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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 록키산맥 국립공원 해발 3710 m 산길.

DaumEditor Wygiwyg Panel

퇴원 다음날 렉싱톤 시티 캔터키 주 명소 Horse Park 을 가서 승마연습을 하는 수백명 기수의 경기를 관람 후 달라스로 가기 전에 어차피 몸이 불편하여 장거리 운전을 하면서 쉬엄쉬엄 록키산맥 콜로라도 주에 가기로 했으며 이웃인 고양군 삼송리가 고향인 아리랑 가든 주인 아주머니와 작별의 인사를 하고 길을 떠났다.  


64번 고속도로 - 70번 고속도로를 달려서 거리는 1'256 마일 (2'007 km)이며 가는 도중이면 몸이 나아질 것으로 생각하였으나 너무 피곤하여 4일이 걸려 도착하였다.  


도중에 캔사스 시티 미조리 주 옛날 다운타운에 도착하여 남북전쟁 이후 택사스에서 소떼를 대거 몰고 와서 뉴욕시 등 동부지역으로 이송하기 전 중간 집합소 소시장 장소와 그 주변의 옛날 도심지를 살펴봤으나 일단 록키산맥 이야기를 시작하고 마치면 별도로 서너편을 쓸 생각이다.   



운전하다 피곤하면 휴계소에서 쉬었는데 캔사스 주 휴계소는 RV 차량이 별도로 쉬는 장소가 마련되어 있어 모텔에 갈 이유가 별로 없었고 하루는 모텔서 하루는 차에서 자며 세월아 네월아 천천히 목적지로 향했다. 차 바닥에 에스키모 담요를 깔고 이불을 덮으니 불편함이 없었고 매우 자유스러웠으며 음식은 식당서 또는 차에서 간략히 만들어 먹으며 2천 km 를 달려 콜로라도주 록키산맥에 도착했다.  


록키산맥 국립공원 이곳은 오래전 고갯길을 넘으려다 눈과 얼음으로 뒤덮여 통행이 금지되어 아쉬움이 많았는데 이번에 다시 기회가 되어 기필코 고개를 넘기로 했다. 인생은 잘난척 해봐야 결국 지나면 다 부질없는 짓이었음을 뒤늦게 알게 되는데 13년 전 세상풍파를 겪으면서 인생관이 변하여 어떤 일을 당해도 당황치 않고 순서대로 하나씩 풀어가면서 유유한 성품으로 변해버렸다.     




잠시 이곳에 선 아저씨가 스마트폰을 건네주기에 그의 기념사진을 하나 찍어주고 이야기를 나누고 헤어졌다. 곳곳에서 만나는 서양인들은 아이폰 보다는 삼성 제품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그 이유는 모른다. 나는 아이폰 매니아로서 삼성은 사용한 적 없어서 잘 모르지만........   




입구에는 차량이 줄지어 있는데 입장료를 받는 곳이다. 전국의 국립공원 패스가 있어 보여주고 안으로 들어가서 차량의 뒤를 따라갔다.    




오르며 바라보는 산맥은 장관이었으며 크기와 높이에 압도되는 곳이다.   




미국의 명승지 특징은 도로에 난간이 없으며 알아서 조심스럽게 지나야 한다.    




사방이 절경이어서 어느 한 곳에 눈을 고정시킬 수 없는 곳이 록키산맥이다.     




구불구불한 능선의 도로를 따라 오면서 이미 해발 3'000 미터를 넘었으며 계속해서 달렸다.    




산맥을 흐르는 개천이 무늬처럼 보였다.   




젊은이는 돌을 쌓아 기념사진을 찍었고 연로한 사내는 차 밑에 무엇이 있는지 누워서 셔터를 눌러대었다.  


   


유타주의 지명이 된 원주민 (유트족)이 다니던 길이고 표시판이 서있는데 그들은 서구인들이 도래하기 훨씬 이전부터 이 길을 다녔는데 아마 수천년 전 부터 누군가 이 길을 다녔을 것이다.





