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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과 같은 웨스트 버지니아 두메산골의 농부들...

칸추리 가수 존덴버 아저씨가 부른 "테크미 홈 칸추리 로드" 웨스트 버지니아 전체를 간결하게 노랫말로 엮은 노래는 어느 곳 하나를 골라서 그의 노랫말 첫머리에 나오는 almost heaven west virginia "천국과 같은 웨스트 버지니아"라고 말할 수 없고 웨스트 버지니아주 전체를 다녀본 후 소감을 떠올리면 그때 이곳 웨스트 버지니아주가 왜 천국과 거의 같은지 알게 될 것이다.     



판자로 지어진 볼품없는 창고지만 이런 것이 모두 모여서 천국을 이루고 있다는데 이의가 없다.


   


산모퉁이를 돌면 보잘것 없이 보이겠으나 山사람으로서 삶을 이어가는 모습이 보이고 통나무를 옮겨와 장작 크기로 자르고 쪼개어 한 묶음씩 판매를 한다.   





정해서 갈 필요도 없이 아무 곳으로 다니면 이렇게 옛것을 수시로 만나는 곳이 웨스트 버지니아다.

위의 작은 건물의 용도는 산과 들판의 농장에서 몰아온 소를 차에 실어 보내는 장소다.   



옛날에는 젖을 짜는 낙농업이 활발했으나 근래에는 밀과 옥수수를 길러 고기소를 사육하는 농가의 모습이 대세다.   

멀리 버지니아주 방향에 애팔라치안 산맥의 주 능선이 보이지만 산세가 험하기로는 저곳 보다는 캔터키 주가 가까운 반대편의 웨스트 버지니아가 볼 것이 많은데 워싱톤 DC 가 가까운 버지니아주와 웨스트 버지니아를 가르는 경계지역이 유명한 것은 남부 조지아에서 올라오는 불루릿지 마운틴 하이웨이가 산맥의 정상으로 이어졌기 때문이다.   

중앙선이 없는 신작로와 같은 길이 보이면 어디가 어딘지 알지 못한 채 길 따라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는 것이 나의 여행 방법인데 이렇게 다니면 그곳에서 보물과 같은 산골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만나게 된다.   

농경지는 산골의 특성상 크지 않지만 웨스트 버지니안은 이곳에서 대를 물려서 삶을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옛날에 땅을 파고 박은 구부구불한 말뚝에 철조망을 걸친 모습이 더욱 정감이 가고 부유한 구석은 보이지 않으나 산골의 삶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평화롭고 스트레스가 거의 제로에 가깝다.   

매우 작은 길이 있기에 들어섰고 한참을 가니 윌리암스버그 작은 마을이 나왔다.   

보통의 농가 모습으로 이들은 마차와 옛 유물 농기구와 마차 및 농기구 바퀴로 정문과 벽면 장식을 많이 하는데 참으로 운치 있는 모습이다.   


낡아서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집의 뒤편과 앞에는 후손들이 새로 지은 집이 반드시 있는데 아무리 낡았어도 허물지 않고 창고로 사용하든지 아니면 조상의 숨결이 있는 것이라 그대로 보존하는 이들이다.


건물을 허물지 않는 이유를 추론하면 허물어 새로 지으려면 절차가 복잡하지만 원래 있던 것을 필요에 의해 수리해서 사용하면 법적인 문제가 없고 수리해서 대를 물려서 사용하는 사람들이다.   




담장의 말뚝이 이 정도 낡으려면 오십 년 세월로 부족하고 백 년의 세월이 흘러야 하는데 나무의 견고성은 시멘트와 다르기 때문에 비바람에도 어지간해서는 쓰러지지 않는다.   




이곳 일대는 큰 농경지가 없어서 개간한 작은 텃밭 크기를 곳곳에 소유하고 있는데 크게 부유하지 않겠으나 부족하지 않고 은혜가 충만한 삶을 이어간다고 보겠다.   




조상님이 지었든 자손이 지었든 통나무와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것이 많으며 비바람에 상하더라도 꾸밈이 없이 나무 본연의 색상으로 놔둔다.   




수년 전 이곳을 지나며 본 농장과 건물인데 매우 낡았고 비어있으며 농장에는 동물과 사람의 기척이 끊어진지 오래되었다. 집은 수리하면 되겠으며 농장은 풀이 무성하지만 주인이 가끔씩 들러서 주변의 풀을 다듬어 놓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곳이 지형도 좋고 완만한 경사지여서 삼사 년 후 다시 이곳을 와보고 판단을 해야겠다.   




왼편의 건물 양식은 백년 이백년 전 농가와 창고의 모습인데 멀리서 바라봐도 연륜은 그 이상 되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뉴욕시 곳곳에 주택은 100 년 250 년 된 건물이 많은데 나무건물은 지붕에 비가 새지 않으면 흙담집 보다 수명이 길고 튼튼하다.


