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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바다 사막에서 만난 서부시대 황야의 카우보이 후예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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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량한 벌판 네바다는 풍경이 단순하고 이곳이 저곳이며 저곳이 그곳이고 그곳이 다시 이곳으로 착각을 일으키는 거의 같은 풍경의 연속이지만 거친 사막과 황야가 내 마음을 사로잡는 곳이다.  



인구밀도가 매우 낮은 지역이고 오가는 차량도 드문데 이렇게 자전거를 타고 먼 길을 다니는 여행자들이 있으며 그들은 도대체 어디를 향해서 가는지 끝이 없는 듯한 길을 묵묵히 달리고 있다.   




클린트 이스트우드 아저씨가 대표적 인물인 웨스턴 마카로니 영화 속에 나오는 사막의 마을에서 인상을 찡그리고 담배를 물고 걸어갈 때, 부는 바람에 뒹구는 엉겅퀴 같은 풀더미가 있는데 그것이 바로 사막에 가득한 이 풀이며 심한 바람에 뿌리가 뽑혀 말라서 죽은 것이 센바람에 밀려 구르며 스산한 느낌을 준다.     




이곳 언덕길 에이리 산 정상에 도달하니 해발 6'679 피트 (약 2'003 미터) 표시판이 서있다.    




지난해 여행기록과 올해 기록을 보면 사진에 보이는 네바다 사막의 모습은 단조롭고 한 곳에 멈추어서 셔터를 누른 것처럼 거의 같은 모습이지만 나그네는 황야를 건너고 산맥을 넘어 끊이지 않고 가고 있었다.    




이곳에 표지가 서있고 1960 년 ~ 1961 년도에 "포니 익스프레스" (조랑말 특급) 가 달리던 옛 역사의 길이 또 나왔다.  

당시 이곳 네바다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별로 없는 곳이었고 조랑말과 역마차가 다니는 시기에는 본토에서 파견된 기병대가 주도권을 잡고 있어서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된 곳으로 보겠으며 눈에 보이는 작은 길에는 서부로 금을 캐러 가던 골드러시의 포장마차 행렬이 있었을 것이고 길을 가다가 병사하거나 인디언과 전투에서 발생한 사망자를 길가에 묻고 떠난 그런 흔적이 어디엔가 있을 것이다.  

서구인은 아시아권 사람과 달리 현실에 적응을 잘한다는 생각이 들고 지난 과거지사의 추억에서 벗어나지 못해 우울해하는 그런 사례가 한국인에 비해 현저히 적다고 보면 맞는다.  

옛 서부영화를 기억해보면 서부로 가던 역마차 행렬이 인디언의 습격으로 마차를 빙 둘러 눕히고 동물과 어린이와 아녀자를 가운데 보호하며 남자들이 총격전을 벌였는데 그들 중 불운하게 화살과 창과 도끼에 맞아 절명한 가족이 발생하면 그들은 얼마 지나지 않아 현실에 적응하여 일행 중에서 새로운 짝을 만나 가정을 이루는 장면이 많았는데 이들 서구인들은 그런 면에서 불행을 잊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것으로 보면 되겠으며 영화 속 이야기 아닌 실제 생활에서도 환경 적응이 매우 뛰어나다.   



어스틴 마을에 도달하였는데 어랍쇼 ~ 이런 오지에 서부시대 마을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어 뛸 듯이 기뻤다. 작은 판잣집은 옛날에 주유소였을 것이며 한편에는 진공청소기가 서있는데 지금은 폐업한 곳으로 보였다. 정면에 큰 상점을 겸한 주유소가 있어 연료를 채우고 마을을 천천히 살피며 길을 떠났다.      

60년대까지 서울에 많았던 일제시대 적산가옥처럼 판자로 지은 건물이 서부로 갈수록 눈에 많이 띄는데 이런 건물은 전통적인 서부시대의 유산으로서 지금도 사용하며 서부시대를 지켜본 진품 건물로서 비가 적고 기후가 건조한 중서부에 보물처럼 곳곳에 온전히 보존되어 있다. 

