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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막에서 만난 네바다 카우보이들

나의 여행은 대륙의 자연을 세세히 살피고 새것보다는 옛것에 관심이 많고 특히 백인사회(주류 미국인 백인 그리고 각 유색인종 소수민족에도 관심이 많다.) 일상생활과 그들의 평범한 삶을 살피면서 다닌다. 


차 안에서 beef jerky 훈제 소고기를 먹으며 코카콜라를 마시고 껌을 소리 내어 씹고 올드 팝송을 부르고 피곤하면 자고 졸리면 세수하고 사람을 만나면 대화하고 궁금하면 질문하고 어느 곳 어떠한 환경에서도 거리낌이 없고 누구에게나 친근하게 대하므로 거부감을 주지 않는다. 



벌써 대륙을 다닌 지 넉 달이 넘었고 몸과 마음은 피곤하지만 늘 새로운 풍경과 상황을 만나기 때문에 사물을 살피는 것에 집중하며 다니는데 오늘은 황야에서 한 무리 소몰이하는 카우보이를 만났으며

이들과 함께 지낸 야생의 시간을 소개하는 시간이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이미 광야에서 (이곳은 푸른 초원이 아니라 잡초로 덮인 사막이다.) 소를 몰아서 길가의 우리에 몰아넣었고 이때 이곳을 지나다가 차를 멈추고 이들을 지켜보았으며 이들의 꾸밈이 없는 일상생활을 살피기로 하고 그들 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부모를 따라와서 어른들과 함께하며 소를 다루는 기술을 배우는 어린 카우보이와 카우걸도 있었고 자신의 말을 타고 유유히 자신에게 주어진 몫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사방 각지서 모여들었으며 1800 년대 중반 이후 대거 서부에 유입된 골드러시와 광산 개척자들의 후예이며 복장은 그 시절과 지금이 다르지 않으며 누구나 가죽장화를 신고 말의 배를 건드려 속도를 조절하는 "박차"를 가죽장화에 장착하고 있었다.   




이들의 복장은 청바지에 단추가 달린 셔츠가 보편적이고 흙먼지가 많은 곳이라 가죽장화 겉으로 바지를 덮고 바지 겉에는 Carlton Legings (소몰이할 때 입는 헐렁한 가죽바지)를 입는다. 




입구에 들어서자 낯선 한국인을 본 이들이 손을 흔들어 인사를 하였으며 그들 중 한 사람이 다가와 인사를 나누었고 이곳을 지나다가 카우보이를 만났으므로 반가움과 궁금증이 있어서 멈췄다는 대답을 하였다. 중년 남자의 안내로 이들과 인사를 나누었으며 뉴욕 사람이 지나다 우리와 자리를 함께 하게 되었다는 소개를 하였고 너무도 자연스레 이들의 일행이 되었다. 


지금은 소몰이가 끝나고 휴식을 하면서 식사하기 직전에 이들 중 어른 격인 노년의 카우보이가 식사기도를 하는데 주변에 둘러 선 거의 모든 사람들이 모자를 벗어 가슴에 대고 눈을 감았으며 나는 셔터를 누르면서도 모자를 벗어 이들과 함께 하였다. 


기도의 내용은 "우리의 건강한 몸과 드넓은 대지와 풍요로운 음식을 주셨으며 이렇게 함께 모여 일하고 우정을 나눌 수 있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  하는 의례적인 기도였으나 이들의 감사기도를 보면서 미국이 초강대국의 위치에서 잘 사는 비결은 바로 감사기도가 일상화된 삶에서 나온다는 것을 느꼈다.  


서부영화에 자주 등장하는 장면에 개척자들이 서부로 가다가 인디언과 총격전 중에 사망한 일행을 황야에 묻고 둘러 서서 기도하는 모습은 영화 속 이야기가 아니라 이들의 실제 삶의 모습이었다.   




