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의 관계-세상을 듣는 라디오
라디오는 듣는 사물이다.
보이지 않는 세상을 대신 들어주는, 오래된 귀.
우리는 그것을 켜고, 다이얼을 돌리고,
잡음 사이로 누군가의 목소리를 찾는다.
그건 어쩌면 세상과 연결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가장 오래된 본능일지도 모른다.
우리 집에는 낡은 라디오가 있었다.
작고, 군데군데 벗겨진 은색 라디오.
엄마는 늘 그 앞에서 클래식을 들었다.
볼륨을 아주 작게 틀어놓고,
마치 기도를 하듯이 귀를 기울였다.
엄마의 목소리는 병의 후유증으로 말아붙었다.
단어 끝이 자꾸 말려 올라가고,
때로는 쉼표처럼 끊어졌다.
그래서 엄마는 말하는 걸 싫어했다.
노래 부르는 것도, 사람들과 대화하는 것도.
하지만 우리는 그 목소리가 좋았다.
그 떨림 속에는 엄마의 온기가 있었다.
그건 우리에게 세상을 막아주는 방패였고,
비가 새어드는 날엔 우산 같았다.
어느 날 라디오에서 이선희의 노래가 흘러나왔다.
“그 중에 그대를 만나…”
엄마는 천천히 따라 흥얼거렸다.
가늘고 흔들리는 목소리였지만,
그 노래는 거실 가득 퍼져 나갔다.
그 순간, 나는 알았다.
엄마는 여전히 세상과 연결되어 있었다.
나는 그때 엄마를 보며 그림을 그렸다.
창문 너머로 햇빛이 기울고,
라디오의 불빛이 작게 반짝였다.
엄마는 손으로 리듬을 타며,
조용히 웃고 있었다.
그 미소는 오래된 주파수처럼,
시간이 지나도 흐릿하게 남았다.
이제 나는 라디오를 잘 듣지 않는다.
세상은 이미 너무 많은 소리로 가득하다.
하지만 가끔 운전 중에 주파수가 어긋날 때면,
그 잡음 사이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잘 있지?”
그 말 한마디가 파도처럼 밀려와
가슴속 어딘가를 흔들고 간다.
라디오는 여전히 세상 어딘가에서 울리고 있다.
그 주파수는 어쩌면
우리와 누군가를 이어주는 마지막 끈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나는 안다.
어머니의 목소리도, 그 노래도,
그 끈의 한쪽 끝에 아직 매달려 있다는 것을.