뉴욕에서 훌로리다로 이어지는 대서양 기후 지역은 비가 많고 습도가 높은 지역이어서 목조건물의 수명이 짧지만 아직도 곳곳에는 잘 보존된 판잣집과 통나무집이 많고 특히 노스 캐롤라이나주 산간지역과 버지니아주 웨스트 버지니아주에 상당수 널려있다.  

한국은 목조건물의 나라여서 지금도 곳곳에 역사를 품은 사찰이며 고궁과 옛 한옥이 많지만 미대륙은 역사가 짧고 당시 지리적 상황과 시대적 상황에 의해 편리하게 지어진 판잣집이 많았다고 보겠다.    


근처에 운치 있는 Bar와 식당으로 사용되는 판잣집이 또 있는데 전편과 마찬가지로 이 건물 정면에 "트럼프 " 의 포스터가 걸려있다.  


(Make America Great Again) 

1. 다시 미국을 위대하게 세우자. 

2. 2차 대전 이후 세계를 제패했던 그 시절 강력한 미국으로 돌아가자. 

3. 남북전쟁 이후 급격히 발달한 철강 철도시대와 항만 등을 포함한 부유하고 강했던 산업시대로 돌아가자는 그런 구호로 해석하면 된다.


주류백인층은 강대한 미국을 원하며 선량한 이민자를 거부하는 것은 아니지만 무조건적으로 관대한 이민정책에는 반대하고 남의 나라 내정간섭에 치중할 것이 아니라 미국서 생산하고 미국서 소비하여 미국인이 잘살자는 그런 희망으로 이해하면 된다.  


그러나 착한 대다수 국민들은 미국과 서유럽과 동유럽 모두를 석권한 U 의 세력과 전략에 큰 지식이 없으므로 성경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생각을 하지만 세계정세는 거대 재벌의 U 중심부가 부를 추구하는 전쟁을 끊임없이 일으켜 피를 부르고 생산업과 소비를 촉진시키는 경제전략을 펴는 것으로 미국민은 늘 전쟁의 가운데서 갈등을 겪으며 살게 되어 있다.  


(이런 이야기는 차후 나의 국제정세분석연구소 이름으로 하나씩 풀어갈 예정이니 잠시 기다리면 된다.)   




위 건물은 옛날 서부시대부터 존재하는 식당을 겸한 술집이고 이 건물이 간직하고 있는 서부시대 역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은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서부 개척사를 다룬 영화에서 아래층은 식당과 술집이며 담배연기 속에 포커에 열중하는 부류와 술집 여자를 농락하는 부류 그리고 식사를 하기 위해 들린 나그네 등이 옛날 저 판잣집 안의 풍경이었고 위층의 용도는 값싼 여인숙에서 묵어가려는 나그네의 안식처였으며 또한 아래층에서 호스티스를 농락하던 총잡이가 깔깔거리는 여인을 데리고 목적 달성을 위해 위층으로 데리고 올라가던 곳이며 이런 곳을 Inn (주막 여인숙 또는 주막집)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조선시대로 말하면 보부상들이 묵어가는 주막집이고 주막집에는 밥과 술을 판매하였고 공동으로 잠을 자는 방이 있었는데 조선시대의 그런 곳이 미국의 Inn "인"과 같은 곳이다.) 

기억이 희미하지만 옛 단편소설 "발가락이 닮았네" 메밀꽃 필 무렵" 내용에 주막집이 나오는 거 같다.  

하여간 지금은 도시에서 큰 규모의 호텔도 Inn으로 이름 지은 것이 많지만 숙박업소의 명칭이 옛날에는 확실히 구분되어 있었다고 보면 되겠다. 


(참고) 호텔과 모텔의 호칭은 무슨 뜻이 있는가 하면.... 

호텔은 Horse Tel "즉 말 타고 다니던 시절 나그네가 묵어가던 곳으로 통째로 크게 지어진 숙박업소에 로비를 통해서 안으로 들어가는 곳으로 생각하면 된다. (호텔에 속해있는 별채 마구간에서 마구간지기에게 맡겨 여물을 먹이고 털 손질도 하고 말발굽도 고치며 말을 먹이고 재우는 장소가 별도로 있는 곳을 뜻한다.)  


