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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키산맥 Poncha Spring


지난번 캔사스주 황야에 서서 폭풍을 만난 후 그렇게 수백 마일을 달린 때문에 앞유리창의 고무 캐스킷이 떨어져 바람이 마구 새들어 왔다. 차를 멈추어 임시방편으로 등산화 바닥으로 두들겨 밀어 넣었는데 얼마 후 마찬가지가 되었고 이후 날이 평온해서 사계절 관광휴양지 Buena Vista 마을에 도착해서 부속품상에서 강력한 Glue "접착제"를 사서 단단히 고정시켜 수리를 마쳤다. 


이후 방향을 고심하며 다양한 동선을 떠올리는 중 일단 Poncha Springs "폰차 스프링스" 사거리까지 가서 Great Sand Dune National Park "록키산맥에 있는 모래사막 국립공원" 혹은 서편의 Montrose 방향으로 갈지 차후에 결정하기로 했다. 장거리 여행에서 한번 지나치면 일생에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으므로 신중히 판단해야 하는데 마음속에는 갈등이 끊이지 않지만 주사위는 던져야 한다. 



분지를 달리면서 어쩌다 마주치는 고요하고 외로운 주택을 지나며 그들의 삶을 세세히 살피며 나아갔다.




폭풍이 몰아치는 산맥은 무수히 많은 큰 산이 줄지어 섰으며 이 산이 그 산이고 그 산이 저 산 같은 착각을 하면서 눈동자가 베어링처럼 돌아가던 시간이다.




이차선 좁은 길에서 추월선이 있으면 바깥으로 비켜주고 경치에 취해 멈추기를 반복하면서 나는 그렇게 다닌다. 모두가 여행객인 줄 아는 까닭에 경적을 울리지도 않고 귀찮게 하는 사람이 없으며 혹여 길 가운데 잠시 차를 세워도 조용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콜로라도 스프링스에서 멀리 떨어진 산악지방 이곳은 1865년 남북전쟁 이전과 이후에 덫 사냥꾼과 

개척민이 진출하였으며 그들이 다닌 오솔길이 신작로가 되었다가 지금의 포장도로가 된 것이다.




           산의 모습은 구별하기 어렵고 모두 같은 산으로 착각이 들지만 가문은 같아도 별개의 존재들이다.




사진은 잘려서 산이 듬성듬성한 것 같지만 산성처럼 끊이지 않고 이어졌으며 어디가 끝인지 가늠이 안 되는 지역이다. 




프린스톤 마운틴은 해발 약 4'324 미터이며 옆으로 나란히 사천 미터 높이의 장대한 산이 촘촘히 붙어있다. 




약 4'163 미터 와잇 산과 약 4'346 미터 앤트로 산이 있는데 이런 개활지에는 차량이 정차하도록 작은 

주차장이 만들어져 있고 설명문이 세워져 있다. 




길가에는 낡고 폐허가 된 농장들이 곳곳에 있으며 모두 도로 아래 낮은 곳에 위치해 있다. 이유는 자연 낙농가 시절 평지에 자리한 것으로 이후 높이 만들어진 도로확장으로 토지보상을 모두 마친 곳이어서 다른 곳으로 떠나고 빈집만 남은 농가들이다. 멍청한 것들이 이런 모습을 보고 미국이 망해간다고 헛소리 늘어놓는 것이니 그들의 허튼소리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없고 궁금한 것이 있는 독자는 언제나 댓글로 질문하면 나의 답변을 얻을 수 있다.




                 고갯길은 넓게 만들어 추월선을 만든 곳도 있고 갓길을 별도로 만든 곳이 있다.




길가에 철조망이 있다고 모두 농장이 아니고 야생동물의 도로 진출을 막기 위해서 대륙 전체에 철조망이 쳐진 것이니 참고하면 되겠다. 주립 혹은 국립 야생동물 보호지와 농장지역 등 도로변에는 모두 철조망이 쳐있다. 




Poncha spring paths "폰차 스프링 신작로" 이곳은 탐사 기병대와 사냥꾼들이 지나면서 만들어진 길이며 안내판 사진에는 눈에 띄는 유명인사 사진이 있고 그들이 지나간 연도를 표기해 놓았다. 

그들 중에 단번에 알아본 두 인물이 있는데 오른편 맨 아래는 남북전쟁 총사령관을 역임한 후 미국의 

18대 대통령이 된 율리시스 그랜트 대통령 (임기 1869~1877) 이 1876년 이곳을 지났으며 그의 묘지는 맨하탄 122 St. 허드슨 강변 언덕 (아이비리그 콜롬비아 대학) 옆에 있으며 웨스트포인트 사관학교 교회 앞자리에는 글랜트 장군과 맥아더 장군이 앉았던 자리가 표시되어 있기도 하다. 


