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화. 2008년 금융위기는 왜 재발할 수 있나

규제를 만들고, 우회로를 찾고, 더 큰 폭탄을 만든다

by 박상훈

26화. 2008년 금융위기는 왜 재발할 수 있나

― 규제를 만들고, 우회로를 찾고, 더 큰 폭탄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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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9월 15일 월요일 새벽 1시 45분, 뉴욕 맨해튼.

리먼브라더스 본사 31층 회의실에서 마지막 협상이 결렬되었다.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정부는 구제하지 않습니다. 파산 신청 준비하십시오.”

새벽 6시, 리먼브라더스는 연방파산법 11조를 신청했다. 자산 6,390억 달러, 부채 6,130억 달러. 미국 역사상 최대 규모의 파산이었다. 그날 전 세계 증시가 폭락했고, 신용시장이 얼어붙었다. 은행들이 서로를 믿지 못했다.


18년이 지난 2026년 현재, 정부와 중앙은행들은 맹세했다.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도드-프랭크법으로 월스트리트를 옭아맸고, 은행들에게 더 많은 자본금을 쌓게 했으며, 위험한 파생상품을 규제했다. 하지만 월스트리트는 바보가 아니었다. 규제가 생기면 규제가 없는 곳으로 돈을 옮기면 된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그림자 금융이라는 새로운 괴물이다.


이번엔 더 크고, 더 복잡하고, 더 보이지 않는 형태로 자라고 있다.


2008년의 본질: 위험을 떠넘기는 시스템


2008년 위기의 겉모습은 서브프라임 모기지였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위험을 누구도 최종적으로 지지 않고 계속 떠넘기는 구조였다. 은행은 신용등급이 낮은 사람들에게 집을 살 돈을 빌려준 뒤, 그 대출을 즉시 증권회사에 팔았다. 증권회사는 수천 개의 모기지를 묶어 MBS(주택저당증권)를 만들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이 MBS를 다시 잘라서 CDO(부채담보부증권)를 만들었다. 부실 대출과 우량 대출을 섞어 재포장한 것이다.


신용평가사들은 이 복잡한 상품에 AAA 등급을 매겨줬다. 은행들은 이 CDO를 30배 레버리지로 거래했다. 자기 돈 1달러로 30달러어치를 산 것이다. 리먼브라더스의 레버리지는 무려 31배였다. 3% 오르면 90% 수익, 3% 떨어지면 파산이었다.


집값이 떨어지기 시작하자 도미노가 무너졌다. 서브프라임 대출자들이 파산하고, MBS 가격이 폭락하고, CDO가 휴지조각이 되고, 레버리지 30배를 쓴 은행들이 연쇄 파산했다. 위험의 소유자와 이익의 수혜자가 분리된 구조의 필연적 결과였다.


도드-프랭크법: 완벽해 보였던 방패


2010년 7월 21일, 오바마 대통령이 도드-프랭크 월스트리트 개혁 및 소비자보호법에 서명했다. 2,300페이지에 달하는 이 법은 2008년의 재현을 막기 위한 종합 처방전이었다.


핵심은 명확했다. 은행의 자기자본 비율을 높여 빚으로 투기하지 못하게 막고, 파생상품 거래를 투명하게 만들고, 대형 은행을 쪼개고, 소비자를 약탈적 대출로부터 보호한다는 것이었다. 볼커 룰은 은행이 자기 돈으로 위험한 투자를 못 하게 했고, 스트레스 테스트는 매년 은행이 위기를 견딜 수 있는지 검사했다.


월스트리트는 격렬히 반발했다. 2010년 한 해 동안 금융업계가 쓴 로비 비용은 6억 달러였다. 하루 평균 164만 달러씩 쏟아부었다. 법은 통과되었지만, 세부 규칙을 만드는 과정에서 수백 개의 구멍이 뚫렸다. 2,300페이지 법안을 실행하기 위한 세부 규칙은 무려 2만 2,000페이지에 달했다. 그 복잡한 규칙 속에서 월스트리트는 빠져나갈 구멍을 찾아냈다.