   


제재소에서 나무를 운반해 와 대충 짜 맞추고 주변 임야에 흔한 나무를 가져와 투박하게 아무렇게나 짜서 만들었지만 미국의 농가는 이곳뿐 아니라 나무가 많은 곳은 전국이 동일하다. 옛날 한국에서 친구네 농가 외양간을 만들던 아저씨처럼 아무거나 대충 맞추어 뚝딱거리던 그 모습은 미국과 한국과 유럽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속도는 약 시속 20 마일 정도로 느리게 다니는데 뒤에서 따라 올 차도 없고 있다해도 한편에 차를 비켜주면 제절로 손을 흔들어 인사하며 가기 때문에 서두를 일이 없다.   




밀과 사일렌지를 수확하는 시기라서 작은 농경지마다 트랙터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밭이 크지 않아서 이곳저곳으로 옮겨다니며 수확하는 모습이 이채로웠다.  


 


세월아 네월아 가든지 말든지 알아서 하고 난 길가운데 차를 멈추고 천국에 사는 시민의 모습을 유심히 살펴보면 누구 하나 빠짐없이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한다.


  


한편에서는 베어져 말린 풀을 둥글게 말아서 밭에 놔두면 이 아저씨는 그것을 하나씩 꼬치구이처럼 찍어서 이곳에 정리해 놓는다.   




야생 사슴은 맛있고 풍부한 밀을 마음대로 먹으며 다녀도 인심이 좋은 아저씨는 제 할 일만 하는데 안면이 전혀 없는 나그네가 차를 멈추고 바라보니 슬금슬금 눈치를 보던 사슴이 철조망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농부 아저씨와 사슴은 전부터 아는 사이라서 서로 간섭하지 않으며 근처에서 풀을 뜯어먹었지만 처음 보는 나그네는 경계의 대상이 되었다.   




사람과 짐승이 이렇게 어울려 사는 것이 바람직 한데 이렇게 평화롭다가도 개체수 조절을 위해 주마다 차이는 있으나 사냥을 하는 수효를 발표하면 불쌍한 수컷부터 잡아버리고 암컷은 새끼를 낳는 봄 여름이 지난 후 차츰 사라지게 된다.     




푸르른 들녘..........


  


이곳의 순박한 모습을 보려면 아스팔트가 오래되어 신작로처럼 변한 이런 곳을 다녀야 한다.


   


나무가 자라면서 한 번도 베어지지 않은 원시림이 도처에 널렸고 부러지고 쓰러져 썩으면서 자연은 그렇게 흘러서 가는 것이다.    




남을 의식할 것도 없고 자신에게 주어진 만큼 짓고 먹으며 살아가는 이곳 농부들의 삶............


   


베어질 날을 기다리는 풍성한 들판...........


    


검게 변한 낡은 창고지만 조상님이 물려준 저곳에 두루마리로 둥글게 말아서 만든 사료를 저장하고 소떼가 겨울을 먹고 나는데 부족함이 없으면 족한 이들의 삶이다.     




가다 보면 중앙선이 있는 길이 나오기도 하는데 그러면 다시 신작로를 찾아서 들어가면 된다.  


 


낡았어도 원체 잔디를 깎는 귀신들이라서 소홀한 곳이 없이 정리해 놓는다.   




아이들은 이런 걸 타고 이웃집에도 가고 산으로 쏘다니기도 하는데.........    




어느 개울가 다리 건너에 트랙터가 부지런히 움직이고 농부들이 모여 풀을 차에 올리고 있기에 다리를 건넜다.


  


이곳은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주택이 거의 없는 첩첩산중이며 Crane rd. 화살표가 있는 곳이며 길은 산 중턱에서 끝날 그런 곳이었다.


  


차를 세우고 창가에서 인사를 하니 모여있는 농부들이 한결같이 손짓하며 부르는 것이다.


내 곁에는 이미 맑은 성품의 아줌마가 붙어서 친절을 베풀고 할머니 할아버지부터 젊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가 친절하여 그들과 함께 하였다. 앞에 앉은 아저씨는 조지아주 태생으로 이곳에 와서 산지 40여 년 되었고 그와 더불어 여행하며 쏘다닌 조지아주 이야기를 많이 나누던 시간이다.


산 중턱에 있는 농장 창고에 풀을 옮겨놓기 위해 가는데 함께 가자는 아줌마는 내차는 세워두고 픽업트럭 뒤에 앉아서 가자는데 시간이 길어질까 봐 내차로 가겠다며 그들의 뒤를 따라 산 중턱으로 올라갔다.