바로 옆 나비넥타이를 맨 인물은 미국 중부의 전설적인 총잡이 제시 제임스이며 그가 이 길을 1878년에 지나갔다는 기록이다. 기억에 그의 갱단은 36명을 살해했으며 강도질을 떠나기 직전 무장이 없는 상태에서 현상금을 노린 동료에게 살해당하여 34세 나이로 1882년 생을 마감했다.

이 사람은 은행강도 열차강도 등을 직업으로 삼은 잔악한 권총의 속사이며 2009년 5월 미주리주에서 미시시피 강변 아래에 있는 그의 발자취를 살피러 가다 거리가 너무 멀어서 방향을 마크 트웨인 기념관이 있는 한니발 마을로 가게 되어 기억하고 있는 인물이다. 영화로 제작된 인물이며 한국의 임꺽정에 비견될 수 있는 인물이다.

살인을 금하면서도 대규모 강도질로 명성이 자자했으며 아카데미상 영화 (내일을 향해 쏴라)의 주인공인 열차강도 "버치 캐시디와 선댄스 키드"의 명성에는 미치지 못한다.


무법자 제시 제임스 옆에는 콜로라도 최초의 탐사대를 이끈 기병대 장교 Zebulon  Pike 가 1806년 이곳을 지난 기록이 있다. (그는 콜로라도 스프링스에 우뚝 솟아있는 Pikes Peak 마운틴의 이름이 된 인물이며 캐나다와 전쟁에서 전사하였다.)


http://blog.daum.net/jamesju_usa/291 <-- 이것을 누르면 기병대 장교 Pike 가 캐나다 토론토 전쟁에서 1813 년 34 세의 나이로 전사하여 묻혀있는 Sackets Harbor 마을 여행기록이 있다. 

그때는 파이크를 몰랐어서 아쉽게도 그의 무덤을 찾아보지 못했으나 캐나다 오타와 시티 방향으로 갈 기회가 생기면 그의 묘지를 찾아봐야겠다.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의 기념비적인 Pikes Peak "파이크스 픽" 산의 이름이 되었으며 훗날 장군이 되고 전투 중 전사한  파이크 묘지 사진을 찾았다.     




                곳곳의 표지판을 보면 낭만이 가득했던 옛날 모습을 살펴볼 수 있으며 역사의 변천사를 볼 수 있다. 


  


이 지역의 열차는 1870년 년대 건설되었으며 사람이 눈으로 살펴서 다니던 길이 점차 말과 마차가 다니고 초기의 자동차가 다니면서 신작로가 되었는데 지금 사용되는 거의 모든 도로는 사람의 발자욱에서 비롯된 것이 놀랍다.   




도로가 금이 갈라지는 것은 아스팔트 아래에 철근콘크리트 기초를 길이 약 이삼십 미터 길이로 만들고 그 위에 아스팔트를 덧입히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 차량통행으로 콘크리트 기초가 움직이면서 사진처럼 금이 발생하는 것이다.  


(참고. 북부 혹한의 추운 지방은 콘크리트 간격을 매우 짧게 만들고 중남부 지방은 길게 만들어져 도로의 품질은 중남부가 훨씬 좋다. 북부는 혹한으로 인한 수축을 염두에 두고 짧게 만들어 요철이 심해서 주행 안정성이 떨어지지만 지역 특성임을 감안하면 되겠다. )   




                     폰차 스프링스 사거리 인근의 모텔이며 Salida "살리다" 방향으로 조금만 가면 있다.   




폰차 사거리 인근에 타일랜드 식당이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카페 식당 두 곳이 있었는데 거주민 숫자가 매우 적고 교통 요지 폰차 스프링스 자체로는 관광객이 몰려드는 곳은 아니며 지척에 있는 Salida 마을이 관광타운이었다.  서부로 넘어가는 저편 50번 도로 계곡에는 눈폭풍이 밀려왔으며 부근을 두 시간가량 이리저리 오가며 서성거렸다. 여기서 판단하여 진행방향을 결정해야 하는데 이제 한번 결정하면 다른 곳으로 가기 어려운 지경이 되므로 좌우를 다니며 고심하던 시간이다.   




가야 할 방향에 있을 거쳐야 할 곳을 분석하고 고심에 고심을 거듭하다가 드디어 285 도로 남쪽으로 방향을 정했다. 물론 서편으로 넘어가면 또 다른 새로운 곳이 나오지만 유타주는 이미 많은 곳을 다녔으므로 이전에 가지 못한 곳으로 방향을 택한 것이다.    




