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키우기 좋은 공간 설계의 원칙
10화. 15분 안에 어린이집 가는 도시, 어떻게 가능한가
― 아이 키우기 좋은 공간 설계의 원칙
2024년 봄, 서울 강남구 신규 아파트 단지.
김영희(38)네 가족이 1,000세대 규모 아파트에 입주했다.
딸(3세)이 있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어린이집이다.
단지 내 어린이집은 1개.
민간 운영, 정원 50명.
이미 대기자가 200명이다.
관리사무소 직원이 말한다.
"여기 대기는 2년 이상 걸려요.
차라리 인근 민간 어린이집 알아보세요."
영희는 한숨을 쉰다.
"집값 20억 주고 샀는데, 어린이집도 없다니."
그날 밤, 남편과 계산기를 두드렸다.
인근 민간 어린이집 월 120만 원.
자동차로 20분 거리 국공립은 대기 1년 반.
"둘째는 못 낳겠어."
영희의 결론이다.
같은 시기, 스톡홀름 교외 솔나 지역.
안나(33)네 가족이 신규 주거단지에 입주했다.
500세대 규모다.
입주 안내문에 적혀 있다.
"단지 내 공립 어린이집 2개소, 각 정원 100명.
입주일로부터 4개월 내 배정 보장."
안나는 딸(3세)의 어린이집 신청을 했다.
8주 후, 배정 통보가 왔다.
집에서 도보 10분 거리.
안나가 실제로 걸어봤다.
정확히 8분 30초 걸렸다.
"이 정도면 충분해."
라곰의 철학이다.
주거단지 건설 현장에서 본 차이
스톡홀름 교외 신규 개발 현장.
2023년 가을, 500세대 아파트 공사가 한창이다.
놀라운 건 옆 부지다.
어린이집 2개소가 아파트와 동시에 건설되고 있다.
현장 감독 요한(45)이 말한다.
"주거단지 지을 때 어린이집은 필수예요.
물 없이 집 못 짓듯이,
어린이집 없이 아파트 못 짓죠."
요한은 스톡홀름시 도시계획과와 6개월간 협의했다.
시 정부가 직접 어린이집 부지를 지정했다.
건설비의 80%를 시 정부가 부담한다.
"시에서 땅도 주고, 돈도 대주니까 우리는 짓기만 하면 됩니다."
서울 강남 재개발 현장.
2023년 가을, 1,000세대 아파트가 올라간다.
단지 내 어린이집은?
1개소, 정원 50명.
민간 사업자가 20년 임대 조건으로 입주했다.
현장소장 박철수(52)가 말한다.
"법으로 500세대 이상은 어린이집 의무 설치거든요.
근데 국공립으로 하면 수지가 안 맞아요.
그래서 민간에 임대 주는 거죠."
서울시는?
"부지는 민간이 제공하고, 운영도 민간이 하세요."
땅도 안 주고, 돈도 안 준다.
그러니 국공립이 생길 수 없다.
"시계를 재봤어요, 정확히 8분 30초"
안나는 입주 후 딸의 어린이집 첫날을 기억한다.
아침 8시 20분.
집을 나섰다.
자전거 트레일러에 딸을 태웠다.
페달을 밟는다.
주거단지 도로는 자전거 전용 도로와 분리되어 있다.
안전하다.
신호등 하나.
30초 대기.
어린이집 도착.
시계를 봤다.
8분 30초.
"생각보다 가깝네."
스웨덴 교육법(Skollagen)은 명확하게 규정한다.
"합리적인 거리 내 어린이집 제공."
합리적 거리란?
도보 또는 대중교통으로 15분 이내.
스톡홀름시 통계에 따르면 90% 이상의 어린이집이 집에서 15분 이내 거리다.
이게 법으로 보장된다.
강제성이 있다.
한국 김영희는 어떨까.
아침 7시 40분.
집을 나선다.
딸을 자동차 뒷좌석에 태운다.
자동차로 20분.
아침 출근 시간대라 실제로는 30분 걸린다.
민간 어린이집 도착.
8시 10분.
회사 출근 시간 9시.
영희는 어린이집에서 회사까지 다시 40분을 운전한다.
"왜 이렇게 먼 데를 다녀야 하지?"
가까운 국공립은 대기 1년 반이다.
선택권이 없다.
스웨덴 시 공무원의 업무 일지
스톡홀름시 교육위원회 담당자 에릭(42).
2024년 1월, 그의 책상 위에 보고서가 놓였다.
"향후 5년간 솔나 지역 0~5세 인구 증가 예측."
데이터를 분석한다.
- 현재 영유아 인구: 2,500명.
- 5년 후 예상 인구: 3,200명.
- 증가 인원: 700명.
- 필요한 어린이집 자리: 약 600석 (85% 이용률 가정).
- 현재 공급: 2,000석.
- 부족분: 600석.
에릭은 즉시 결론을 내린다.
"신규 어린이집 6개소 필요."