픽업트럭 뒤에 앉아서 재잘거리는 아줌마들 뒤를 따라서 농장으로 들어갔다.   




터는 무척 넓었으며 그들의 안내로 잔디밭에 차를 세우고 창고로 갔다.   




아줌마가 곁에서 이 집은 105년 된 집이며 자신의 할머니 할아버지가 살던 곳이라고 한다.   




연이어 픽업트럭에 풀을 싣고 들어오고 창고 앞으로 집결하여 남자들은 풀을 내려서 쌓아 올리기 시작하였다.   




밀짚모자를 쓴 천사의 모습을 한 위아래로 무척 긴 아줌마가 농장의 유래에 대해 이야기를 해주는데 원래 이 집의 주인 할머니가 더욱 자세한 역사를 말해주었다.  




주택은 105 년 된 것이지만 장작을 쌓아놓는 창고와 사료를 쌓는 이 창고는 거의 새 건물이라고 하였으며 이웃들이 모여서 함께 지은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시골처럼 이곳 주민의 생활은 내 집 네 집 따지지 않으며 아낙네들이 매일 만나서 이야기 (수다) 하고 음식도 나누어 먹고 그런 이야기가 끊이지 않았으며 검은 바지 아줌마는 휠라델피아 부근에서 이곳에 온지 40 년인데 자녀는 모두 성장하여 외지로 가고 내외만 사는데 너무나 좋다고 한다.


이웃집 24살 된 암컷 말에게 마실물을 퍼주며 이야기가 길어졌는데 남자들은 일하느라 바쁜 관계로 아줌마들과 수다가 이어졌고 젊은 아가씨는 블랙베리를 가져와 권하는데 조지아에서 씨를 가져와 심은 무공해 베리라고 한다. 농장에서 먹는 것은 완전히 익힌 것을 바로 따기 때문에 마트에서 판매하는 것과 품격이 다르다.   




이 아저씨는 모습은 산골 농부지만 지금 이 자리에 트럼프 또는 오바마가 나타난다 해도 전혀 꿀리지 않는 지식의 소유자이며 미국인 성품은 누구에게나 아부하는 근성이 없이 자연스럽게 우러나온다.


이들은 이곳에서 검은 곰과 늑대를 자주 보는데 익숙해서 탈없이 지나가지만 야생의 동물도 누가 이곳 터줏대감인지 나그네인지 바로 구분하기 때문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 산골 오지를 다닐 때면 허리에 큰 단도를 착용하지만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칼은 차에 놔두고 칼집은 허리띠에 있는 그대로 다니는데 칼은 아무런 장소에서 소지해도 문제가 없다.


다니다 보면 늑대도 만나고 이리도 만나고 검은 곰도 만나고 여우도 만나지만 검은 곰은 이삼백 kg에 체구가 큰 돼지만 하고 성품이 온순하지만 붉은색 그리즐리 곰은 무게가 칠팔구백 킬로 그램이나 되고 성질이 포악하기 때문에 만나면 조용히 사라지든지 피하지 못할 상황이면 반드시 웅담을 꺼내야 한다. 아니면 나를 잡아먹기 때문에 죽든지 살든지 둘 중에 하나이며 대체로 야생짐승은 초식동물의 경우 사람 주변에서 경계심 없이 서식하는데 비해 늑대 등 육식동물은 사람을 겁내어 만나면 바로 쏜살처럼 자취를 감추는 특징이 있다.   




여윤계 아줌마와 비슷한 모습의 이 아줌마는 얼마나 명랑한지 지옥에 데려가도 악마조차 건드리지 않을 정도였다.   


 


풀을 던지다 떨어지면 날더러 올려달라 해서 집어 드니 무게는 약 25 Kg 쯤 되었는데 이것을 계속 쌓아 올리면 힘들다고 아줌마들이 말한다.   



주택 뒤편에 뒷간이 있어서 문을 열어보니 다음과 같았다.   


이들의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아버지 엄마가 사용하던 변소인데 아이들이 편리하도록 낮은 것도 있는데 처리는 걸터앉는 아래에 놓아두는 용기를 꺼내어 쏟아서 파묻으면 된다. 한국 같으면 이미 오래전 더럽다고 부숴버렸을 뒷간이지만 이들은 조상의 숨결이 있는 것은 보존하는 특성이 있다.    




아래 건물은 산속의 사람들은 돼지 허벅다리를 잘라 소금에 절이고 헝겊으로 싸서 사나흘씩 연기로 그을려 매달아 놓고 겨울철에 단백질 보충용으로 사용하는 (햄) 창고로 보면 된다.   




저편의 주택이 이곳 할머니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던 집으로 105 년 되었으며 낡아서 겉을 고쳐서 사용하는 것이라고 한다.


