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전회사(1)
“출출한데 우리 간식 먹고 할까?”
“민지씨, 커피 좀 타와줘”
“네네...”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민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살짝 숙였다.
어떤 표정도 들키지 않으려는 듯이, 습관처럼 굳은 몸짓이었다.
학교 졸업을 유예한 채 백 번이 넘는 입사 지원서를 보냈다.
그 중 면접까지 이어진 건 단 두 군데.
그리고 최종적으로 합격한 곳이 이 곳.
지방이지만 망할 걱정 없는 중견기업이었다.
처음엔 열정이 넘쳤다.
커피 심부름이든, 서류 복사든, 뭐든 상관없었다.
나를 필요로 하는 곳이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하지만 그 마음은 길어야 한 달을 넘기지 못했다.
“아. 물이 많네 이런”
팀장이 컵을 들여다보며 대놓고 인상을 찌푸렸다.
민지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되물었다.
“다시 타드릴까요?”
“아냐, 그냥 먹지 뭐. 떡볶이랑 튀김 사오고 있어? 튀김은 알지?”
입사 이후 한 달쯤 지났을 무렵.
팀장은 '소통'이란 명목으로 수시로 회의 테이블에 팀원들을 불러 모았다.
정식 회의도, 보고도, 브리핑도 아니었다.
피상적인 얘기를 던지며 누군가를 놀리거나, 사생활을 캐묻는 시간.
“저번에 골프장, 거기 괜찮더라.”
“아, 다녀오셨어요?”
마지못해 맞장구치는 과장.
불쏘시개 역할을 하는 대리.
“대리는 저번에 누구 만난다며 잘 만났어? 둘이 만났어? 단란하게?”
팀장은 혼자 낄낄 웃었고, 민지는 그 말 뜻을 모르는 척 종이컵만 바라봤다.
‘단란하게’
굳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
단란주점에서 놀았다는 의미를 교묘하게 끼워 넣은 익숙한 방식의 농담
공개적으로 남을 조롱하며 자신의 위계를 확인했다.
“근데 요즘 젊은 친구들은 나이트클럽도 잘 안간다며?”
“민지씨는 가봤어요?”
화살은 결국 민지에게로 향했다.
모두의 시선이 민지에게로 쏠렸다.
웃음기 가득한 얼굴들.
농담이었고, 그냥 웃으면 되는 분위기.
“아… 안 가봤어요.”
민지는 어색하게 웃으며 고개를 숙였다.
그 웃음 뒤에 묻힌 ‘그런 말 불편하다’는 의사는 아무도 듣지 못했다.
애초에 소리내어 말할 수 없었다.
팀장의 이런 소통 방식은 지칠 대로 지치게 만들었다.
팀원들은 당연하다는 듯 야근으로 못다 한 업무를 메웠다.
물론 야근 수당 같은 건 없었다.
'내가 받는 월급에 감정노동도 포함되어 있었나?'
이해할 수 없었다.
낮에는 감정 노동, 밤에는 무보수 노동.
입사 두 달쯤 지나자, 민지는 묻게 되었다.
'이게 맞아?'
웃기지 않은 상황에서 웃어야 했다.
시킨 일을 해내는 건 기본, 시키지 않은 일까지 해내야 했다.
입사 동기와 잠깐 수다를 떠는 것조차 눈치를 봐야 했다.
하루하루가 그렇게 쌓여갔다.
출근은 점점 더뎌졌고, 퇴근은 점점 늦어졌다.
처음엔 '사회생활이란 원래 이런 거겠지'라고 넘겼지만
이제는 하루를 견디는 것 자체가 버거웠다.
퇴근 길, 민지는 비상계단을 택했다.
그곳에서야 비로소 숨을 내쉴 수 있었다.
어디에도 걸리지 않게, 누구에게도 눈에 띄지 않게.
하루를 무사히 생존한 셈이었다.
창밖으로 붉은 노을이 꺼져가고 있었다.
타올랐던 내 열정이, 그 노을처럼 서서히 사라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