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화. 일본 언론은 왜 모두 같은 말만 하나

비판적 사고 능력의 사회적 퇴화

by 박상훈

15화. 일본 언론은 왜 모두 같은 말만 하나

― 비판적 사고 능력의 사회적 퇴화



아침 뉴스를 틀어도,

저녁 뉴스를 봐도 비슷한 내용이 비슷한 논조로 나온다.

다른 채널로 돌려도 마찬가지다.

신문들도 세세한 표현만 다를 뿐 큰 틀에서는 엇비슷하다.


언제부터인가 다른 목소리를 듣기 어려워졌다.

날카로운 비판이나 도발적인 질문은 사라지고,

안전하고 무난한 내용들만 남았다.


사람들도 논쟁을 피하고,

갈등을 회피하며,

조화를 우선시한다.


일본 사회의 동질화는

미디어와 여론에도 깊숙이 스며들어

사회 전체의 사고력을 마비시키고 있다.


정보 접근을 통제하는 기자클럽(記者クラブ) 제도


일본의 주요 미디어들은 오랫동안 안정적인 구조를 유지해왔다.

기자클럽(記者クラブ) 제도가 그 핵심이다.


이 제도는 정부 부처나 공공기관에 소속된 기자들만이

해당 기관의 정보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표면적으로는 정확한 정보 전달을 위한 제도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보 접근을 통제하는 장치로 작용한다.


기자클럽에 소속되지 않은 언론사나

프리랜서 기자들은 정보 접근에서 배제된다.

소속된 기자들도 기관과의 관계를 의식해

비판적 보도를 자제하게 된다.


권력기관과의 관계를 고려한

'눈치보기' 문화가 형성되어,

날카로운 탐사보도나 비판 기사가 줄어들었다.


경제적 의존이 만든 자기검열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구조도 보도의 자유를 제약했다.

대기업 스폰서들의 눈치를 보느라

기업 비리나 사회 문제에 대한 깊이 있는 보도가 어려워졌다.


장기 경제 침체는 이런 경향을 더욱 강화했다.

광고 시장이 위축되면서

언론사들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었고,

이는 스폰서에 대한 의존도를 높였다.


안전한 기사,

논란을 피하는 기사가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기자들도 자신도 모르게 자기검열을 하게 되었다.


"이런 기사를 써도 괜찮을까?"

"회사에 피해를 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들이 먼저 앞서면서,

비판적 사고와 탐사 정신이 위축되었다.


'공기 읽기' 문화의 미디어 침투


일본 특유의 '공기를 읽는'(空気を読む) 문화는,

미디어와 여론 형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명시적 압력 없이도 "이런 것은 말하면 안 된다"는

암묵적 합의가 형성되어

자기검열이 일상화되었다.


사회적 이슈에 대해서도

극단적 의견이나 소수 의견은 배제되고,

중간적이고 무난한 입장만이 살아남았다.


이는 표면적으로는

사회적 갈등을 줄이는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건전한 토론 문화를 위축시켰다.


물론 과도한 극단적 의견은 논외지만,

서로 다른 관점의 충돌이 없으면

새로운 아이디어도 생겨날 수 없다.


조화와 안정을 추구하는 문화가

창조적 사고와 비판적 분석을 억압하는 구조로

작동한 것이다.


사회적 피로감이 만든 비판 의식 약화


장기간의 경제 침체와 사회적 피로감은

사람들의 비판 의식도 약화시켰다.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굳이 문제 제기할 필요가 있나"라는 무관심으로 이어졌다.


특히 젊은 세대는 갈등을 피하고

조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져,

사회 문제에 대한 적극적 문제 제기를 꺼리게 되었다.


이는

사회 전체의 자정 능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문제를 지적하고 개선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 자체를 없는 것처럼 여기는 분위기가 확산되었다.


미디어도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편승해

'불편한 진실'보다는 '편안한 이야기'에 집중하게 되었다.


디지털 시대의 새로운 함정


인터넷과 소셜미디어의 확산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지만,

동시에 새로운 문제도 만들어냈다.


정보의 다양성은 늘어났지만,

동시에 '확증 편향'과 '에코 챔버' 현상도 심화되었다.


사람들은 자신의 기존 생각을 확인해주는 정보만

선택적으로 소비하게 되었고,

다양한 관점에 노출될 기회가 오히려 줄어들었다.


알고리즘이 개인의 취향에 맞는 정보만 추천하면서

각자가 보는 정보의 범위가 더욱 좁아졌다.

이는 정보의 다양성을 해치고

사회적 대화의 공통 기반을 약화시켰다.


과거에는 같은 신문, 같은 방송을 보면서

최소한의 공통된 정보 기반이 있었다면,

지금은 각자 다른 정보 우주에 살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이 마주한 유사한 구조


한국 언론 환경도 일본과 닮은 점이 많다.


언론사들 간의 보도 동조화 현상,

정치권과 언론의 복잡한 관계,

광고주 눈치 보기 문화가 존재한다.


특히 한국의 '빨리빨리' 문화는

깊이 있는 탐사보도보다 속보 경쟁에만 치중하게 만들었다.


인터넷 댓글 문화와 여론몰이 현상도

건전한 토론 문화 형성을 방해하고 있으며,

정치적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언론도 특정 진영의 입장에 편승하는 경우가 늘어났다.


객관적 사실 전달보다는

특정 관점에서의 해석과 논평이 넘쳐난다.


우리나라의 언론에는

- 다양한 관점의 목소리가 살아남을 수 있는가?

- 비판적 사고를 기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는가?

- 독립성과 다양성이 보장되고 있는가?


일본의 경험이 던지는 질문들이다.


미디어 다양성 회복을 위한 과제


결국 핵심은 미디어 생태계의 다양성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의 문제다.


기자클럽과 같은 폐쇄적 시스템을 개혁하고,

경제적 독립성을 보장하며,

비판적 사고를 장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만들어가는 것.


이는 단순히 언론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의 건강성과 직결되는 과제다.


오늘의 교훈


다양한 목소리가 살아있어야 사회가 건강하다.

건전한 사회는 다양한 목소리가 공존하는 사회다.

의견의 충돌과 논쟁이 있어야 사회가 발전할 수 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생각을 하는 사회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실제로는 취약하다.

비판적 사고력의 부재는

사회 전체의 면역력을 약화시킨다.


예상치 못한 변화나 위기가 닥쳤을 때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진다.

다양한 관점과 날카로운 비판이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만든다는 것.

일본이 30년 동안 놓친 교훈이다.


미디어의 역할은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서로 다른 생각들이 만나 충돌하고,

그 과정에서 더 나은 아이디어가 나올 수 있도록 하는 것.

그런 환경에서만 비판적 사고가 자랄 수 있고,

사회 전체의 지적 수준이 향상될 수 있다.


다음 화 예고


16화에서는 외국인 혐오의 구조 – 동질성 강박이 만든 배타적 사회 문화를 다룹니다.

경제적 불안과 사회적 피로가 어떻게 타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변질되었는지,

그리고 이것이 사회 전체의 활력을 어떻게 저해했는지

살펴봅니다.


[일본 : 잃어버린 미래가 남긴 구조적 경고]

잃어버린 30년이 한국에 던지는 메시지

2부 15화. 일본 언론은 왜 모두 같은 말만 하나 – 비판적 사고 능력의 사회적 퇴화

(이 글은 일본 총무성 2024년 방송정책 보고서, 내각부 2025년 미디어 정책조사, 일본신문협회 2025년 언론환경 분석, 한국언론진흥재단 2024년 미디어 비교연구 등을 종합하여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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