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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여름 록키산맥 정상 눈밭에서 먹는 추억의 배추된장국.

DaumEditor Wygiwyg Panel


이름을 알 수 없는 산과 계곡의 물가에서 자고 일어나기를 반복하며 다음의 행선지를 살피면서 나아가는데 근래에는 할레이 데이비슨 1200 cc 급 모터 사이클보다 작은 거친 길 용도의 모터 사이클이 많이 보인다.


이것은 산악용과 고속도로용 중간쯤 해당되는 것인데 고속도로는 물론이고 평탄한 곳 비포장 신작로를 다닐 수 있으며 양옆에 캠프 장비를 싣고 다니면서 여행을 다니는 매니아들이 수년 사이에 엄청나게 많아졌으며 이 모터사이클 매니아의 특징은 대형 할레이 데이비슨 매니아들처럼 수십 명씩 무리 지어 다니지 않으며 많아야 서너 명이고 아니면 혼자서 다니는 이들이 많고 옷은 빗물이 스며들지 않는 천으로 만든 원피스형 옷이 보편적인 복장이다.  


이들은 모텔을 이용하기보다는 길가의 빈자리에서 천막을 쳐서 자고 아침에 떠나는 타입인데 배기량은 약 600 cc ~ 800 cc 정도이며 중간급 무게라서 거친 길과 풀숲으로 자유롭게 들어갈 수 있다.


  


록키산맥의 유명 레저타운 크레스트 뷰트.....

(록키산맥 가운데쯤 자리한 곳이며 인터넷서 서치하면 일대의 정보를 알 수 있다.)    




먼 곳에 있는 해발 4'000 미터가 넘는 이탈리안 마운틴, 아메리카 플래그 마운틴 저곳에 올라야 하는데 피가 끓는 느낌이 들어 서둘러 달렸다. 뾰죡한 산봉우리까지는 오르지 못하지만 바로 목전까지 가기로 했다.



    


평지 들판에는 소떼가 즐비하고 산자락에는 주택이 자리한 최상의 주거지이며 저들은 이곳에 거주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특성상 곳곳에 집을 장만해 놓고 계절 따라 조금씩 옮기며 사는 부유층이 대체로 많다.


산맥 곳곳의 별장을 보면 빈 건물이 많고 주인이 휴가철에 잠시 쉬었다 떠나는 그런 집들이 많은데 이곳뿐 아니라 전국 어디나 경치가 좋은 곳 주택의 특징이 그렇다.     



곳곳을 다니며 이들의 살아가는 모습을 살펴보면서.......


미국에서는 여름철 물놀이 익사 사건이 거의 없는데 이들은 수영을 하지 말라는 표시가 있는 곳에서는 하지 않는다. 또한 이런 급류에서 미련스럽게 물가에서 놀지도 않는 이들의 조심성을 볼 수 있으며 이들에게는 수영이 허락되고 인명구조원이 지켜보는 그런 곳에서 수영하는 생활이 어려서부터 길들여져 있기 때문에 무모하게 이런 급류에서 빠져 죽는 사례가 거의 없다.


한국의 포털 뉴스를 보면 술을 마시고 물에 들어갔다가 부인과 지녀를 남겨두고 그 길로 용궁으로 가버린 남자, 한탄강 급류에서 아이를 방치하여 떠내려가 두 아들을 동시에 잃어버린 가정...

더위에 물놀이 갔다가 멀쩡했던 가족이 물에 떠내려가 숨지는 황당한 사건이 벌어질 수 있는 그 나라...

구명조끼 그거 얼마나 한다고 사서 입히지 않아서 멀쩡한 아이를 죽게 하는지.....


수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른과 아이들이 왜 깊은 물속에 들어 가는지 이해가 안 되지만 분명한 것은 사람은 아가미가 없기 때문에 물속에 이삼 분 잠기면 살아나기 어렵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며 아가리를 아가미로 혼동하면 안 된다.    





한여름의 방학을 맞아 자녀와 함께 휴가를 온 사람들.....   


 


원래는 742 - 744 - 748 비포장 산악도로 지나서 험준한 해발 3'696 m 고갯길 Cottonwood Pass를 통과해서 동쪽으로 갈 계획이었다.     




오르는 742번 산길은 매우 아름다웠고 벼랑에서 흘러내린 바위와 자갈이 섬뜩한 느낌을 주는 곳이며 길 따라 이어진 계곡에서는 급류 중 급류가 엄청난 속도로 흐르는 곳이다.    




계곡이 좀 넓어진 곳에는 낚시꾼이 줄지어 있는데 이들은 이제 도착해서 장비를 점검하는 중이었고 친절한 세 사람과 이야기가 길어졌으며 미국의 견지낚싯대는 이렇게 생겼다.