이곳에 보이는 봉오리는 모두 4'000 m 이상으로 웅장하기 이를데 없는 곳이다.



   


난간이 없는 도로를 조심스레 오르는 행렬이고 아무도 타인의 차량을 향해 방해하지 않고 차분히 뒤를 이었다.    




늘 먼거리를 다니느라 고생하는 밴은 잠시 주차장에서 쉬고 전망대로 갔다.      




욕심이 많아서 자리를 차지하고 시간을 끄는 가족이 많았으며 언덕에서 대자연의 위대함을 바라보던 시간........    




사천미터가 넘는 산봉우리를 줌으로 당겼는데 척박한 모습이었고 화강암으로 이뤄졌다.   




여인은 작은 꽃에 심취해 셔터를 누르고 있었다.    




연중 눈이 쌓이는 록키산맥....    




보통 해발 3'500 미터 쯤 되는 주차장이며 가면서 주차하고 살펴보고 다시 떠나는 사람들이다........    




이곳 고갯마루는 록키산맥 도로에서 가장 높은 해발 3'710 M 인데 이곳에 오기 전부터 머리가 아프기에 고산증 증세로 직감하고 오늘은 서둘러 낮은 곳으로 내려가기로 했다. 몸이 시원치 않고 거동이 불편하니 두통에 만사가 귀찮았으며 허기까지 심하여 힘을 쓸 수 없었다.    



  


주차장 화장실 옆에 차를 세우고 언덕을 올랐으며 도로의 높이를 감안하면  해발 약 3'850 M 가량 되는 사방이 잘 보이는 언덕을 걸어서 올라갔다. 고도가 높아서 기압의 차이로 수술한 부위가 지나치게 아프고 배의 부은 곳이 부풀어 오르고 터질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는 토끼만한 크기의 요녀석들이 바글거리는데 이름이 갑자기 생각나지 않는다.    




보기에는 평온해 보이지만.....   





바람이 너무 심하여 모자를 쓰지 않고 그냥 올라갔는데 심할 때는 시속 160 Km 강풍이 부는 곳이니 조심하라는 안내판이 곳곳에 있으며 앉아있는 이곳은 도로 위를 오르는 언덕에서 더욱 높이 오른 것이니 해발 약 3'900 M 가량 되는 곳으로 보면 되겠다.     





조금 더 멀리 가는 사람도 있으나 근래에 다가온 해프닝으로 인하여 기력이 쇠잔하고 몸이 피곤하여 걸음을 걷기도 귀찮은 지경이 되었다.     




바위산 안에 여럿이 보여 있는데 오하이오주에서 온 가족 중 아이가 저녀석이 뭐하냐고 묻기에 바위와 아스팔트 바닥에 녹아내린 소금기를 핥아먹는 중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야생동물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소금이며 사람이 야생동물을 길들일 때 소금을 주면서 길들이면 쉽게 친해진다.   



 


세상사 모르는 것이 많지만 이곳의 식물에 대한 지식은 전혀 없고 안내문에 적혀있는 설명도 귀찮아 보기 어렵고 얼른 차로 내려가 쉬기로 했다.     





풀밭은 보호지역이므로 들어가면 안되고 천천히 산책하면서 사방을 둘러보기 좋은 곳이며 두통이 없고 공기만 희박하지 않다면 더 오래 머물고 싶었는데 아쉬지만 내려가기로 했다.     





태초부터 이런 모습이었을 이곳 록키산맥이 변화한 과정을 곳곳의 풍경과 더불어 살펴보면서 유추해보던 시간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했다는데 그보다 더한 록키산맥을 보는데 굶주리면 풍경과 대자연의 역사가 눈에 제대로 들어올리 없어서 차로 돌아와 버너에 물을 끓였고 신라면 두 개를 먹기로 했는데 어랍쇼.......    