대표기도를 한 카우보이가 안경을 쓴 여자의 아버지이며 이방인에게 전혀 거부감이 없었고 친절하고 상냥하였으며 이들의 장점인 자연스러움이 몸에 배었다. 햇볕에 그을려 얼굴은 붉게 탔으나 잘생긴 용모였고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남자들과 똑같이 소몰이를 하고 왔다.   




이곳은 아이들이 먼저 음식을 받아 온 것이 옛날 한국의 풍경과 달랐는데 내가 자라던 어린 시절에는 이유를 불문하고 노인이 우선권이 있고 아이들은 차별을 받았으며 잔치집에서 조차 어른들만 자리를 차지하고 앉아 국수 등 음식을 먹었으며 아이들은 욕설을 들어가며 눈치를 보면서 일을 거들던 엄마에게 조금씩 얻어먹던 그런 시절이었는데 나는 한국 나이로 두 살 때부터 그런 모습에 화나서 아예 잔칫집에 얼쩡거리지 않고 음식을 얻어먹지 않았다. 


미국인의 좋은 풍습은 아이들과 여성에게 우선권이 있으며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이면 남자가 우선적으로 죽어야 하고 실제로 비행기 선박에 위험이 닥치면 어린이 여자 순서로 살리고 남자는 맨 나중에 살 수 있으면 살고 죽으면 죽는 기사도 정신이 있다.


(세월호 침몰 때 제일 먼저 기어 나온 것들이 선장 승무원 등 남자 놈들이었던 것이 이들 미국인의 기사도 정신과 다르다는 것을 뉘우쳐야 한다.)   




이들은 흙먼지가 풀풀 나는 곳에서도 자연스레 음식을 먹었으며 계집아이도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소몰이를 하고 왔다. 모두가 얼굴이 햇볕에 그을렸고 한국의 옛 시골 농부들처럼 피부가 거칠었다.   




손님이라고 앞줄에 서서 음식을 받으라는 호의를 베풀었으나 천천히 먹겠다며 사양하고 이리저리 다니며 대화하면서 이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카메라와 아이폰으로 번갈아 셔터를 눌러서 사진의 순서가 뒤엉켰으나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고 아래로 계속 내려가며 이들의 일상에 대해 써야겠다.    




젊은 카우보이 부인들의 몸매는 위 여인과 비슷한 글래머 몸매이고 중년과 할머니들은 항아리 몸매로 변했다. 

한국 여인의 관심은 어떻게 하면 날씬하고 마를 수 있을지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것은 여인의 착각이고 남자는 대체로 글래머형 여인을 선호한다는 것을 기억해야겠다.   




이들 황야의 사나이 모습은 선조들 시대나 지금 시대나 변함이 없고 먼 거리를 차량으로 이동한다는 정도가 변함이라고 하겠으며 지금은 권총을 허리에 차지 않고 장총을 갖고 다니지 않는 것이 옛날과 다를 뿐이다. 


지난 이야기 여러 편에 가끔 이들에 대한 같은 내용의 소감을 쓰는데 이들은 지금 당장 이곳에 대통령이 느닷없이 참석한다고 해도 자연스럽고 사회적 신분이 어떻든지 누구와도 자연스럽고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는 사람들이다. 풍요로운 사회에서 자라고 수직이 아닌 수평적 인간관계에서 몸에 밴 일상이며 개인주의가 강해서 남에게 아부하거나 굽실대고 치사한 짓을 하는 저급한 문화가 없어서다.   




저편에서 음식을 담아주는데 오늘의 메뉴는 고기 샐러드 채소 감자 빵 케익 등 다양하다.   




왼편 야구모자의 남자가 내게 와서 함께하기를 권했으며 이들에게 일일이 소개한 친절한 맨이었다. 


그와 더불어 이야기를 하면서 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며 주말마다 미군부대 영화관 때로는 동네 마당에서 미군들이 영사기로 틀어 주는 서부영화를 보고 자란 이야기며 미국과 달리 먹을 것이 귀했던 시절에는 남자 어른부터 좋은 음식을 먹고 아이는 겨우 얻어먹거나 쫓겨나던 이야기를 들려주니 너무나 놀라는 것이다. 


