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첫출근(3)
사무실 문이 열리자, 익숙한 형광등 불빛이 머리 위를 덮었다.
모두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제자리로 조용히 흘러들어갔다.
민지도 말없이 자리에 앉았다.
키보드 두드리는 소리, 마우스 클릭 소리,
가끔 들려오는 낮은 전화 통화음.
익숙하지만 낯선 풍경 속에서
민지는 조심스레 컴퓨터 전원을 눌렀다.
그녀의 모니터에 뜬 사내 메신저엔 회의 일정 알림과 업무 공지 뿐이었다.
간간히 들려오는 웃음소리는 늘 그녀의 책상 너머에서만 흘러나왔다.
민지는 고개를 들었다가 이내 숙였다.
그 순간, 누군가 옆에 다가오는 기척에 흠칫했다.
“민지씨, 잠깐 시간 돼?”
“아, 네. 팀장님.”
이번엔 또 무슨 말을 들을까.
청문회 같았던 점심 시간을 떠올리며 그를 따라 회의실로 들어갔다.
문이 닫히자 팀장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원래 민지씨 안 뽑을라고 했어.”
민지는 순간적으로 눈을 깜빡였다.
그 말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팀장은 팔짱을 낀 채 의자에 기댄 채로 민지를 바라보았다.
“솔직히 경험도 애매했고, 다른 지원자들도 다 괜찮았거든.
근데 인사팀장이 전 직장에서 일 많이 해봤다고 해서... 뭐, 그렇게 된거지.”
“…네. 열심히 하겠습니다.”
민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 말의 의도를 몰라서가 아니었다.
알았다. 너무 잘.
‘길들이기’
처음부터 주도권을 쥐고 눌러두려는 말투.
채 가르치지도 않았는데 ‘알아서 기어라’는 태도.
팀장은 그녀의 대답이 끝나자 고개를 약간 내밀며 말을 이었다.
“요즘은 다 열심히 해. 열심히 한다고 특별한 거 아니야. 알지?”
“네, 알겠습니다...”
“오늘은 첫날이니까 크게 할 건 없고, 모르는 건 선배들한테 물어봐요.”
“네네, 알겠습니다.”
회의실을 나와 다시 자리에 앉았다.
컴퓨터 화면만이 묵묵히 민지를 맞았다.
이후 몇 시간이 흘렀지만 아무도 민지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인수인계도, 친절한 설명도 없었다.
가끔 누군가 지나치며 그녀의 모니터를 힐끔 보는 정도.
민지는 무작정 마우스를 움직이며 엑셀 창을 뒤적였다.
뭘 보고 있는지도 모른 채.
시간은 느리게, 그러나 무심하게 흘렀다.
오후 6시가 조금 지나자, 어딘가에서 슬그머니 의자 미는 소리가 들렸다.
누군가는 모니터를 끄고 가방을 챙겼고, 또 다른 누군가는 말 한마디 없이 조용히 사무실을 빠져나갔다.
몇몇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으며, 자연스럽게 짝을 맞춰 엘리베이터 쪽으로 향했다.
민지는 컴퓨터 화면을 켠 채,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몰랐다.
그때, 맞은편 자리에서 유일하게 눈을 마주친 선배가 말했다.
“정리하고 퇴근해요.”
부드럽지도, 딱딱하지도 않은 말투였다.
그녀는 그 말 한마디를 뒤로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민지는 마우스를 움직여 컴퓨터를 종료시켰다.
그제야 손끝에서 긴장이 조금씩 빠져나갔다.
가방을 챙긴 그녀는 팀장 자리로 다가가 인사했다.
“내일 뵙겠습니다.”
“들어가요”
억지로 웃으며 힐끔 올려다본 팀장은 모니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대답했다.
민지는 웃는 흉내만 남긴 채, 가방을 고쳐 메고 사무실 문을 나섰다.
엘리베이터를 혼자 탄 민지는 깊게 숨을 내쉬었다.
하루 동안 말을 거의 하지 않았는데도 입안에서 단내가 나는 것 같았다.
“또 버틸 수 있을까…”
나직이 흘러나온 혼잣말.
조용한 엘리베이터 안, 대답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