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프랑스 정부 주도 혁신의 한계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하는 프랑스의 딜레마

by 박상훈

17화. 프랑스 정부 주도 혁신의 한계

―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하는 프랑스의 딜레마



마크롱 정부는

2017년 '라 프렌치 테크' 정책을 발표했다.


"2025년까지 유니콘 기업 25개 창출"이 목표였다.

연간 50억 유로의 정부 지원금이 투입됐다.

하지만 5년 후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프랑스 유니콘 기업은 현재 27개로,

목표는 달성했지만

이 중 상당수가 정부 보조금에 의존한 '좀비 유니콘'이다.


실질적 수익성을 갖춘 기업은 몇 개 되지 않는다.


더 심각한 문제는 글로벌 경쟁력이다.

프랑스 유니콘들의 시가총액 합계는

미국 상위 5개 유니콘 기업과 비슷한 수준이다.


정부 지원금의 역선택 효과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복잡한 서류와 까다로운 조건을 만족해야 한다.

'사회적 가치' '환경 친화성' '지역 균형 발전' 등

실제 사업과 무관한 조건들이 많다.


그 결과 정말 혁신적인 기업들은

지원 대상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대신 정부 입맛에 맞는 기업들만 선별된다.


시장의 검증 없이

정부가 승자를 미리 정하는 셈이다.


실리콘밸리와의 결정적 차이


실리콘밸리 스타트업들은 VC 투자를 받는다.

VC들은 자신의 돈을 걸고 투자하기 때문에

철저히 수익성을 따진다.

실패하면 자신들이 손해를 보기 때문이다.


반면 프랑스는 정부 관료들이

다른 사람의 돈(세금)으로 투자를 결정한다.

실패해도 개인적 책임을 지지 않으니

리스크 관리가 허술할 수밖에 없다.


그 결과 프랑스 스타트업들은

시장보다는 정부 관료들의 눈치를 보게 된다.


BlaBlaCar의 런던 이전


프랑스가 키운 대표적 성공 사례인

카풀 서비스 BlaBlaCar도

결국 런던으로 본사를 옮겼다.


창업자 프레데리크 마젤라의 설명이다.

"프랑스에서는 성공한 기업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아요.

세금도 높고 규제도 많고...

무엇보다 실패를 용인하지 않는 문화가 문제였죠."


프랑스에서 창업해 성공한 후

해외로 나가는 패턴이 반복되고 있다.


혁신보다는 보조금 사냥


정부 지원이 많아지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에 왜곡이 생겼다.

진짜 혁신을 추구하기보다는

정부 보조금을 타내는 데 집중하는 기업들이 늘어났다.


이른바 '서브벤션 헌터'들이다.

이들은 사업 모델을 개발하는 대신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연구한다.


보조금 신청서 작성이 핵심 업무가 됐다.

그 결과,

정말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가진 창업자들은

상대적으로 불이익을 받는 구조가 됐다.


독일의 미텔슈탄트 모델


독일은 다른 접근을 했다.

정부가 직접 스타트업을 지원하기보다는

미텔슈탄트(중견기업)들이 스타트업과 협력하도록 했다.


BMW가 모빌리티 스타트업들과 파트너십을 맺고

지멘스가 IoT 스타트업들을 인수하는 식이다.

기존 기업들의 자원과 스타트업들의 혁신이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결합되는 구조다.


결과적으로

독일 스타트업들의 생존율이

프랑스보다 높고 글로벌 경쟁력도 우수하다.


이스라엘의 군 복무 시스템


이스라엘은 더욱 독특한 모델을 가지고 있다.

군 복무 중 첨단 기술을 익힌 청년들이

전역 후 창업하는 문화가 자리잡았다.


정부 지원보다는 실전 경험이 혁신의 원동력이다.

특히 사이버 보안, 국방 기술 분야에서

세계적 경쟁력을 갖춘 스타트업들이 많다.


실제 필요에서 출발한 기술이

상업적 성공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다.


규제 샌드박스의 형식적 운영


프랑스도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지만

운영이 형식적이다.

까다로운 승인 절차와 제한적인 실험 범위 때문에

실질적 혁신을 시도하기 어렵다.


핀테크 기업들이 가장 어려움을 겪는다.

금융 규제가 워낙 복잡하고 엄격해서

새로운 서비스를 시도하기 힘들다.


그 결과,

프랑스 핀테크 기업들은

영국이나 독일보다 뒤떨어져 있다.


창업 실패에 대한 사회적 낙인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문화다.

프랑스에서 창업 실패는 개인의 치명적 오점으로 간주된다.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 어려운 구조다.


반면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가 경험으로 인정받는다.

"빨리 실패하고 빨리 배우라(Fail Fast, Learn Fast)"가

창업가들의 모토다.


이런 문화적 차이가

혁신 생태계의 역동성을 결정한다.


혁신 클러스터의 인위적 조성


정부는 파리 외곽에 거대한 혁신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하지만 입주 기업들 대부분이

정부 지원에 의존하는 기업들이다.


자생적 네트워킹이나 시너지 효과는 미미하다.

진정한 혁신은 위로부터의 계획이 아니라

아래로부터의 자발적 결합에서 나온다.


정부 주도의 인위적 클러스터는

껍데기만 화려할 뿐 내실이 부족하다.


오늘의 교훈


정부는 혁신의 주체가 될 수 없다.


정부의 역할은 혁신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지

직접 혁신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다.


시장의 자율적 선택을

관료의 인위적 계획으로 대체하면 실패한다.


다음 화 예고


18화에서는 프랑스 의료시스템의 만성 적자를 다룹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의료보장제도가

어떻게 지속 불가능한 재정 위기에 빠졌는지,

그리고 무료 의료의 숨겨진 비용을 분석합니다.


[프랑스 : 복지국가는 죽지 않는다]

프랑스가 선택한 잘못된 길

2부 7화. 정부 주도 혁신의 한계 – 스타트업을 키우지 못하는 프랑스의 딜레마

(이 글은 프랑스 디지털경제부 통계, CB Insights 유니콘 데이터, 프렌치 테크 성과 보고서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월, 수, 금, 일 연재
이전 16화16화. 프랑스 녹색 정책의 이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