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출 300조 삼성이 직원 300명 헤지펀드에 무릎 꿇은 사연
23화.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 매출 300조 삼성이 직원 300명 헤지펀드에 무릎 꿇은 사연
2015년 6월 4일 오전, 서울 서초동 삼성전자 사옥.
이재용 부회장의 집무실에 긴급 보고서가 올라왔다.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지분 7.12%를 취득했다고 공시했습니다.”
삼성 경영진은 얼어붙었다. 삼성그룹 총 매출 300조 원, 임직원 30만 명의 거함이 뉴욕 맨해튼 사무실에 직원 300명 남짓을 둔 헤지펀드의 공격을 받게 된 것이다.
엘리엇의 요구는 명확했다.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비율이 불공정하다. 합병을 반대한다.”
이 합병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핵심 퍼즐이었다. 엘리엇은 정확히 삼성의 아킬레스건을 겨냥했다. 결국 2015년 7월 17일 주주총회에서 합병안은 69.53% 찬성으로 간신히 통과되었다. 가결 요건인 참석 의결권 3분의 2 이상(약 66.7%)을 겨우 넘긴 수치였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국민연금이 정치적 압력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졌고, 이는 박근혜 대통령 탄핵의 한 축이 되었다. 이재용 부회장은 수년간 법정에 서야 했다. 그는 이후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으로 공식 취임했다.
어떻게 직원 300명의 회사가 직원 30만 명의 거함을 이렇게 흔들 수 있었을까?
엘리엇 매니지먼트를 이해하려면 창립자 폴 싱어를 알아야 한다. 1944년생인 그는 하버드 로스쿨을 나온 변호사 출신으로, 1977년 130만 달러로 엘리엇을 창업했다.
그의 가장 유명한 먹잇감은 기업이 아니라 국가였다. 2001년 아르헨티나가 국가부도를 선언했을 때, 대부분의 채권자들은 빚의 70%를 탕감받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엘리엇은 달랐다. 아르헨티나 국채를 헐값에 사들인 뒤 미국 법원에 소송을 걸었다.
“100% 다 갚아라.”
15년간의 지독한 법정 공방이 시작되었다. 엘리엇은 2012년 가나 항구에 정박 중이던 아르헨티나 해군 훈련함 리베르타드호를 압류하는 초강수까지 두었다. 돈 갚을 때까지 배 못 돌려준다. 한 나라의 군함을 일개 헤지펀드가 압류한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결국 2016년 아르헨티나 새 정부는 백기 투항했다. 엘리엇에게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24억 달러를 지급했다. 엘리엇의 자회사 NML캐피탈 기준으로 약 1억 7,700만 달러를 투자해 22억 8,000만 달러를 회수한 셈으로, 원래 매입가 대비 약 1,180~1,200%에 달하는 수익이었다. 이것이 엘리엇의 집요함이다.
국가도 굴복시킨 펀드가 삼성을 봐줄 리 없었다.
삼성 공격에서 엘리엇이 구사한 전략은 세 단계였다.
첫 번째는 법정 소송이다.
엘리엇은 합병 발표와 동시에 합병 무효 소송, 합병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변호사 군단을 동원해 법적 압박을 가하며 삼성의 의사결정 속도를 늦췄다. 시간을 끌수록 불확실성이 커지고, 주가는 출렁였다.
두 번째는 언론 플레이였다.
엘리엇은 소액주주 보호라는 명분을 전면에 내세웠다. 삼성물산 주주들이 부당하게 손해를 본다, 총수 일가의 사익 편취, 지배구조 개선 필요라는 메시지를 한국 언론에 지속적으로 흘렸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같은 시민단체들도 엘리엇의 주장에 동조했다. 외국 펀드가 한국 기업을 공격하는 것이 아니라, 한국 시민사회와 함께 재벌을 견제하는 것으로 프레임을 바꾼 것이다.
세 번째는 위임장 대결이었다.
엘리엇은 7%의 지분으로 직접 막을 수는 없었지만, 다른 주주들을 설득해서 연합전선을 구축하려 했다. 특히 국민연금이 핵심이었다. 당시 국민연금은 삼성물산 지분 11.21%를 보유한 비계열 단일 최대주주였다. (삼성 계열사 합산 지분은 13.92%로 더 많았지만, 단일 기관으로는 국민연금이 가장 큰 주주였다.) 엘리엇과 국민연금이 손을 잡으면 18%를 넘어 총수 일가의 지배 구도를 정면으로 위협할 수 있었다.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는 구조적이었다. 한국이 IMF 이후 자본시장을 전면 개방하면서, 우리는 세계에 이런 신호를 보냈다.
“한국 주식, 마음껏 사세요. 대신 세계의 룰을 존중합니다.”
문제는 실제로는 여전히 한국식 재벌 룰이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법적으로는 글로벌 스탠더드를 따라야 하는 시장인데, 실제로는 오너 일가의 승계와 지배력 유지가 우선인 구조였다. 룰북은 선진국인데, 플레이는 전통 방식으로 하는 모순이었다.
