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Prologue
“김민지…”
민지는 허리를 굽혀 떨어진 주민등록증을 주우며 작게 읊조렸다.
부모님이 ‘민첩하고 지혜롭게 자라라’는 뜻으로 지어준 이름.
하지만 이토록 흔하고 평범한 이름이 또 있을까.
길을 가다 누군가 뒤에서 “민지야!” 하고 부르면,
자신 말고도 서너 명쯤은 동시에 돌아볼 것만 같았다.
어느새 그저 그런 사람들 사이에 끼어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번 역은 강남, 강남역입니다. 내리실 문은 왼쪽입니다.”
스피커에서 울리는 익숙한 안내음성에 맞춰,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지고 밀물처럼 흘러들어왔다.
생각에 잠겼던 민지는 문득 정신을 차렸다.
재빨리 주민등록증을 주워 주머니에 넣고 사람들 틈을 비집고 나섰다.
문이 닫히기 직전, 간신히 몸을 내밀며 빠져나왔다.
그 문이, 수많은 문들 중 하나였다는 걸,
그리고 그 문을 지나면 되돌아갈 수 없는 세계로 들어섰다는 걸,
그때는 알지 못했다.
“6번 지원자님, 들어오세요.”
심호흡을 한 번, 두 번.
문을 열고 면접장에 들어갔다.
면접 스터디에서 나름 예상 질문을 철저히 준비해 자신감이 있었다.
“…바탕으로 귀사에 기여할 수 있을 거라고 자신합니다.”
자신은 없었지만, 자신 있다고 말해야 했다.
그게 정답이었다. 주어진 질문에 정확히 맞는 모범답안을 꺼내는 것.
이 자리에서 중요한 건 진심이 아니라, 적합성이라는 걸 이제는 알고 있었다.
면접은 끝났지만, 어딘가 모르게 찝찝했다.
문을 나서며 시야에 스치는 익숙한 장면들.
마치 오래된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데자뷔 같은 풍경이 회사 안을 감싸고 있었다.
회의실 한 켠, 혼자 씩씩대고 있는 중년의 부장.
그를 곁눈질로 살피며 조용히 모니터를 바라보는 팀원들.
말 없이 키보드를 두드리는 손끝엔 묘한 긴장이 맴돌았다.
탕비실에서는 잠시 담소가 오갔다. 허리를 약간 젖히며 웃는 듯한 표정들.
하지만 민지는 알 수 있었다. 그 미소가 진심보다는 관성에 가까웠다는 것을.
사람들 사이를 떠도는 공기에는, 진짜 감정보다 숨겨야 할 마음이 더 많아 보였다.
엘리베이터 문이 ‘딩’ 하고 열리고, 인사 담당자가 조용히 말을 건넸다.
“면접 결과는 2주 내에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좋은 결과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민지는 억지로 입꼬리를 올려 보였다.
엘리베이터 안으로 몸을 던지듯 들어갔다.
입에서 깊은 한숨이 새어나왔다. 아주 오래 참았던 숨처럼, 묵직하고 천천히.
벌써 몇 번째인지도 셀 수 없는 면접.
몇 번의 자기소개였고, 몇 번의 ‘자신 있다’는 말이었는지.
말할수록 민지는 점점 ‘김민지’에서 멀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그저, 그들이 듣고 싶어 하는 김민지를 흉내 내고 있을 뿐이었다.
조용히 엘리베이터 문이 닫혔다.
“축하합니다. 최종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4월 1일, 거짓말같이 면접에 합격했다.
아직은 쌀쌀한 봄바람이 기분 좋게 얼굴을 스칠 때,
못다 핀 벚꽃잎이 살랑살랑 춤을 추며 눈앞을 아른거렸다.
발맞춰 걷고 있던 엄마가 말했다.
“이제는 꽃길만 걸을 거야,
민지야. 축하해!”
옆에서 묵묵히 듣고 있던 아빠가 조용히 한마디 덧붙였다.
"새로운 문이 열린거야, 축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