라면봉지가 이렇게 변해 있어서 이것이 혹시 상했나 생각해 봤으나 마른 식품이 그럴리 없어 원인을 파악하는데 평지에서 밀봉한 것이라 기압이 낮은 고지에 오르니 기압의 차이로 안에 있는 공기가 팽창한 현상이었고 밀봉이 매우 잘된 신라면이었다. 고산지대의 산소밀도가 낮은 곳이라 물은 평지처럼 잘 끓지 않으며 두배가량 시간이 걸린다.


김치는 캔사스 주 어느 모텔 냉장고에 넣어두고 이곳에 왔으므로 김치가 없이 라면을 먹어야 했으며 한동안 굶주렸기 때문에 요즘 식욕이 왕성해져 음식이라면 아무거나 마구 먹어야 했다.     



수백길 낭떠러지에 난간이 없으며 긴 건너에서 잠시 멈추어 셔터를 누르던 시간........    


이제 배가 든든해져 원기를 회복하고 속도를 늦추기로 했다. 뱃속이 간사한 것인지 정직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얼큰한 신라면이 뜨거운 국물과 함께 뱃속을 방문했다고 금새 컨디션이 좋아졌는데 앙반의 체통이 라면 두 개에 오락가락 하였다.    


 


3'500 M 에 있는 공원 안내소와 식당 및 기념품 가게.........   




위 사진을 자세히 읽어보면 1920 년 ~ 1932 년에 이곳 록키산맥 국립공원을 방문한 여행객들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이곳이 1915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니 100 여년 전이며 거의 100 여년 전에 이렇게 다닌 이들의 문명을 다시 생각해 보던 시간이다. 우리에게는 일제시대였으며 입는 것은 고사하고 먹을 수 있으면 그것으로도 행복했던 그 시절에 이들은 이곳에 도로를 건설하고 유람을 하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사진 속 저 인물들은 모두 저세상으로 떠났지만 어려운 발걸음으로 록키산맥을 찾아온 그들의 발자취는 이렇게 추억의 흑백사진으로 남아있으며 이러한 장대한 풍경을 보지 못하고 떠난 사람들에 비하여 훨씬 행복함 사람이었을 것으로 생각된 시간이다.  


글을 쓰면서 자주 말하는 것이지만 미국에 이십년 삼십년 사십년 살았으면서도 영어가 전혀 안되는 사람들이 훌러싱 한인식당에서 소주를 홀짝거리고 세상사 아는체 우라지게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그들의 실상은 김밥을 싸가지고 인근 공원에 소풍을 가는 마음의 여유가 거의 없는 인물이 부지기수다.


엊그제 연세가 꽤 되는 또 한사람이 주말에 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는데 불과 며칠전에 갑자기 급사하여 주변을 슬프게 했다는 소식이 뉴욕의 데이빗 상사가 전해왔다. 글쎄 인생 별거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열심히 살면서 선을 베풀고 열심히 여행도 다녀야 그나마 억울함이 적을텐데 여인을 두고 떠난 남자는 그렇다 하고 남아있는 초혼도 아닌 여인은 떠난 (죽은) 그대를 생각하며 수절하고 혼자 살겠어? 천만에~!  


두번 갔었으면 세번 네번 남의 남자 품으로 가는 것은 별일이 아니며 죽은놈만 억울한 거에요....

아니지 죽었으니 억울할 것도 없네....     




이런 운치있는 곳에서 이야기를 나누면서 음식을 같이 먹을 사람이 없다는 거.......

이곳 기념품 가게는 인산인해를 이루었는데 찬양이에게 주려고 록키산맥이 새겨진 티셔츠 3개를 구입했다.     




눈이 많이 오는 곳이어서 길가에는 약 4 M 높이의 장대로 모든 구간 길을 표시해 놓았다.    




아래로 내려오니 몸이 한층 편해지고 두통이 사라졌는데 무스 두 마리가 풀을 뜯어먹고 있었다.     