낚싯줄은 잘 보이도록 오렌지색이며 멀리 던지는 릴낚시와 구조와 모습이 다르게 생겼는데 대체로 물 흐름의 위쪽으로 던져서 감으며 잡는 것이 한국의 견지낚시 방법과 다르다.    




물이 조금 흐르는 지류의 한편에 자리한 가족도 있고........   




사진으로는 별 볼 일 없으나 실제로는 기막힌 절경이 계곡으로 끊이지 않는 곳이다.   


  


경사가 가파르고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계곡물이 인상적이었다.    




바위와 부서져 내려온 돌이 위험하지만 그 또한 아름다운 풍경이니 눈과 마음으로 즐기면 된다.    


 


나무가 쓰러져 계곡을 막은 곳이 수십 곳도 넘으며 치울 것도 없이 저대로 놔두면 제 알아서 떠내려가고 쌓이고 반복하는데 이 또한 자연의 아름다운 모습이다.     




한편 계곡을 바라보니 깊은 산중으로 하이킹을 떠나고 있었으며 길가 아무 곳에 차를 세우고 떠나고 되돌아오면 되는 곳이다.    




깊은 계곡을 벗어나니 신작로 한편에 평탄한 습지가 나왔으며 물은 퍼져서 연하게 흐르는 그곳에 빈자리를 찾아 천막을 친 사람이 점차 많이 보인다.    




쓰러진 통나무집 옆에 자리를 잡은 이들도 있는데 묘하게 운치를 더해주는 곳이었다.    




예전에는 농장이 있던 자리지만 지금은 빈 곳으로 남아있어 아무 곳에나 터를 잡으면 되는 그런 곳이다.   


 


낚시를 던져 고기를 잡고 매운탕을 끓이기에 최적인 장소가 이곳 산악도로 742번이며 지도에 거의 나오지 않는 산길이다.   


  


록키산맥 깊은 산속은 이렇게 아무나 캠핑을 할 수 있으며 마을이 가깝고 아스팔트 길 까운 곳에는 이미 캠프촌을 건설하고 돈을 받는 캠프가 예부터 자리하고 있으므로 아예 깊숙한 자연의 골짜기로 사라지는 것이 좋다.    


 


세상의 온갖 길을 다니면서 느끼는 것은 사람이 만드는 길은 거의 물길이 흐르는 근처를 지난다고 보겠으며 보편적인 길은 계곡을 따라 물줄기와 함께 있으므로 아무 곳에서 멈추어 목욕도 하고 물을 마실 수 있다.    




짐승은 어디에 살든지 숲이 깊고 물이 많은 지역에 터를 잡고 살아가는데 사람이라고 짐승과 크게 다르지 않다.    



742번 산길에서 744번 산길로 올라갔는데 숲이 우거진 그늘진 곳에는 겨울에 쌓인 눈이 남아있어서 운치를 더하는데 사방은 적막하고 인기척이 전혀 없고 간간히 숲 사이를 지나는 세찬 바람소리만 요란하였다.

고도계를 보니 약 3'400 M 가량이었고 인터넷 연결이 안 되는 곳이어서 아이패드로 보던 구글 지도는 작동하지 않은지 오래다.     




뉴저지 한인타운에 사는 친구 윌리엄 김에게서 카카오톡 메시지가 왔었는데 소풍객들을 따라서 뉴욕시를 벗어난 곳에 있는 베어 마운틴에 왔는데 언덕을 오르느라 생고생을 한다기에 그곳은 산이 아니라 언덕이며 물 두병과 김밥을 싸가지고 소풍을 가는 곳이라고 메시지를 보내었다.  


뉴욕시에서 살지만 경제력과 시간적 여유가 별로 없고 대륙을 모르는 사람들이 주변 친지가 뉴욕에 오면 데리고 가는 당일 코스가 육군사관학교에서 멀지 않은 베어 마운틴이며 산이라고 하기에는 민망한 곳이고 각양각색의 인종이 모두 모여드는 곳으로 서울의 남산쯤 되는 곳이다.  


한인들은 무슨 무슨 산악회라고 이름 지어 밴을 소유하고 1인당 15 달러 ~ 20 달러 운반비를 받고 소풍객을 실어다 주는 업자가 수십 개로 늘어났지만 나는 그들과 같이 말을 한적도 없고 숨을 쉬어본 적도 없고 물도 마시지 않는다.