모텔은 Motor Tel "즉 자동차가 발달하면서 편리를 위해 방문 앞 주차선에 차를 세우고 바로바로 방으로 들어가는 숙박업소를 모텔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나는 차를 가지고 다니기 때문에 방문 앞에 차를 세울 수 있는 모텔을 선호하는데 지금은 명칭이 혼동되어 호텔형 숙박업소에 모텔이라 쓰여있기도 하고 모텔에 호텔이라고 쓰여있기도 하지만 유래는 그렇다. 


영화 속 장면을 조금 더 떠올리면 마을을 습격한 무법자 떼강도들이 마을 주민들과 총격전을 벌이고 주민들은 곳곳에 숨어서 총을 쏘다가 난간 위 발코니에 숨어서 총을 쏘던 주민이 무법자의 총탄에 맞아 비틀거리다 난간이 부서지며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그런 장면을 연상시키는 건물이었다.   




지금은 청소년 센터로 사용하지만 옛날에는 마을의 교회였던 곳이다.   



가게 용도로 사용된 듯한 건물인데 대문의 용도는 무엇일지.........   




서부시대에는 말고삐를 건물 앞에 묶어놓는 가로 막대가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지고 마을길은 아스팔트로 포장이 되어 있지만 건물은 옛 모습 그대로다.   




이곳 오스틴 마을의 "sheriff 보안관 사무소이며 서부시대부터 이곳에는 마을 보안관이 상주하며 지금도 보안관은 서부시대와 마찬가지로 가슴에 별을 붙인다.   




마을 의원 또는 의료 재활원.   




산맥을 넘어야 하는데 구불구불한 산길에는 난간이 없으며 중턱을 조금 지난 곳에 잠시 차를 멈추고 아래를 바라보았다. 지금은 넓게 만들었으나 옛날에는 말과 마차가 다니던 좁은 산길이었을 것이고 이 길을 통해서 내가 지나온 곳으로 왕래하던 이들 선조들의 모습을 그려보았는데 브레이크가 시원치 않았을 마차를 몰고 산길을 내려가던 마부의 모습을 생각하면 몸이 움츠려 든다.   


 


산맥을 넘어 도로 아래에 있는 농장을 보며 차를 멈추었는데 방치된 축사와 창고가 아닌 지금도 실제로 사용하는 농장 건물이며 한국인 또는 미국의 도시인이 보면 우스꽝스레 보일 수 있는 건물과 나무 울타리지만 이들은 바보라서 지금도 사용하는 게 아니라 조상님 숨결이 스며있어서 사용하는 것이고 현대식 울타리로 개조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사용할 수 있어서 저대로 사용하는 것이다. 


이런 곳을 자세히 살피면 농장 외곽은 촘촘하고 높은 나무 울타리가 성벽처럼 만들어져 늑대와 이리떼 살쾡이 등으로부터 농장 동물을 보호하게 되어있는 것을 알 수 있고 농장 안에는 철조망이 쳐진 이유는 말과 소 양 등을 구분해서 격리하여 기르려 쳐놓은 것이다.     




만약 미대륙에 외계인이 찾아든다면 그들은 황량하고 드넓은 대륙 속의 대륙인 이곳 네바다 사막으로 올 것이라는 생각이 들고 지구를 제외한 생명체가 겨우 살아가는 열악한 환경의 행성이 은하계 안에 분명히 있을 텐데 이곳 네바다 사막과 가장 비슷할 것이라는 느낌이 드는 곳이다. 유타주, 콜로라도주 남부, 애리조나주, 뉴멕시코주 등도 대상이 되겠으나 네바다주가 외계인에게는 매우 잘 어울릴 것이라는 나만의 생각이다.     