엘리엇은 바로 이 간극을 본 것이다. 삼성은 한국 기업이지만, 삼성 주식은 글로벌 자본시장 시스템 안에 들어와 있다. 뉴욕, 런던, 홍콩의 자금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순간, 한국식 암묵적 합의는 더 이상 방패가 될 수 없었다.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한국 기업의 구조적 약점이 있었다.
첫째는 낮은 총수 지분율이다.
삼성 총수 일가는 그룹 전체 지분의 2~3%만 보유하고 있다. 계열사 간 순환출자로 지배력을 유지하지만, 직접 보유 지분은 매우 낮다. 반면 미국 빅테크 창업자들은 의결권 과반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 마크 저커버그는 메타(구 페이스북) 의결권의 약 61%를,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구글(알파벳) 의결권의 51% 이상을 가지고 있다.
둘째는 차등의결권 부재다.
미국은 창업자에게 1주당 10표의 의결권을 주는 구조를 허용한다. 한국의 경우 2023년 11월부터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복수의결권이 처음으로 도입되었지만, 삼성과 같은 대형 상장기업에는 여전히 차등의결권이 허용되지 않는다. 아무리 회사를 키워도 지분율이 낮으면 경영권을 지킬 수 없는 구조다.
셋째는 적대적 M&A 방어 수단 부족이다.
미국 기업들은 포이즌 필, 황금낙하산 같은 방어 장치를 갖추고 있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장치들이 여전히 법적으로 제한된다. 상법과 자본시장법이 주주 권리를 강조하면서, 경영진의 방어 수단은 약화되어 있다. 2025년 8월 통과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신설, 자사주 소각 의무화 등을 담아 주주 권리를 더욱 강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넷째는 높은 외국인 지분율이다.
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은 2025년 말 기준 약 52%다. (2024년 중반에는 56%를 넘기도 했다.) 이들은 단기 수익에 민감하고, 행동주의 펀드가 배당을 늘려라, 자사주를 매입하라고 요구하면 동조할 가능성이 높다.
엘리엇 사건에서 가장 곤혹스러운 입장에 선 것은 국민연금이었다. 과거였다면 국민연금과 국내 기관이 알아서 삼성 편을 들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2015년은 달랐다.
국민연금은 세계 3대 연기금으로 성장했고, 그만큼 글로벌 연기금들로부터의 압력도 받고 있었다. 진짜 연금 가입자의 이익을 위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거 맞냐는 질문이 거세지고 있던 시점이었다.
엘리엇은 여기에 맞춰 전략을 짰다. 국민연금은 연금 가입자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한다, 이 합병은 삼성물산 주주에게 명백한 손해다, 국민연금이 찬성하면 연금 가입자 이익에 반한다고 공개적으로, 그리고 국제적으로 압박을 넣었다.
결국 국민연금이 합병에 찬성하면서 정치적 후폭풍이 거셌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과 홍완선 기금운용본부장이 각각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이 구조적 모순이 만들어낸 결과였다.
표면적으로는 삼성이 이겼다. 합병안이 통과되었고, 이재용 부회장의 승계 작업도 완성되었다. 그는 이후 2022년 10월 삼성전자 회장에 정식으로 취임했다. 하지만 진짜 승자는 엘리엇이었다.
엘리엇은 삼성물산 주식을 평균 6만 원대 초반에 매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합병 소송, 가처분 신청, 여론전이 이어지는 동안 주가는 크게 출렁였다. 결과적으로 엘리엇은 2016년경 지분을 정리하면서 수천억 원대 차익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더 중요한 것은 엘리엇이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2018년 엘리엇은 한국 정부를 상대로 ISD(투자자-국가 분쟁) 소송을 제기했다.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국민연금에 압력을 넣어 합병에 찬성하게 했으며, 그 때문에 손해를 봤다며 7억 7,000만 달러 배상을 요구했다.
2023년 6월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는 한국 정부는 엘리엇에게 5,358만 달러와 이자를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자와 법률 비용을 합산하면 총 약 1,300억 원 규모였다. 요구 금액의 7% 수준이었지만, 한국 정부의 개입으로 손해를 봤다는 논리는 인정받았다.
그러나 이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한국 정부는 PCA 판결에 불복해 중재지인 영국 법원에 취소 소송을 제기했고, 2025년 7월 17일 영국 항소심에서 한국 정부가 승소했다. 사건은 영국 1심 법원으로 돌아가 재심리가 진행 중이며, 2026년 현재 최종 결말은 아직 나지 않은 상태다.
패배해도 돈을 받아낼 방법을 찾고, 또 그 판결마저 뒤집으려 끝까지 싸우는 것. 이것이 엘리엇의 진짜 무서움이다.
“매출 300조 삼성도 월스트리트의 룰 앞에서는 을이다.”