각 정원 100명.
그는 시의회에 예산 요청서를 제출한다.
6개소 건설 비용: 약 3억 크로나 (약 450억 원).
2025년부터 부지 확보 시작.
2028년까지 완공 목표.
시의회는 승인했다.
에릭이 말한다.
"수요가 생기고 나서 짓는 게 아니에요.
미리 예측해서 미리 짓는 거죠."
서울시 보육 담당 공무원 이민수(38).
2025년 11월, 그의 책상 위에 민원이 쌓였다.
"강남구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언제 해소되나요?"
"송파구 신규 어린이집 계획 없나요?"
민수는 한숨을 쉰다.
"부지가 없어요. 예산도 없고요."
서울시는 매년 "국공립 확충 목표"를 발표한다.
올해 목표: 100개소 신규 개원.
그런데 실제 확충 방식은?
폐원 위기 민간 어린이집 매입.
기존 건물 리모델링.
신규 부지 확보?
거의 없다.
민수가 말한다.
"땅이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어요.
시에서 부지 확보할 예산이 없거든요."
4개월의 마법
안나는 딸의 어린이집 신청 과정을 기억한다.
- 3월 1일: 입주.
- 3월 5일: 온라인으로 어린이집 신청.
- 5월 10일: 배정 통보 수신.
총 66일.
법정 기한 4개월(120일)보다 훨씬 빠르다.
안나가 말한다.
"늦어봤자 4개월이면 된다는 게 중요해요.
그러니까 아이 낳아도 불안하지 않죠."
스웨덴 교육법은 명확하다.
부모 신청 후 4개월 내 어린이집 배정 의무.
못 지키면?
위법이다.
부모는 교육감독청(Skolinspektionen)에 신고할 수 있다.
지방정부가 벌금을 물 수 있다.
담당 공무원이 문책된다.
법적 강제력이 있다.
한국 김영희의 경험은?
2023년 3월: 입주.
2023년 3월: 국공립 어린이집 대기 신청.
2024년 9월: 대기 순번 88번.
총 18개월.
아직도 배정 못 받았다.
영희가 구청에 전화한다.
"언제쯤 들어갈 수 있나요?"
담당자 답변.
"죄송합니다. 자리가 없어서요.
민간 어린이집 이용하시는 게 빠를 겁니다."
법적 강제력이 없다.
"최선을 다하겠다"는 말만 있을 뿐이다.
"어린이집 없는 동네는 상상 못 해요"
안나는 10년 전을 떠올린다.
솔나 지역에 이사 오기 전.
스톡홀름 도심에 살았다.
당시 임신 중이었다.
남편과 집을 알아봤다.
첫 번째 조건은?
어린이집이 가까운 곳.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이 동네는 어린이집 3개가 반경 500m 안에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안나에게 어린이집은 "물이나 전기처럼 당연한 것"이다.
"어린이집 없는 동네요?
상상조차 못 해요.
그건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이죠."
한국 김영희는 어떨까.
2022년, 집을 알아볼 때.
첫 번째 조건은?
학군.
부동산 중개인이 말했다.
"이 아파트는 초등학교 학군이 좋아요.
강남 8학군이에요."
영희가 물었다.
"어린이집은요?"
중개인이 웃었다.
"어린이집은 어차피 민간 다녀야 해요.
국공립은 로또니까요."
영희에게 어린이집은 "로또"다.
당연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야 얻는 것.
예산서에 적힌 우선순위
스톡홀름시 2025년 예산서.
총 예산 1,200억 크로나 (약 15조 원).
가장 큰 항목 두 가지.
- 1위: 교육 (초중고) 35% - 약 420억 크로나
- 2위: 보육 (어린이집) 25% - 약 300억 크로나
보육에 예산의 4분의 1을 쓴다.
스톡홀름시 교육위원장이 시의회에서 말한다.
"보육은 투자입니다.
여성이 일할 수 있게 하고,
아이들이 잘 자라게 하고,
출산율을 지키는 투자죠."
이 돈으로 뭘 하나?
- 기존 어린이집 운영비
- 교사 인건비 (교사 1인당 평균 연봉 4만 5천 크로나, 약 700만 원)
- 신규 어린이집 건설
- 시설 유지보수
시의원 중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서울시 2025년 예산서.
총 예산 약 50조 원.
보육 예산은?
약 2조 원.
전체의 4%.
스톡홀름의 6분의 1 수준이다.
시의회 회의록을 보면 자주 나오는 말.
"보육 예산 증액은 재정 여건상 어렵습니다."
"민간 활용을 늘리는 방향으로 가겠습니다."
민간에 떠넘기는 구조다.
민간도 국공립 수준이어야 대기가 사라진다
안나의 동네엔 어린이집이 3개다.
공립 2개, 민간 1개.
민간 어린이집 원장 마리아(48)가 말한다.
"저희도 공립과 똑같은 기준을 따라요."
- 보육료: 소득의 최대 3% (공립과 동일).