뉴욕과 뉴저지 인근에 다니면서 남산 정도의 언덕을 오르는데 등산화에 스키 지팡이에 배낭에 별의별 다양한 색상의 장비를 다 갖추고 히말라야 원정대 비슷한 복장으로 한인타운 집결지에서 활보하는 가짜 (킬리만자로의 표범) 교민들 때문에 웃은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한국서 뭐가 유행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뉴욕 한인사회가 뒤를 따르는데 과거에는 한국의 묻지 마 관광을 모방하더니 이후 한인 운영의 소규모 호텔에서는 지방서 원정 온 단체 유부녀를 위한 영계남 공급이 유행하다가 이제는 소풍을 다니는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 장족? 의 발전을 하였다.


이곳에서 윌리엄 김 생각이 났으므로 이곳 눈밭에 앉아 버너에 불을 붙여 밥을 하고 오랜만에 배추 된장국을 끓였는데 배추를 길게 찢어 넣고 파, 된장, 다시마, 바닷소금, 고춧가루를 넣었을 뿐인데도 별미였으며 눈 속에 파묻은 코카콜라를 마시니 눈 녹아 흐르는 차디찬 폭포수에 세상 상념이 씻겨서 내려가듯 뱃속이 후련해진다.

고산지대에서는 물도 늦게 끓고 밥이 설지만 속세에서 먹는 음식과 비교할 수 없는 신선계의 별미로 보겠다.  


   


이른 저녁을 먹고 다시 길을 떠났는데 가야 할 748번 산길을 잃어버리고 방향감각도 없어져서 좁은 산길로 계속 들어갔으며 굵지 않은 쓰러진 나무는 그대로 넘고 통과해서 앞으로 갔다.    




이렇게 쓰러진 나무가 곳곳에 있는데 이곳을 통과하던 ATV (산악용 작은 차량) 가 단체로 다니며 그들이 갖고 있는 엔진톱으로 나무를 자르고 통로를 개척한 그런 곳으로 계속 들어갔다.    




눈 위에서 배춧국을 먹은 후 그 길로 되돌아 가야 했는데 지금은 어디까지 온 것도 모르겠고 실타래처럼 엉킨 길에서 한번 지나면 다시 되돌아서 올라갈 수 없는 언덕길을 수없이 내려왔으며 나무가 막으면 범퍼로 밀어내고 어지간한 것은 넘어가며 그렇게 앞으로 향했다.    




산길에 간간히 있는 표지판 기둥에는 하이커는 아무 곳이나 걸어가도 되고 말과 자전거와 오토바이의 통행이 허용되지만 맨 아래 그림에는 특수한 타이어를 장착했어도 사륜구동 지프는 갈 수 없다고 빨간 선을 그어놓았다.

  

길이 너무 험하고 차량을 돌릴 수 없는 것이 이유인데 일반 타이어에 후륜구동의 여행용 밴으로 무모하게도 산악지도가 없어서 이곳에 빠져들어 난감하였으나 차 안에는 열흘은 버틸 수 있는 식량과 물과 코카콜라와 과자가 있어서 별 염려는 하지 않았다.     




ATV 산악용 다목적 작은 차량이 지나기 위해 나무를 자르고 앞 범퍼에 부착된 윈치로 끌어서 통로를 만들며 다니는 그룹이 다니는 길인데 나의 밴은 폭이 넓고 길어서 통과할 수 없으므로 부딪히고 넘어서 가야 했으며 나의 힘으로는 움직이기를 거부하는 무거운 통나무여서 달리 방법이 없었다.     




산속에서 가야 할 길을 잃고 헤매며 앞으로 가는데 먼 곳 산 위에 산악용 모터사이클을 타는 젊은이 서넛이 보이기에 부지런히 갔다. 그들을 만나서 이곳을 빠져나갈 길을 물어야 하는데 언덕을 오르니 녀석들은 이미 사라지고 보이지 않았다.     




주변에 4천 미터 급 산봉우리보다는 낮지만 견줄만한 비슷한 높이에 올랐으며 그늘진 곳에는 눈이 많이 쌓여서 물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었고 이렇게 놓은 곳에 옛날에 그 누군가 농장을 경영했었는지 낡은 나무 말뚝에 철조망이 몇 가닥씩 걸린 곳이 있었고 산 정상에는 꽤 넓은 평지가 있어서 비행기에서는 나의 위치가 바로 확인될 곳이 많아서 염려는 줄어들었다.     




보기에는 아름다운 길이지만 숲 사이에는 차가 지나갈 정도가 안 되는 작은 통로가 있어 이미 차는 온몸을 긁힌 상태였고 백밀러는 나무에 부딪혀 젖혀지기를 수없이 반복하였는데 나무뿌리가 계단처럼 얼기설기 된 그런 곳을 여러 곳 내려서 왔으므로 뒤로 다시 되돌아 갈 방법이 없어서 차에서 내려 앞으로 걸어가서 길을 확인하고 빠져나갈 방법을 생각하면서 계속 나아갔다.    