엘리엇 사건은 한국 사회에 중요한 질문을 던졌다.
우리는 정말 자본시장 개방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는가? IMF 이후 한국은 국제 금융허브, 선진 자본시장, 외국인 투자 유치를 외쳤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래도 재벌만큼은 한국의 룰로 굴릴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었다.
엘리엇은 그 환상을 깨버렸다. 한국 기업이 글로벌 자본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고, 한국 연기금이 글로벌 연기금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한국 주식이 MSCI 지수에 편입되는 순간, 그 기업과 시장은 더 이상 한국식 내부 룰만으로 운영할 수 있는 공간이 아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은 변하고 있다. 2025년 8월 상법 개정으로 이사의 주주충실의무 신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확대 등이 도입되었다. 그 결과 한국 코스피는 2025년 한 해에만 76% 상승하며 세계 최고 성과를 기록했고, 2026년 현재도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원인이 된 바로 그 구조적 문제들을 스스로 뜯어고치기 시작한 것이다.
삼성은 한국 기업이지만, 삼성 주식은 글로벌 자본시스템 안에 있다. 뉴욕의 자금이 자유롭게 드나드는 순간, 한국식 암묵적 합의는 더 이상 방패가 될 수 없다. 이것이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다. 그리고 그 교훈이 지금의 개혁을 만들어가고 있다.
엘리엇이 개별 기업을 공격하는 사냥꾼이라면, 더 거대한 존재는 산업 전체를 조용히 지배한다.
블랙록은 왜 14조 달러를 움직이는가.
자산 운용 규모 14조 달러(2025년 말 기준). 삼성전자, 애플, 마이크로소프트, 엑슨모빌의 최대주주. 블랙록은 엘리엇처럼 시끄럽게 공격하지 않는다. 조용히, 하지만 압도적으로 지배한다.
래리 핑크 회장의 연례 서한 한 통이 전 세계 CEO들의 행동을 바꾼다.
24화에서는 세계의 주인이라 불리는 블랙록의 힘과, 그들이 만드는 새로운 자본주의를 파헤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
3부 3화 (시리즈 23화). 엘리엇이 삼성을 공격할 수 있었던 진짜 이유
(이 글은 Elliott Management의 삼성물산 지분 7.12% SEC 공시 원문 및 동아일보·중앙일보 공시 확인 보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관련 공시 및 임시주주총회 의사록(찬성률 69.53%), 국제상설중재재판소(PCA) 엘리엇 vs 대한민국 중재판정문 2023년 6월(배상원금 5,358만 달러·지연이자·법률비용 포함 총 약 1,300억 원), 법무부 보도자료 2025년 7월 17일(엘리엇 ISDS 중재판정 취소소송 영국 항소심 한국 정부 승소 판결), Paul Singer 프로필(Bloomberg·NYT·미래한국—1944년생, 하버드 로스쿨, 1977년 130만 달러 창업), New York Times Opinion “How Hedge Funds Held Argentina for Ransom” 2016년 4월 1일(NML Capital 아르헨티나 투자 수익률 약 1,180% 산출 근거), Financial News London “How Elliott Earned Billions on Argentine Bonds” 2016년 3월 4일, IMANI Africa 보고서 2012년 10월(아르헨티나 해군 훈련함 ARA Libertad호 가나 테마항 압류 사실 확인), ISS(Institutional Shareholder Services) 의결권 행사 권고안, 대법원 국정농단 사건 판결문(문형표·홍완선 징역 2년 6개월 실형 확정), 나무위키·경제개혁연대 「삼성물산 합병 건 국민연금 의결권 보고서 2015-7호」(삼성계열사 13.92%, 국민연금 11.21% 지분율), 연합뉴스 2025년 12월 27일(삼성전자 외국인 지분율 52.42%, 2025년 말 기준), Meta Platforms Wikipedia·Harvard Law School Corporate Governance Blog 2025년 2월(마크 저커버그 메타 의결권 61.2%), Fortune·PRI(래리 페이지·세르게이 브린 알파벳 의결권 51% 이상), KBS·연합인포맥스 2026년 1월(블랙록 AUM 14조 달러, 2025년 말 기준, 전년 대비 22% 증가), 김앤장 법률사무소 「차등·복수의결권 주식 관련 동향」 2023년(벤처기업법 개정으로 2023년 11월 17일부터 비상장 벤처기업에 한해 복수의결권 최초 허용), 삼성전자 이재용 회장 취임 공식 보도 2022년 10월 27일, Reuters·Bloomberg·김앤장 「2025년 8월 상법 개정」(이사의 주주충실의무 신설, 자사주 소각 의무화, 집중투표제 확대), Bloomberg 2026년 2월 23일 “How Korea’s President Turned Its Market Into the World’s Best Performer”(코스피 2025년 76% 상승, 세계 최고 수익률 달성), 한국상장회사협의회 외국인 지분율 통계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