그리고 지금, 방패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2025년 12월, 트럼프 행정부는 15년 만의 금융 감독 대전환을 선언했다. 스콧 베선트 재무장관은 도드-프랭크법 이후 설립된 금융안정감독위원회(FSOC)의 기조를 규제 중심에서 경제 성장 우선으로 전면 개편하겠다고 발표했다. 베선트 장관은 "과거의 위험 평가 방식은 과도한 규제를 낳고 성장을 가로막았다"고 선언했다.


도드-프랭크법 제정에 참여했던 비영리단체 베터마켓츠(Better Markets)의 데니스 켈러허 CEO는 즉각 반박했다.


“무분별한 규제 완화는 모든 미국인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견고한 성장이 아니라, 소수에게만 유리하고 언제 터질지 모르는 단기적 거품 성장만 초래할 뿐이다.”

규제가 완화될수록, 위험은 더 빠르게 쌓인다.


풍선 효과: 은행을 누르니 그림자가 커졌다


월스트리트가 찾은 해법은 간단했다. 규제 바깥으로 나가는 것이었다.


은행이 직접 레버리지를 크게 못 쓰면? 은행의 그림자에서, 규제를 덜 받는 새로운 금융기관을 만들면 된다. 헤지펀드, 사모펀드, 사모 대출펀드, 구조화 신용펀드 같은 것들이다. 이들은 은행과 비슷한 기능을 하지만 은행 규제를 받지 않는다. 그림자 금융(Shadow Banking)의 탄생이었다.


- 2008년 전 세계 그림자 금융 규모: 약 60조 달러
- 2024년 말 전 세계 비은행 금융중개(NBFI) 규모: 256.8조 달러 (FSB 2025년 12월 공식 발표)


2024년 한 해에만 은행 성장 속도의 2배(9.4%)로 팽창했다. 이제 비은행 금융이 전 세계 금융 자산의 51%를 차지한다. 위험은 사라진 게 아니라 규제 감독이 닿지 않는 곳으로 숨어들었다. 리스크는 사라지지 않았다. 주소만 바뀌었다.


사모신용: 새로운 서브프라임의 탄생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그림자 금융은 사모신용(Private Credit)이다.


과거에는 신용도가 낮은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려면 은행 대출을 받거나 정크본드를 발행했다. 하지만 은행 대출은 도드-프랭크법으로 막혔고, 정크본드 시장은 변동성이 크다. 그래서 등장한 게 사모신용이다. 블랙스톤, 아폴로, KKR 같은 거대 사모펀드들이 기업에 직접 돈을 빌려주는 것이다.


사모신용 시장 규모: 2020년 약 2조 달러 → 2025년 약 3.4조 달러
(CNBC 2026.1 인용, 2029년 4.9조 달러 전망)


문제는 투명성이다. 은행 대출은 공시되고 감독받지만, 사모신용은 둘만의 계약이라 외부에서 알기 어렵다. 금리가 오르면 이 기업들이 이자를 낼 수 있을지, 담보 가치는 적정한지 아무도 모른다. 만약 금리 급등으로 기업들이 줄도산하면? 사모펀드 투자자들인 연기금과 보험사가 손실을 입는다. 결국 국민 노후자금이 위험해진다.


2026년 2월 24일, CNBC는 "사모신용 3조 달러 붐이 역대 최대 시험대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2025년 9월 사모신용으로 자금을 조달했던 미국 자동차업계 기업 트라이컬러(Tricolor)와 퍼스트브랜즈(First Brands)가 연달아 파산했다. 블랙록 등 대형 사모대출 기관은 특정 대출의 가치를 100센트(액면가)로 평가하다가 갑자기 '0’으로 조정했다.


JP모건의 CEO 제이미 다이먼은 2025년 10월 경고했다.


“바퀴벌레 한 마리를 보면, 분명히 더 있다.”


채권 투자의 전설 제프리 건들락은 2025년 11월 사모대출 기관들이 쓰레기 대출(garbage loans)을 만들고 있다며, 다음 금융위기는 사모신용에서 터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현재 사모신용 관련 기업들의 주가는 최고점 대비 크게 하락한 상태다.


CLO: CDO의 기업판 데자뷰


2008년 위기의 주범 CDO는 사라진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구조는 그대로 살아 있다. 이름만 바뀌었다.


