리는 용도로 만들어진 유모차에 물병을 여러 개 싣고 여행을 다니는 사람을 만났다. 그를 지나치며 보니 이불 식량을 모두 싣고 저렇게 걸어서 대륙을 다니는 황야의 강력한 무르팍 맨이며 신발 맨이었다. 인적이 있는 작은 마을을 스친 지 수십 마일 거리인데 그는 이렇게 걷고 또 걸어서 대륙을 다니는 독특한 여행자였다. 


수도자처럼 간편하게 다니다 길가의 풀숲에 들어가 천막으로 잠자리를 만들어 누우면 세상의 고뇌가 없는 그곳에서 은하수를 만나고 신묘막측한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  


  

사막의 농장. 


옛날에는 경계가 없던 땅에 말뚝을 박아서 경계를 표시했을 것이고 세월이 흘러 철조망으로 표시했으나 농장으로 부르기엔 그저 황량한 사만인 이곳인데 매우 드물게 한두 마리 소들이 오가며 잡초를 뜯어먹는다. 어딘가 샘물이 있으니 야생에 풀어놓은 소들이 살아갈 것인데 네바다주에는 텍사스와 뉴멕시코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물 저장고가 없으며 사막 곳곳에 물이 흐르고 고이는 곳에 소를 풀어놓는다.   


  


고도계를 살피니 이곳은 해발 약 1300 미터 되는 곳으로 삼천미터가 넘는 산에는 아직 눈이 쌓여있다.  


 


길을 가다가 팻말이 보이기에 순간적으로 스치는 생각이 있어 차를 돌려 들어왔더니 1860년부터 약 

2년 간 pony express (파발마) 가 달리던 길이고 대륙을 달려서 서부를 오가던 승객을 싣고 달리는 역마차 길이었다.  


(참고: 한국의 옛 파발마) 임금이 있는 도성으로 장계를 올리는 말을 몰아 달리는 파발꾼과 같은 직종을 서부시대에 포니 익스프레스로 불렀으며 이들은 속달 우편물 배달과 급한 연락을 하던 직업이었다.


(전신 전보가 생기면서 포니 익스프레스는 점차 없어진 직업이 된 것으로 보였는데 과거 한국에는 전화가 귀하던 시절 전보 배달부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자전거를 타고 도시와 산간오지로 전보 용지를 전달했으며 이후 전화의 대량 보급으로 역사 속으로 사라진 지 그리 오래지 않았다.)    




내가 선 곳은 you are here 별 표시며 광야를 달리는 승객용 역마차 역(Overland Stage) 표시는 이미 지나온 길에 있어서 진행해야 할 길 방향에 있는 전보 전신국의 옛터를 살펴보기로 했다.  


  


안내판에 있는 네바다 황야를 달리는 역마차 사진.   




위 사진이 포니 익스프레스이며 이들은 황야를 급속히 달리며 긴급 연락을 하던 미국의 파발꾼이며 파발마였다. (참고: 서대문구 구파발)   



앞에는 돌무더기가 쌓여 있으며 저곳이 전보 전신 중간 기지국이었는데 미국의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1861년 남북전쟁이 발발해서 1865년 끝나는 중간 시기인 1863년 당시 미국에 속해있지 않던 중서부에서는 이미 태평양 샌프란시스코로 연결되는 철도공사가 캔자스에서 시작되었고 전신을 보내는 전봇대 공사가 동시에 이뤄졌으며 이곳 네바다는 오지 중 오지이며 중부와 서부에서 먼 지형이므로 1865년을 전후해서(고종 임금이 왕위에 오른 바로 그때쯤) 전보 전신이 개통되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주변에는 커다란 사막의 들토끼가 뭐가 그리 궁금한지 힐끗 쳐다보며 럭비공처럼 사방으로 뛰어 수풀 속으로 사라지고 다른 녀석들이 반복적인 행동을 하였다.  


황무지 이곳 사막에 그 옛날 역마차가 달리고 파발마가 달리던 길이 이렇게 선명히 남아있는 것은 건조지대의 기후가 결정적이고 또한 큰 도로가 건설되기 이전에 초기의 자동차가 사용하던 신작로 역할을 했기 때문으로 생각되었다.  


역사가 긴 한국의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길은 지금도 전국 곳곳에 남아있으며 한국의 역사는 내가 아니라도 써 내려가고 해석하는 사람이 많지만 이곳 미대륙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는 현지를 직접 찾아다니며 한국어로 쓰는 작가가 없으니 당연히 내가 써야 하는데 인생 말년에 호사스럽게도 운이 하늘에 닿아서 서부개척시대를 둘러보며 이렇게 옛 생각에 젖어드는 호강을 하는 것이다.    




이곳 cold springs (차가운 샘물이 곳곳에 있는)이 있는 지역 무인지경의 사막에서 RV 차량 야영장을 운영하는 식당에 도착하였다. 그래서 이곳에서 점심을 먹으려고 들어가니 두어 명 손님이 있고 그중 한 명은 원주민이고 캠프에 있던 사람들이 식당에 들어와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천장에는 서부시대 엽총이 매달려 있고 1차 대전 때 제식 소총으로 사용된 소총도 있었고 다른 천장에는 서부시대 초기에 사용된 진품 단발 소총 등이 매달려 있었다. 주인아저씨는 주방으로 음식을 만들러 들어가고 아주머니와 손님과 셋이서 가벼운 이야기를 나누다가 아래의 사진에 시선이 고정되었다.   