네바다주 지형을 간략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산맥을 넘으면 직선의 길이 저편 산맥으로 이어지고 백리밖에 있는 그 산맥을 넘으면 또다시 이것과 같은 직선도로가 나오고 이번에는 분명히 조금은 다르겠지 하는 생각으로 산맥을 넘으면 똑같은 모습의 직선도로가 이어지기를 반복하는 지형이다.    




내가 지나온 곳을 열심히 걸어서 네바다 사막을 횡단하는 강력한 무르팍을 가진 신발 맨도 있는데 나는 참으로 호사스럽게 여행을 하고 있다.    




사방을 둘러봐도 이런 모습이고.........   




수십 리를 더 가면 이렇게 좀 더 가까워진 모습이고....... 


 


그렇게 가다 보니 이번에도 서부시대 마을이 고스란히 보존된 Eureka 유레카 마을이 나타났다.     




오래전 나는 궁금증에 잠겼었다. 


서부시대의 마을길이 왜 이렇게 넓었을까 하는....... 


곳곳을 다니면서 해답을 얻었는데 이유는 여러 마리 말이 끄는 마차의 전체 길이는 지금의 트럭보다 길고 주막집과 상점 앞에 그 마차를 세우려면 대각선으로 비스듬히 세워야 하는데 마을 양편에 마차를 세우고 가운데로 마차가 또 다니려면 지금의 4차선 도로 넓이가 되어야 하며 옛날 그 길에 아스팔트를 덮은 것이 지금의 시골마을 도로의 모습이다.   




이곳 유레카 마을의 호텔이며 위에서 소개한 것처럼 호텔은 문으로 들어가 로비를 통해서 방으로 들어가는 곳이다. 서부시대에는 시골마을에서 이런 호텔이면 호사스러운 것이었고 지나온 곳 주막집은 상대적으로 허술하고 저렴한 것으로 이해하면 되겠다. 


마을은 크지 않지만 호텔 옆에는 Eureka "유레카 오페라 극장"이 있어 옛날에 연극을 공연하던 문화시설이 있는 것을 알 수 있고 광산을 개발하던 부유한 개척자들이 이곳에 거주하고 지나다니던 교통의 요지임을 알 수 있었다.   




거리 양편에 지어진 벽돌 건물을 보면 이곳이 지나온 어스틴 마을보다 부유한 거주인구가 많았음을 알 수 있고 광산업으로 경제력을 갖춘 나그네들이 지나던 길목임을 알 수 있었다. 




마을 한편에는 서부시대보다 더 이전에 이곳에 살았을 누군가가 지은 작은 통나무 집이 있어 그곳을 갔는데 철조망으로 보호되고 있었다.  


  


사막의 농장........   




언젠가는 기회를 만들어 포니 익스프레스가 달리던 길을 따라 사막으로 들어가 천막을 세우고 지내겠다는 생각을 굳혔는데 그때가 언제나 오려는지....   




위에서 설명한 나무 울타리 용도를 쉽게 알 수 있는 옛 농장이고 지금도 사용하는 농장의 모습이며 옛날에는 농장 울타리 밖 신작로가 서부를 오가던 큰길이었으나 지금은 새로운 포장도로가 내가 서있는 산자락을 깎아 높은 곳에 건설되면서 언덕 아래 농장이 된 곳이다.  


  


가정집으로 쓰였을 보존 해 놓은 농장 건물.   




네바다주를 거의 벗어날 무렵에 황야에서 무리 지어 말을 타고 길가로 나오는 어린 꼬마를 포함한 야생의 카우보이들이 먼지를 일으키며 집결지로 모여들었다. 차를 멈추어 이들을 잠시 바라보다 카메라를 꺼내어 셔터를 눌렀고 이들이 있는 건너편 안으로 들어가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리니 매우 점잖은 모습의 카우보이가 다가왔으며 그와 인사를 나누고 자신들과 함께 어울리자는 제의를 받고 안으로 걸어서 들어가서 여러 사람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었다. 들판에는 테이블이 놓여있고 음식이 가득했으며 꾸밈이 없는 서부시대 무법자 모습과 똑같은 카우보이의 생생한 모습을 한편의 이야기로 만들게 되었다. 


이들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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