장작을 쌓아두는 창고에 땔감이 가득하고 사료창고에 풀이 가득하고 마당을 뛰어다니는 닭이 많으니 한 마리씩 잡아먹으면서 산속의 생활을 즐기는 주민들이다. 이들에게 네바다 사막에서 만난 카우보이들의 품앗이 이야기를 들려주니 자신들도 그들과 같다고 하였다.  

내가 삼자의 위치에서 이곳 농부와 사막의 카우보이를 비교하면 네바다 카우보이도 여유롭고 선하지만 그들에게는 웃음이 없던데 비하여 이곳 산골 농부들에게는 웃음이 끊이지 않았으므로 웨스트 버지니아 산사람의 삶이 더욱 평화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들은 이 모습 이대로 백악관에 간다고 해도 전혀 꿀리지 않고 어색해할 이유가 없는 높은 교육의 평준화와 조상 때부터 의식주가 해결된 부유하게 살아온 내력으로 인해 굽실대며 뭔가 좀 얻으려는 아부 근성이 이들에게는 없다.   




덜컹거리며 한 묶음씩 떨어지는데 그것을 모아서 창고에 쌓아두고 겨울나기를 하면 되는 이들의 삶을 보고 생각하는 바가 많았다.

더 머물다가 식사하고 가라는 아낙네들에게 뉴욕에 가서 아들을 만나 의논할 일이 있어서 속히 가야 한다며 서운해하는 농부들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었다. 남자들은 대체로 타고난 성품이니 인사도 간편하지만 아낙네는 한국이나 미국이나 정이 많고 인사가 길다. 생글생글하면서 방문객에게 호의를 베푸는 이들이 감사했으며 그중에서 검은 바지를 입은 아낙네는 말도 차분하고 지식이 많아서 남편의 질투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을 정도로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그들과 작별하고 219번 지방도로를 따라서 북쪽으로 길을 떠났다. 몇 시간 걸리지만 어두우면 차를 세우고 잠들고 동트면 떠나는 야전에서의 생활이 매우 즐겁고 유익하였으며 차에는 물과 콜라와 라면과 쌀과 말린 소고기와 초콜릿과 과자 등이 풍성하니 오지에 갇힌다 해도 일주일 동안은 염려가 없으며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우고 글을 써서 앞유리에 놓아두면 그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   


 


관심이 가는 농가를 만나면 깜빡 등을 켜고 천천히 들어가 살펴봐도 주인은 나그네를 방해하지 않는다. 원래는 남의 영역을 함부로 침입하면 문제가 생기지만 나의 차림새를 보면 여행자인 줄 단번에 알고 웃음이 가시지 않는 인물을 보면 선한 사람인 줄 그들이 왜 모르랴.....


  


어느 길가에 복술 개 두 마리가 놀자고 뛰어나왔다. 농장에서 양 떼를 보호하는 양치기 개인데 모습이 매우 온순하게 생겼지만 만약 늑대와 이리가 침입하면 바로 끝장을 낼 수 있는 늠름한 자세였다.   


 

남북전쟁에서 혈투가 벌어진 격전지에도 들러 원혼을 위로하고.........   

처참한 결전으로 목숨을 잃기도 하고 한 번도 만난 적이 없고 감정이 있을 리 없는 남의 집 자식을 죽여야 하는 역사적 비극을 겪었을 그날의 전투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산 위에는 남군이 진 치고 아래서는 북군이 횡대로 전열을 갖추고 대열을 맞추어 올라오며 피가 튀는 아수라장이 되었던 이곳 웨스트 버지니아의 격전장이다.


  


원래는 버지니아주였으나 전쟁 중에 북군의 편에 선 웨스트 버지니아 주민의 투표로 웨스트 버지니아로 독립한 이곳이며 당시 산악 보병부대 당시 대대장 알렉산더 스캇의 부대가 격전을 벌인 곳 표지다.   




능선을 따라 자리한 이들 부대의 집결지 표시........  




웨스트 버지니아 주립공원으로 보존되는 남북전쟁의 장소에서 상념에 사로잡히던 시간들.........


    


서편의 광활한 땅을 바라보는 곳에 전망대가 있었다.   




통나무로 3층 높이 정도로 쌓아 올린 전망대..........


  


산야를 헤매며 서로를 죽이기 위해 독기를 품었을 그 시절 남군과 북군의 모습도 생각해 보면서 이곳에 터줏대감으로 살아가는 이들은 그 옛날 서로를 죽이던 조상님에 대한 감회는 어떨지 생각도 해보던 시간이다.


이후 후손들끼리는 서로는 모르지만 그 옛날 조상님들이 서로 죽고 죽이는 원수 관계였다는 것을 생각이나 해보려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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