- 교사 자격: 3.5년제 대학 졸업 필수 (공립과 동일).
- 정부 보조금: 아동 1인당 지원액 동일.
마리아는 시 정부로부터 매달 보조금을 받는다.
보육료만으로는 운영이 불가능하다.
시 정부 보조금이 80%를 차지한다.
"민간이지만 공공성을 유지하는 거죠."
부모들은 민간도 편하게 선택한다.
비용도 같고, 질도 같으니까.
한국 민간 어린이집 원장 박순희(51).
서울 강남구에서 정원 50명 규모를 운영한다.
보육료 월 120만 원.
국공립 보육료는 거의 무료인데,
민간은 월 100만 원 넘는다.
교사 급여 월 250만 원.
국공립 교사 평균 월 350만 원보다 100만 원 적다.
정부 보조금 아동 1인당 월 40만 원.
나머지 80만 원은 부모가 부담한다.
박순희가 말한다.
"국공립이랑 경쟁이 안 돼요.
부모들은 국공립만 원하고,
저희는 대기자 채우기도 힘들어요."
격차가 크니 부모들은 국공립만 고집한다.
대기가 생긴다.
스웨덴도 완벽하지 않다
안나도 불만이 있다.
"제가 원하는 어린이집은 아니었어요.
집에서 가장 가까운 곳이 배정된 거죠."
스톡홀름 도심 인기 어린이집은 대기가 2~3개월 있다.
4개월보다는 짧지만,
원하는 곳에 바로 가진 못한다.
민간과 국공립 간 질적 차이도 여전히 존재한다.
일부 민간 어린이집은 교사 1인당 아동 수가 많다.
지방정부 재정 부담도 크다.
예산의 25%를 보육에 쓰니 다른 분야는 줄어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웨덴 시스템은 작동한다.
안나가 말한다.
"완벽하진 않지만, 아이 낳아도 괜찮다는 확신은 있어요.
그게 가장 중요하죠."
오늘의 교훈
어린이집은 물이나 전기처럼 당연한 것이어야 한다.
안나는 말한다.
"어린이집 없는 동네는 상상조차 못 해요."
스웨덴 사람들에게 어린이집은 "인프라"다.
도로, 상하수도, 전기와 같은 기본 인프라.
한국은 어린이집을 "시장"으로 본다.
돈 내고 사는 서비스.
운이 좋으면 국공립, 아니면 비싼 민간.
인프라로 보느냐, 시장으로 보느냐.
이 차이가 공급량을 결정한다.
4개월 법정 의무가 지방정부를 움직인다.
스웨덴 공무원 에릭은 5년 후를 예측해서 지금 짓는다.
왜?
4개월 내 배정 못 하면 위법이니까.
한국 공무원 민수는 민원이 와도 "땅이 없어요"라고 답한다.
왜?
법적 강제력이 없으니까.
의무가 없으면 공급도 없다.
민간도 국공립 수준이어야 선택권이 생긴다.
스웨덴 부모들은 민간도 편하게 선택한다.
비용, 질, 교사 자격이 똑같으니까.
한국 부모들은 국공립만 원한다.
민간은 비싸고 질이 낮다는 인식.
그러니 국공립에 몰린다.
민관 격차가 대기를 만든다.
예산은 우선순위를 말한다.
스톡홀름시: 전체 예산의 25%를 보육에.
"보육은 투자다."
서울시: 전체 예산의 4%를 보육에.
"재정 여건상 어렵다."
스톡홀름은 보육을 최우선 과제로 본다.
서울은 보육을 여러 과제 중 하나로 본다.
예산 비중이 아이들의 미래를 결정한다.
다음 화 예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여성 임금이 95%인 이유"
스웨덴 여성 임금은 남성의 95%.
OECD 최상위 수준.
한국은?
여성 임금 남성의 69%.
OECD 최하위권.
왜 이런 차이가 생길까?
스웨덴 여성들은 출산 후에도 임금이 떨어지지 않는다.
시간제 근무를 해도 시간당 임금은 동일하다.
승진 기회도 보장된다.
한국은?
출산 후 복직하면 "경력단절"로 취급된다.
시간제는 비정규직이 된다.
승진에서 밀린다.
다음 화에서는 스웨덴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어떻게 실제로 작동하는지.
여성이 출산 후에도 임금이 떨어지지 않는 시스템 구조를 해부해봅니다.
[스웨덴 : 아이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 나라]
시스템의 완성
2부 2화. 15분 안에 어린이집 가는 도시, 어떻게 가능한가
(이 글은 스웨덴 교육법(Skollagen SFS 2010:800), 스톡홀름시 2025년 예산보고서, 스웨덴 교육감독청(Skolinspektionen) 2025년 보고서, 서울시 2023년 국공립어린이집 통계, 보건복지부 2024년 전국보육실태조사, 육아정책연구소 2024년 보육 공공성 연구, 서울시 2025년 예산서, OECD Education at a Glance 2025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