지금 잘 나가는 것은 CLO(Collateralized Loan Obligation)다. CDO가 주택담보대출을 묶어 만든 상품이었다면, CLO는 기업대출을 묶어 만든 상품이다. 특히 신용등급이 낮은 기업에게 빌려준 레버리지드론(Leveraged Loan)을 모아 포장한다.


은행들은 레버리지드론을 자기 장부에 오래 들고 있지 않는다. 빌려주자마자 묶어서 CLO로 팔아버린다. 위험은 다시 증권화되어 전 세계 투자자들의 포트폴리오로 흩어진다. 2025년 글로벌 CLO 시장 규모는 약 1조 4,000억~1조 6,000억 달러다. 2025년 한 해에만 미국에서 CLO 신규 발행액이 2,015억 달러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 나쁜 점도 있다. 주택은 담보라도 있다. 기업은 부도가 나면 남는 게 거의 없다. 담보도, 회수 가능성도 더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용평가사들은 또다시 이것에 AAA 등급을 매겨주고 있다. 그리고 이것을 사는 것은 연기금, 보험사, 그리고 당신의 퇴직연금 펀드다.


상업용 부동산: 텅 빈 오피스의 공포


또 다른 뇌관은 상업용 부동산이다. 팬데믹 이후 재택근무가 정착되면서 오피스 공실률이 급증했다. 2025년 기준 미국 전체 오피스 평균 공실률은 약 20.8%이며, 샌프란시스코는 33.5%(2024년 말 기준), 실리콘밸리는 22.2%(2025년 3분기)에 달한다. 건물 가치는 30~40% 폭락한 곳도 속출했다.


문제는 이 건물들을 담보로 대출해준 은행들이다. 특히 중소형 지역은행들이 상업용 부동산 대출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2023년 3월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은 예고편이었다. 금리가 오르자 보유 채권 가격이 떨어지고, 뱅크런이 발생해 무너졌다.


상업용 부동산 대출 만기가 돌아오면 건물주들은 대출을 못 갚는다. 담보 가치가 떨어져서 리파이낸싱도 안 된다. 은행들은 담보 건물을 압류하지만, 팔리지 않는다. 은행 자본금이 깎이고, 뱅크런 공포가 되살아난다.


도덕적 해이: “어차피 구제해주겠지”


15화에서 봤듯이, Fed는 위기가 올 때마다 시장을 구제했다. Fed Put이다. 시장 참여자들은 학습했다.


“위기가 오면 Fed가 금리를 내리고 돈을 풀어줄 거야.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이 믿음이 만들어낸 것이 도덕적 해이다. 은행과 헤지펀드, 자산운용사들은 레버리지를 더 쓰고, 더 위험한 상품을 만든다. "진짜 망할 정도로 크면, 정부가 안 망하게 해줄 거야"라는 믿음 때문이다.


2020년 코로나 위기 때 Fed는 회사채까지 사주겠다고 선언했다. 심지어 정크본드 ETF도 특정 조건 하에 매입했다. 이 조치로 위기는 일단 봉합되었다. 하지만 부작용이 남았다. 이제 회사채 시장도 위기 때 Fed가 지켜준다는 학습 효과다. 그 후 기업들은 빚을 더 많이 냈다.


평소 같으면 사라져야 할 좀비기업들이,

Fed의 안전망 덕분에 계속 버티는 구조가 된 것이다.


한국의 취약성: 1,913조 원의 시한폭탄


한국은 2008년 위기를 비교적 잘 넘겼다. 서브프라임 모기지에 직접 노출이 적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음 위기에는 더 취약할 수 있다.


가계부채 1,913조 원(2025년 3분기 기준)이 시한폭탄이다. GDP 대비 비율은 2021년 최고치 약 104~106% 추정 기준에 따라 다름)에서 2025년 현재 약 89~90%로 다소 낮아졌지만, OECD 국가 중 여전히 최상위권이다. 특히 변동금리 비중이 높아 금리가 오르면 이자 부담이 즉시 증가한다. 2022~2023년 금리 인상기에 이미 조짐이 보였다. 연체율이 급증하고, 부동산 PF 부실도 터져 나왔다.