나의 본분이 여행하며 글을 쓰는 것이기에 상황을 봐서 위험이 적은 지역에서는 멈추어 셔터를 누르며 즐거운 마음으로 갔다.     




저편에서 달려 올라 온 길인데 파이고 또 파인 길이어서 차가 넘어지는 순간에 방향을 틀어 반대편 경사지를 밟아서 위기를 넘기는 황당한 운전이 계속되었는데 카메라를 고정시키는 도구만 있었으면 비디오를 찍었을 텐데 아쉽게 되었다.


     


산등성이에서 날이 저물면 밥을 해 먹고 차에서 자면 되니까 별 문제는 아니었는데 차를 온전히 운전해서 평지로 내려가야 하는 것이 과제였다.    




날이 저물어 가는 때에 숲이 없는 산 정상에서 아래로 조금 내려가는데 오른편에 사람이 보이기에 창문을 열고 환호성을 질렀다. 이곳에 올라온 친구들 셋이 놀라서 어떻게 여기를 왔냐며 그들도 소리를 지르고 마음의 평정심을 찾은 나는 차에서 내려 그들과 인사하고 자리를 함께 하였다.  


라이언은 평범한 이륜구동의 여행 밴으로 이곳까지 올라온 것이 놀랍다고 어지간히도 떠드는데 너무나 재밌는 친구였다.    




이들이 갖고 있는 지도책 한 권은 전체가 콜로라도 주의 세밀한 지도이며 모든 산악길, 심지어 사람만 다니는 트랙킹 코스까지 상세히 그려져 있었다. 반면 내가 갖고 있는 지도는 전국지도 이므로 큰길만 표시되어 있어 이곳에서는 전혀 소용이 없었는데 이들이 지도에서 현재 위치를 짚어주었는데 12'713 피트 (약 3'900 미터) American Flag 산 바로 옆이었다.


라이언의 손가락 왼편 하얀 차선이 사륜구동의 지프가 갈 수 있는 비포장 산악도로이며 굵은 점선의 길은 사람과 자전거와 오토바이와 ATV 만 다닐 수 있는 길이고 가느다란 점선은 사람만 걸어 다니는 길의 표시다.  


 


춥다고 모자를 눌러쓰고 길게 기대어 있어서 차에서 장작을 꺼내어 불을 지폈는데 그제야 체온이 오르는지 일어나 활달해졌다.   



  


이들은 모두 웨스트 버지니아 헌팅톤 시티 출신으로 사촌 간이며 2년 전 콜로라도주에 이주했으며 장발을 한 친구는 이번에 콜로라도에 놀러 왔으므로 사륜구동의 도요타 지프로 이곳을 올라왔다고 한다.

산에서는 불을 피울 수 없지만 이곳에는 오래전 불을 피웠던 자리가 있어서 차에서 장작을 꺼내어 모깃불을 피웠다.  


이렇게 높은 곳에 모기떼와 파리떼가 사는데 얘들이 뭘 먹고 사는지 모르지만 살을 파고드는 힘이 부족했으며 불을 피우고 물을 자주 부어 연기가 많이 나게 했으므로 모기떼는 곧 사라졌다.  


이들은 매우 소박한 캠핑이어서 미제 사발면에 끓는 물을 부어서 퉁퉁 불어 터진 것을 나누어 먹기에 신라면을 꺼내어 조리법을 설명해 주었더니 끓여서 너무도 맛있게 먹었는데 라면의 품질은 원조 중국과 두 번째 모방 국가 일본도 한국산을 따라오지 못한다.


참고.

(라면의 원조는 일본이 아니라 중국이며 일본은 극지탐험대용 식품을 개발하느라 다양한 음식을 실험하는 중에 중국서 로우면을 참고해 개량시켜 지금의 이찌방 라면으로 만든 것이고 후에 삼양라면이 일본서 배워 한국에 보급시켰다.)   




미국인들은 자신이 먹던 것을 숟가락 그대로 남에게 주면 그걸 싹쓸이 하듯이 먹는데 찬양이 와 은혜가 어려서부터 그렇게 자랐는데 아이들은 그렇게 가르치지 않았어도 서로 먹다가 남겨주면 그걸 물려받아 모두 먹는 모습이 미국 태생이라서 그렇다고 생각했다. 이후 내가 만난 사람들 또한 남의 입에 들어갔던 햄버거와 숟가락으로 떠먹는 남겨서 주는 음식을 깨끗이 먹어 치우는 풍습은 지금도 나의 취향에 전혀 맞지 않지만 말은 하지 않는다.  