리오그란데 강과 알칸사스 강 경계가 갈리는 이곳은 산맥의 계곡에 만들어진 길이지만 해발 9010 피트 "2'744" 미터로서 백두산 높이와 같은 곳이며 평지에 비해 산소가 적어서 액셀을 밟아도 자동차가 잘 달리지 않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대형엔진이 보편화된 미국 차량은 거침없이 달리지만 작은 엔진을 탑재한 승용차는 록키산맥 주행에 적합하지 않다.    




               사천 미터급 산이 줄지어 있고 도로 옆 분지보다 조금 높은 풀밭이 해발 약 3'000 미터 되는 곳이다.  


 


               길에 잠시 서서 경치를 감상하며 먹구름이 밀려오고 떠나는 모습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어 좋았다.  




산성처럼 둘러선 산맥을 따라가면서 옛날에 이곳을 지나던 사람들 눈에도 지금의 모습과 같은 풍경이 보였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며 남으로 향했다.    




          집이라고는 몇 채뿐인 이곳 Villa Grove "빌라 그로브 마을" 에는 1882년 문을 연 가게가 있다. 

            General Store Since 1882. 

           참고. "제네랄 스토어"는 잡다한 물건을 파는 만물상회 같은 곳이다. 

           마실 것과 먹을 것은 물론이고 일반적으로 필요한 물건은 종류별로 판매하는 곳이다.    




                 맞은편 판매점.   




Bed and Breakfast "밷 앤 브레잌훠스트" 이런 사인이 걸린 집은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민박집"에 해당된다. 참고. 방을 제공하며 아침식사도 제공하는 가정집과 비슷한 곳으로 모텔과는 차이가 많고 허가 낸 민박집으로 보면 되는데 규모는 매우 작지만 모텔보다는 훨씬 깨끗한 환경으로 가족단위로 여행할 때 이용하면 유익하다.   




서부시대 숙박업소 겸 식당이며 옛날 이런 곳에는 말을 쉬게 하고 풀을 먹이는 헛간이 별도로 있었다.      




Cottonwood Peak 4'142 미터.   Electric Peak 4'040 미터 가 높이 있고 눈이 없는 어지간한 산등성이는 3'500 미터 정도로 보면 된다.   



         

               285 도로에서 17번 도로에 접어들었다. 이곳에는 Joyful Journey 온천이 있어 안을 들어갔다.    




             숙소가 있고 야외 온천도 있고    




             몽고 유목민 텐트도 있다.   




여행객들이 지나다 들리는 곳으로 무공해 공기와 너른 들판에서 바라보는 록키산맥의 경치가 괜찮은 곳이다.  

바글거리는 도시는 직업이 많고 소비문화가 발달해 좋으나 싫으나 바둥바둥거리며 서로 비집고 더 높이 올라가려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지만 이곳은 시간도 천천히 흐르고 타인과 경쟁할 필요도 없는 곳이어서 도시생활에 지친 사람은 이곳으로 와서 몸과 마음을 자연 속에서 치료해야 한다. 


한인타운을 살펴보면 점잖고 유익한 문화도 있지만 한편에는 술 마시고(처마시고) 헤롱 대며 게걸스레 살아가는 부류와 카지노를 오가는 무료버스에 몸을 싣는 실패한 인생들의 모습이 안스럽게 느껴질 때가 많다.  

주변에는 나의 여행하는 타입을 잘 아는 사람이 많고 때가 되면 제임스처럼 여행을 가겠다며 굳게 맹세하는 사람도 있으나 귀담아듣지 않는 것은 결국 그들은 무덤 속으로 들어갈 때까지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됨을 알기 때문이다. 여행은 고독과의 싸움이고 체력이 강건해야 하며 심심한 것을 참을 줄 아는 사람만이 떠날 수 있다.

  

장거리 자동차 여행은 일반인이 선호하는 라스베가스 같은 인위적으로 화려하게 만들어진 곳의 자극적인 여행이 아니라 자연 속에서 조물주의 신묘막측하심을 절절이 느끼며 사색에 잠길줄 아는 사람이어야 한다.  

여행을 떠나고 싶다는 사람은 많으나 입술 표면으로 말하는 것일 뿐 실행으로 옮기지 못할 사람들이 거의 전부다. 


셀 수 없는 돈을 깔고 앉아 사는 사람이라도 취향이 맞지 않는 사람은 여행을 떠날 수 없다. 유행가를 부르며 술 취해 사는 사람은 대주가로 불리고 나는 탐사여행가로 불리는 것이 다르다. 

누가 잘나고 못남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타고난 취향대로 살아가면 된다. 그것이 각자에게 주어진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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