술이 들어있는 냉장고 유리문에 붙어 있는 (트럼프) 홍보 스티커였다.  


동부의 뉴욕과 서부의 캘리포니아가 유색인종이 많은 밀집지역이라서 숫자가 많아 공화당이 불리하지만 중부내륙을 중심으로 하는 백인 지역은 언제나 공화당이 전폭적인 지지를 받는데 그래도 갈수록 숫자에 밀려서 점점 민주당에게 유리해진다는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흑인과 남미계는 정부에서 지원금을 받아 생활하려고 자식을 많이 낳아서 결국은 시간이 흐를수록 유색인종 유권자 숫자가 급속도로 발생하는 것이 현재 미국이 처한 상황이며 민주당의 정책은 이민자들에게 혜택을 베풀며 지지표를 끌어모으는 정책을 편다. 


미국은 남북전쟁 이후 활성화되었던 노동집약적인 1 ~2 차 생산업과 철광업 등이 거의 소멸되어 흑인 노동인구의 감소가 급격히 이뤄지고 그런 이유로 사회 빈곤층이 양산되었고 빈부격차가 심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더니 아주머니가 거의 놀라운 모습으로 듣고 있었고 옆에 있던 인디언 혈통이 아저씨도 수긍한다는 표정을 짓는다.  


이들에게 자세한 이야기는 필요치 않아서 수다를 떠는 정도로 끝맺음을 하였는데 미국 내륙은 어디를 가든지 트럼프를 지지하는 슬로건이 눈에 띈다.   




요즘 자꾸 언론이 부추겨서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고 선동을 하지만 강력한 미국의 지위를 찾자는 그의 생각은 틀리지 않은 것이다. 힐러리가 되었다면 벌써 U 민족의 앞잡이가 되어 지구 상 어느 곳 중동에서 전쟁을 확대하는 음모가 이뤄졌을 것인데 비해 트럼프는 그래도 고집과 자신의 철학이 있어서 신중모드로 가고 있는 것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오바마를 지지하고 그의 업적을 찬양하지만 정세를 분석할 것도 없이 오바마는 임기 8년 동안 U 의 대변자로서 중동과 아프리카 내전을 확산시킨 것과 오바마케어 (오바마 정부가 만든 의료보험) 외에는 정책적으로 한 일이 없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참고: 미국의 의료업 전체는 U 집단이 장악한 지 오래이며 오바마 케어는 그들 집단의 이익만을 위해 만들어진 정책적 제도인데 사람들이 그걸 모르니 문제다.  


그가 최초의 흑인 대통령으로 인성이 부드럽고 그의 부인이 명랑하고 친근한 호감이 있다 하여 사람들은 그들을 칭송하지만 세계 제일의 초강대국 미국은 그런 선량한 무대 배우로는 운영하지 못하는 제국이며 미국의 대통령은 깡패 기질도 있고 단순 무식하면서도 지적인 면을 골고루 갖춘 사람이어야 한다. 오바마는 U 민족의 100 % 지원을 받아 정권을 잡았고 그로 인해 약점이 많아서 독자노선을 구축하지 못하고 끌려다니고 임기에 특별히 한 것이 없는데도 처신을 잘해서 인기가 높은 특이한 대통령이다.  


미국을 잘 모르는 한국인은 언론에서 다루는 기사만 보고 트럼프를 탄핵해야 한다며 열변을 토하지만 만약 무슨 이유로 트럼프가 탄핵을 당해야 하냐고 묻는다면 명쾌한 대답을 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해답이 없으면서도 언론의 속삭임에 넘어간 우매한 사람들이 대한민국에 널렸다. 


오늘의 아침 겸 점심은 커피와 베이컨, 달걀프라이 3개와 잘게 썬 감자볶음과 토스트로 주문했다. 마을도 아닌 이곳을 지나다 만나게 되어 감사했으며 사막이 오아시스와 같은 이곳은 언젠가 다시 찾아올 날이 있을 것이다.    



콜드 스프링스 RV 주차장이 마을처럼 보이지만 모텔과 야영장과 식당이 전부이며 포니 익스프레스 파발마가 미친 듯 달리는 모습으로 입구가 표시되어 있다.  


  


흰 눈이 덮인 높은 산을 바라보고 또 바라보면서 드문드문 있는 작은 마을을 살피면서 나는 그렇게 동쪽으로 향하고 있었다. 황량하기 이를 데 없는 네바다주 거친 황야가 마음에 쏙 드는 까닭은 어쩌면 나의 기질이 옛날의 서부 개척자를 닮아서 그럴 수 있으나 나의 성품은 거칠기보다는 서정시인과 같은 면이 많고 풍류를 즐기며 광야를 헤매는 반인 간 반신선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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