미국은 햄버거 샌드위치 치즈 등 손으로 먹는 음식이 보편화되어 있기 때문에 남자나 여자나 음식을 먹으면서 손가락을 물로 씻은 것처럼 쪽쪽 빨아서 깨끗이 하는 특성이 있는데 인조손톱을 길게 붙인 여인들은 손톱 밑에 든 음식찌꺼기 모두를 입으로 쪽쪽 빨아서 핥아먹기 때문에 손을 물에 씻지 않아도 된다.  


(이곳의 글을 읽다 보면 곳곳에 미국인의 특이한 풍습을 써놓은 곳이 많으니 참고하면 되겠으며 이들의 풍습은 30년 넘게 직장과 가정과 파티와 일반적 모임과 학교와 곳곳의 훼스티발에서 서양인들과 함께하며 관찰하고 터득한 것이니 이들의 보편적인 문화와 풍습에 통달하였으며 나의 의견에 반문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유럽에서 온 토종 백인들도 미국인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보면 된다.)  




명랑한 성격의 라이언은 입에 음식이 들어간 후에는 꼭 대마초를 피웠는데 이곳 콜로라도 주는 대마초 (마리화나) 가 합법이어서 전혀 문제가 없다. 지금은 뉴욕주에서는 3명이 모여서 대마초를 피우는 것은 합법화 되었으므로 이제 미국서는 흉도 아니고 점차 전 지역으로 대마초 흡연이 퍼져나가는 추세다.


이들에게 옛날 삼십 년도 넘은 뉴욕시 이야기를 들려주니 너무도 신기해하였는데 거리마다 즐비했던 주사바늘을 찔러대던 마약중독자들과 대마초 흡연자들과 거지와 도둑 이야기 거지로 변장하고 거지 틈에서 잠복해 있던 타임스퀘어의 형사들, 그리고 대낮에 벌어지던 갱단끼리 총격전 등 나의 목격담을 너무도 재밋어 하였다.  


라이언이 대마초를 피워보라고 권하지만 원래 좋지 않다는 것을 멀리하여서 사양하였는데 대마초 맛이 어떤지 궁금할 것도 없고 술맛이 어떤지 전혀 관심이 없으며 물맛이 좋고 코카콜라 맛이 변하지 않으면 된다.    




산꼭대기에 바람이 많이 불어 차를 움직여 막고 장작불을 피우고 즐거운 캠프의 시간이 흘렀다.    




산불 때문에 장작을 피우면 안 되는 곳이라서 물병을 여러 개 꺼내어 번지는 불씨를 끄면서 그렇게 지냈고 아이스박스를 통째로 꺼내어 그릇을 올려놓았으며 여차하면 얼음이 녹은 물을 그릇으로 부어서 끄면 되었다.


    


이들이 천막으로 들어가고 나무와 나무에 매달아 놓은 해먹으로 들어간 시간에도 혼자 주변의 마른나무를 모두 끌어다 피우던 시간이고 이들이 보여준 지도를 보고 내일은 이들이 어렵게 올라 온 759번 산길의 반대 편 759번 지름길로 가려고 결정하였으며 숲 속에서 들리는 엘크 등 산짐승의 노래를 들으며 모닥불에 앉아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아이폰에 있는 고도계는 해발 11'330 피트 (약 3'453 m)를 가리켰으며 인터넷 연결이 되지 않고 시간은 흘러 열 시 반이 되었다. 이들이 모두 잠들고 자정이 넘도록 모닥불에 앉아 내가 어떻게 세상에 태어났으며 지금은 왜 여기에 있는지 갖가지 상념에 젖어 개똥철학에 심취해 있던 시간이다.

 

이들을 만나지 못했으면 길을 더 헤매다 아무 곳에 차를 세우고 잠들어야 했지만 그래도 이웃이 있어 마음이 더욱 안정되었고 이들은 내일 하이킹을 떠난다 했으며 나는 이들의 지도로 확인한 길을 따라서 속세로 내려가기로 했다.  


세상사 살다 보면 걱정도 많겠으나 연륜이 쌓일수록 걱정하지 않는 성품으로 변했는데 아무리 바둥거려도 그 삶이 저 삶이고 저 삶이 이 삶인 것을 깨달아서 이며 마음속에 떠오르는 근심 걱정 대부분은 시간이 지나면 황당한 염려였던 것이라서 미리 걱정을 하지 않는다.


오늘의 이야기는 여기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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