눈길이 가는 곳미다 절경이 아닌 곳이 없는데 록키산맥 국립공원의 명성은 모든 곳에서 볼 수 있었다.


    


해발 3'710 M 휴계소에서 바라보던 산맥의 뒤편은 이렇게 생겼다.    




평지로 내려오면서 두통은 사라졌고 풀밭에는 큰사슴이 약 300 마리 떼지어 초원을 터전으로 삼았다,   




대물망원경 카메라로 사진을 찍던 이들이 중국인 관광객이 질문하니 카메라로 사슴의 무리를 보여주고 있다.  


  


수백미터 거리에서 무리가 뛰기에 코요테에게 쫓기는 것으로 생각들어 카메라로 유심히 살펴보니 새끼사슴이 엄마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이것을 무스라 하는 것인지 큰사슴이라 하는지 착각이 든다.     




한폭의 그림처럼 깨끗하고 정겨운 모습이었고 지나던 차량마다 모두 서서 거리를 두고 살펴보는데 녀석들은 눈길도 주지 않고 열심히 풀을 먹었다.     




오천리를 달려서 온 보람이 있어 장대하고 장엄한 록키산맥의 진풍경을 살펴보면서 자연의 위대함과 지으신 조물주의 위대함을 절절히 느끼던 시간이었고 지도를 살펴서 이전에 간 적이 었던 곳으로 방향을 정하여 길을 떠났다.  





뜨거운 유황온천 마을에 도착하여 모텔에 갔는데 백인할머니가 무척 친절하였고 멀리서 온 여행객이라며 숙박비도 에누리를 해주었는데 이곳서 멀지 않은 온천의 입장이 필요하냐 묻기에 수술한지 며칠뿐이 안되어 수술부위에 물이 닿으면 안되기 때문에 아쉬웠다. 방안에는 부엌시설과 음식집기가 모두 있었는데 백인이 운영하는 모텔은 아무리 시골이라도 침대보와 이불의 색깔과 품질이 다르고 모텔은 낡았어도 수건과 테이블 등 모든 것이 값비싼 것을 사용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록키산맥이 화성이나 목성에 있는 것도 아니고 머나먼 안드로메다에 있는 것 아닌 가까운 콜로라도 주 그리고 몬타나 주에 있으니 그리 먼 것도 아니고 이틀 또는 사흘을 달리면 언제나 갈 수 있으며 다음을 기약할 수 있으니 그것도 기쁜 일이어서 오늘 온천욕을 하지 못한 것에 불만이 없다.


글을 쓰는 자유의 남자 제임스 주 저 사람은 얼마나 부자이기에 대륙을 이웃집 마당 드나들 듯이 다닐까 궁금해 하시는 독자분도 있었는데 여행하는 것은 매우 간단한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사람은 누구나 부자가 되기 위해 막대한 노력을 하기도 하면서 악을 쓰고 배신하고 잔머리도 큰머리 골고루 굴리며 살지만 재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그 재물을 지키고 더 많이 쌓아놓기 위해서 오히려 여유가 없어지고 더우기 교만에 빠지면 그때부터 주변에서는 그를 쓰레기라고 부르니 항상 처신에 조심을 해야 한다.


여행을 자유롭게 떠나는 비결은 가고 싶을 때는 준비할 것도 없고 따져볼 것 없이 간략히 짐을 챙겨서 즉시 떠나면 됩니다. 여행에 데려가지 말아야 할 것은 (걱정근심)이며 세상만사를 모두 잊어버리고 가면 그것이 여행의 비결이고 슬프고 아프다고 집구석에서 찌질하게 궁상을 떠느니 대자연으로 다니면 세상의 근심이 모두 사라진다는 것을 명심하기 바랍니다.  


글쎄 뉴욕에서 결혼식 며칠 전에 죽은 동료가 있다고 연락이 왔을 정도니 누구나 지금 이 순간 이후를 알지 못하며 언제 죽을지 모르는데 죽기 전에 여행을 떠나야 하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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