나는 비디오 테이프를 빌려다 보던 시절에도 영화와 연속극이 아닌 내쇼날 지오그래픽과 각국의 풍습을 소개하는 다큐멘터리 마니아였는데 한국처럼 남자 어른이 아이를 차별하고 음식을 독차지하는 파렴치한 나라는 본 적이 없다. 동남아 아프리카 유럽 중동 인도 중국 어느 나라의 풍습에도 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어른들만 음식을 (처먹는) 곳은 없었다. 


고려말 이성계가 반란 이후 억지로 세운 조선 왕권에 대해 흩어진 민심을 모으기 위해 유교를 이상하게 상명하복(위에서 명령을 내리고 아래는 복종하는)으로 변형시켜 백성을 세뇌하면서 지금까지 이어져 내려온 패악질이 원인으로 생각되지만 나의 추론일 뿐이다. 관심을 갖고 한국인이 가난한 나라로 차별하는 동남아 아프리카 등 세계 각국의 잔치 풍습을 눈여겨보면 과거 한국의 늙은이들이 얼마나 악했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가정에서도 자라는 아이를 먼저 먹이는 것이 아니라 할아버지 아버지 순서로 생선구이와 달걀찜 등 좋은 음식을 먹고 아이는 한쪽에서 푸성귀에 된장국을 먹던 가정이 너무 많았다.

(태어나서부터 십 대 중반까지 저승과 이승을 늘 오가던 약한 체질이어서 자라 잉어 인삼 삼계탕 소골 족발 한약 뱀탕 등 그 당시 최상의 음식을 강제로 먹고 겨우 겨우 살아났으니 위 이야기에서 나는 제외되어야 하지만 한국의 당시 문화는 그랬다.)   




카우보이 자리에 빠지지 않는 것이 삼각대에 매달린 커피 주전자이며 이들에게 커피는 기호품이 아닌 필수품이며 한국처럼 화강암 지대가 아닌 물에 잘 녹는 석회암과 석회 토질 때문에 수질이 나빠서 반드시 쓴맛의 커피를 넣어 끓여서 마시는 것이 풍습으로 고정되었다고 보면 맞는다. 


특히 미국의 절반에 해당하는 중서부 지역과 캐나다 서북부 전 지역에서는 흐르는 물과 지하수는 그냥 마시기 부적당하며 곳곳에 흐르는 물을 틈나는 대로 손으로 떠서 마셔본 소감이니 틀림이 없다. 동부지역도 애팔라치안 산맥의 영향이 있는 곳에서나 물이 괜찮고 평야지역은 해저에서 올라온 석회질 토양이기 때문에 대체로 한국과 같은 시원하고 깨끗한 물맛을 기대할 수 없다. 


지금은 저수지를 만들고 지하 암반수에서 물을 퍼올려 식용수로 사용하고 플라스틱 병에 담아 판매를 하지만 과거에는 지금처럼 깊은 땅속 바위 아래서 물을 퍼올리는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예외로 해야 한다.   




미세한 흙먼지가 바람에 날리지만 이들은 사막의 사람이라서 그런지 먼지에 무신경하다.   


 


허리에 권총만 차면 즉시 서부시대 카우보이로 변하고 무법자로 변할 이들의 차림새... 


가죽바지는 왼편 노인의 허벅다리를 보면 어떻게 착용하는지 알 수 있는데 바지처럼 입고 가죽바지에 달린 허리띠를 조이면 된다. 지방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어서 긴 것을 선호하는 고장과 짧은 것을 선호하는 지역적 차이가 있다.   



남매.   