더 큰 문제는 전세 시스템이다.


전세는 세계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제도다. 집주인이 세입자 돈을 빌려 쓰는 구조다. 집값이 오를 때는 괜찮다. 하지만 집값이 떨어지면 집주인이 전세금을 돌려줄 수 없다. 2023~2024년 전세보증금 반환보증 사고는 연간 수조 원에 달했다가 2025년 들어 감소세로 돌아섰으나, 구조적 위험은 여전히 잠재되어 있다. 부동산 가격이 급락하면 전세 시스템 전체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는 사라지지 않고 있다.


오늘의 교훈


“2008년 위기는 끝나지 않았다. 단지 다음 막을 준비하고 있을 뿐이다.”


도드-프랭크법으로 은행을 조였더니, 똑같은 위험이 헤지펀드, 사모펀드, 암호화폐로 옮겨갔다. 풍선효과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부푼다. 위험은 사라지지 않고 이동할 뿐이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는 CLO로, 은행은 그림자 금융으로, CDO는 사모신용으로 바뀌었다. 구조는 그대로인데 이름만 바뀌었다. 아니, 더 커지고 더 복잡해졌다. 그림자 금융(NBFI) 256.8조 달러, CLO 1조 4,000억~1조 6,000억 달러, 사모신용 3.4조 달러. 모두 2008년보다 크다. 그리고 트럼프 행정부의 규제 완화가 맞물리면서, 위험은 더 빠르게 쌓이고 있다.


더 근본적인 이유는 인센티브 구조다. 월스트리트는 위험을 떠안고 큰 수익을 노린다. 성공하면 보너스를 받고, 실패하면 정부가 구제해준다. 책임은 없고, 보상은 있다. 이 구조가 유지되는 한 위기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


다음 위기가 언제 올지는 모른다.

하지만 올 것이라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이번에는 2008년보다 더 클 것이다.


역사는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두 번은 희극으로.


하지만 금융위기는 매번 비극이다.


다음 화 예고


2008년 위기가 터졌을 때, 누가 책임졌나? 아무도 없었다. 왜? 신용평가사들이 쓰레기에 AAA를 매겨줬기 때문이다.


“S&P, 무디스, 피치가 국가 운명을 정한다”


전 세계에 신용평가사는 수십 개지만, 진짜 힘을 가진 곳은 단 세 곳뿐이다. S&P, 무디스, 피치. 이들이 등급을 한 단계 내리면 한 나라가 파산할 수 있다. 2011년 S&P는 미국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강등했다. 세계가 충격에 빠졌다.


27화에서는 평가자를 평가할 수 없는 구조적 모순과 신용평가사들이 어떻게 2008년 위기의 공범이 되었는지 파헤칩니다.


[달러 제국: 파월이 세계를 움직이는 방법]

월스트리트 금융 자본주의

3부 6화 (시리즈 26화). 2008년 금융위기는 왜 재발할 수 있나

(이 글은 Financial Crisis Inquiry Commission “The Financial Crisis Inquiry Report” 2011, Dodd-Frank Wall Street Reform Act 전문, Financial Stability Board “Global Monitoring Report on Nonbank Financial Intermediation 2025” (2025.12), S&P Global CLO 시장 통계 2025, CNBC “Wall Street braced for a private credit meltdown” 2026.1.23, CNBC “How stress is spreading in private credit” 2026.2.24, Private Equity Stakeholder Project 연구 보고서, 한국은행 금융안정보고서 2025년 12월, 한국은행 가계신용 통계·차주별 가계부채 통계 2025.4Q, 금융위원회 가계대출 동향 2025, Bank of England “Financial Stability Report” December 2025, 조선일보 “2조달러 넘는 사모 대출, 새로운 글로벌 금융위기 뇌관 되나” 2025.11, Guggenheim Investments CLO 시장 통계 2025, Bloomberg “US CLO Sales Reach Fresh Record in 2025” 2025.12, 글로벌이코노믹 “트럼프 2기 금융 족쇄 푼다” 2025.12.13, 연합뉴스 “美 금융규제완화 속도” 2025.12.12 등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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