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명한 불완전

사물의 관계-아버지의 세단

by 윤담

아버지에게는 오래된 세단이 한 대 있었다.
에스… 뭐시기, 이름도 이제는 흐릿하다.
아버지가 월급을 모아 중고로 샀던 차였다.
그날의 아버지 얼굴엔 묘한 기쁨이 걸려 있었다.
그건 자랑도 아니었고, 허세도 아니었다.
그저 이제 우리도 어딘가로 갈 수 있다는,
조용한 안도감 같은 것이었다.

그 차는 늘 반짝였다.
주말이면 아버지는 고무장갑을 끼고
호스로 물을 뿌리며 차를 닦았다.
닳은 스펀지가 차체를 따라 천천히 움직였다.
햇빛이 철판 위에서 반사되어,
그 손끝마다 은빛 먼지가 일었다.
그 모습은 이상하게 경건했다.
기도하는 사람처럼, 묵묵하고 단정했다.
엔진이 켜질 때마다 집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세단은 단순한 탈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세상에 맞서는 유일한 무기였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학교에서 돌아오는데,
집 앞에서 낯선 남자가 아버지에게 욕을 퍼붓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듣고 있었다.
그 남자는 ‘아는 형님’이라 말했다.
하지만 그 말이 오히려 더 이상하게 들렸다.
어린 나는 알 수 없었다.
세상에는 침묵해야만 지킬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걸.

그날 저녁, 아버지는 나를 불렀다.
“드라이브하자.”
말없이 시동을 걸었다.
라디오는 켜져 있었다.
낮은 주파수의 음악이 희미하게 깔려 있었다.
가수의 목소리는 자꾸만 잡음 속으로 꺼져갔다.
아버지는 창문을 살짝 내리고 담배를 꺼냈다.
불빛이 한순간 그의 얼굴을 스쳤다가 사라졌다.
차 안에는 바람소리와 타이어의 진동만 남았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댐이었다.
밤물결이 검은빛으로 뒤척이고 있었다.
아버지는 잠시 물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봐라, 저 물이 얼마나 세냐. 그래도 흘러가잖아.”
그때는 그 말의 뜻을 몰랐다.
지금 생각하면 그건 세상 앞에서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버티는 법을 배우던 사람의 말이었다.
물처럼 견디고, 흘러가는 법.
그게 아버지의 방식이었다.

그 후로 아버지는 세단을 덜 닦았다.
먼지가 쌓이고, 유리엔 비 자국이 남았다.
시간은 차를 녹슬게 했고,
아버지의 어깨도 조금씩 굽었다.
번호판이 떨어질 무렵,
그 차는 골목 한켠에 오래 서 있었다.
마치 삶의 한 장면이 그대로 멈춰 있는 것처럼.
결국 세단은 폐차장으로 갔다.
그러나 라디오의 노랫소리처럼,
그 진동은 내 안 어딘가에서 아직도 울린다.

그날 댐 옆에서 먹던 어묵의 온기,
그 김 사이로 들리던 물소리,
그것들이 지금도 마음 한쪽에 남아 있다.
아버지는 차를 닦던 손으로
결국 나의 세상을 닦아주었던 사람이다.
그 손의 거칠음 속에
살아온 세월이 묻어 있었다.

이제는 내가 운전대를 잡는다.
창밖의 풍경은 빠르게 지나가지만
마음은 늘 제자리에 머문다.
차창에 비친 내 얼굴이
그날의 아버지를 닮아 있을 때가 있다.
그때마다 나는 창문을 조금 내리고,
바람을 맞으며 생각한다.

삶은 결국 흘러가지만,
그 흐름 속에서 멈춰 있는 순간들이 있다.
그 순간이 아버지였고,
그 순간이 나였다.

엔진은 꺼져도 여운은 남는다.
그 세단은 사라졌지만,
그 쇠의 숨결과 라디오의 잡음,
그 모든 게 지금도 내 안 어딘가에서 조용히 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