카우보이 복장의 할머니가 접시에 가득히 담았기에 말린 소고기를 이미 많이 먹어서 사양하고 조금만 담았는데 메뉴는 삶아서 찢어 양념한 대표적 서부 음식과 (미국 전 지역에서 먹는 음식이지만 특히 서부 사람들이 많이 먹는다.) 샐러드 그리고 콩을 조금 담아서 먹었는데 콩 음식은 옛날 한국서 통조림으로 만들어져 나온 미제를 많이 먹어서 지금도 입맛에 잘 맞는 음식이다.    




카우보이 모자는 다른 주 카우보이 모자와 상당히 다르며 타주에서는 양털로 만든 나의 모자와 같은 것과 가죽으로 만든 것을 많이 쓰는데 이곳 네바다 사람의 모자 특징은 이랬다. 물론 유타주 뉴멕시코주 콜로라도주 등에서도 사용하지만 비율이 적은데 비해 이곳 카우보이는 모두가 밀짚모자 형태의 모자를 썼기에 여인의 남편에게 물었다. 


Nevadan (네바다 사람) 카우보이 모자의 원료는 Palm tree (야자나무)이며 가격은 50 달러 ~ 600 달러 사이라고 한다. 


(한국서 옛날에 창호지 만들 때 닥나무 껍질을 벗겨 물에 불려서 두들기면 섬유질이 나오는데 그렇게 재료를 얻는다고 보겠다.) 닥나무 껍질을 벗겨 찢어서 팽이채를 만들면 최상 품질이었다.  




소떼는 모두가 긴장을 해서 그런지 한결같이 공포에 질린 울음소리를 내었으며 무척 시끄러웠고 가까이 가면 그중 씩씩한 녀석들이 다가오지만 더 가까이 가면 눈치를 보면서 물러났다. 얘들은 송아지 때부터 들판에서 간섭을 받지 않고 살다가 이제 다 자랐으므로 도살장으로 갈 때가 되어서 거칠게 말을 모는 카우보이들에게 쫓겨서 이곳 울타리에 갇혔으니 짐승이지만 공포에 떠는 모습은 이해가 되었다.   




요 녀석은 말 타는 거을 보여준다며 자신의 말에 오르는데 대롱대롱 매달려 올라가지 못해서 안아서 올려주었는데 카우보이 후손들은 이렇게 자란다.   




내게 다가와 처음 말을 붙인 야구모자를 쓴 남자는 노래하는 여인의 남편인데 점잖고 친절하기가 이를 데 없고 대화에 불편함이 없었으며 그의 설명은 오늘은 낙인 (각 농장마다 각기 다른 낙인을 만드는데 그것을 불에 달구어 소 엉덩이에 지져서 소유주를 구별하는 의식)을 찍는 날이라고 한다. 소몰이와 식사 시간이 끝나고 여인이 노래하는 시간인데 대중화된 노래 아닌 카우보이 민속노래였고 옛날 서부시대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노래라고 소개를 하였다. 


미국 최초의 열차강도 버치 캐시디, 선댄스 키드, 키드 커리 등 이야기를 곁들이며 시대적 배경을 설명하며 노래를 부르는데 참으로 매혹적이었고 아이폰으로 13분을 영상 촬영했으니 유튜브에 올려서 소개하려고 한다. 올리는 방법을 모르지만 찾아봐야지....    




위 사진에 나오는 두 여인과  




차에 기대어 선 여인처럼 여자 몸매는 이 정도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의견이 각자 다를 테니....   




위 여인은 미국인 기준에서 뚱뚱한 것이 아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셔터를 누르느라 질문하지 못한 것이 많지만 오늘의 상황은 다음과 같은 행사로 이해하면 되겠다. 


1. 끝이 없을 듯한 황야에서 스스로 성장한 고기소를 길가에 있는 우리에 몰아넣기 위해 인근에 있는 각 농장의 카우보이들이 참여하여 (소몰이 품앗이)를 하는 그런 모임이고 송아지는 달군 쇠로 낙인을 찍어 소유를 표시하는 일도 함께 하는 날이다. 


2. 한국의 농가에서 모내기 또는 타작마당에서 일하면서 중간에 새참을 먹으면서 노래하는 그런 시간과도 같겠으며. 


3. 데리고 온 아이들에게 카우보이 문화와 소몰이하는 일을 가르치고 낙인을 찍는 일도 학습시키는 일인데 노래하는 여인의 남편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네바다주 곳곳을 주기적으로 다니며 이런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대륙 각지를 다니며 이런 모임의 목격담을 말하니 소몰이 품앗이하는 행사라고 하는데 어느 곳에서 나 같은 모습이라고 친절한 설명을 하였다. 


4. 너무 광대한 자연적 농장 (말로는 농장이지만 끝이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황야에 철조망 쳐놓은 곳)에 풀어놓아 제 알아서 자라고 흩어져 찾기도 쉽지 않은 야생의 소를 가족 몇 명이서 한 곳에 몰아오기 어려우니 각 농장에서 모두 트레일러에 말을 싣고 한 곳에 모여 말을 달리며 소몰이하는 그런 품앗이로 보면 되겠다.  


그의 설명을 들으니 내가 작년에 하루 묵었던 Tonopah 마을과 2월에 지나고 5월에 묵은 위니무카 마을 등등 열거하며 자주 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나의 주관적 생각이긴 하지만 뉴멕시코 몬타나 콜로라도 네바다 이런 황야와 산맥에 소를 풀어놓는 농장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소를 찾기도 어려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경계가 어딘지 보이지도 않는 사막에서 몇 사람 가족이 소를 어떻게 찾아올 것이며 록키산맥 험한 산골짜기 농장에 풀어놓은 소를 무슨 방법으로 찾아오겠는지 안 봐도 눈에 선하다. 이들은 일하면서 서부시대 노래를 들으며 피곤한 몸을 쉬면서 사막의 무료함을 달래는 것이다.  옛날 한국의 시골 타작마당에서 탈곡기를 밟으며 노래하던 농부와 고기를 잡으며 노래하는 어부처럼 미국의 카우보이들은 이렇게 전통을 이어오고 있는 것이다.  


 


물이 귀한 곳이라서 물웅덩이가 있는 곳에는 철조망도 없이 소를 풀어놓은 곳이 많고 황야의 소는 물가를 중심으로 멀리 떠나지 않으니 철조망이 꼭 필요한 것도 아니다. 이들은 밭을 가는 것도 아니고 씨를 뿌리는 것도 아니며 옛날 서부시대에 조상님들이 말을 달리며 여기저기 깃발을 꽂아 영토를 표시한 사막과 황야에 소를 방목하면 저절로 알아서 새끼를 낳아서 기르는 이런 곳이 네바다 사람들의 대체적 농장이며 삶의 터전이다.   


노래가 끝나기 전에 몇몇 사람과 조용히 인사를 나누고 방해가 되지 않도록 조심스레 밖으로 걸어와서 길을 떠났는데 거친 황야의 삶이 이들에게 고달프긴 하겠으나 옛날 어린 시절을 살아가던 한국처럼 생계가 어렵지 않았을 이들의 삶이 한없이 부러웠다. 방목하여 소를 기르는 농장이 중서부 각주에 널렸으나 이곳 네바다주처럼 가꾼 적 없는 황야에 풀어서 거두는 농장은 거의 없으며 광막한 황야 네바다주의 특이한 모습이라고 보면 되겠다. 

"황막한 광야를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이래도 한 세상 저래도 한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현해탄에 몸을 던져 죽어간 소프라노 윤심덕의 노래 사의 찬미 노랫말에 나오는 황막한 광야를 살아가는 강인한 카우보이 모임에 함께한 시간이 감사했고 소중했다. 


이들 모임의 영상은 유튜브에 올리는 방법을 먼저 터득하고 다음 글을 쓸 때 공유하는 주소를 연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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